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7화
‘매력적인 그대’라는 스킬은 서도화가 막 이 세계에 적응하고 본격적인 모험을 시작했을 때쯤엔 상당한 도움이 됐었다.
조금만 수고하여 상대의 호감을 조금이라도 얻어낸다면 곧바로 호감도가 비상하게 올라 유용한 정보들을 술술 알려주었다.
의뢰를 받거나 마을의 소식, 소문과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심지어는 호감도가 크게 올랐을 경우 숙식을 도와주는 경우도 있었다.
‘이 스킬을 장착했을 때 아덴과도 친구가 되었지.’
아덴은 그나마 5년간 동료들과 함께 다니며 말투가 유순해진 편에 속한다.
그 당시엔 얼마나 자기밖에 모르는지. 성향은 선했지만 마왕에 의해 가족을 떠나보낸 뒤라 싸가지도 없었고, 그야말로 가시투성이였다.
그랬던 아덴이 극단적으로 성격이 상반되어 첫인상마저 안 좋던 서도화를 동료로 맞아들인 건 이 스킬과 그의 치유술 덕분이었다.
그런데 이런 유용한 스킬을 다시 장착하는 것을 왜 떨떠름해하는가.
그 이유는 이 스킬 또한 정화와 같이 전혀 조절할 수 없다는 데에 있었다.
-괜찮다면 내 방에서 숨 좀 돌리는 게 어때? 여독이 상당해 보이는데.
정보를 얻으러 간 술집의 주인장은 불순한 시선을 보내며 그에게 자고 갈 것을 권했다.
자고 가지 않으면 손님들 사이 섞인 주인장의 부하들이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아서 서도화는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도화 군, 난 오늘 내 사명을 이루러 갈 생각이네. 목숨을 건 복수지. 만약 자네가 이 마을을 떠날 때까지 내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이 편지를 아내에게 전해주게. 내 유서일세. 믿을 사람은 자네밖에 없어.
중년의 무인이 오늘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눈 지 5분도 채 되지 않는 서도화에게 유서를 건네고 목숨을 건 복수를 하러 떠났다.
서도화는 무섭고 부담스러웠지만 거절할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그의 유언장을 가족들에게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호감도가 딱 30%만 오르면 참 좋으련만 이런 식으로 이따금 과한 수치까지 올라가는 경우가 있어 서도화는 호감도 작업을 할 때마다 무척 긴장해야만 했다.
서도화는 한참이나 고민하다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다. 얘는 하지 말자.’
이 스킬은 언뜻 보기엔 좋을지 모르나, 이게 만약 정말 게임이었다면 꽤 자주 찾았을 스킬이었지만 실생활에서 쓰기엔 때에 따라 위험해질 수 있었다.
일반 대중에게도 그렇지만 혹여나 멤버들이나 직원들에게 영향이라도 갔다간…….
‘어휴.’
서도화는 이미 외워버린 패시브 스킬 창을 훑어보다 정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스킬 세팅, 정화’
그가 속으로 말하자 정화 스킬의 아이콘이 커지더니 스킬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선택할 수 있는 효과들을 보여주었다.
경연을 치르면서 이미 정화 스킬은 사람들에게 조금 이상한 방식으로나마 받아들여진 듯하다. 서도화가 노래를 부르면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다~ 정도로 인식되고 넘어가는 모양이다.
일단 스킬 세팅만 좀 바꿔놔 보자.
-10%의 확률로 정화 범위가 10m 넓어짐
-50%의 확률로 치유술 발동
-30%의 확률로 적에게 둔화 발동
-30%의 확률로 아군의 공격력 상승
전투 중 가장 유용하게 쓰이는 건 아군의 공격력 상승이었다. 그러나 여정의 후반부쯤 하이넬이 확정적인 공격력 버프 마법을 창조해내며 서도화는 치유술 위주로 세팅을 바꿨었다.
조금이라도 마나 소모를 줄이고자 함이었는데 이제 싸울 일도 없으니 이건 필요가 없고.
하지만 그쪽에선 쳐다도 보지 않았으나 이곳에서는 아주 유용할 효과가 하나 있다.
‘첫 번째 효과로 부수 효과 변경’
서도화가 속으로 말하자 치유술 효과 뒤에 붙어있던 체크 표시가 첫 번째 효과 ‘10%의 확률로 정화 범위가 10m 넓어짐’으로 옮겨갔다.
