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132화 (132/270)

제132화

서도화가 통신석을 식탁 위에 올려 고정했다. 아덴이 그의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우리 내기하자.”

“무슨 내기?”

“하이넬이 바로 받는다, 안 받는다.”

서도화는 코웃음 치며 말했다.

“안 받는다.”

“난 안 받-, 아이씨.”

한발 늦은 아덴이 퉁명스레 욕을 지껄였다.

하이넬이 얼마나 경계가 심한지는 동료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녀는 사교성도 좋고 무척 말을 잘해 주로 파티의 일을 외부에 전달하는 통신책 역할을 하거나, 서도화와 함께 숙소를 잡거나 정보를 모으는 역할을 도맡곤 했다.

하지만 그만큼 먼저 접근하는 사람에 대한 의심이 많았다.

모르는 좌표로 들어오는 통신 연결을 안 받는 것도 그 경계 중 하나다.

지금 서도화와 아덴이 가진 통신석은 아마 하이넬이 생전 처음 봤을 특이한 좌표일 것이므로 절대 받지 않을 것이다.

……그래, 안 받을 것이다.

“안 받으면 어떡하냐…….”

그 겁 많고 멍청한 시스템이 동료들에게 두들겨 맞을 거 각오하고 하이넬 앞에 모습을 드러내 설명했을 리도 없고.

통신석을 가지고 있어 봐야 하이넬이 안 받으면 소용이 없을 텐데.

아덴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받을 때까지 걸어야지.”

걸고 걸고 또 걸다 보면 동료 중 누군가 욕이라도 하기 위해 받을 것이다.

아덴이 통신석을 툭 쳤다. 그러자 통신석의 가장 윗부분이 붉게 타오르며 그 위로 네모난 창이 튀어나왔다.

이것으로 하이넬의 통신석으로 신호가 갔을 것이다.

하지만 통신석 위의 검은 화면은 아주 잠시 유지되다가 이내 툭 꺼져버렸다.

“아.”

아덴과 서도화가 서로 눈을 마주치곤 픽 웃었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역시나 하이넬은 통신석 신호를 받자마자 꺼버렸다.

아덴과 그의 동료들이 영웅이 된 이후로 모르는 이들로부터 통신석 연결이 얼마나 오던가.

각국의 왕과 귀족은 물론이고 뒷세계 인간들, 어떻게 알아냈는지 순수한 팬심으로 연결한 놈들까지.

아마 그중 하나라고 생각되었을 것이다.

“반응속도 빠른 걸 보니 하이넬도 여전히 건강하네.”

아덴은 픽 웃곤 다시 통신석을 건드렸다.

그렇게 아덴의 주도 하에 몇 번이나 켜고 끄고 켜고 끄기가 계속되었다.

서도화가 고개를 돌려 시간을 확인했다.

약 20분간 차원을 뛰어넘은 켜고 끄기 기 싸움.

이걸 얼마나 더할까 슬슬 지겨워지려던 차 드디어 팅! 경쾌한 소리와 함께 검은 화면에 동료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들은 모습이 드러나자마자.

-아이 이런 썅 미친 새끼가. 장난하냐?

-누가 우리 누님한테 자꾸 장난통신석질입니까? 뒤질라고요? 눈 안 깔아?

-아그들아. 그만해라.

-누님!

-누나!

-저짝 개새키들이 뭘 알아서 그랬겠냐잉? 긴장하지 않았겠냐? 일단 무기 치워라.

무슨 개떡 같은 상황극을 하며 험상궂게 이쪽을 노려보는 게 아닌가.

아주 평화로운 숙소에 있으면서 무기 집어 들고 영상통신석 신호를 준 이들을 위협하려 난리가 났다.

“……지랄도 청산유수네.”

자신도 모르게 서도화가 욕을 내뱉자 아덴이 움찔거리며 그의 가슴을 툭 쳤다.

“욕하지 마라. 한야 형한테 혼난다.”

한편 화면 속 그들의 동료들은.

-……어?

-아니. 이게 무슨…….

-도화 형? 아덴 형?

-형님들! 제가 헛것을 보고 있습니까? 실제입니까 이거? 형님들 살아계신 겁니까?

-도화? 아덴? 너희 어떻게…….

철커덕, 철컹 무기가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전 구수한 말투들은 어디로 가고 하이넬과 동료들이 한바탕 난리가 났다.

아마 이 상황극을 주도했을 하이넬은 놀라 ‘너희 어떻게?’만 중얼거렸고 저 중 가장 막내였던 스콜피온 녀석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

불과 1분 전만 해도 눈 깔라고 외쳐 대던 놈이.

아무튼 딱 보기에도 상당히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었다.

서도화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상황을 설명하자면 좀 긴데-”

서도화가 용사 파티 동료들에게 지금까지의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서도화의 말을 듣는 동료들의 표정은 시종일관 바뀌어 갔다.

놀라기도 하고 걱정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신기해하기도 했으며 또한 그간의 의문이 해소되었다는 듯 후련한 얼굴을 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아덴과 도화 너희는 그날 텔레포트로 도화가 원래 살던 세상으로 넘어갔고 타이밍 나쁘게 다 죽어가던 마왕도 함께 넘어갔다 이 말이지?

“맞아.”

-감시 명목으로 같이 ‘아이돌’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일하게 되었고? 마왕은 아직 안 죽었고 대신 조금씩 정화되고 있는 중이고?

“어, 그래.”

정확히 이해했네. 서도화가 느긋하게 손뼉을 짝짝 쳤다.

그 모습에 하이넬이 인상을 구겼다.

