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142화 (142/270)

제142화

서도화가 컵라면에 물을 받아오고, 궁을 어설프게 재연한 세트장의 상석에 케이가 앉았다.

그리고 그 아래쪽 방석에 멤버들이 양쪽으로 나뉘어 앉았다.

“자, 촬영 시작합니다!”

제작진의 외침과 함께 촬영이 시작되었다.

“와 케이 형 웃는 거 봐.”

어쩐지 익숙한 구도에 케이는 여전히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이를 본 아덴이 고개를 내저었다.

“역시 권위적인 거 좋아하는 애라니까.”

아덴이 놓치지 않고 케이를 까내릴 동안 서도화는 조용히 컵라면 뚜껑을 열어 면을 휘적였다.

“하학! 도화 형 지금 온 신경이 컵라면으로 가 있어.”

서도화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빨리 해야 해. 면 불어.”

-자, 그럼 도화 씨의 라면이 불기 전에 얼른 시작하도록 합니다. 케이를 먹여라! 임금님의 수라상! 시작!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케이가 기다렸다는 듯 주상현을 향해 손짓했다.

“상현이 이리 오거라.”

“저요? 진짜요?”

“꼭 음식을 먹어야 한다면 차라리 네 음식을 먹겠다.”

한야에겐 자존심을 굽히고 사느라 억하심정을 느낄 때가 많았고 서도화와 아덴은 그냥 싫다.

만약 저것들이 상황극이 아닌 진짜 제 부하였다면? 부하로 두지도 않았을 거지만, 분명 역적이 되었을 놈들이다.

케이는 이번 코너의 내용을 이해한 순간부터 이미 제 마음속 우승자를 정해놓은 상태였다.

“즈언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주상현이 후다닥 달려가 케이에게 달라붙었다. 이를 빤히 쳐다보던 아덴이 제작진을 보며 물었다.

“무력만 안 쓰면 돼요?”

-네, 맞습니다.

아덴은 고개를 끄덕이곤 조용히 일어나 빵을 들고 케이에게로 향했다. 한야도 주먹밥을 든 채 케이에게로 다가갔다.

그들의 그림자가 케이에게로 드리워졌다.

“전하, 아이스크림부터 먹으면 나중에 속이 더부룩하옵니다. 드시기 전에 주먹밥부터 먹으시는 건 어떠할까요~”

“아이 형, 아이 아니야. 아까 우리 밥 먹었으니까 안 더부룩해요.”

“전하~ 주먹밥 먼저 드시면 뭐든지 원하는 걸 하나 이루어드리겠습니다~”

사실 먹어도 안 먹어도 상관없다는 듯 상당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굽신거리는 척하는 한야의 말에 당연히 주상현의 아이스크림을 먹으려던 케이가 멈칫했다.

“아 잠시만. 전하.”

케이의 변화를 감지한 주상현이 다급히 그의 팔을 잡았지만 소용없었다.

“원 하는 걸…… 정말?”

케이는 사실 한야에게 바라는 것이 몹시 많았다.

케이가 한야의 말에 혹해서 주먹밥을 건네받는 사이 제작진은 다른 쪽을 보며 조용히 키득거리고 있었다.

“그래, 내 한야 형의 바람을 들어주지. 주먹밥을 먹겠다.”

케이가 주먹밥을 먹기 위해 입을 열었을 때.

“커억! 큽!”

케이의 입속으로 주먹밥이 아닌 다른 것이 들어왔다.

“크읍! ……으음?”

케이가 입에 든 것을 오물거렸다. 빵이었다. 케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아덴을 노려보았다.

“아덴! 이게 무슨 짓이냐아웁!”

케이의 입에 또 하나의 빵조각이 들어갔다.

“오, 또 골인.”

아덴이 신나게 말하자 결국 제작진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덴이 한야의 어깨 너머에서 빵을 작게 뜯고는 손가락으로 튕겨 케이가 입을 벌릴 때마다 던져놓고 있었다.

제작진의 웃음소리에 아덴이 신나서 말했다.

“무력만 안 쓰면 이렇게 해도 괜찮잖아요.”

