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6화
널 사랑하니까~
내 심장은 이미 멈췄어
네 마음이 떠나간
그날부터~
짤랑짤랑-
노랫소리에 맞춰 어설픈 탬버린 소리가 들려왔다. 서도화는 그 소리가 성에 차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케이가 언제 탬버린을 흔들며 춤추고 놀아봤겠는가. 박자에 맞춰 흔드는 것만으로도 꽤 눈치가 늘었다고 봐야지.
거기다 다른 멤버들은 케이의 탬버린 실력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흥도 못 돋우는 탬버린 소리보단 이제야 좀 들을 만해진 서도화의 노래에 주목했다.
“도화 형, 케이 형 플러스 300점! 너무 귀가 행복해져요.”
“케이 탬버린 멈추면 플러스 100점.”
아덴이 주상현의 눈치를 보다 슬쩍 말을 얹었으나 케이만 짜증스레 아덴을 노려봤을 뿐 아무도 듣지 못했다.
‘용사한테 탬버린 가지고도 한 소리 듣다니!’
케이는 잠시 멈춘 채 고민하다 이내 비장한 표정으로 탬버린을 마구 흔들어댔다.
“오오!”
“케이!”
짤, 짤랑! 짤랑!
서도화는 들려오는 소리에 무척 만족하며 미소 지었다. 그래 게임인데 이 정도 흥은 있어야지.
두 사람의 공연은 그렇게 재미와 감동을 모두 챙긴 최고의 공연으로 마무리되었다.
-두 번째 팀, 노래방 점수 97점에 보너스 점수 600점으로-
“어어? 600점?”
“……제가 마지막에 300점이라고 했어요?”
-네, 그렇습니다. 처음엔 100점 추가로 준다고 하셨다가 300점으로 바꾸시더라고요.
어 내가 그랬나?
주상현이 머쓱하게 웃었다.
나름 공평한 승부를 볼 수 있도록 보너스 점수를 조절하려고 했었는데.
“아무래도 도화 형 노래에 너무 몰입했나 봐요. ……아 그리고 케이 형 탬버린 소리, 아니 노래에도.”
-좋습니다. 갑자기 점수가 몇백 대로 뛰기는 했지만 어쨌든 총 점수를 추산해본 결과 1등 도화 씨 607점, 2등 케이 씨 606점으로 도화 씨가 최종 우승하게 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엥 진짜요? 어쩌다가 제가요?”
서도화가 의아한 듯 물었다. 오늘따라 게임 운이 어이없을 정도로 안 따라주던 그였는데.
그러자 도성한 피디가 말했다.
-마지막 보너스 점수가 없었다면 도화 씨 4등, 케이 씨 꼴찌였을 텐데. 그야말로 대역전승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어유 감사합니다.”
결과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무척 기쁜 일이었다.
“이런 게 어딨어! 난 틀림없이 내가 우승이라고 생각했잖아.”
오늘 하루 아닌 척 가장 열심히 게임에 임했던 아덴이 불만스레 툴툴거렸다. 그야말로 얻어걸렸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결과가 아닌가.
그러나 아덴이 불만을 터트려도 결과는 결과. 오늘의 우승 상품은 서도화의 차지가 되었다.
흩어져 있던 멤버들이 다시 카메라 앞에 나란히 모였다.
-여러분, 오늘 하루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네엡.”
“네. 수고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제 우승 상품이 무엇인지 말씀드려야겠죠.
“오오, 맞아요.”
“엄청난 것이라고 했었어. 분명.”
마지막 코너에서 하도 웃어댔던지라 조금 지친 기색이던 멤버들이 다시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특히 당사자인 서도화와 이미 팝넷 예능 상품을 받은 전적이 있는 주상현은 무척 기대감에 차 있었다.
“팝넷은 예전부터 기대를 배신하지 않거든요.”
주상현의 말에 도성한이 씨익 웃었다.
-오늘의 우승 상품은요. 바로 솔로 스페셜 클립 비디오입니다.
“으엉?”
경험자 주상현이 가장 크게 반응했다.
예전 주상현은 아니지만 프로젝트 그룹의 유니드의 멤버가 똑같은 상황에 똑같은 상품을 받은 적 있었다.
