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0화
서도화는 태어나서 한 번도 노래 부르라는 말을 거부한 적이 없었다.
부르지 말라는 말은 거부한 적 있어도, 가수 연습생이 부르라는 말에 빼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멤버들이 노래를 요청했고 자신은 마이크를 들고 있다.
그럼 당연히 노래를 해야지.
난 너와 함께할래
낙엽 위를 부스럭거리며
손을 잡고 걸어
들려? 나른한 재즈선율이
느긋하게 부르는 재즈 발라드 ‘To. you’.
서도화는 눈까지 감고 진지하게 노래를 불렀으나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헬륨가스를 잔뜩 먹은 우스꽝스러운 목소리였다.
서도화가 진지하게 노래를 부르면 부를수록 블라인드 너머 멤버들과 제작진들의 웃음소리는 더더욱 거세졌다.
그중에 특히 아덴의 웃음소리가 매우 컸다. 저건 그냥 웃음이 아니라 폭소였다.
“아, 하아니힉! 심지어 잘 불러!”
“아니 이런 목소리로 잘 부르지 말라고요!”
음색이 중요한 노래이니만큼 진성과 가성을 적당히 섞어 정성 들여 부르는데 그게 하필 헬륨 먹은 목소리니, 솔직히 서도화가 들어도 무척 웃기게 들리긴 했다.
“이 정도면 되나요?”
서도화는 자신마저 웃음이 터질 것 같아 적당히 부르고 끊었고 블라인드 뒤에서 ‘저 마이크 가져가자’ 하는 아덴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네! 역시 우리 메인보컬! 노래 재밌게 잘 들었고요! 그럼 발언 시작해주시죠.”
“네, 그럼 저는 아덴에게 한마디 하겠습니다.”
“오오!”
“친구에게 한마디인가요?”
분위기를 띄우는 멤버들 사이 아덴이 힘차게 말했다.
“저는 준비 됐습니다. 어디 한번 말해 보세요.”
“두 사람은 연습생이 되기 전부터 친구 사이었죠. 아마 서도화 씨도 하고 싶은 말이 굉장히 많을 텐데요.”
모두의 기대 속에 서도화가 말했다.
“아덴 씨는요. 약간,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합니다.”
“워어!”
주상현이 완전 들떠선 서도화의 말에 추임새를 넣어주었고 제작진과 멤버들이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아덴의 반응을 보고 웃는 듯한데 서도화는 보지 않아도 아덴이 어떤 표정으로 자신의 말을 듣고 있을지 눈에 선했다.
아마 충격 먹은 얼굴로 멍하니 블라인드 속 서도화의 실루엣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아덴이 완전 상처 받은 표정이야. 안쓰러워라.”
한야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고.
“도화 형, 아덴 형 무슨 실연 당한 것 같은 얼굴이에요!”
주상현이 서도화가 상상한 그대로 아덴의 모습을 읊어주었다.
“도화, 도화……. 내가 너한테 뭐 했어?”
완전 슬픔에 젖은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아니.”
서도화는 고개를 가로젓다 어이없어 픽 웃었다.
“들을 준비 됐다며.”
“나는 춤이나 노래 이야기를 할 줄 알았지…….”
아무래도 아덴은 서도화가 자신의 성격적인 부분은 장점이든 단점이든 무조건 받아들였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건 아덴만의 생각이고, 그간 서도화가 아덴의 사이코적인 성격을 지적하지 않은 건 그쪽 세계 인간들에 대해 반쯤 체념한 채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도 그 세계에 별종이 많았으니.’
동료가 적과 가까이 붙어 싸우고 있는데 그들이 다치든 말든 망설임 없이 광범위 마법을 쏟아붓는 마법사 하이넬.
더 웃긴 건 마법에 두들겨 맞고도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전투에 임하던 수백의 동료들이다.
그리고 동료의 지갑을 시도 때도 없이 훔치던 도적놈.
인간을 연구대상으로 삼으며 같은 편이면서 일부러 동료들을 함정에 빠트리기도 했던 인형술사도 있었지.
