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148화 (148/270)

제148화

아덴이 분위기를 띄워주는 대로 노래를 부르던 서도화는 문득 누군가의 괴로운 숨소리를 듣고 뒤돌아보았다.

케이가 숨을 헐떡이며 그를 찢어 죽일 듯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그때 아덴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서도화는 그제야 평소 자신의 노래에 별 관심도 없는 아덴이 왜 그렇게 신나서 박수까지 치며 분위기를 돋웠는지 알아차렸다.

“야 내가 케이 괴롭히지 말라고 했잖아.”

“뭔 소리야. 직접 괴롭힌 건 너야.”

“헛소리하지 마라.”

“둘 다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앉아.”

두 사람의 다툼을 막는 목소리에 서도화와 아덴은 움찔거리며 식탁 쪽을 바라보았다. 한야가 눈에 힘을 주고 두 사람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서도화와 아덴은 곧바로 입을 다물고 케이를 일으켜 세운 후 의자에 앉았다.

한야가 미소를 지웠다. 여기서 한 술 더 뜨면 걷어차겠다는 의미였다.

“형 다시 몸이 안 좋아진 거야? 한동안 괜찮더니.”

“괜…찮다…….”

“진짜 괜찮은 거 맞아? 그래도 병원 가서 검사받아봐야-”

“괜찮대도.”

케이는 무척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서도화는 모르는 척 밥을 먹었지만 케이의 마음을 이해하긴 했다.

가창 스탯을 크게 키웠던지라 키우고 나서 케이에게 은은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다.

그러나 스탯을 변경하진 않았다. 실력이 늘면 그룹에 좋은 거고 뭐.

타락한 놈이 알아서 적응하겠지.

케이도 무척 분노한 것 같긴 하지만 원래 용사 파티의 덕목이 마왕을 야금야금 빡치게 하는 것이 아니겠나.

케이도 그걸 아는지 기분은 몹시 좋지 않아 보였지만 노래 실력이 비약적으로 는 것에 대해 별다른 말을 하진 않았다.

“얘들아, 다 일어났니?”

소란이 진정되고 멤버들이 밥을 먹고 있을 때 이병수가 들어와 그들을 살폈다.

“오늘 컨디션들은 어때?”

한야가 걱정스레 말했다.

“다른 멤버들은 괜찮은 것 같은데, 케이 목이 좀 쉬어서 큰일이에요.”

“……그건 진짜 큰일이네.”

이병수가 드물게 심각해졌고 케이는 그와 멤버들의 눈치를 보며 수저를 내려놓았다.

“내가 너네 노래 막 지를 때부터 알아봤다. 어?”

오늘은 데뷔곡을 녹음하는 날. 팝넷이 정한 기획을 바꿀 수는 없으나 녹음이 예정되어 있으니 최대한 컨디션 조절을 잘하라고 그렇게나 말했건만.

케이의 목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거기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안색도 창백한 것이 어디 몸살이라도 걸린 모양이었다.

이병수는 한숨을 쉬며 질책하듯 케이를 쳐다보다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일단 녹음 전까지 최대한 목 상태 돌려놔 보고, 정 안되면 케이는 뒤로 미뤄야지 어쩌겠어.”

평소에는 잘 하더니 왜 중요한 때에 이러냐.

늘 친형처럼 자상하던 이병수의 따끔한 말에 멤버들이 케이를 힐끔거렸다.

케이는 말이 없었다.

그런 조언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녹음을 앞두고 있으니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아니, 분명히 들었다.

아마 촬영의 마지막 코너에서 한야와 주상현이 어렵지 않고 흥만 돋우는 노래를 불렀던 것도 그 때문이었겠지.

그러고 보면 서도화도 고음을 낼 땐 평소보다 힘을 빼고 불러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었다.

‘몇 번이나 들었었다.’

그런데도 기억하지 못하고 순간의 승부욕으로 조절하지 못했던 건 명백한 케이 자신의 잘못이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핵이 없기 때문일까?

이곳에 온 이후로 다시 아무것도 모르는 무기력한 인간으로 돌아온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민폐를 끼쳤군.”

주눅이든 케이를 서도화가 넌지시 쳐다보다 말했다.

“어려운 노래 선곡해 시킨 제 탓도 있으니까 목 관리 도울게요.”

“일단 따뜻한 물이라도 먹여봐.”

“네.”

“어휴 케이 목소리가 어? 아예 갔네. 그래도 케이 밥은 남기지 말고 먹어. 오늘 온종일 녹음해야 하니까.”

이병수의 말에 케이가 고개를 저었다.

“난 밥을 먹을 자격이 없다. 이번엔 협조하지 못할 테니까.”

“닥치고 처먹어.”

케이는 식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덴이 일어나려는 그의 어깨를 꽉 잡아 눌러버렸기 때문이다.

“아프다…….”

손을 치우라는 그의 목소리가 무척 힘이 없었다. 보는 사람이 절로 안쓰러울 정도의 모습이었지만 아덴의 손에선 결코 힘이 빠지지 않았다.

“강제로는 안 먹어도 돼. 알지?”

“맞아요. 형 입맛 없으면 안 먹어도 돼.”

서도화가 퉁명스레 말했다.

“아냐 먹어. 나중에 기력 없어서 노래 못 부르겠다 그러지 말고.”

케이가 마지못해 수저를 도로 들었다. 서도화는 그 축 처진 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밥 다 먹고 나 좀 보자.”

