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151화 (151/270)

제151화

“…잘하네.”

“경연 공연 때보다 실력이 는 것 같던데? 실제로 들으니까 소름이 돋더라.”

평소 지태엽의 아티스트 칭찬을 들을 때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며 냉철한, 또는 반농담 섞인 건방진 말을 하던 유성이었다.

지태엽은 무척 까다로운 디렉터지만 잘하는 아티스트에겐 곧잘 마음을 열고 주접에 가까운 칭찬을 하는 사람이니 이번에도 그런 거 아닐까? 생각한 것이다.

물론 새로 나온 신인 서도화의 실력에 대한 소문은 이미 업계에 자자하지만. 뭐 아이돌이 노래를 잘 불러봤자 그저 솔로 가수와 견줄 수 있는 정도겠거니 생각했는데.

“얘는 노래를 도대체 어떻게 부르는 거냐? 와, 이건 좀 신기하다.”

“그니까. 내가 안 그래도 너 오면 들려주고 싶었어. 네가 탐낼 만한 놈 아니냐.”

유성은 지태엽에게 대답하는 것도 잊고 서도화의 노래를 감상했다. 신기하다고 해야 할까? 이런 감각을 이상하다고 해야 할까.

서도화의 실력은 확실히 최근에 나온 수많은 아티스트를 두고 봐도 가장 잘한다는 축에 속할 실력이다.

그러나 그저 노래를 잘 부른다고 듣는 사람이 이런 감정을 느끼지는 않을 터.

유성은 서도화의 노래를 분석하고 싶어 말없이 계속 어메스의 곡을 감상했다. 하지만 그저 서도화는 남들 보다 노래를 쫄깃하게 부른다, 감정 표현이 풍부하다, 듣기 재밌게 꾸민다 등등 일반적인 미사여구 같은 평밖엔 나오지 않았다.

‘이런 해석보다 더 알맞은 평이 있을 텐데…….’

“여기까지.”

“어?”

지태엽이 도중에 곡을 끊어버렸다. 그 바람에 유성의 몰입도 깨져 빠르게 현실로 돌아왔다.

“벌써 끄냐? 집중해서 듣고 있었더니.”

“아직 완성 못 했어. 이 뒤는 들을 만한 게 못 돼.”

“확실히 잘하긴 잘하네. 실제로 노래하는 거 한번 들어보고 싶은데.”

“기회는 많을걸? 걔네 스튜디오 여기 고정이거든. 다음 일정 잡히면 연락할게. 한번 오든가. 커피 사 들고.”

“시간 되면.”

지태엽의 제안에 유성은 순순히 응했다. 평소라면 바빠서 싫다며 뭣 하러 아직 데뷔도 안 한 놈들 노래를 들으러 오냐며 심드렁하게 거절했을 테지만 서도화의 노래는 제 귀로 직접 들어야 직성에 풀릴 것이다.

이미 음악에 대해 알 만한 건 아는 프로가 된 그였지만 그의 노래가 왜 좋은지 듣고 분석하고 싶은 음악인으로서의 순수한 호기심이 일었다.

* * *

며칠간 진행된 녹음이 끝난 후 남은 수록곡 녹음을 진행하기 전, 어메스 멤버들은 쉴 틈 없이 일정을 소화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바쁘게 흘러갔다. 그러는 사이 타이틀곡과 일부 수록곡이 완성되었으며 안무와 멤버들의 데뷔 일정까지 순조롭게 정해졌다.

오늘은 뮤직비디오 촬영 날.

“안녕하세요! 어메스입니다!”

서도화는 멤버, 스태프들과 함께 주변 제작진들에게 인사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와…….”

오로지 어메스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 황량한 모래 바닥에 여기저기 녹슨 폐차, 드럼통, 각목 등 위험한 것들이 즐비해 있었다.

매니저 이병수 또한 어메스와 같이 감탄사를 내뱉곤 멤버들에게 말했다.

“여기선 제2세계 멤버들 분 촬영이 진행될 거야.”

제2세계라는 말에 멍하니 세트장을 쳐다보던 서도화가 움찔하며 정신을 차렸다.

그러곤 이병수가 어메스 스토리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깨달아 머쓱하게 헛웃음을 쳤다.

어메스의 데뷔 타이틀곡 크레센도의 뮤직비디오는 어메스의 첫 번째 세계관 스토리로 이루어진다.

제1세계의 어메스와 2세계의 어메스가 세계의 멸망을 두고 서로 전쟁을 벌이는 내용으로 스토리의 첫 번째 뮤직비디오인 크레센도는 ‘멸망의 시작’을 담고 있다.

그중 오늘은 제2세계의 어메스 분 촬영이 진행될 예정이다.

서도화는 주변을 빙 둘러 감상하다 자신과 똑같이 멍하니 서 있는 아덴을 보며 팟 웃었다.

“야, 너는 진짜 너무 잘 어울린다.”

제2세계의 어메스는 멸망을 주도하는 자들로 멤버 모두가 의상에 가죽이나 깃털 등을 치렁치렁 달고 있는 어두운 의상을 입고 있는데 이게 아덴에겐 퍽이나 잘 어울렸다.

“그러냐?”

아덴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곤 인상을 찌푸렸다.

“여기 무슨 폐허 같아. 마음에 들진 않네.”

아덴이 속이 더부룩한 듯 제 복부를 만지작거렸다.

왜지? 서도화가 고개를 갸웃거리곤 주변을 둘러보다 이내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이 현장… 멸망을 표현하려고 그런 거겠지만 마치 폭탄이 떨어진 후의 모습 같았다.

아덴에게 별로 달가운 공간은 아닐 것이다.

“괜찮겠어?”

서도화가 걱정스레 묻자 아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빨리 끝내야지.”