거인족 혼혈로 누구보다 힘이 강하면서도 겁쟁이였던 둔투카. 그래도 얘는 사람은 착했다.
화룡점정으론 공감 능력이 부족한데 용사인 아덴.
물론 자신도 그런 비난에서 자유롭진 않다. 옆에서 사람이 터져나가도 하프 치며 노래를 불러 젖혔으니까.
어쨌거나 하나같이 이상한 놈들이라 참 성격 개같이 안 맞아도 그냥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겠거니 생각하며 살았던 것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니까. 그때와 같이 자기 자신만 아는 성격으론 이 그룹 생활을 이어나갈 수 없다.
사실 예능에 맞춰 반 장난식으로 꺼낸 화제이긴 한데 아덴이 이걸 충고로 받아들이고 좀 고치려 노력하길 바라는 보호자의 마음도 있었다.
-참고로 도화 씨는 아덴 씨의 어느 점이 배려가 부족하다고 느끼셨어요?
“다들 아시다시피 아덴이 체력이 굉장히 좋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솔직히 친구한테 제 입으로 이런 말하는 거 좀 오글거리기는 한데 아덴은 몸으로 하는 건 뭐든 잘하는 친구예요.”
천재적인 전투 능력. 단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던 무기를 그 생김새만으로 단번에 파악하여 사용할 정도로 센스도 좋고 체력 좋은 거야 당연하다. 그런 놈이 설마 춤까지 잘 출 거라곤 생각 못 했다.
“맞아요. 아덴 형은 은근 천재 같아요. 뭐든 잘해.”
“이 정도야 뭐. 제가 머리는 나빠도 몸 하나는 잘 써요. 안되는 건 될 때까지 연습하는 것도 잘해요.”
자랑스레 말하는 아덴의 목소리를 듣고 서도화가 단호히 말했다.
“저게 문제예요.”
“……뭐?”
“같은 사람 맞나 싶을 정도로 체력이 좋거든요. 그래서 약간 정도를 모르는 것 같아요.”
아덴의 말소리가 또 없어졌다. 또 상처받은 걸까? 서도화는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다른 멤버들이 본인처럼 체력이 좋은 줄 알고 무리하게 연습을 이어갈 때가 있어요. 매니저 형이 내일 스케줄 있어서 쉬어야 한다고 말해도 안 들어요.”
“그런데 그건 맞아요.”
한야가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멤버들 체력도 생각을 해줘야 하는데 억지로 붙들고 계속할 때가 있어서. 그건 좀 고쳐줬으면 해요.”
“아니 다섯 시간 쉼 없이 연습해놓고 좀 쉬자 하면 ‘이게 힘들어?’, ‘왜 벌써 지쳐?’, ‘진짜 연약하다 너네.’ 이런다니까요?”
괴물 같은 체력의 아덴과는 달리 자신은 음유시인이란 말이다.
힐러가 힘이 어딨어!
그리고 케이에게는 핵이 없고 다른 사람들은 평범한 인간이다. 그 세계와는 달리 사람들이 자신보다 약하다는 걸 이해를 해야 하는데 아덴을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덴과는 다르게 멤버들은 무리 가지 않을 정도로 연습하고 체력을 회복해서 다음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데 말이다.
블라인드에 가려져 상황을 볼 수는 없지만 또 아덴의 표정이 이상해진 모양이었다.
제작진들과 멤버들이 다시 웃기 시작했다.
“도화 형, 아덴 형이 되게 억울해하고 있어요!”
주상현이 아덴의 모습을 서도화에게 전해주는 찰나 즐거운 분위기에 맞지 않게 진지한 케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현아, 잊은 것이니. 우린 모두 다 같이 말을 편하게 하기로 하지 않았니.”
“아, 아! 그랬죠. 지! 아덴 형 되게 억울해하고 있어!”
서도화가 말했다.
“근데 이건 진짜 좀 생각해봐야 해. 우리 앞으로 스케줄도 많아지고 할 텐데 이렇게 연습하다간 한 명 쓰러져 나가.”
“잠깐!”
