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154화 (154/270)

제154화

첫 번째 촬영은 아덴과 한야의 순서였다.

아덴이 오락기기의 총을 집어 들었다. 그러곤 기겁한 얼굴로 이리저리 살폈다.

“아니 이렇게 조악한 게 총이라고? 장난감 같은데?”

“장난감 맞는데.”

서도화가 아덴을 한심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한눈에 봐도 장난감이 아닌가. 저걸 어떻게 진짜 총으로 착각할 수 있지?

어이없어하던 서도화는 이내 눈동자를 또르르 굴리더니 말을 바꾸었다.

“……진짜 총이랑 닮긴 했네.”

생각해보면 그 세계엔 저런 장난감 같은 총이 꽤 있긴 했었다. 그뿐만 아니라 총으로 얼음, 전기나 정화구 등등을 발사하는 세상이고…….

총을 조립한다기보단 마나로 만들어내는 것에 가까우니 모양새가 굉장히 다양했다.

오리주둥이에서 사람의 몸을 뚫을 만큼 강력한 물이 발사되는 오리 총처럼 말도 안 되는 물건도 있었지.

아덴은 서도화의 말을 듣고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놀래라. 이런 곳에 뜬금없이 총 있는 줄 알고 부술 뻔했잖아. 위험하게.”

무기가 있는 곳에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사건이 일어난다. 아덴이 살던 세계는 그런 곳인지라 민간인의 마을에 무기가 보이면 곧장 수거하거나 파괴하던 용사들이었다.

서도화는 그를 안심시키려 말했다.

“장난감장난감~”

당연히 별로 공을 들인 달램은 아니었다.

“촬영 시작할게요!”

곧 제작진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서도화는 잘하라고 아덴의 등을 툭 쳐주며 카메라에서 벗어났다.

아덴 혼자 하는 촬영. 카메라 뒤에 선 멤버들의 시선은 오롯이 아덴에게로 향했다.

그냥 말없이 총 게임에 집중하면 되는 별거 없는 씬이었지만 아덴이 워낙 마이웨이 인간이다 보니 당사자 빼고 전부 긴장하며 촬영 진행을 지켜보고 있었다.

촬영하다 이딴 시답잖은 게임 재미없다며 총을 내려놓는 행동 같은 것 말이다. 모두가 아덴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보고 있었다.

그러나 의외로 아덴은 무척 순조롭게 촬영을 이어갔다.

“……잘하는데?”

이병수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물론 촬영을 잘한다는 뜻도 있지만 그것보단…….

‘저 자세, 저 에임.’

게임 많이 하고 좋아한다더니 정말 잘한다. 꽤 난이도 높은 게임으로 알고 있는데 대충 한 손으로 총을 그러쥐곤 흔들림도 없이 쏴재끼기 시작했다.

2단계, 3단계, 처음 해보는 게임이 맞는지 아덴은 손쉽게 단계를 올랐고 그가 게임에 몰입해있는 동안 끊김 없이 첫 씬 촬영이 빠르게 끝났다.

“야 이거 재밌다.”

촬영이 끝나자마자 아덴이 서도화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는 무척 즐거워 보였다. 실제 전투와는 당연히 큰 차이가 있지만 나름 그 긴박함을 손톱만큼의 1/10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이거 촬영 끝나고 또 할래. 같이하자. 도화.”

서도화는 말없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살다 살다 아덴이 총 게임에 동체시력을 사용할 줄이야. 하여튼 이기는 데엔 뭐든 진심인 놈이다.

다음에 이어진 촬영은 한창 게임을 플레이하는 아덴의 뒤를 경찰인 한야가 스쳐 지나가는 씬이었다.

“한야, 누구 찾는 것처럼 두리번거리면서 지나가면 돼.”

“네~”

아덴은 여전히 신난 얼굴로 잠깐 중단해둔 게임을 다시 하기 시작했고 큐 사인이 들어간 후 한야가 두리번거리며 그의 뒤를 지나쳐갔다.

이 장면 촬영 또한 빠르게 끝났다.

그리고 다음. 대망의 학생 3인조가 촬영에 합류할 차례였다.

“학생역 세 분 노래방 안으로 들어가 주세요.”

서도화와 주상현이 눈에 힘을 빡 준 채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러곤 무언의 대화를 나눈 후 비장하게 케이를 이끌고 노래방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노래방 부스 안엔 어느 방향에서도 멤버들이 찍히도록 여러군데에 카메라가 배치되어 있었다.

세 사람은 이곳에서 아무쪼록 미친 듯이 신나게 놀아달라는 주문을 받은 상태였다.

서도화가 말없이 케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곤 토닥거렸다. 케이가 움찔하며 몸을 꼼지락거려 서도화의 손을 떨어트렸으나 곧 다시 올라와 이번엔 케이의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잘하자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이곳에 있는 인간들과 최대한 신나게 웃으며 노는 촬영을 과연 케이가 할 수 있을까.

여긴 인원수도 적고 모든 멤버가 집중 조명되는 촬영이라서 케이 또한 방방 뛰며 신나게 놀아줘야만 한다.

서도화는 부스 바깥에서 지켜보는 이병수의 눈에 도로 심려가 가득해지는 걸 발견하곤 케이에게 말했다.

“난 너 믿어. 넌 잘할 거야.”

서도화의 말에 케이가 움찔거리며 꼼지락거리던 몸을 굳혔다. 음유시인이 ‘또’ 자신을 믿는다고 말했다.

요즘 음유시인은 자꾸만 자신에게 신뢰를 보이고 있었다.