앞으로 스탯을 올리거나 서도화 자체의 실력이 향상될 일이 많아질 텐데 그때마다 늘 케이가 고통스러워하게 둘 수는 없다.

어차피 목 상태 관리도 해줘야 하고.

예전 아덴이 스치듯 말했던 것처럼 정말 본인의 의지에 따라 내성 작업을 해봄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 * *

서도화의 방으로 들어온 케이는 무척 어색하고 불안한 듯 그의 시선을 피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 좁은 방안에 볼 게 뭐가 있다고 저렇게나 시선이 돌아가는지 원.

서도화는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듯한 케이를 빤히 보다가 말했다.

“왜 그렇게 기가 죽었냐?”

“뭐, 뭐?”

“목 나간 것 때문에 그러지?”

케이는 순순히 대답하기 싫었는지 한참이나 우물쭈물하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으로서의 나는 늘 민폐만 끼치게 되는군. 역시 난 마족의 머리 위로 군림하는 것이 편하다.”

인간보단 마족에게 더 필요한 존재가 바로 자신이다.

서도화는 황당하다는 듯 그를 쳐다보다 툭 내뱉었다.

“네가 자꾸 그렇게 극단적인 말을 하니까 중2병이라고 놀리는 거야.”

“무슨 소리냐 음유시인. 중2병이라는 건 좋은 뜻이라고 한야 형이 말했다.”

“이야…….”

어쩐지 중2병이라고 놀려도 꿈쩍도 안 하더라.

“난 이번 일로 인간들에게 민폐를 끼쳤다. 몹시 수치스럽고 또…….”

케이가 말을 멈췄다. 몹시 수치스럽고 또 그들에게 미안했다.

마왕인 자신이 인간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말도 안 되고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겠지만… 어쨌든 케이는 오늘 자신을 보호하는 인간들의 중요한 행사를 방해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실수를 만회할 수만 있다면 그리하고 싶었다.

분해 보이는 그를 보며 서도화가 말했다.

“내가 고쳐줄까?”

“뭐?”

“지금 네 목 상태 내가 고쳐줄 수 있다고.”

케이의 눈에 경계심이 일었다. 이 인간이 갑자기 왜 이러나? 아무런 대가 없이 고쳐주겠다는 말은 아닐 거고, 혹은 또 놀려먹으려 거짓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서도화는 진지했다.

“그냥 노래 부르다가 쉰 목 상태만 되돌리는 정도면 뭐. 네가 내 노래를 참기만 하면 해줄 수 있어.”

“……내가, 너한테, 치료를?”

마왕이 자신의 힘과 상극인 치유술을 받으라고?

서도화가 헛웃음 쳤다.

“뭘 처음 받는 것처럼 말하냐? 너 전에도 받은 적 있잖아.”

예전 아덴과 케이를 이 세계에서 처음 봤던 때, 다짜고짜 케이의 이마를 커터칼로 찢어버렸을 때 강제적이었지만 서도화의 치유술을 받은 적 있었다.

케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네가 왜 나를?”

“그 물음 이젠 좀 지겹다. 당연히 녹음에 피해가 가면 안 되니까 그렇지.”

케이가 눈을 내리깔았다.

평소라면 고민도 없이 네깟 것의 도움 따위 필요 없다며 거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거절한다면 녹음은…….’

“물론 너한테는 많이 고통스럽겠지만 참을 수 있다면 받아.”

“……해라. 그깟 고통은 별거 아니다.”

“그래그래. 해봐야 아덴한테 배 뚫렸을 때보다 아프겠냐?”

서도화는 몰랐다. 이제야 이곳에 온 뒤로 꽤 많은 정화가 이루어져서 고통이 덜했지만 처음 서도화에게 직접 치유술을 받았을 땐 배가 뚫렸을 때보다 더한 고통을 받았다는 것을.

오죽하면 아덴의 검이 배를 뚫고 독기에 의한 감염이 이루어져도 소리 한번 지르지 않던 그가 서도화의 치유술에 비명을 질렀을까.

핵이 없어진 것과 더불어, 타락한 자에겐 그만큼 치명적인 것이 치유술이었다.

그러나 케이는 이를 굳이 말하지 않았다.

“해라.”

자신이 설마 인간따위를 위해 스스로 고통받기를 선택할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힘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받아준 인간들이다.

이 정도 고통은 그에 대한 합당한 보상으로 견뎌낼 수 있다.

“어, 그래. 한다.”

서도화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케이에게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손에서 푸른 빛이 흘러나왔다.

“아윽! 윽!”

케이의 얼굴이 형편없이 찌그러졌다. 서도화의 손끝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빛이 피부에 흡수되며 마치 독기가 온몸에 퍼지듯 뜨겁고 따가웠다.

그러나 홧김에라도 서도화의 손을 쳐내지는 않았다.

“노, 노래는 안 부르는가!”

“이 정도로는 노래 안 해도 돼. 이 정도 치유술 가지고도 노래 불러야 했으면 난 음유시인 때려치웠어.”

서도화가 넌지시 물었다.

“아프냐?”

“견딜 만, 하다.”

심각하게 쉬어있던 케이의 목소리가 빠르게 복구되어 가는 게 보였다.

정화도 아니고 치유라서 상당히 아플 텐데도 꽤나 잘 버텼다.

‘이 정도면…….’

서도화는 고통스러워하던 케이를 빤히 보다 조심스레 물었다.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정화 한번 당해볼 생각은?”

“……뭐?”

케이가 빠르게 서도화의 손을 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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