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6화
서도화가 비춰진 순간은 아주 짧았다.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서도화는 갑자기 시선을 바꿔 화면을 바라보았다.
“오오…….”
서도화의 곁에 앉아있던 케이가 갑작스러운 아이컨택에 놀라 움찔거렸다.
화면 속 그가 이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을 사람들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마치 스릴러 영화의 반전 요소를 보여줄 때나 쓸법한 고조되는 효과음과 함께 화면 조금씩 서도화에게 가까이 다가가다 뚝 전원이 끊기듯 장면이 전환되었다.
다시 화면에 나타난 서도화는 노을 낀 옥상 위의 그때와는 완전히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검은 복장에 진한 색조 화장, 잔뜩 힘을 준 헤어스타일의 그가 노려보듯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와 도화 형 멋지다. 영화 보는 거 같아 진짜.”
“엄청 예쁘게 잘 나왔다.”
멤버들의 칭찬에 서도화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여기서는 예쁘게 보이는데 실제로 찍을 땐 너무 오글거렸어.”
특히 노을 씬 촬영할 때 감성적으로 바람을 느끼고 슬퍼하라는 주문을 받았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무지 감도 안 잡히고, 동작과 표정을 새로 만들어낼 때마다 괴로울 지경이었다.
“아 난 연기 하면 안 되겠구나 했다니까.”
“에이, 형 잘 하는데 왜?”
아덴이 주상현의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너인데? 너 하프 칠 때, 초원에서.”
“……초원에서 하프를 쳐?”
“아! 야, 말하지 마!”
뜬금없이 그 이야기는 왜 꺼내는지 원.
서도화에게도 중2병 버금가는 흑역사라는 것이 있었다. 확실히 노을 씬의 서도화는 예전 음유시인 시절의 그와 닮아있었다.
마왕을 때려잡으러 가는 용사 파티는 사실 오합지졸들의 모임이었기에 모험 자금을 투자받으려면 숭고한 희생 이미지라도 갖춰야 했다.
그런고로 생각해낸 게 치유사 음유시인의 성스러움을, 그리고 마도사 하이넬의 지식인으로서의 모습을 부각하는 한편 사이코 아덴을 세상을 구하기 위해 제 한 몸을 불사르는 열혈 소년으로 포장하는 것이었다.
그 일환으로 초원에서 바람을 맞으며 성스럽게 연주를 하던 것이 세상을 구하는 용사 파티 이미지 메이킹의 시작이었다.
서도화는 서둘러 아덴의 입을 막아버리고 뮤직비디오에 집중하라 눈짓했다.
아덴은 잠자코 서도화에게 입을 틀어막힌 채 뮤직비디오로 시선을 돌렸다.
화면은 검은 복장의 서도화의 모습에서 점점 줌아웃되어 어느새 전체 대형을 모여주었다.
그리고 곧바로 안무 장면이 시작되었다.
스트릿한 분위기. 사리지 않고 안무가의 난이도 있는 오프닝 안무를 똑같이 가져다 썼다.
다수의 인원이 보여주는 군무, 정적인 카메라 무빙은 영상일 뿐인데도 현장 분위기 버금가는 위압감을 보여주었다.
“와아! 나왔다!”
“이거 안무 진짜 역대급이었어.”
“정말 멋있게 잘 찍어주셨다. 우리 멤버들 다른 사람 보는 것 같아.”
“……나, 나다!”
“어? 오, 그래 네가 나왔네. 와, 표정 봐. 장난 아니다 다들.”
“댄서 분들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눈에 독기 서린 거 봐.”
멤버들이 흥분하며 한 마디씩 얹기 시작했다. 집중한다고 한마디도 못 하면 어떡하냐던 걱정과는 다르게 그들은 흥분하며 안무 장면 내내 멘트를 쳐 댔다.
전주의 전체가 안무 장면으로 채워진 후 또다시 화면이 전환되었다.
아덴이 씨익 웃었다. 이번엔 그의 장면이었다.
“저기 어디야?”
“세트장.”
“진짜 멋지다. 와.”
아덴은 철근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어두컴컴한 시설 안을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끊어진 전기선이 튀고 드러난 철근은 기울어졌다. 어딘가 잠입한 듯한 아덴은 심각한 표정으로 어딘가로 향하다 무전기를 들어 입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곤 복도의 끝, 어느 문을 발로 차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를 보던 서도화가 말했다.
“듣기로는 저 문 아덴이 진짜로 부쉈다고 하죠?”
“아 맞아. 아덴 형 문 부쉈대요.”
서도화와 주상현의 말에 아덴이 씨익 고개를 끄덕였다.
“살살했는데 부서졌더라고.”
원래는 살살 흔들기만 해도 넘어갈 수 있도록 나사를 제거한 문인데 이걸 발차기 한 번으로 산산조각 냈다고 했다.
그 모습이 카메라엔 적절히 박력 있게 잘 찍혀서 다행이지 한 번 더 찍어야 했으면 난감할 뻔했다고 이병수가 말해주었다.
한야가 말했다.
“저 장면은 그럼 진짜로 문이 부서진 장면이구나.”
