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155화 (155/270)

제155화

“걔랑 비즈니스 관계인 걸 어떻게 아셨지? 누가 그랬어요? 아덴이 그랬어요?”

‘사회 물에 찌든 표정과 말투’로 말하라고 지시가 있었다. 아마 다른 장소에서 인터뷰 중일 아덴은 서도화와 매우 친하며 우리 사이에 비즈니스 같은 게 있을 리 없다는 희망찬 내용의 인터뷰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하 정말, 말하지 말라니까.”

못 말리겠다는 듯 한숨을 내쉬는 서도화를 보며 제작진이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역시 서도화. 능숙하게 권태감 깃든 연기를 잘 해내고 있다.

이 장면은 순하고 유하게 생겨선 사회에 찌든 말을 하는 서도화와, 날카롭고 예민하게 생겨선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말을 하는 아덴을 교차로 보여주며 웃음을 뽑아내는 장면이었다.

‘아덴만큼 잘하네.’

평소보다 더욱 무기력한 얼굴로 인터뷰하는 서도화를 보며 감독은 아덴의 인터뷰를 떠올렸다.

‘도화는…… 제 목숨보다 소중한 친구죠. 운명이라고 해야 하나? 늘 고맙고 또 그 친구도 저한테 되게 고마울 거고.’

그리고 다시 서도화를 보았다.

“은근 되게 잘 삐지거든요. 다른 멤버들이랑 놀고 있으면 되게 서운해해요. 어유.”

[도화 씨에게 아덴 씨는 어떤 존재인가요?]

“음…….”

서도화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제가 그 친구 보호자입니다.”

슬프지만 사실이었다. 제2세계에 있을 땐 하이넬, 혹은 파티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재푸 할아범이 서도화를 포함해 파티의 보호자 역을 맡아주었지만 이곳에선 틀림없이 서도화가 아덴을 지키고 돌봐주어야만 했다.

“제가 챙겨줘야 해요.”

어쩌다보니 200살이 넘은 마왕도 같이 떠맡았다.

[그 정도면 친하신 거 아닌가요?]

“비즈니스 관계입니다.”

[그래서 친하다는 건가요? 안 친하다는 건가요?]

서도화가 미소 지었다. 사실 서도화도 잘 모르겠다. 친구는 맞지만 사실 제 2세계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아예 인연이 끊길 사이, 그럼에도 미련 없을 이상한 사이다.

촬영 컨셉에 맞춰 대답을 하려는 찰나 연습실 문이 열리고 다른 곳에서 인터뷰를 마친 아덴이 들어와 서도화를 주시했다.

서도화는 획 하려던 말을 바꿨다.

“친합니다.”

[네, 인터뷰 감사합니다.]

이번 가짜 인터뷰는 서도화의 마지막 대답으로 마무리 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서도화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아덴이 그에게 다가가는 모습까지 촬영이 된 뒤 첫 번째 VCR 촬영이 마무리되었다.

그 이후 며칠간 멤버들은 데뷔 쇼를 위한 촬영과 연습에 임했다.

데뷔를 앞둔 나날,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오죽하면 체력이 넘쳐나 단 한 번도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던 아덴이 잠은 좀 자면서 해야 하지 않겠냐고 한소리 할 정도였다.

모두의 피로감이 극심해진 탓에 케이와 서도화의 내성 작업 또한 자연스레 데뷔 이후로 미뤄졌다.

케이가 괜찮다며 지금 당장 하자 독촉하는 걸 서도화가 말렸다. 가뜩이나 피곤한데 내성 작업으로 힘까지 빼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 * *

그리고 드디어 멤버들의 데뷔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와 미쳤다. 여섯 시까지 오 분 남았어.”

주상현이 조급한 얼굴로 서도화를 흔들어 재꼈다. 서도화는 주상현을 토닥여 적당히 진정시키곤 노트북을 주시했다.

오늘은 어메스의 첫 뮤직비디오가 공개되는 날, 노트북 화면엔 ‘Coming soon 00:04:21’라고 공개까지 남은 시간이 카운트되고 있었다.

첫 뮤직비디오 리액션을 찍기 위해 카메라가 켜져 있음에도 멤버들도 직원들도 노트북만 뚫어지게 쳐다볼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딱히 긴장하지 않은 듯했던 아덴과 케이도 공간에 감도는 분위기를 쉽게 느끼고 입을 꾹 다문 채 그저 다른 이들과 같이 시선을 내렸다.

어떻게 긴장하지 않을 수 있을까? 카운트되는 영상의 채팅창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채팅이 줄지어 올라오고 있고 벌써부터 어메스의 데뷔와 뮤직비디오 공개에 대한 기사들이 올라오고 있다.

노력의 결과물이 주목받고 있음을 확실히 아는 순간 긴장과 함께 걱정과 두려움, 동시에 설렘도 일었다.

[멘트 좀 치자]

보다못한 이병수가 결국 자신의 수첩을 쭉 찢어 멤버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제야 한야가 입을 열었다.

“와~ 여러분 이제 3분 남았어요. 3분 뒤 뮤비 나옵니다.”

“우리 10초부터 다같이 카운트할래요?”

“오 좋아요.”

“……으아악!”

