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145화 (145/270)

제145화

서도화와 케이는 연습실 바깥에서 공연 중인 한야와 아덴을 지켜보았다.

“분위기 되게 좋네.”

두 사람은 성공적으로 공연을 치르고 있었다. 누가 웃어 젖혀도 단 한 번도 웃지 않은 채 또박또박 노래를 부르는 한야.

“성원~ 대감사드립니다~”

아덴은 어디서 보고 온 건지 행사장에서 들을 법한 말을 하며 추임새를 넣고 있었다.

아마 원곡자 안가창을 따라하는 듯했다.

나름 계획을 잘 짰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한야와 아덴은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다.

아무리 서도화의 팀에 어메스의 개그 담당 케이가 있다고는 해도, 일단은 그가 성실히 협조를 해줘야 그럭저럭 승부다운 승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서도화의 시선이 케이에게로 향했다.

“케이, 우리도-”

다시금 케이에게 협조 잘 하라 협박하려다 멈칫, 입을 다물었다.

“역시 용사와 내가 인정한 인간 한야 형이다. 기량이 대단하군.”

서도화가 말하길 이 승부는 노래를 잘 부르는 게 아닌 주상현을 웃기는 싸움이라고 했다. 그런 면에서 저들은 손색없이 완벽한 웃음을 선사해주었다.

과연 자신이 직접 광대가 된다고 해도 저렇게까지 웃길 수 있을지…….

이기고 싶다. 그러나.

“큰일이군…. 난 저들보다 웃기지 못할 것이다. 천성이 진지하고 위엄 있기 때문이다. 외모 또한 어떤 얼굴을 해도 압도적으로 아름다우니 우스꽝스러운 표정 또한 통하지 않을 테지.”

서도화의 눈빛이 짜게 식었다. 한심한 놈을 쳐다보는 눈빛이었다.

이것저것 많이 내려놓은 서도화가 나긋하게 말했다.

“아니야. 너 웃겨. 걱정 마.”

서도화가 퉁명스레 말하곤 잠시 고민하다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지금 한 말도 좀 웃겼어.”

마왕 시절에도 주제 파악 못 하고 나대더니 지금도 자기 자신을 너무 모른다.

최근 멤버들과 회사 사람들이 생각하는 케이는 단지 비주얼만 장난 아닌 허섭스레기 이미지다. 그러나 소싯적 마왕 때의 재능을 살려 성장 가능성은 누구보다 높은 그런 것인데.

“도화여. 난 웃긴 소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야. 너 웃겨.”

“……그럼 난 웃기기도 잘하는 모양이군.”

케이가 진심으로 흡족해하며 웃었고 서도화는 말없이 소품을 주섬주섬 챙겨 케이에게 입혀주었다.

“다른 건 몰라도 네 자존감 하나는 닮고 싶다.”

“특별히 비법을 알려주지. 뭐든 완벽하게-”

그래 너는 말해라. 난 흘려들을 테니.

서도화가 흐리멍덩한 표정으로 케이의 자랑을 흘려들으며 그의 손에 꽃을 들려주었다.

“노래는 다 외웠지? 잘 할 거라고 믿어. 너는 완벽한 마왕이니까.”

‘완벽한 마왕’이라는 말이 케이의 심금을 자극했다.

케이가 자신감에 차서 말했다.

“당연하고말고! 제대로 외웠다!”

“그래 잘하자. 넌 그냥 노래만 부르면 돼.”

서도화가 재차 케이를 다독일 때 제작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화 씨, 케이 씨 촬영 들어갈게요!”

* * *

“아~ 정말 최고였어요. 너무 웃겼어.”

주상현이 한야와 아덴에게 양 엄지를 추켜들었다. 어른스러운 두 사람이지만 웃길 때는 제대로 웃기는 사람들이라 무척 기대하는 와중, 역시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가지고 왔다.