서도화가 말을 이었다.

“아니 너 잘해. 이미 실전에서 해본 적 있잖아. 친구인 척 떠들고 놀고 장난치는 거.”

서도화가 비죽 웃었다.

한때 아주 잠시지만 케이도 용사파티의 일원이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용사 파티를 조롱하기 위해, 또 전투력을 알아내고 가장 위기의 순간 배신하여 더욱 구렁텅이로 몰아넣기 위한 술수였지만.

그래도 동료였을 땐 스스럼없이 웃고 장난치고 또 속내를 털어놓으며 함께 고민하기도 했었다.

함께함에, 그에게 기대는 것에 있어 어떠한 위화감도 없었다.

그렇기에 배신당했을 때 모두가, 특히 아덴이 치를 떨며 분노했었지.

아무튼 그때를 생각하면 케이는 잘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번에 케이가 맡은 역은 마왕 그 자체의 삶과 닮아 있었다.

서도화의 이죽거림을 들은 케이는 오히려 씨익 웃었다.

“그렇지. 그건 내 특기지. 걱정 말아라. 하던 대로 잘 해내 보일 테니.”

그리 말하는 케이에겐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없어 보였다. 당연했다. 그 일이 고작 몇 달 함께 있었다고 양심에 찔릴 만한 일이었다면 애초에 하지를 않았을 테니까.

케이는 망설임 없이 탬버린을 집어들었다. 그가 요구한 대로 아주 신나게 친한 척 놀아줄 생각이었다.

그 모습을 본 서도화는 헛웃음치곤 케이의 어깨에 다시 팔을 둘렀다.

“촬영하는 동안 우린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야.”

“오냐. 그리하지. 너는 나의 벗.”

그리고 곧 촬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둘은, 아니 주상현까지 셋은 마치 누가 누가 더 친한 척하냐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서로를 부둥켜안고 덩실덩실 뛰며 트로트를 떼창했다.

“역시 친구들끼리 들어가 있으니까 익숙하게 잘 논다. 그렇지? 우리 아덴도 같이 들어갔으면 더 신났을 텐데.”

노래방 부스 밖에서 저들의 광기에 가까운 친분 과시를 보며 한야가 흐뭇하게 말했다. 아덴은 헛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장난으로라도 끼고 싶지 않아.”

그때 제작진이 다가와 한야에게 말했다.

“한야 씨, 지금 들어가시면 돼요.”

“네!”

대답한 한야가 곧장 카메라 앵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곤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광기에 차 있는 노래방 부스 문의 유리창을 통해 내부를 확인했다.

그러곤 심각한 표정으로 문을 벌컥 열었다.

부스 안에서 노래 부르던 멤버들이 화들짝 놀라며 멈춰 한야를 쳐다보았다. 한야는 난감한 듯 그들을 쳐다보다 케이에게 손짓했다.

“케이, 나와.”

서도화와 주상현의 시선은 물 흐르듯 케이에게로 향했고 티 나게 굳은 케이는 이내 웃음을 갈무리하고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그러곤 우울해진 얼굴로 한야를 따라 노래방 부스를 나섰다. 한 명이 사라진 부스 안, 서도화와 주상현이 무슨 일인지 영문 몰라 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뮤직비디오에서 일어날 사건의 원인을 간접적으로 알리는 중요한 씬이었다.

“……컷!”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케이는 언제 우울했냐는 듯 원래의 멀뚱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이후 같은 장면의 다른 각도 촬영이 연달아 진행되었다.

그리고 모든 촬영이 끝났을 때 선선한 아침이었던 하늘엔 쨍하니 해가 떠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난 촬영에 멤버들이 향한 곳은 당연하게도 연습실이었다.

* * *

뮤직비디오 촬영으로부터 긴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유제이와 팝넷을 등에 업은 채 데뷔 준비는 완벽하게 진행되어 어느새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앨범도 뮤직비디오도 완성단계. 그러나 이 외에도 어메스가 데뷔를 위해 부수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은 많았다.

이를테면 팝넷이 지원의 일원으로 마련해준 어메스의 데뷔쇼 VCR 촬영과 데뷔 후 곧바로 이어질 팬미팅 준비 등등.

오늘은 데뷔 준비의 일환인 데뷔쇼 첫 VCR 촬영 날이다.

첫 번째 VCR은 어메스 뉴스로 막내 주상현이 앵커를 맡아 최근 어메스 내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알려주는 코너였다.

대부분 예능 ‘어메스로 놀아보자’의 미공개 촬영분과 유제이 엔터테인먼트의 제보, 제공한 영상 등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데, 솔직히 앵커역 주상현 외엔 크게 고생할만한 촬영은 아니다.

그냥 연습실에 마련된 인터뷰 장소에서 기자로 둔갑한 제작진의 질문에 대답하기만 하면 될 뿐.

[도화 씨, 케이 씨와의 불화설이 있으시던데 사실인가요?]

“……어음.”

[아덴 씨와도 사실 친구가 아닌 비즈니스 관계라는 소문이 있습니다만, 이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어…….”

어떻게 알았지? 누가 제보했지?

서도화가 난감함에 그냥 웃었다. 그러곤 뻔뻔스레 애드립을 쳤다.

“죄송하지만 이런 사안은 소속사를 통해 질문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러곤 도망치는 척 앵글을 벗어났다.

별로 몸이 힘든 촬영은 아니지만, 가끔 선을 넘을 듯 말 듯 건네지는 질문에 일부 대사 외 전부 애드립으로 대답해야 한다는 게 신인 입장에선 영 쉬운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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