“네. 저도 너무 쉽게 부서져서 놀라긴 했는데 그래도 한 큐에 끝났어요.”
그리고 또 화면이 전환되어 이번엔 한야의 모습이 나타났다.
“한야 형 첫 등장!”
“오오 경찰? 저거 경찰복이라고 했지?”
“응.”
“한야 형이 제일 스토리 있어 보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한야 또한 누군가에게 쫓긴 듯 긴박하게 건물로 들어섰다. 경찰복을 입은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로 앞 계단에 털썩 주저앉았다.
주상현의 말대로 영상 속 한야는 무슨 사연이 있는 듯 보였다.
현실에서 볼 수 있는 평소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곳곳에 상처가 보였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들고 있던 무기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지친 듯 그대로 상체를 뒤로 넘겨 계단에 기댔다.
큰 전투라도 치르고 온 듯한 모습이었다.
무척 지친 얼굴의 그는 피로한 듯 마른세수를 하고 눈을 감다 무전기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무전기로 누구랑 대화를 하는 걸까요.”
“난 아직도 잘 모르겠어.”
멤버들 또한 스토리의 큰 틀만 알고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모르는 터라 팬들과 마찬가지로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며 내용을 파악해나가고 있었다.
한야까지 등장하자 서도화는 대충 적어도 무전기를 든 세 사람. 한야, 아덴, 주상현은 같은 편으로 공통된 작전을 수행 중이겠거니 하는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화면이 바뀌어 안무 장면의 복장을 입은 제2세계의 어메스가 등장했다.
한껏 빌런의 분위기를 풍기며 건들건들 폐허 속으로 들어오는 다섯 명. 어메스가 처음으로 단체로 촬영한 씬이었다.
콰앙!
“어우 깜짝이야!”
제2세계의 어메스가 각자의 자리에 앉자 그 뒤로 큰 폭발이 일었다.
당연스럽게 건물 한 채가 무너져 내렸지만 폐허 속 어메스는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키득거리며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장난을 쳤다.
뮤직비디오는 곡의 고조와 함께 지친 멤버들, 도망치는 멤버들, 시시덕거리는 멤버들을 번갈아 가며 보여주며 서서히 댄스 브레이크를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이번 뮤직비디오의 하이라이트인 댄스브레이크.
폐허에서 춤추던 멤버들의 가운데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웃은 주상현이 춤추다 말고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탁! 손가락을 튕기자 툭 순식간에 화면이 어두워졌다. 장소가 바뀌고 보이는 건 붉고 검은 색조로 꾸며진 세트장이었다.
“이거 이렇게 보니까 엄청 멋지네.”
세트장을 가득 채운 붉은 전광판. 그 앞엔 어둠에 검게 가려진 멤버들과 댄서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실제 촬영땐 그저 정육점 조명, 귀신의집 조명이라며 멤버들끼리 장난을 쳤던 세트장이었다.
그런데 이게 화면에선 이렇게나 멋지게 보일 줄이야.
멤버들의 얼굴, 의상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만 검은 실루엣으로 보이기에 오히려 그들의 몸짓과 대형은 더욱 눈에 잘 들어왔다.
대형을 이용한 아크로바틱을 주로 선보이는 그들에게 댄스 브레이크 부분만큼은 얼굴을 보이는 것보다 효과적으로 시선을 잡아끌 연출이었다.
트럼펫과 난타북, 기타 등등 강한 울림을 줄 수 있는 수많은 악기의 소리가 조화롭게 울려퍼졌다.
그리고 그에 맞춰 그들의 댄스 브레이크도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날아올랐고 누군가는 몸이 부서져라 춤을 췄다. 특히 오랜 체공시간 동안 높고 긴 포물선을 그리며 뛰어오른 이의 실루엣엔 심히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왔다.
“장난 아니다…….”
“실제로 할 때는 이 정도일 줄 몰랐는데.”
“아마 실루엣으로 봐서 더 그렇게 느껴질 거야.”
몇백 번이나 연습하며 이 안무를 해낸 당사자들도 이 영상을 지켜보며 이걸 무대에서 한다면 얼마나 멋질까 기대되는데, 뮤직비디오를 통해 처음으로 본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벌써부터 팬들의 반응이 기대되었다.
꽤 긴 댄스 브레이크 부분이 끝나고 그와 함께 한껏 고조되었던 음악도 잠시 멈추었다.
“어? 음악 멈췄어.”
“또 누구 나온다.”
“케이 형 나오나?”
“그러고 보니까 아직 케이 안 나왔지?”
서도화의 말에 케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분량이 적어도 크게 서운해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한야나 김유진, 이병수가 갖은 말로 분량이 적은 이유에 대해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화면은 다시 한번 주상현을 보여주었다.
주상현은 지친 걸음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숨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곤 제 망가진 휴대폰을 켜며 먼지를 툭툭 털었다.
휴대폰 배경 화면에 보이는 사진은 자신과 서도화, 케이가 교복 차림으로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장면이 전환되었다. 다음으로 보이는 장면은 멤버들의 회상 씬. 오락실 촬영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