“나 무슨 행사장 온 기분이었잖아. 이 팀 점수 300점 추가해주세요!”

-네, 한야 씨, 아덴 씨 보너스 점수 300점입니다. 노래방 점수 88점, 보너스 점수 400점. 합해서 총 점수는 488점입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형들 제가 안가창 선배님 되게 좋아하는데 진짜 싱크로율 장난 아니었어!”

주상현이 흥분해서 말했다.

“어우 다음 팀 어떻게 해요? 이거보다 임팩트 있는 공연이 나올 것 같지가 않아.”

-아마 뒤에서 부담감 엄청 느끼고들 계실 것 같은데요. 그럼 다음 팀도 한번 불러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팀 나와주세요.

도성한 피디의 말에 맞춰 연습실 안으로 서도화와 케이가 들어왔다.

“어?”

주상현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두 사람은 앞선 한야와 아덴에 비하면 무척 무난한, 아니 그저 평범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푸훕.”

그러나 이 평범한 옷차림에도 주상현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주상현 뿐만 아니고 제작진들 또한 뭐라 표현 하지 못할 감정에 그저 웃음만 흘렸다.

노란색과 보라색 반짝이 양복을 입었던 한야, 아덴과 그에 비하면 평범한 차림이긴 하지만…….

‘아니 저걸 평범하다고 해야 할지 부끄럽다고 해야 할지.’

두 사람은 한 10년 전, 모두가 감성에 죽고 살았던 그 시절의 정장 복장을 한 채 비장한 표정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올해 35세 조연출 김지훈은 묘하게 그리운 옷차림과 뒤이어 들려오는 아련한 노래방 반주음에 애매한 헛웃음을 쳤다. 이쪽도 범상치 않은 무대를 준비해온 듯 했다.

주상현은 입을 떡 벌린 채 두 사람을 보다 서도화의 손에 들린 탬버린을 발견했다.

“어?”

그의 입에서 또 의아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어라? 마이크는 어디 가고 웬 탬버린이?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그러니까 2009년 즈음 SNS의 BGM을 점령하며 대히트를 쳤던 이 곡의 이름은 ‘979775’.

연인에게 상처를 받고도 미련하게 떠나지 못하는 자신이 구질구질(9797)하게 싫다(75)는 애절하고도 슬픈 발라드 곡이다.

이렇게나 애절한 곡이면 트로트로 띄워진 분위기가 축 가라앉을 법도 한데 제작진은 웃기 바빴다.

진지한 표정의 서도화와 케이를 제외한 멤버들도 마찬가지로 히죽히죽 웃었다.

“도화 형은 마이크를 안 들고 왔어.”

“마이크는 케이만 들었네.”

“이제 큰일 났다. 저 팀은 뭘 해도 웃긴다. 이제.”

“저걸 어떻게 이기냐.”

마침내 슬픈 전주가 끝이 났다. 그리고 케이는 마이크를, 서도화는 탬버린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케이의 누구보다도 진지한 노래가 시작되었다.

* * *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주상현과 아덴, 그리고 웃음 장벽이 무척 낮은 도성한 피디가 배를 잡고 구르기 시작했다.

“이게 도대체 뭐야학! 하학!”

당연히 노래를 부를 거라고 생각했던 서도화는 아예 마이크를 들지도 않았다. 그저 온 감정을 담아 노래를 부르는 케이의 노래 가락에 맞춰 탬버린을 휘두르며 미친 듯이 흥을 돋울 뿐이었다.

노래는 전부 케이가 불렀다.

문제는 이들의 선곡이 당시에도 실력 뽐내기 용으로 당대 아이돌 메인 보컬들의 라디오 라이브 커버에 많이 사용되었던, 꽤 높은 난이도의 곡이라는 것이었다.

케이는 진땀을 뻘뻘 흘렸다.

‘내가 왜 이러는 것인가! 이건 마왕 지 못한 실력이다!’

