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6화
역시 밀리언 아이돌 우승 그룹 답다고 해야 할까?
이미 경연 프로그램 등으로 숱한 히트곡을 발표했던 팝넷과의 협업으로 성공이 확정된 그룹, 우승자 타이틀의 화제성, 그리고 빵빵한 지원 덕분에 어메스의 앞으로 수많은 곡들이 들어왔다.
그것도 어메스의 이미지에 딱 맞춘 컨셉의 곡들만 잔뜩 들어왔다.
덕분에 이 작은 회사는 처음으로 내놓는 아이돌의 곡을 무려 골라잡을 수 있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진짜 내가! 말했지! 말했잖아! 내가 보는 눈 하나는 기가 막히다니까? 우리 애들 봐봐. 처음만 좀 헤맸지 지금 얼마나 잘하는지 봐봐!”
김유진은 타이틀곡을 정하는 내내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무척 피곤한 일정이지만 전혀 피로함을 느낄 수 없었다.
그렇게 최고의 곡 중에서도 최고의 곡들만 고르고 골라 어메스의 데뷔 앨범 타이틀곡과 수록곡들이 정해졌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녹음 일정을 앞둔 어느 날. 멤버들은 오랜만에 팝넷 카메라 앞에 섰다.
어메스로 놀아보자 두 번째 촬영이 진행되는 날이었다.
-여러분 잘 지내셨어요?
도성한 피디의 물음에 멤버들이 ‘네!’ 힘차게 대답했다.
유제이 엔터테인먼트 1층에 위치한 카페. 도성한 피디는 멤버들을 둘러보고 감탄 어린 웃음소리를 냈다.
-역시 여러분들. 꾸미니까 확 화면이 사네요.
“저번이랑 다르죠?”
주상현이 장난기 어린 말투로 말했다.
연습과 회의 그리고 숙소에서의 편안하다 못해 잔뜩 풀어진 모습이 담겼던 1회분과는 달리 이번엔 멤버 모두 메이크업과 의상을 제대로 갖춘 채 카메라 앞에 섰다.
데일리하게 차려입은 것뿐인데 잘생긴 것으로도 화제를 모았던 그룹답게 참 비주얼적으로 보기가 좋았다.
“확실히 뭘 좀 바르니까 아이돌 같아졌어.”
“바르는 게 나아? 난 본판이 더 좋은 거 같은데.”
또한 멤버들도 본인들이 잘생긴 걸 아는지 도성한의 칭찬에 아무도 겸손 떨지 않았다.
‘우리가 좀 잘생기긴 했죠.’
‘민낯이 좀 더 잘생기지 않았어요?’
나중에 뻔뻔하게 인터뷰할 몇몇 멤버들의 답변들이 벌써부터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했다.
도성한은 맞다고, 너희들 잘생겼다고 멤버들의 기분을 한껏 띄어주곤 진행을 이었다.
-자, 그럼 오랜만에 완전 잘생겨진 우리 어메스 분들이랑 진행해볼 오늘의 주제는요. 자, 이거 받아 가세요.
도성한이 멤버들의 향해 판넬을 내밀었다.
“제가 가져올게요.”
한야는 판넬을 받아들고 도성한의 신호에 맞춰 판넬의 가장 위에 붙여진 스티커를 떼어냈다.
[힐링의 시간]
“힐링?”
-오늘의 주제는 힐링의 시간입니다.
“어! 이거 저번에 그거!”
아덴이 벌떡 일어나며 판넬을 검지로 가리켰다.
“그거 아니에요? 저번에 인터뷰에서 물었던!”
“인터뷰? 무슨?”
우리가 인터뷰에서 뭘 했던가? 서도화가 눈동자를 굴리며 생각하다 ‘아’ 작게 탄성을 냈다.
그러고 보니 지난 회차 인터뷰 촬영 막바지쯤 힐링에 관한 간단한 질문을 받았던 것 같다.
‘만약 나에게 힐링할 시간이 주어진다면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가요?’라는 질문이었다.
도성한 피디는 판넬에 삿대질하는 아덴을 보며 껄껄 웃곤 말했다.
-어우 역시 아덴 씨! 눈치가 빠르시네요. 맞습니다. 저희가 저번 1회 촬영 인터뷰에서 ‘나에게 힐링할 시간이 주어진다면?’이라는 질문을 마지막으로 드렸었는데요.
“아 맞아. 그런 질문 했었어요.”
“그게 이렇게 이어질 줄이야.”
-오늘은 그 질문에 받았던 여러분들의 대답을 참고 삼아 여러 가지를 준비해보았습니다. 이름하여 바쁘게 살아온 우리들! 힐링의 시간을 가져보자!
“와아!”
멤버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곡이 정해진 순간부터 휘몰아치듯 해치웠던 빡센 일정들.
밀리언 아이돌이 끝난 후 잠깐의 휴식으로 회복했던 컨디션은 타이틀곡의 확정과 동시에 빠르게 도르마무되었다.
이제 슬슬 휴식과 힐링이 필요하다 싶은 때였는데 방송에서 휴식을 챙겨주겠다니 이 얼마나 감사한 기획인가.
매우 좋아하는 멤버들의 모습에 도성한이 활짝 미소를 짓곤 판넬을 가리켰다.
-그럼 먼저 저희가 준비한 일정들을 진행하기 전에, 앞선 인터뷰에서 멤버들이 했던 대답을 먼저 확인해 봐야겠죠? 한야 씨, 판넬의 스티커 떼주시겠어요?
“네!”
한야가 판넬 아래쪽의 커다란 스티커를 떼어냈다.