10%밖에 되지 않는 데다, 이 스킬을 얻은 지 얼마 안 되어 범위 넓히기용 액티브 스킬을 따로 받았던지라 전혀 쓰지 않았지만 여기선 꽤 실용적으로 쓸 수 있을 효과다.
‘발동되면 좋고 안 되도 상관없고.’
이곳에선 이 정도의 인식만 있는 효과로 둬도 충분하다. 범위만 넓어지는 거면 정화 이외의 스킬에 발동되는 것도 없고, 심지어 10% 확률이니 없는 셈 쳐도 전혀 문제없다.
그리고 다음은 일반 스킬들을 조정하면 되는데.
‘액티브 스킬 초기화.’
이 머리 아프게 높은 스탯 점수부터 전부 0으로 만들어버리자.
[모든 스킬이 초기화됩니다.]
알림과 함께 패시브 스킬을 제외한 모든 스킬의 스탯 점수가 빠지고 배분 가능한 스탯 포인트가 0에서 150만으로 늘어났다.
다행히도 일반 스킬들 중엔 일상에서도 유용하게 쓸 만한 스킬들이 꽤 있었다.
‘일단 가볍게 체력부터…….’
이거 하다 보니 재밌네.
어떻게 해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지 밤새 계산하고 고민하며 눈이 아플 정도로 스킬 창을 들여다보던 때와는 다르다.
그냥 쓰고 싶은 스킬 찍어 누르면 되는 거다.
서도화는 침대에 누운 채로 심각하게, 그러나 입꼬리는 저도 모르게 올린 채로 스탯 배분을 시작했다.
* * *
“형들 좋은 아침……. 아덴 형이 밥 먹으래. ……어?”
주상현이 잠에 잔뜩 취한 목소리로 방으로 들어오다 우뚝 멈춰섰다.
“어?”
“잘 잤어?”
“형, 일어나 있었, 어어?”
주상현이 말똥해진 눈으로 서도화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라?
서도화가 씨익 웃었다.
“왜?”
“아니…….”
서도화는 주상현의 의아한 반응의 이유를 알았지만 모르는 척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부엌 쪽으로 향하자 언제나와 같이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아덴이 무척 즐거워 보이는 얼굴로 멤버들의 밥상을 차리고 있었다.
“좋은 아침.”
“어어.”
아덴은 식탁에 그릇을 내려놓고 서도화에게 대충 시선만 주다 멈칫 다시 서도화를 제대로 바라보았다.
그러곤 인상을 팍 찌푸렸다.
“너 뭔 짓 했냐.”
“뭔 짓은 무슨.”
“아냐. 너 뭔 짓을 했어. 내가 한두 번 겪어보는 것도 아니고.”
서도화의 모습이 좀 이상하다. 아니 이상하다기보단, 아우라가 바뀌었다.
흘러나오던 성스러움과 강함은 조금 옅어지고 좀 더 자극적인 호감과 매력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외모가 더 잘생겨진 건 아니었다. 외적인 변화가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확실히 무언가 바뀌긴 바뀌었다.
아덴은 서도화에게서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럴 땐 높은 확률로.
“너 또 시스템인지 뭔지 건드렸냐?”
서도화가 시스템이란 것과 소통하며 그를 통해 실력을 키우고 있다는 건 동료 중 아덴만 알고 있었다.
“세팅 좀 새로 했어. 어때?”
아덴이 못마땅한 듯 고개를 저었다.
“이번엔 잘못한 거 같은데. 전혀 강해진 기색이 없어. 오히려 허우대만 멀쩡한 성냥개비 같아.”
“성냥… 개비…….”
“다시 못하냐? 너무 별론데.”
보통 서도화가 눈에도 안 보이는 시스템의 힘을 빌려 ‘세팅을 새로 했다’고 할 때엔 틀림없이 새로운 힘을 얻거나 기존의 힘이 더 강해지곤 했다.
강해짐의 정도는 늘 눈에 보일 정도라 다음 전투에 큰 도움이 되곤 했었는데 지금은 음…….
힘은 전혀 강해지지 않았고 그냥 약해진 대신 매력이 더해졌을 뿐이다.
“어떻게 된 거야 도화? 이거 복구 가능해? 너무 심각한데.”
“나 매력적이지 않아?”
“뭐? 지랄맞게 뭔, 갑자기 잘생겨 보이긴 하네. 근데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야. 네가 약해졌는데.”
“네가 잘생겨 보인다고 했으면 됐다.”