“여기선 몇 씬 촬영 안 한대. 밤에 다시 오긴 해야 하는데 너무 거북하면 말해.”

딱히 해줄 건 없어도 속이 더부룩해지는 건 어떻게 치유라도 해줄 수 있을 테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아덴이 괜찮다며 서도화의 손을 치워내고 걸음을 옮겼다.

낮에는 등장 씬, 그리고 단체 씬만 간단히 촬영하면 된다. 이 현장이 무척 거북하긴 하나 거북한 현장에 오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괜찮아.”

축 처져선 언뜻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아덴을 걱정스럽게 보며 서도화도 아덴을 따라 현장으로 향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덴이니 촬영은 잘 끝내겠지만…… 어쩌면 어메스의 컨셉은 아덴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본격적으로 촬영이 시작되었다.

“신호 보내면 다 같이 카메라 안으로 들어와서 저 상자 위로 올라가 앉는 거예요.”

“네!”

“막 서로 장난쳐도 되고, 우린 엄청 여유로워~ 이런 느낌으로.”

서도화의 앞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이던 아덴도 현장 안으로 들어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잘 웃고 장난도 쳤다.

“좀 건들건들하게! 갈게요!”

매니저 이병수는 걱정이 가득해 보이는 감독의 뒷모습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날렸다.

감독은 의례 신인 아이돌들이 다 그렇듯 멋있는 등장 씬을 어색한 연기로 망칠까 걱정하는 듯 하지만 의외로 어메스엔 능숙하게 연기를 잘하는 멤버들이 많았다.

뻔뻔하게 생활 연기 잘하는 아덴, 데스티니에서 빡세게 연기 레슨을 받았던 한야와 서도화, 프로젝트 그룹으로 활동하며 경험으로 익힌 주상현.

유제이는 자금이 부족해 제대로 된 연기 레슨을 해준 적도 없는데 멤버들을 너무 잘 뽑아둔 덕에 뮤직비디오에서 선보일 연기 정도는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케이가 좀 불안하긴 한데.’

케이는 촬영 때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가 있으니.

이병수는 촬영 전 이를 걱정하는 자신에게 서도화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걱정 마세요. 쟤가 이런 거 제일 잘할지도 몰라요. 제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뭘 어떻게 한다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서도화는 조금의 걱정도 하지 않고 그렇게 말했었다.

“……대사가 없으니 괜찮으려나.”

이병수가 노심초사,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보는 심정으로 케이를 보고 있을 때 아덴과 대화를 나누던 서도화가 케이에게 무언가를 속닥였다.

그러자 케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저거 저거 또 장난치지.”

이병수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덴과 서도화에게 촬영 때만큼은 케이에게 장난치거나 하지 말라고 했거늘.

실제로 오랜 친구라고 하더니 참지 못하고 또 습관처럼 케이를 놀리려는 모양이다.

서도화가 속닥이고 또 곧 있으면 케이가 인상을 팍 찌푸리며 화를…….

“응?”

이병수가 의아한 소리를 냈다. 100%의 확률로 서도화의 귓속말에 표정이 안 좋아지던 케이가 오늘은 씨익 웃었다.

그러곤 무슨 각성한 사람처럼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시작합니다! 자, 큐!”

감독이 멤버들에게 신호를 보냈고 촬영이 시작되었다. 주상현이 신나게 뜀박질하며 앵글 안으로 들어갔고 그를 따라 멤버들이 천천히 등장해 준비된 박스 쪽으로 향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불량하고 위험해 보이는 소년들이었다.

이병수의 눈이 커졌다. 그러곤 흐뭇하게 활짝 미소 지었다.

다른 멤버들이 잘하는 건 당연하고 아덴은 거의 이 세계관에서 튀어나온 사람 같았다.

그리고 케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건방진 표정, 사악해 보이는 표정을 무척이나 잘 구사했다.

제2세계 어메스의 역할에 가장 싱크로율이 잘 맞는 것 같기도 했다.

“케이 뭐지? 쟤 왜 저렇게 잘해.”

마치 영화 속 대놓고 악역인 건달 보스를 보는 듯했다.

이병수가 껄껄 웃으며 중얼거리자 이를 들은 케이는 더욱 기고만장해져선 더욱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서도화 또한 이를 보며 만족스럽게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케이에게 한 말은 별거 없다. 그저 제2세계에서 보이던 위엄을 보이며 저 박스로 걸어가 앉아라. 이뿐이었다.

케이는 척하니 이를 알아듣고 아주 제대로 악역다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케이가 척척 앞으로 위엄 넘치게 걷더니 발돋움으로 냉큼 박스 위로 발을 디뎌 가장 높은 곳에 앉았다. 그러곤 다리를 척 꼬곤 멤버들에게 눈짓했다.

“앉아라.”

마왕 그 자체의 권위적인 모습이었다. 멤버들은 사전에 서도화에게 들었던 대로 아무런 태클도 걸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따라 케이의 아래 박스에 걸터앉았다.

“컷! 아유 잘하네!”

감독의 만족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독이 매니저 이병수에게 멤버들 잘한다는 뜻으로 엄지를 척 들어주었다.

데뷔도 안 한 연습생들이라길래 걱정했더니 생각보다 애들이 너무 잘했다.

특히 케이. 케이의 역할은 이번 촬영 내내 저런 흑막, 악역스러운 스탠스였다. 유독 어려운 배역이고 예민하고 날 선 이미지는 있어도 외모는 처연해 큰 기대는 없었건만.

“케이? 이름 케이 맞나?”

“네, 맞습니다.”

“쟤 잘하네. 지금 느낌 완전 악당 그 자체야.”

찰떡이다. 멤버들 중 독보적으로 역할을 아주 잘 이해한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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