“아이고 깜짝이야.”

주상현이 버럭 비명을 지르며 제 몸을 떨었다.

“어떡해요? 진짜 너무 긴장되는데!”

“나도…….”

서도화가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뮤직비디오도 그렇지만 보는 동안 카메라 앞에서 아무 말 하지 못하고 감상하기만 할까 봐 그게 제일 걱정되었다.

“나 거짓말 아니고 진짜 심장 멎을 것 같아.”

“케이랑 아덴은 어때요? 두 사람은 비교적 긴장 안 한 거 같아.”

한야의 물음에 아덴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기대만 돼요. 우리 엄청 이것저것 많이 찍었잖아요.”

“맞아. 되게 특이한 거 많이 했어.”

“케이는?”

“긴장은 전혀 하지 않고, 나도 기대는 되는군요.”

“그러고 보니 케이 형 촬영분은 약간 베일에 싸인 느낌 아니에요? 다른 멤버들은 대충 어떤 역할인지 아는데 케이 형은 끝까지 비밀스러운, 난 아직도 정체를 모르겠어. 아, 그리고 도화 형도.”

“맞아. 도화도 좀 모르겠지.”

주상현의 말에 멤버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멤버들은 도망치고 작전을 수행하는 학생 역, 군인, 경찰 등등 역할이 분명한 것에 비해 서도화와 케이는 역할부터 정체, 하는 일까지 모두 불분명했다.

그저 서도화와 케이가 서로 대척점의 관계인 것만 알았지, 사실 역할을 맡은 당사자들도 자신의 역할이 어떤 역할인지 아직 잘 몰랐다.

아마 두 사람의 이야기는 다음 앨범에서 더 자세하게 풀릴 것이다.

그때 아덴이 외쳤다.

“십, 구-”

멤버들이 뒤늦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공개까지 십 초도 채 남지 않은 시간이 되었다.

“어어어? 칠! 육!”

어리둥절한 주상현을 따라 멤버들이 카운트를 시작했다. 서도화가 직원들에게 함께하자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직원들도 기꺼이 카운트에 동참했다. 데뷔 전부터 다사다난했던 유제이의 유일한 아티스트가 공식적인 데뷔곡을 발표하는 날이 아닌가.

유제이 사옥 연습실에 모인 전 직원이 건물이 떠나가라 카운트를 외쳤다.

“삼! 이! 일!”

뮤직비디오가 재생되었다.

첫 시작은 건물의 옥상에서 노을이 낀 하늘을 보는 서도화의 모습이었다.

“오오오!”

멤버들이 환호하며 서도화를 흔들어댔다. 서도화는 민망한 미소를 지으며 괜히 고개를 내저었다.

생각보다 연기하는 제 모습을 보는게 꽤 웃기고 괴로웠다.

뮤직비디오 속 서도화는 씁쓸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다 작게 노래했다.

뮤비 촬영 때 부스 노래방에서 불렀던 노래 중 한 곡이었다. 무척 신나는 트로트곡이었는데 지금은 그저 슬프고 애잔하게만 들렸다.

아주 짧은 노래가 끝나자 서도화의 얼굴에서 천천히 화면이 줌아웃되며 주변 광경을 보여주었다.

“와…….”

“저게 뭐야. 와 무슨 영화 같아…….”

멤버들이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촬영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주변 건물들이 죄다 무너져내리고 망가져 있었다.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차들은 찌그러졌으며 도로는 파괴되고 곳곳에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를 보며 서도화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돈 엄청 들었겠는데…….”

정말로 몇백억씩 들여 제작된다는 재난 영화 속 풍경 같았다.

서도화가 허무하게 보고 있었던 광경은 아포칼립스가 되어가는 세계였다.

뮤직비디오 속 서도화는 바람과 함께 한참 이를 보고 있다 문득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화면이 전환되었고 긴박하게 달리고 있는 주상현의 모습이 보였다.

“오오오오!”

주상현을 제외한 멤버들에게서 또다시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주상현은 아까의 서도화와 똑같이 머쓱한 미소를 보이며 곧장 집중했다.

마치 쫓기기라도 하듯 교복을 입은 채 달리던 주상현은 어느 건물에 숨어 벽 너머 누군가를 몰래 지켜보았다.

그러곤 들고 있던 무전기에 대고 말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보여요. 따라갈까요?

그러자 무전기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심히.

그의 목소리에 주상현은 한숨을 깊게 내쉬고 다시 비장한 표정을 짓더니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역시 경력직.”

“진짜 잘한다 상현이.”

“아이아이, 아니야, 하지 마.”

멤버들의 칭찬에 주상현이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주상현의 걸음을 따라 움직이던 화면이 또 한 번 전환되며 완전히 어두운 공간을 비추었다.

똑- 또옥- 물이 떨어지는 소리.

어둑한 폐허의 높은 곳에 올라선 누군가의 발을 보여주곤 화면이 검어졌다.

그리고 검은 배경에 새하얀 글씨가 올라왔다.

[Crescendo]

곧바로 노래가 시작되었다. 서정적이고 조용하게 시작하는 전주. 주상현이 건물을 나오는 모습과 함께 화면이 전환되어 서도화가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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