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0화
완벽하지 않은 멤버에게 완벽함을 바랄 수는 없다. 게다가 어메스는 이제 겨우 데뷔를 앞둔 연습생들에 불과하다.
그런 상황에서 모든 멤버가 지태엽을 만족시킬 만큼 노래를 잘 부를 리 있는가? 멤버들의 실력이 균등하지 않다는 건 지태엽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실력이 부족한 케이에 대한 쓴소리는 아끼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돈을 받고 일할 뿐인 입장에서 없는 재능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기에 그는 생각보다 빠르게 케이의 순서를 넘겨버렸다. 아예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는 듯한 행동이었다.
칼같이 내리꽂히는 지태엽의 지적을 들으며 당연히 녹음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케이와 아덴 때문이겠거니 생각했던 서도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도화, 너까지 이러면 어떡해? 느낌이 전혀 안 살잖아. 아직도 노래가 너무 자상해.”
“네, 다시 해보겠습니다.”
단기간 내에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내려면 당연히 잘하는 놈들을 조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게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듣자니 지태엽은 어메스의 곡을 만들기 위해서 몇 날 며칠을 어메스의 공연과 연습 영상을 찾아봤다고 하던가.
그 말은 의례상 하는 말이 아니고 진짜였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층 성장한 서도화의 노래를 듣고도 멀쩡히 지적을 이어나갈 리 없으니.
서도화는 물을 한 모금 들이키곤 다시 가사를 보았다. 녹음 부스 안에 들어간 지 꽤 시간이 흘렀다. 중간중간 나와서 쉬긴 했지만 같은 파트를 반복해 부르다 보니 좀 지치긴 했다.
“노래 틀게.”
“네!”
곧 MR이 재생되고 서도화가 다시 제 파트를 불렀다. 그러나 노래를 끝마친 그에게 아직도 만족하지 못한 지태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보다 좀 나아지긴 했는데. 여전히 좀 약한데. 좀 더 사납게 불러야 할 것 같아. 아니면 확 목을 긁어서 불러볼래?”
“네!”
서도화가 주로 지적받는 건 노래의 감정적인 부분이었다. 실력은 어딜 내놔도 손색없을 정도로 잘하지만 감정을 담는 건 또 다른 영역이었다.
늘 가만히 앉아서 산들바람처럼 부드럽게 노래를 부르던 그였기에 강하게, 사납게 부르라는 건 어렵게 느껴졌다.
지금까지의 무대에서는 사나운 건 주로 다른 멤버가 맡고, 분위기 전환 등 제 부드러운 목소리를 십분 활용할 수 있는 파트는 서도화가 맡았기에 딱히 생각해 본 적 없던 문제였다.
“……내가 보기엔 잘만 하는 듯한데. 왜 자꾸 다시 하라고 하는 것입니까?”
지태엽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작게 웅얼거리는 케이의 소리에 한야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자상히 미소 지었다.
케이는 칼같이 지적하며 불평불만을 터트리는 지태엽과 찍소리도 못하고 수긍하는 서도화를 고깝게 보는 것이었다.
자신의 앞에선 잘난 듯 이것저것 말하던 음유시인이 왜 순순히 괴롭힘을 받고 있느냔 말이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노래 분위기에 맞는 보컬을 찾느라 그러는 거야. 우리 케이가 도화 걱정되는구나.”
“……그, 그!”
한야의 흐뭇한 말에 케이가 눈을 떨며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리오! 그럴 리-”
“어이, 케이. 쉿. 지금 녹음 중이잖아.”
지태엽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케이를 흘겨보자 이병수가 안절부절못하며 쉿쉿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댔다.
서도화의 녹음은 계속되었다. 아덴은 케이를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역시 마왕. 그 세계에서도, 이 세계에서도, 무대 위에서도, 연습 중에도, 심지어 남의 녹음 타임에서까지 민폐가 따로 없다.
혀를 차며 그를 흘리던 아덴은 케이의 표정을 보곤 미미하게 눈을 키웠다.
‘저거 왜 저래?’
지태엽을 보는 케이는 마치 제 동료를 괴롭히는 이를 보던 자신의 표정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서도화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도대체 사납고 강한 게 뭐지?
감을 잡은 줄 알았다. 사실 지금까지 경연에서 사납고 날 선 컨셉은 많이 해봤으니 무난하게 감정을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했던 최선으로 녹음에 임했는데 그게 아니라고 하니 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렇다고 하이라이트 부분에 화를 내면서 부를 수도 없고.’
서도화는 가사를 빤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 순간 지태엽이 말했다.
“뭐라고 해야 하지? 아 내가 언어표현이 좀 딸려서. 아! 그! 좀 더 절규하듯이. 그걸 뭐라고 해요?”
지태엽의 말을 듣는 순간 서도화의 머리에 번뜩 생각이 스쳐갔다.
‘혹시 내가 생각하는 사나움과 다른가?’
강함과 사나움이라고 해서 위협적인 느낌을 살려 부르려고 애썼다. 연습 때도 줄곧 그런 식으로만 이미지 메이킹을 했었는데.
서도화가 다시 가사지를 보았다.
강하게 밀려든다 점점 더
난 휩쓸려 너에게로
제발 날 피하지 마
확실히 가사를 보면 부탁하는 어조다. 강하고 사납기보단 절절하고 처절한 느낌이 아닌가.
서도화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강함과 사나움은 자신과 거리가 먼 단어일지 몰라도 처절함 하나는 무척 자신 있다.
