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141화 (141/270)

제141화

진실게임이 끝난 후 멤버들은 또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다행히도 첫 번째 코너가 끝난 후 빠르게 닳았던 멤버들의 체력은 진실게임을 하며 어느정도 회복이 되었는지 주상현이 신나게 아덴과 장난을 치고 있었다.

“얘들아!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의상 빌린 거니까 되도록 음식 안 흘리게 조심해야 해. 진짜로 알겠지?”

“네!”

서도화는 스타일리스트의 말에 제 의상을 만지작거렸다.

멤버 모두 왕의 곁에서 일하는 신하들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서도화는 악공, 아덴은 내관, 한야는 어의, 주상현은 무관.

서도화는 이 복장이 참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보다 케이의 복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왕.

케이는 왕이었다.

이 쓸데없이 화려하고 방어력도 없는 불편한 복장은 뭐냐는 케이의 물음에 한야는 임금님의 복장이라고 청량하게 말했고 그 이후 케이는 내내 싱글벙글이었다.

솔직히… 고까웠다.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실실 웃고 있는지 너무 잘 알겠으니까.

“형은 사극 많이 봤으니까 왕 역할 잘하겠다. 왕 말투 있잖아요.”

“왕 말투가 뭔가? 내 귀엔 다 똑같은 말투로 들릴 뿐이다.”

“그거! 지금 하고 있는 거!”

“무슨 소리냐.”

그저 좋다고 싱글벙글인 케이를 보며 서도화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때 제작진이 소리쳤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세트장 바깥에서 대기해주세요!”

오늘의 세 번째 일정. 케이의 코너가 시작되었다. 카메라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이번 오프닝은 빈 세트장에 조선시대 복장을 갖춘 멤버들이 한명씩 등장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리 오너라~”

한야와 주상현에게 사극 속 유명한 대사를 배운 아덴이 큰 소리로 외치며 뒷짐 지고 세트장 안으로 들어섰다.

이를 따라가며 한야가 시원하게 웃었다.

“하하, 아덴, 내관은 이리 오너라~ 라고 안 하는 거야.”

“어 진짜? 왜?”

아덴은 그새 한야에게 반말이 익숙해진 듯했다.

“하하, 여긴 궁이라는 설정 아니었어?”

“보통 내관이 궁에서 그런 말 하는 경우는 잘 없을걸?”

주상현의 말에 아덴이 실망한 듯 제 옷깃을 탁 쳤다.

“에이 그래? 근데 내관이 뭐 하는 사람이야?”

“내관은 임금님을 가까이서 모시면서 일하던 사람이야.”

“에이.”

“내시하면 유명한 게 그거 아니야? 주상전하 납시오! 하는 거.”

“그게 뭐야.”

“그게 뭐냐면-”

주상현이 아덴에게 말의 뜻을 알려주었다.

“일단 우리 나란히 서서 다들 본인이 무엇인지 소개부터 한번 해볼까요?”

한야가 떠드는 멤버들을 진정시키고 나란히 세웠다.

그러자 카메라 밑에 앉아 이들의 토크를 지켜보던 제작진이 [사극 톤으로 소개해주세요]라고 적힌 스케치북을 들어 올렸다.

“그럼 먼저…… 나부터 할게!”

한야는 곧바로 손을 들고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흠흠. 저는 이 복장을 보면 아시지 않겠습니까.”

한야는 사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의원들의 복장, 옅은 하늘색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의 사극 톤 소개에 아덴이 그의 복장을 살피더니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탱커?”

보통 저쪽 세계에선 푸른색 하면 탱커다. 그의 옆에 서 있던 한야와 서도화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가뿐하게 모르는 척하고 말을 이었다.

“궁의 건강을 책임지는 자 어의이옵니다.”

“오오, 한야 형이랑 어울려. 어의.”

“다음은 아덴.”

“저는 내관인데. 사실 제가 이 직업이 뭐 하는 직업인지를 몰라서. 저 이것만 알아요. 주우상 전하 나압시오!”

아덴이 힘차게 소리쳤다.

“잘한다. 우리 아덴. 지금은 그것만 알면 돼.”

한야가 칭찬하자 아덴이 씨익 기고만장하게 웃곤 말했다.

“왕을 보필하긴 싫지만 이건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다음은 도화.”

“저는 이거 보이십니까.”

서도화가 제 손의 단소를 들어 올렸다. 아덴이 말했다.

“몽둥이입니까?”

“모홍…….”

주상현이 피식 웃었고 서도화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단소. 악기입니다. 저는 궁의 행사에 임금님의 앞에서 연주를 하는 악공이옵니다.”

“푸른 복식이 아주 잘 어울리십니다 그려! 껄껄껄.”

“그야말로 조선시대판 음유시인이 아닙니까~”

한야와 주상현이 서도화의 소개에 추임새를 넣어주었다.

한야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참고로 그 단소는 불 줄 아는 게요?”

“단소 말입니까.”

서도화가 단소의 입구를 입가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정성스레 불어보았다.

휘이이-

들려오는 건 초라한 바람 소리뿐이었다. 서도화는 그 이후 휘이- 휘익- 몇 번을 더 불러보곤 단소를 내렸다.

“이상입니다.”

못 분다는 말이었다.

“에헤이. 큰일일세! 악공이 연주를 못 한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어쩔 수 없으니 이건 장식으로 들고 다니겠소.”

서도화가 당당히 말하며 단소를 허리춤에 다시 집어넣었다.

“다음은 오늘따라 들뜬 자네의 차례요.”