“나, 나는으읍! 한윽, 한야 형의 주먹밥을 먹어야커읍 한다! 소원을 말해야 해!”

“아이, 피디님! 이 형들을 어떻게 이겨요!”

그때 조용히 기회를 엿보던 서도화가 슬쩍 일어났다.

“친구야.”

“……뭐?”

“라면 먹자. 불기 전에 먹어야 해. 근데 다 불긴 했다.”

“치, 친구?”

케이의 눈동자가 무척 흔들렸다. 서도화는 이를 신경도 쓰지 않고 할말을 했다.

“친구 좋다는 게 뭐야. 우리가 어떤 사이야. 이거 먹으면 내가 너 안무 연습하는 거 매일 도와준다. 협조. 알지?”

“협조…….”

“아니! 형! 나도 형 안무 연습하는 거 매일 매시간 도울 수 있어!”

“우리 친구잖아. 진짜 불면 맛없어. 한 입만 먹어.”

친구라고? 우리가? 동료라고?

하염없이 눈동자가 흔들리던 케이는 이내 중심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나는 주먹밥을 먹을 것이다.”

“아니, 한야 형한테 뭘 부탁하려고.”

“먹어서. 헬스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할 것이야.”

케이가 비장하게 말하며 손에 든 주먹밥을 먹으려 할 때 갑자기 한야의 눈이 부릅떠지며 케이의 손에 들린 주먹밥을 뺏었다.

“그 소원은 못 들어주겠는걸?”

예능은 예능. 하지만 이 소원을 들어준다면 방송이 끝난 후 케이의 체력과 몸은 갈수록 볼품없어질 것이다.

헬스광으로서 한야는 그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 소원이라면 이 주먹밥은 제가 먹겠사옵니다. 전하~”

멤버 전원이 움찔거렸다. 한야의 눈에선 운동을 향한 광기가 느껴졌다.

그 사이 아덴은 쉬지도 않고 조금씩 빵을 뜯어 케이의 입에 넣고 있었다.

“즈언하. 제 거 드셔주시와요.”

“……그으래, 상현아. 아이스크림을 나에게 다오.”

케이는 소원권이 사라져 슬픈 얼굴로 아이스크림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서도화도 슬퍼졌다.

“라면… 불었어.”

아덴은 잘게 쪼개어 입에 던져넣을 수라도 있지 자신은 답이 없다. 당연하게도 케이는 서도화와 아덴의 음식은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고.

서도화는 아주 잠깐 라면을 입에 던져넣는 상상을 해보다 서둘러 생각을 접었다. 그렇다고 촬영하는 데 평소처럼 포기하고 말아버릴 수도 없고.

승산없는 게임을 해야 할 때 그나마 효과가 있는 방법은 뭘까.

‘에라이 모르겠다.’

서도화는 잠시 고민해보다 입을 열었다. 평소 신경도 쓰지 않는 케이의 시선이라도 끌기 위해선 방법은 하나뿐이다.

“형님.”

“……뭐?”

“형님, 라면 좀 드세요.”

케이의 눈동자가 또 격하게 흔들렸다.

“하루 동안 원하는 호칭으로 불러드리겠습니다. 전하. 형님, 전하, 폐하, 말만 하세요.”

“……서도화.”

불리한 싸움 앞에 자존심도 없이 마왕에게 굽히고 들어간 서도화를 보며 이번엔 아덴이 인상을 찌푸리곤 어이없다는 듯 그의 이름을 불렀다.

“전하를 위해 단 하루, 충실한 부하가 되어드립니다.”

안무 연습이 하시고 싶으시다고요? 함께 가드립니다. 한야와의 헬스를 하루 빠지고 싶다고요? 편들어드립니다.

“에이 형, 설마 저 말에 끌리는 건 아니, 와 눈 반짝이는 것 봐.”

“서도화 너는 줏대도 없냐?”

아덴이 툴툴거리며 빵을 뜯어 케이의 입에 또 한 번 집어넣었다.

“호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제 부하였으면 역적이었다느니 뭐라느니 생각하던 케이는 정말 흥미롭다는 듯 서도화를 바라보았다.