-지금 태평하게 박수나 칠 때야? 그래도 아무튼 너희가 무사하다니 다행이야.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정리는 잘 돼가?”

-그럭저럭. 마왕과 전투를 치를 거라고 미리 이야기해뒀었잖아. 각국에서 알아서 뒤처리해주고 있어. ……대신 다른 의미로 세상이 뒤집혔지.

“뒤집혔다니 무슨 말이지?”

아덴이 다급히 대화에 끼어들어 물었다. 세상이 뒤집혔다는 말에 스의 표정이 달라졌다.

하이넬은 심각한 얼굴로 머뭇거리다 슬쩍 비켜섰다.

그러자 울보 막내 스콜피온이 ‘아이고오 아이고 형니임!’ 곡 소리를 내며 쳐울기 시작했다.

서도화와 아덴은 화면으로 보이는 광경에 표정을 굳혔다.

-저건.

아덴이었다.

석화가 된 아덴이 침대에 고이 눕혀져 있었다.

-너희들이 통신을 걸어줘서 살았어. 아니면 대처를 다른 방향으로 할 뻔했지 뭐야?

영혼이 빠져나가며 육체의 보존을 위해 석화가 진행되었다는 걸 알지 못했더라면 지금까지처럼 계속해서 석화를 풀어내는 방법만 찾아 헤맬 뻔했다.

-세상은 조금씩 괜찮아지는 중이야. 독기도 사라졌고, 구름이 걷혔어. 이젠 해가 들거든.

하이넬이 통신석을 살짝 돌려 창문으로 들어오는 환한 햇살을 보여주었다.

그 광경에 서도화와 아덴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나 보고 싶었던 밝고 찬란한 햇살. 후반부엔 보고 싶어도 하늘을 가득 채운 독무로 인해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다행히 정말로 마왕이 사라지며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중인 모양이다.

-다만 아까 말했듯 우리의 영웅들이 갑자기 이렇게 되었으니. 아덴은 돌덩이가 되고 도화는 갑작스럽게 빛에 둘러싸여 마왕과 함께 사라졌으니 아무래도 비상사태였긴 하지.

서도화는 하이넬이 굳이 길게 설명해주지 않아도 그 상황을 알 것 같았다.

세상을 구한 영웅들의 리더 아덴의 석화, 신에게 사랑받아 최고의 치유력을 지닌, 치유력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한 음유시인 서도화의 실종.

그리고 마왕의 시신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것까지. 그야말로 온 대륙에 비상이 걸렸다.

각 대륙, 각 나라가 다 제각각의 이념과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모두가 용사 아덴과 서도화에게 씻을 수 없을 만큼의 은혜를 입었다는 건 같았다.

그리하여 세계 모든 국가가 힘을 합쳐 아덴의 치료를 시도하는 한편 서도화를 찾고 있었다.

-누군가는 아덴 형님이 희생하고, 도화 형님께서 마왕을 데리고 하늘로 가신 게 아니냐고 그러더라고요.

-흐윽, 흑, 으흑, 저는 아니라고 했습니다아…… 우리 형님들이 그렇게 가실 분들이 아니라고오! 그런 말 한 놈들을 흠씬 두들겨 패줬습니다아!

사족을 붙이는 동료들의 말을 듣던 하이넬이 스콜피온의 말을 듣곤 표정이 바뀌었다.

-너 뭐라고? 두들겨 패?

-……누, 누님! 제가 지금 무슨 말을! 아, 아닙니다! 오해! 오해십니다!

-네가 덜 맞았나 봐? 어이! 둔투프! 지팡이 가져와!

-누님!

-지팡이 왜? 또 지팡이로 스콜피온 패려고? 그만해. 그러다 애 뼈도 못 추리겠어.

서도화는 동료들의 여전한 대화를 들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어우 지겨워.

하이넬은 세계 제일가는 마도사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지팡이를 마법보단 몽둥이질에 쓰길 더 좋아한다.

주로 스콜피온이 자주 맞는다. 도적들 사이에서 커서 언행에 실수가 잦은 편인지라.

하이넬은 둔투프가 지팡이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리며 만류하자 포기하곤 다시 통신석 앞에 앉았다.

-하, 아무튼 아직은 황폐한 세상이지만 조금씩 재건되고 있어. 이제 각국에 연락해야겠네. 너흰 무사하니 걱정 말라고.

서도화는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조만간 이곳의 좌표를 알 수 있을 것 같아. 알게 되면 바로 알릴게. 아덴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줘.”

-그래. 그럼.

하이넬이 해맑게 말했다.

-한, 3년만 기다려! 좌표만 알려주면 차원을 넘어 영혼 텔레포트 하는 방법을 찾을 테니까.

역시 하이넬.

남들이라면 10년은 족히 걸릴 차원을 걸친 영혼 텔레포트를 단 3년 만에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 기간을 지키려면 하이넬이 상당히 고생하겠지만.

그때 서도화와 하이넬의 대화를 지켜보던 아덴이 태평하게 말했다.

“천천히 해.”

-……뭐?

“천천히 해도 된다고.”

서도화가 아덴을 쳐다보았다. 아덴은 변함없이 여유로운 얼굴로 말했다.

“빨리해도 난 당장은 못 돌아가.”

-무슨 말이야 그건?

그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도화랑 아이돌 해야 하거든. 약속했어. 이 녀석을 돕기로. 마왕 감시도 해야 하고.”

돌아가기 전에 마왕을 처리하기도 해야 했고 무엇보다 서도화의 꿈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 이뤄주고 싶었다.

아덴 또한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러니까 천천히 해. 하이넬 너도 좀 쉬어가면서 연구해야지. 걱정 마. 재밌어.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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