경연이 끝난 뒤 그룹의 데뷔에 대한 관심이 가장 뜨거울 때, 어떤 걸 해도 화제를 모을 타이밍에 공개된 솔로 클립 영상은 그 멤버 개인과 그룹에 큰 도움이 되었다.
솔로라고 할지라도 팝넷이 밀어주는 그룹의 홍보 비디오를 대충 만들 리 없었고 많은 준비 끝에 나온 영상물은 비교적 낮은 순위의 멤버였던 그의 팬덤을 폭발적으로 키워주었다.
그리고 이후 유니드의 안정적인 상위권 멤버로 활약하다 강력한 팬덤을 기반으로 솔로 데뷔에 성공하였다.
그 정도로 화제성이 큰 그룹의 첫 홍보 비디오를 서도화가 담당하게 된 것이다.
엄청난 부담이지만 자신을 제대로 알릴 수 있는 큰 기회였다.
“형! 이거 진짜 장난 아니-”
흥분해서 서도화에게로 고개를 돌린 주상현이 팟 웃음을 터트렸다.
“도화 형 엄청 부담스러워하는데?”
당연히 엄청 좋아하겠지? 생각하며 그를 보았더니 좋아는 하는데 좋은 것보단 부담이 더 큰 것 같았다.
“괜히 미안하네.”
얻어걸린 우승에 주어지는 보상이 너무 큰 거 아닌가?
미안함에 중얼거리자 멤버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달려들었다.
“뭐가 미안해!”
“사실 첫 번째 홍보 영상이 솔로 클립이면 도화 형이 재격이긴 해.”
“그런 보상이면 어차피 난 못 살려.”
납득하는 듯한 아덴의 말에 주상현이 부득부득 고개를 내저었다.
“형이 왜 못 살려? 뭐든지 하면 잘하는 사람이잖아. 자신감을 가져!”
“어?”
“……아니야?”
아덴은 얘가 지금 무슨 소리 하냐는 듯 주상현을 쳐다보았다.
“난 늘 자신감 넘쳐. 모든 걸 내가 다 하려고 억지 부리지 않겠다는 소리였어.”
뭐든지 잘하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는 용사이지만 자신보다 동료가 더 잘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는 기꺼이 활약할 기회를 양보했다.
늘 혼자서 모든 짐을 지고 가려 하지 말라던 하이넬의 조언 덕분이었다.
춤추고 노래하고, 또 사람들에게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는 일은 아덴보단 서도화나 주상현, 한야가 훨씬 잘했다.
그중에서도 서도화와 주상현은 이런 쪽으로 특히 뛰어난 실력을 가졌으니 동료에게 맡기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아덴이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을 잃은 적은 동료를 잃었을 때, 동료가 다쳤을 때, 그리고 나무를 타다 발목을 삐었을 때뿐이었다.
“아, 아무튼 도화 형 엄청 잘할 거 같아.”
“열심히 해볼게요. 감사합니다.”
분위기가 이상해질 것 같자 주상현이 빠르게 말을 얼버무렸고 서도화는 다시 한번 더 감사를 전하며 분위기를 갈무리했다.
그리고 촬영이 끝났다.
“모두 고생하셨어요.”
“고생하셨습니다!”
무척 길고 힘들었던 촬영이었던지라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마지막 인사만큼은 힘찼다.
촬영을 마친 멤버들에게로 이병수가 다가왔다.
“다들 고생했다. 오늘은 바로 숙소 들어갈거지?”
“아뇨. 연습-”
이병수의 말에 아덴은 당연스레 연습을 외치려다 멈칫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 아덴이가 웬일이야. 연습하러 가자 할 줄 알았더니.”
“저는 더 연습할 수 있는데요. 멤버들이 오늘은 지친 것 같아요.”
서도화가 모르는 척 그를 힐끔거렸고 이병수와 한야가 동시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야, 아덴이가 이제보니 배려를 잘하네.”
진실게임 때 한야와 서도화가 블라인드 뒤에서 했던 말을 받아들이기로 한 모양이었다.