“뭔가 알 것 같아요. 다시 불러보겠습니다.”
“그래? 그럼 다시 노래 틀게.”
일단 노래 스탯 조금 더 올리고.
이제 이 파트에서 좀 벗어나자는 생각으로 노래 스탯을 2포인트 정도 더 올린 후 들려오는 MR에 생각했던 감정을 쏟아부었다.
떠나가려는 이를 붙잡고 처절하게 외치듯이.
스스로가 들어도 이번엔 확실히 가사와도 노래와도 딱 맞는 목소리가 나온 게 느껴졌다.
녹음이 예정된 파트가 끝나고 서도화가 입술을 잘근거리며 지태엽의 눈치를 보았다.
자신은 매우 만족스러운데 지태엽은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원하는 터라 또다시 부르라고 할 수도 있다.
지태엽은 잠시 말이 없었다. 한 번 더 부르게 할지 픽스할지 고민하는 건가?
서도화가 불안스레 시선을 옮겨 이병수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이병수가 씨익 웃으며 오케이 신호를 보냈다.
‘오.’
지태엽의 표정과는 달리 바깥의 분위기는 무척 좋았던 모양이다.
잠시 후 지태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파트로 넘어갈게.”
서도화의 긴장이 사르르 풀렸다.
* * *
서도화의 녹음이 드디어 끝났다. 서도화는 서둘러 헤드셋을 내려놓고 부스에서 나왔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던 터라 그새 목이 칼칼해졌다.
“상현이 안으로.”
“넵!”
주상현이 바톤터치를 하며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갔고 서도화가 소파에 앉자 아덴이 픽 웃으며 작게 말했다.
“꼼수는.”
“꼼수는 뭔 꼼수.”
“너 또 시스템 건드렸지? 갑자기 그렇게 잘 부를 수 있어?”
서도화가 장난처럼 억울함을 내보이며 웃었다.
“나름 고민해서 절절하게 불렀다.”
고작 2포인트 올린 것으론 아주 조금, 간에 기별만 갈 정도의 효과만 있을 뿐이다.
아덴이 어깨를 으쓱이곤 지태엽의 눈치를 보며 속닥였다.
“아무튼 디렉터님 엄청 감탄하셨어. 이거지! 이러면서.”
“다행이다. 이것도 아니라고 하시면 진짜 슬플 뻔했거든.”
서도화는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녹음 부스 안 잔뜩 긴장한 주상현을 보았다.
아직 해가 지기 전 케이, 아덴, 서도화의 첫 번째 녹음이 끝이 났다. 그러나 어메스 멤버들은 밤이 깊어질 때까지 녹음실을 떠날 수 없었다.
주상현의 말대로 지태엽은 무척 오랫동안 녹음 일정을 잡아 완벽한 완성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었고, 역시나 주상현, 한야의 차례에서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멤버들은 목이 칼칼해져 오늘 아침 케이와 비슷한 목 상태가 되고서야 겨우 퇴근할 수 있었다.
* * *
“여어~ 여기 연예인 왔다고 하던데~”
늦은 밤, 녹음 스튜디오 문을 열고 지태엽을 찾아온 이는 유명한 프로듀서 겸 작곡가 유성이었다.
지태엽은 유성이 들고 온 커피를 냅다 뺏어 들곤 고개를 내저었다.
“연예인은 무슨. 곧 데뷔할 연습생들 와서 녹음한 건데.”
늦은 밤까지 작업하던 지태엽의 눈이 피로감으로 퀭했다. 유성은 허! 혀를 차며 지태엽의 곁에 앉았다.
“어메스라며. 녹음한 애들. 그 정도면 데뷔만 안 했다 뿐이지 그냥 연예인이지. 걔네 잘하지? 잘한다던데.”
도성한이 그랬어. 유성의 말에 지태엽은 반사적으로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 잘하긴 잘하더라. 태리 그 새끼가 하도 까 내려서 뭐 얼마나 개판인가 했더니.”
직접 경연 공연을 봤을 때도 태리의 말은 어불성설이었음을 깨달았지만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인성도 실력도 괜찮은 아이들이었다.
실력 구멍이라 불리는 케이나 댄스만 그럭저럭이라는 아덴도 들을 만한 노래 정도는 불렀고.
주상현과 한야는 무난했고, 서도화는…….
“어메스 걔네들 중에 노래 개잘부르는 애 있지 않나? 여기저기서 많이 들은 것 같던데.”
유성의 말에 지태엽이 커피를 내려놓고 노트북을 만지작거렸다.
“한번 들어볼래?”
“좋지. 떡잎 보이는 애들은 공유 좀 하자. 나도 곡 좀 집어넣게.”
지태엽은 방금 작업한 곡을 몇 번의 마우스질로 대충 다듬고는 유성에게 들려주었다. 그러곤 말했다.
“미쳤어. 내가 본 아이돌 애들 중에 제일 잘해.”
자신이 아무리 노래를 잘 만든다고 해도 무대를 보는 눈은 영 무감해서 서도화가 춤을 잘 추는지 끼가 있는지 그런 건 공연을 몇 번이나 봐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만은 확실했다.
이런 노래 실력을 가진 놈을 탐내지 않을 프로듀서는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오, 노래 좋네.”
목을 아이솔레이션하며 노래를 듣던 유성은 정확히 서도화의 노랫소리에 뚝 멈추더니 눈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