Q.어떤 힐링을 하고 싶으신가요?
A.
한야: 운동을 하고 싶어요.
아덴: 등산, 멤버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힐링이죠.
케이: 왕이 되고 싶다.
도화: 멍하니 있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요.
상현: 형들이랑 게임 할래요!
“…….”
멤버들은 잠시 말이 없었다.
꿈뻑꿈뻑. 정적 속 한참이나 판넬 속 답변을 보던 서도화가 판넬을 가리키며 도성한에게 물었다.
“이거 진짜예요?”
진짜 대답을 이따구로 했어요?
황당함이 가득한 물음에 도성한과 제작진들이 키득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저희가 들었던 답변들입니다.
“아니, 네 답변도 이상한데 뭘 진짜예요? 물어.”
아덴이 서도화를 툭 치며 말했다.
한야, 아덴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한야는 운동을 좋아하고 아덴은 동료를 좋아하니 평범하고 훈훈한 답변이었다.
그런데 케이의 답변부터 훅 이상해지더니 서도화가 좀 덜 이상하고 주상현에서 다시 원래대로 평범하게 돌아온다.
한야가 물었다.
“아니 도화는 그렇다 쳐. 원래 사람이 피곤하면 아무것도 안하고 쉬고 싶을 수 있지. 근데 케이는 저게 뭐야?”
“네? 뭐.”
케이가 당당히 말했다.
“말 그대로입니다. 저는 옛날부터 수하들의 시-”
케이가 힐끔 옆을 바라보았다. 서도화가 웃으며 맹렬하게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입만 웃고 있고 눈은 웃고 있지 않다….
케이가 잽싸게 말을 바꾸었다.
“장난이었습니다.”
그제야 서도화의 고개가 정면으로 향했다. 케이 저 녀석. 최근 그래도 좀 발전했다 싶다. 평생 없을 것만 같던 눈치가 생겼다.
-그럼 말 나온 김에 각자 왜 이런 답변을 했는지 한번 들어볼까요? 한야 씨부터.
“저는 원래 운동을 좋아해서요. 기회가 될 때마다 운동하러 가는데 최근에는 케이 데리고 같이 가고 있어요. 체력 좀 기르라고. 그냥 좋아해서 그렇지 큰 이유는 없어요. 다음은 아덴이.”
“저는 등산. 자연을 보는 게 좋아요. 나무, 풀 그런 냄새, 소리 다 좋아요. 멤버들이랑 같이 있는 것도 좋아서 언제 한번 같이 등산 가고 싶어요.”
-그러고 보니 아덴 씨는 밀리언 아이돌 합숙 때도 시간 나면 산책하고 그랬었죠?
“오, 어떻게 아셨지?”
-매일 같이 등산하던 VJ가 덕분에 건강해졌다고 고맙다 전해달래요.
도성한의 말에 제작진들이 키득거렸다. 아무래도 제작진들만 아는 아덴과 VJ님의 산책 비화가 있는 모양이다.
-다음 케이 씨는 아까 들었고 도화 씨.
“네, 저는.”
멤버들의 시선이 서도화에게 쏠렸다.
서도화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저 날도 아덴이랑 케이가 다퉈 가지고.”
“아.”
“아하.”
-또?
“네.”
멤버들과 제작진들은 바로 답변이 왜 저랬는지 납득할 수 있었다.
제작진들도 밀리언 아이돌과 어메스로 놀아보자 촬영을 몇 번 거치고 나니까 아덴과 케이가 시도 때도 없이 다툰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보통 두 사람의 다툼은 서도화가 정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서도화가 말했다.
“저 때가 아마 싸우는 거 말리고 바로 인터뷰 했을 때였을 거예요. 그래서 살짝 지친 상태라 저렇게 말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놀랍게도 이곳에 있는 모두가 도화 씨의 말을 납득하고 있습니다. 그럼 다음은 상현 씨.
주상현은 서도화를 안쓰럽게 쳐다보고 있다가 도로 카메라를 보며 화사하게 웃었다.
“우리 형들이 게임을 좋아한다길래요! 이번에야말로 같이 하는 게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우리 멤버들이랑 뭐든 그냥 같이하면서 놀고 싶어요.”
그의 대답에 멤버들이 사르르 미소 지었다. 일관되게 착하고 사교적인 대답을 하는 주상현이었다.
도성한은 멤버들의 훈훈한 분위기에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네 좋습니다. 최근 데뷔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우리 어메스 멤버들! 조금이라도 하고 싶은 거 하며 힐링하라는 마음으로, 여러분들이 말씀하셨던 것들을 모두 다 준비해봤습니다.
“이거 다섯 개 다요?”
한야의 물음에 도성한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저희식대로 좀 바꾸기는 했어요. 한야 씨 판넬 돌려서 뒤쪽에 스티커 떼주시겠어요?
“뒤쪽 스티커요?”
한야가 판넬을 뒤로 돌려 스티커를 뜯었다.
-여러분들의 답변을 참고로 만든 오늘의 일정표입니다.
[오늘의 일정표]
1. 트레이너 한야의 스파르타 PT TIME!(한야)
2. 멤버들과 진솔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진실게임(아덴)
3. 케이를 먹여라! 임금님의 수라상!(케이)
4. 몽롱한 찜질방(도화)
5. 광란의 스페셜 게임!(상현)
서도화는 인상을 쓰며 멀찍이 떨어져 다시 한번 판넬의 글씨를 읽었다.
‘이게 뭔 말이지.’
첫 번째 한야 분의 일정을 제외하면 딱히 멤버들이 원하지도 않고 무슨 말인지도 알 수 없는 일정들이 즐비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