마음이 찢겨나가도

포기 못 하는 내가

싫어, 어, 워어어헉!

하이라이트의 높게 치고 나가는 고음 파트에서 케이의 목소리가 볼품없이 갈라지며 음 이탈을 냈다.

케이는 몹시 당황하고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거의 울기 직전의 표정이 되었고 서도화는 그래도 괜찮다는 듯 슬픈 표정으로 짤랑짤랑 탬버린을 치며 율동했다.

“크학학하학!”

아덴이 바닥을 굴러다녔다. 이 전혀 조화되지 않는 둘의 협동 공연이 웃겨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도 그럴게 이런 희귀한 공연을 어디서 보겠는가?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영상통신석을 가져와 동료들에게 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망가진 마왕과 콧대만 높던 음유시인의 모습을!

처음 만났던 그 거리에서

넌 다른 여자와 손을 잡고

나를 보고 우어어! ……아으.

그 와중에도 케이의 목소리는 쉴 새 없이 갈라지고 이탈하고 떨려왔다.

띠링!

어디선가 귀여운 소리가 들려왔다. 바닥을 구르는 아덴을 보며 더 크게 웃음이 터져 깔깔거리며 웃던 주상현이 뒤돌아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주상현 또한 아덴처럼 바닥을 쓸고 다니기 시작했다.

한야가 흐뭇한 표정으로 휴대폰 동영상을 켜 서도화와 케이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웃겼다.’

만족스러운 멤버들의 반응에 서도화는 씨익 웃으며 탬버린을 치는 율동 그대로 주상현에게 말했다.

“심판님 저희도 보너스 점수 주세요.”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주상현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외쳤다.

“보너스 점수 300점!”

“아, 너무 낮아요. 더 주세요.”

아주 당당한 요구였다. 이 정도로 바닥을 구르게 웃겨 놨으면 -물론 웃기는 건 케이가 다했다- 이 정도 요구는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 임금님께서 이렇게 열심히 부르고 있는데.”

임금님!

“……으허어! 오오오! 난 너를 못 놔!”

연이은 노래 실수, 실력 부족으로 슬슬 체념한 듯 연약하게 부르던 케이가 임금님이라는 소리에 다시 힘차게 쉰 소리로 노래 부르기 시작했다.

주상현은 미친 듯이 웃으면서도 도무지 케이의 갈라진 음 이탈 노래 소리는 못 듣겠는지 인심 쓰듯 말했다.

“노래 도화 형이 부르면 보너스 300점 더!”

“……진짜?”

공연이 시작한 이후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던 서도화와 케이가 거의 동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케이는 냉큼 서도화에게 마이크를 건넸고 서도화는 케이에게 탬버린을 건넸다.

“이야 역시 승부욕이 무섭긴 무서워.”

도성한 피디가 감탄하며 말했다.

멤버, 제작진, 회사 직원 통틀어 두 사람의 호흡이 이렇게 맞아떨어지는 건 처음 보았다.

서도화는 서둘러 노래를 이어나갔고 그때부터 거짓말처럼 사람들의 귀와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는 노래를 부르며 케이를 흘겼다.

‘너 뭐 하냐 호응 안 하고?’

그가 주는 눈치에 케이가 얼떨떨하게 급한 대로 받았던 탬버린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전까진 자신이 노래를 부르고 서도화가 탬버린을 무기처럼 휘두르며 마치 광대처럼 춤을 췄다.

지금은 탬버린은 자신에게 있고 서도화가 노래를 부른다.

‘그럼 내가…….’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선… 음유시인처럼 탬버린을 골반에 쳐 대며 춤을 춰야 하는 것인가!

케이의 눈에 또다시 당혹이 서렸다.

“케이야 뭐하냐!”

그러나 협박과 세뇌가 참 무섭다고, 마이크로 들려오는 서도화의 엄포에 케이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무척 수치스럽기 그지없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