아덴이 귀가 아플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제작진과 멤버들이 더 큰 소리로 웃어댔다.
“자, 잠깐 근데 진짜 솔직히 연습이 힘들어? 좀 더 할 수 있지 않아?”
“와 진짜.”
주상현의 진심 어린 탄식이 들려왔다. 서도화가 제작진들과 함께 픽 웃었다.
아무리 설명해도 아덴 저놈은 지친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 못 하는 놈이다.
태어나서 지친 적이 마왕 케이와의 첫 번째 조우에서 죽도록 싸워 결국 패배했을 때 외엔 없으니까.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 멤버들 체력이 정말 너무 약하다고 생각하거든.”
“……마, 맞다! 너희는 너무 약해!”
케이가 되먹지도 않은 공감을 하고 자빠졌다. 그러자 케이와 의견이 맞는 건 또 싫은지 아덴이 빠르게 말을 바꿨다.
“하지만 도화의 의견이 그렇다면 알겠어. 앞으로 멤버들이 쉬자고 하면 쉴게.”
“이야! 역시 도화 형 말은 잘 들어준다니까요. 아덴 형이.”
아덴의 빠른 수용으로 앞으로 멤버들의 최대 연습 시간은 새벽 2시까지로 타결되었다.
-하하, 그럼 도화 씨는 이제 발언 끝나신 건가요?
도성한 피디의 물음에 서도화가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케이한테 시비 좀 걸지 마! 네, 이상입니다.”
서도화의 발언 뒤 아덴, 케이, 주상현 순으로 발언 기회가 돌아갔다.
사실 심판 혹은 심사위원급인 아덴은 굳이 안 해도 됐었지만 스스로 하고 싶다며 블라인드 뒤로 들어갔다.
주상현은 케이가 좀 더 춤 연습에 신경 써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고 한야 또한 감정을 너무 참아내기만 하는 것 같다며 동생들에게 의지해달라고 말했다.
정말 착하고 배려심 강한 막내다운 발언이었다.
아덴은 동료들이 무척 소중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잘 도와주어서 고맙다, 하지만 케이는 평소에 표정 좀 풀고 조화롭게 살았으면 좋겠고 도화는 고민 있으면 숨기지 말고 자신에게 털어놓으라 말했다.
조용히 있다 아덴에게 저격을 당한 케이는 ‘두고 봐라’라며 이를 벅벅 갈더니 들어가 오로지 아덴과 서도화만을 저격해 말했다.
“여러분들은 아덴과 서도화의 순진한 외모에 속고 있습니다.”
물론 그의 진심 어린 저격은 개그로 빠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덴은 시도때도 없이 장난을 치고 저에게만 욕쟁이입니다. 도화의 말처럼 시비 걸지 않길 바라는 바입니다. 그리고 도화는 협박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이젠 하프 치며 노래부른다고 해도 전혀 무섭지 않아!”
“네에! 잘 들었습니다!”
“멋진 발언이었습니다.”
케이의 발언은 아덴, 서도화 콤비의 박수 세례로 화려하고 초라하게 막을 내렸다.
그러나 장난처럼 진행되는 상황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서도화는 웃음을 지우고 케이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근데 케이, 진짜 서운해지면 꼭 말해야 한다.”
그룹의 유지를 위해 아덴의 배려가 필요하듯 서도화와 아덴도 케이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은 잠시 접어두고 멤버로서 그의 감정을 생각해주어야 했다.
서도화의 말에 씁쓸히 블라인드 밖으로 나오려던 케이가 움찔거리며 걸음을 멈추었다.
“서, 서운한 적 없었다! 신경 쓰지 말아라!”
“…….”
헬륨이 잔뜩 낀 목소리가 어색하게 말했다.
[오늘의 일정표]
1. 트레이너 한야의 스파르타 PT TIME!(한야)
2. 멤버들과 진솔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진실게임(아덴)
3. 케이를 먹여라! 임금님의 수라상!(케이)
4. 몽롱한 찜질방(도화)
5. 광란의 스페셜 게임!(상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