한야가 주상현을 가리켰다. 주상현은 해맑게 앞으로 성큼성큼 나가더니 카메라 앞에서 폼을 잡고 허리춤의 검을 뽑아냈다.

“저는! 왕을 지키는 사도. 무관 주상현입니다!”

잘한다 잘한다. 주상현이 칼을 휘둘러대자 한야가 손뼉을 치며 그에게 추임새를 넣어주었다.

서도화는 한야를 따라 박수를 치면서도 문 뒤에서 주상현의 말에 흐뭇하게 웃고 있을 케이를 떠올렸다.

왕을 지킨다. 왕을 보필한다. 제2세계에선 아무렇지 않게 들었을 말을 그것도 멤버들에게서 듣고 있으니 오죽하겠는가.

생일 맞은 어린이처럼 기뻐하고 있을 것이다.

주상현의 자기소개까지 모두 끝이 나자 한야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 근데 한 명은 어디 갔을까요?”

한야의 말에 맞춰 도성한 피디가 물 흐르듯 진행을 이어갔다.

-자 여러분 그럼 이제 슬슬 임금님을 모셔볼까요? 오늘의 임금님! 케이 씨 등장해주세요.

“……어?”

세트장의 불이 꺼졌다.

이게 뭐지?

멤버들이 웅성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는 찰나 세트장의 문 앞으로 스포트라이트가 떨어져 내려오며 동시에 밀리언 아이돌 경연에서나 들어봤던 것 같은 웅장한 BGM이 울려 퍼졌다.

“아니 왜 이렇게까지 해요…….”

라는 말이 절로 흘러나왔다.

화려한 빌드업과 함께 마침내 문이 열리고 곤룡포를 입은 케이가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세트장에 들어왔다.

-자, 아덴 씨.

“……아이 진짜.”

도성한 피디의 신호에 아덴은 투덜거리며 케이의 곁으로 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은 채 외쳤다.

“주상 전하! 납시오!”

못마땅해도 할 일은 착실히 하는 아덴이었다.

아덴의 외침을 받고 등장한 케이는 더더욱 흐뭇하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툭 건방지게 토닥이곤 멤버들 곁에 다가와 섰다.

“아니 이게 뭐야학!”

“우리 임금님 너무 띄워주는 거 아니에요?”

주상현과 서도화가 말했고 아덴은 입술을 댓발 내민 채 카메라를 보다 픽 웃고는 앞으로 와서 엄지로 케이를 가리켰다.

“저 솔직히 말해도 돼요?”

-네 무엇이든요.

“쟤 너무 짜증 나요.”

아덴의 솔직한 발언에 제작진들이 크게 웃었다. 아덴은 진심이었으나 그들에게는 단순히 실친 모먼트 정도로만 여겨졌다.

아덴은 어후, 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더 이상의 말은 자신의 옷깃을 끌어당기는 서도화에 의해 저지되었다.

“모두 나를 뫼셔라! 충성을 맹세하여라!”

반면 케이는 아덴이 짜증을 내든 말든 신이 나선 소싯적 마왕이던 시절과 같이 소리쳐댔다.

“와 저 형 진짜 사극 많이 봤나 봐.”

“하핫, 게임과 애니메이션만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사극도 많이 좋아했구나? 오늘 의외의 면모를 보았네.”

“형……. 멤버들의 긍정적인 면만 봐주는구나.”

서도화는 체념한 채 케이를 보며 그저 적당히 하라고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댈 뿐이었다.

그래, 이렇게 들어보니 마왕으로서 말하던 권위적인 말투가 사극에서 들어본 말투와 억양 차이만 좀 날 뿐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그냥 외국인이 좋아하던 드라마와 같은 복장을 입어 흥분한 것으로 생각될 듯했다.

서도화가 케이를 조용히 시키고 아덴을 끌어다 제 옆에 둠으로써 어느 정도 사태가 진정되었다.

도성한 피디가 말했다.

-자, 그럼 오늘의 임금님까지 등장하셨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세 번째 코너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케이를 먹여라! 임금님의 수라상!

도성한 피디가 게임 규칙을 설명해주었다.

규칙은 간단했다. 그냥 각자 제작진이 정해준 음식을 케이에게 먼저 다 먹이는 멤버가 점수 5점을 가져간다.

대신 흘릴 정도로 마구잡이식 먹이기는 안 되며 무력을 쓰는 것도 안 된다.

-여러분들은 우리의 전하께 달콤한 감언이설과 아부로 임금님께서 먹고 싶어지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자, 그럼! 멤버 모두 앞에 있는 음식 중 전하께 꼭 올리고 싶다 하는 것을 골라주세요.

도성한 피디의 말에 케이를 제외한 멤버들이 앞으로 나와 각자 케이에게 먹일 음식을 살폈다.

준비된 음식들은 빠르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빵, 주먹밥, 아이스크림. 그리고 딱 봐도 웃기라고 가져다 둔 컵라면이었다.

-음식은 먼저 가져가는 사람이 차지하는 거예요.

멤버들이 빠르게 음식들을 채갔다.

“허?”

서도화가 헛웃음을 쳤다. 날렵한 댄스로 정평이 난 주상현, 용사 아덴, 숨은 강자 한야.

케이를 제외하게 된다면 멤버 중 최약체는 단연 서도화였다.

뒤에서 멤버들이 키득거렸다.

서도화는 멍하니 제 손에 들린 컵라면을 쳐다보다 제작진에게 말했다.

“물은 어디서 받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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