“정말 뭐든 할 것이냐.”

“시덥잖은 것 빼곤 다 해드립니다요. 즈언하!”

“와, 서도화 진짜.”

서도화가 아덴을 보며 픽 웃었다. 저렇게 조금씩 저 큰 빵을 언제 다 뜯어 먹이려고 저러는가. 그냥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하루 소원 들어주고 말지.

“흐음, 정녕 그대의 생각이 그렇다면.”

케이는 잠시 고민해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 와서 컵라면을 다오. 내 기꺼이 먹어주지.”

“아이고 형님!”

서도화가 케이에게 컵라면을 건넸다. 케이는 씨익 웃으며 컵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한야에게 그랬듯 서도화에게도 소원으로 원하는 바가 있었다.

“와 처음에는 내가 완전히 유리했는데!”

“이게 오랜 시간 함께한 우정의 힘이란다.”

서도화는 흐뭇하게 잘 먹는 케이를 보며 말했다.

그러나 그때 열심히 어색한 젓가락질을 하던 케이가 멈칫 먹는 걸 멈췄다.

“응? 왜 그래?”

케이가 컵라면을 내려놓았다.

“왜, 왜…….”

서도화가 당황하며 묻자 케이가 말했다.

“배부르다. 면이 불어서 맛이 없고 양만 많아.”

서도화의 인상이 찌그러지자 제작진들이 또 크게 웃으며 촬영장의 사운드를 채워주었다.

-자, 전하. 아무리 배가 부르셔도 전하께서 어떤 멤버 것이든 무조건 하나는 다 드셔야 게임이 끝이 납니다.

“……그런 겁니까?”

케이가 몹시 곤란한 듯 멤버들이 내민 음식들을 살폈다.

생각 없이 그냥 썩 마음에 드는 말을 하는 멤버의 음식을 먹고 치우면 되는 건 줄 알았더니 역시 촬영은 촬영.

게임의 완성을 위해 배불러도 참고 먹는 게 케이의 의무였다.

평소 케이의 입이 몹시 짧다는 걸 사전에 듣고 일부러 적은 양의 음식을 준비했지만 그에게는 이조차 많은 양이었다. 더구나 컵라면 이전 중간중간 입으로 빵이 들어왔으니.

“컵라면은 이제 도저히 못 먹겠고.”

“헉! 형 그럼 아이스크림은?”

케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예 한 입도 먹지 않았으니 양이 너무 많구나.”

“어이.”

그때 지금까지 어떠한 아부도 하지 않았던 아덴이 제 빵을 들어 올렸다.

아까부터 틈틈이 먹였던 게 효과가 있었는지 이제 아주 조금의 양밖에 남지 않았다.

“네 선택지는 이것 뿐인 듯한데? 어쩔래. 원하면 특별히 주고. 아니면 기권하고.”

한야는 주먹밥을 본인이 먹어 기권되었고 아덴이 기권하면 케이는 별 수 없이 라면 또는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했다.

“……이게 뭐야.”

케이가 의문스레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왕은 자신인데 어쩌다 보니 배가 너무 불러 이젠 아덴을 승자로 만들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아덴만큼은 싫은데.

아덴을 승자로 만들어봐야 얻는 게 없는데.

심지어 저놈은 아부도 안 했는데!

“나 기권한다?”

“자, 잠깐!”

왜 아덴 저 녀석은 저렇게 거들먹거리는 거지?

‘분하도다!’

하지만 케이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저 빵 이외엔 끝까지 먹을 수 있는 게 없었다.

강제로 위장에 음식을 우겨넣을 바엔…….

“이리… 다오. 빵.”

“아싸. 자. 나한테 고마워해라.”

“아 이런 게 어딨어!”

“와 아덴 진짜.”

서도화와 주상현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아덴이 케이에게 빵을 건넸고 케이는 분하지만 빵을 한입에 집어넣었다.

-네, 이로써 임금님의 수라상! 아무런 아부도 없이 아덴 씨가 승리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남은 건 서도화와 주상현의 불만스러운 표정과 케이의 서글픈 빵 먹방, 아덴의 거들먹거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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