아덴이 드디어 다른 멤버들의 컨디션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멤버들은 곧장 숙소로 향했고 샤워만 겨우 마친 채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서도화는 아침부터 눈 앞에 둥둥 떠 있는 시스템창을 볼 수 있었다.
[2차 보상이 도착했습니다! 열어보시겠습니까?]
“오오…….”
서도화가 작게 탄성을 냈다.
늘 전투 도중, 이미 사건이 일어난 이후, 기절 직전 등등 항상 욕 나올 타이밍에만 슬그머니 등장하더니 이번엔 꽤 타이밍 좋게 잘 들어왔다.
데뷔를 앞두고 있는 데다 이번에 솔로 비디오까지 찍게 되었으니 그에 써먹을 수 있을 만한 스킬로 스탯을 올려두면 될 터.
‘열람!’
속으로 외치자 알림창이 커지더니 익숙한 창이 나타났다.
예전 하루에도 수십 번 스탯창을 열어 머리를 쥐어짜고 고민했었던지라, 질렸으면 질렸지 별로 반가운 창은 아니었다.
오히려 스탯창에 한가득 찍혀있는 숫자들을 보니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이었다.
서도화는 눈을 꽉 감았다 뜨며 속으로 말했다.
‘패시브 스킬 열람.‘
일단 30만 대의 숫자로 꽉꽉 채워진 머리아픈 스킬들은 나중으로 미루고 가장 중요한 패시브 스킬부터.
패시브 스킬은 총 다섯 개가 있었다.
1. 자애의 종소리(lv.30)
-플레이어 중심으로 일정한 범위 내 항상 도트 힐(30초마다 MP 150씩 차감)
2. 매력적인 그대(lv.55)
-플레이어에 대한 상대의 호감도가 5% 이상일 경우 즉시 30% 이상으로 상승(상승 폭은 랜덤, 상대의 애정이 과하게 상승할 수 있음)
3. 정화(lv.70)
-연주 시에만 발동(50%의 확률로 광범위 치유술 발동)
4.성스러운 희생(lv.80)
-범위 내의 아군이 받는 데미지를 전부 플레이어에게로 전이.
*주의! 고통과 상처를 동반하며 사망에 이를 수 있으므로 권장하지 않습니다.
5. 사망 유예(lv.100)
-연주 시에만 발동, 범위 내의 아군은 HP가 0이 되어도 연주가 끝날 때까지 죽지 않음. 연주가 끝났을 때 HP가 0 이하인 아군은 즉사
레벨이 높아질수록 사기급 효과를 발휘했지만 그만큼 극단적인 위험도를 자랑하는 스킬들이다.
3, 4, 5번 스킬들은 틀림없는 전투 위주 패시브 스킬로 이곳에선 3번 정화를 제외하면 전혀 필요가 없었다.
특히 4, 5번은 쳐다도 보고 싶지 않았다.
4번은 여기서 죽어도 동료는 살려야겠다는 심정으로 쓰는 거라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 위험한 생각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데뷔 못 하고 죽으면 어쩔 뻔했어.’
심지어 자주 썼다. 나 하나 얻어터지는 게 희생자를 줄이고 싸움을 빨리 끝낼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했었다. 동료들에게 동화되어선 정신이 나갔었던 것이 틀림없다.
5번은 최종 결전 직전에 벌어졌던 대규모 전투에서 동료들의 부탁에 의해 딱 한 번 사용하곤 그 이후 절대 사용하지 않았다.
서도화는 빠르게 4번, 5번을 시야에서 치워버렸다. 1번은 그 세계에 있을 당시에도 하등 쓸모없는 스킬이었고 그럼 남은 건 2, 3번.
정화를 유지할 건지 다른 스킬로 갈아탈 건지가 관건이었다.
어차피 이젠 변경 포인트 소모 없이 마음대로 스킬 변경이 가능해졌으니…….
‘매력적인 그대…… 해볼까.’
고민하는 서도화의 표정이 영 마땅치 않았다.
보기엔 아이돌 생활에 매력적인 그대만큼 좋은 스킬이 없을 것 같지만 글쎄…….
‘이 스킬도 정상은 아니야.’
마치 케이와 같은 스킬이었다.
이 스킬은 얼핏 정상처럼, 쓸모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든 게 여러모로 무척 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