외모에 상당히 둔감한 아덴이 고민도 없이 잘생겨 보인다고 말할 정도면 된 거다.
사실 외모는 전혀 바뀌지 않았고 스탯 포인트를 스킬이 아닌 기본 능력치 쪽으로 돌렸을 뿐이다.
체력, 정신력에 투자했다. 그리고 아덴과 주상현의 장난을 받아치기 위해 힘과 물리 방어력, 지력을 올렸고, 혹시나 케이에게 암살이라도 당할까 봐 마법 방어력, 그리고 매력까지.
저쪽 세계에 있을 땐 호감도 작업하라고 만들어둔 능력치 같은데 패시브 스킬로 호되게 당한 이후엔 성스러워 보이는 용도로만 올려두었었다.
새로 세팅한 지금은 당연히 아이돌 활동을 위해 매력 능력치의 비중을 높였다.
그리고 음유시인의 고유 능력치인 가창과 연주, 창조 능력.
가창과 연주 능력치가 올라갈수록 서도화의 치유력이 크게 올라가고 당연하겠지만 듣기도 좋아진다.
서도화는 최대한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까지 가창과 연주를 올려두었다.
그리고 창조 능력은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내는 능력치인데 이것도 제 2세계에서 쓰이던 만큼은 올렸다.
그런고로 내적으론 아이돌 생활에 맞도록 강해졌건만 아덴이 보기엔 무척 약해져 곧 부러질 성냥개비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걱정 마. 이젠 필요할 때마다 바꿀 수 있으니까.”
그리고 아예 스킬에서 손 뗀 건 아니었다. 이전 촬영에서 유용하게 썼던 원기 회복과 간단한 치유술, 도트힐 정도는 올려두었다.
아덴은 언제든 다시 강해질 수 있다는 서도화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안심했다.
“그래서 어떻게 바꿨길래 이래?”
“아예 약해진 건 아니야. 들어 봐봐.”
서도화가 뿌듯하게 웃더니 흠흠 목을 가다듬고 노래를 불렀다.
아, 님을 위한 스탭!
one 아 two!
내 사랑이 당신에게로 간다!
갑자기 떠오른 노래는 어메스로 놀아보자 촬영 때 한야와 아덴이 불렀던 ‘스텝 밟고 간다’의 한 파트.
흥에 넘치는 이 곡을 서도화가 부르는 순간, 시시덕거리던 아덴의 표정이 싹 굳었다.
“……미쳤네.”
이런 기분 너무 오랜만이었다. 온몸이 굳을 정도로 소름 돋게 좋은 노랫소리. 이제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세팅을 끝낸 서도화의 노래는 전에 없을 정도로 전율이 일었다.
식사를 준비하다가 갑자기 이런 기분을 느낄 줄은 몰랐다.
“하하, 이거, 완전 당했네.”
이런 이런, 아덴이 못 말리겠다는 듯 용사의 전매특허 대사 같은 말을 하며 너털웃음을 흘렸다.
강함을 포기하고 노래 실력을 향상시키다니. 치유력을 더 높인 거나 다름없다.
서도화의 몸은 아덴이 지켜줄 테니 자신은 치유력을 높였다는 건가?
그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다. 바로 근처에 마왕이 있으니.
그때.
“어흑! 그, 그만!”
촬영의 여파로 목이 잔뜩 쉰 케이가 가슴께를 부여잡고 부엌 바닥에 엎어졌다.
저 미친 음유시인.
언젠가는 찢어 죽일 놈.
그간의 일상들로 용사 일행을 방심시킨 줄 알았더니 하룻밤 사이에 더 강해져서 돌아왔다.
케이가 쓰러져 이를 북북 갈거나 말거나, 서도화는 싱글벙글 웃으며 자신의 향상된 노래 실력을 아덴에게 마음껏 뽐냈다.
아덴은 케이와 서도화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씨익 웃으며 서도화의 흥에 맞춰 손뼉을 쳐주었다.
“잘한다. 잘한다. 어우야! 너 노래 끝내준다. 더 해.”
“아, 스탭 밟고 간다! 아아, 당신을 향한 나의 스탭!”
“그만!!!!”
“저 형들 오늘도 활기차다. 그치 형? 동갑내기 트리오.”
“도화 노래 실력이 저렇게 좋았었나? 우리도 오늘부터 다시 열심히 연습하자.”
“응.”
한야와 주상현은 저들의 촌극을 익숙하게 넘기며 의자에 앉아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