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7화
“학생 삼인방 나오죠.”
서도화, 케이, 주상현은 좁은 코인 노래방 부스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여느 십대 청소년들이 그렇듯 춤을 추고 분위기를 띄우거나 때론 발라드를 부르며 실력을 뽐냈다.
세 사람은 누가 봐도 절친한 친구로 무척 각별하게 보였다.
“저거 촬영할 때 좀 부러웠어.”
한야가 말했다.
“나랑 아덴은 밖에서 촬영했으니까. 안에서 엄청 방방 뛰고 노는 거 보이더라.”
“맞아. 저 안에만 축제 분위기였지.”
아덴이 고개를 끄덕이곤 부러웠다는 듯 서도화의 어깨를 주먹으로 가볍게 쳤다.
그 사이 화면은 바뀌어 같은 장소의 다른 멤버를 보여주었다.
“오! 아덴 형 들어온다.”
편한 차림으로 오락실에 들어온 아덴은 곧바로 오락기계로 향해 총 게임을 시작했다. 그런 그의 뒤로 순찰 중인 경찰 한야가 들어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경찰이 누군가를 찾고 있죠?”
“과연 누구를 찾는 걸까요?”
“한야 형 경찰복 되게 잘 어울린다.”
“역시 태가 좋으니까.”
“운동을 하면 돼.”
생글 웃는 한야의 말에 가만히 보고 있던 케이가 움찔거리며 소심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영상 속 한야는 아덴을 지나치고 노래방 부스로 향했다. 그러곤 유독 신나 보이는 학생들을 잠시 바라보다 문을 두드리고 망설임 없이 열었다.
그러자 신나게 노래를 부르던 케이의 얼굴이 싹 굳어 한야를 바라보았다.
“케이 형 얼굴 나오는 거 처음 아니에요?”
“처음이었나?”
“처음이었다.”
케이가 단호히 말하면서도 씨익 웃었다. 영상 속 제 연기 실력이 꽤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굳은 케이의 모습과 갑작스러운 경찰의 등장에 함께 노래를 부르던 학생 서도화와 주상현도 놀란 얼굴로 노래를 멈추었다. 한야는 난감한 모습으로 이들을 바라보다 조용히 케이에게 이리 나오라 손짓했다.
영문을 모르는 서도화와 주상현은 케이의 앞을 막아섰지만 케이는 그들을 달래고 순순히 한야를 따라나서는 것으로 회상 씬이 끝이 났다.
그 이후 노래에 맞춰 노골적으로 케이의 모습이 나오기 시작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대신 그의 뒷모습, 어딘가 다리를 걸치고 달랑거리는 모습, 폐차 위를 걷는 모습 등으로 이 사람이 케이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주었다.
“뭐 저렇게 자꾸 수상하게 나와? 주인공도 아닌데.”
아덴의 말에 케이는 씨익 웃으며 거들먹거렸다.
“주인공이나 다름없지.”
하여튼 주인공이 되는 일엔 절대 빼지 않는 그다.
장면은 빠르게 전환되며 각 멤버들의 모습을 번갈아가며 보여주었다.
때에 맞춰 곡은 하이라이트로 구절로 향했다.
뜨겁게 타오르고
그 만큼 빠르게 식어
한 떨기 꽃잎처럼
화려하게 추락하는 우리
긴 하이라이트 파트는 서도화의 몫이다. 격정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수많은 악기 소리와 함께 목소리를 꽉 채운 강한 서도화의 음색이 포인트다.
“장난 아니다.”
“이렇게 들으니까 더 소름 돋아.”
멤버들도 흥분하며 이리저리 말을 늘여놓기 시작했고 아덴과 케이, 그리고 이들을 지켜보던 스태프들은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못할 정도로 뮤직비디오에 몰입한 듯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멋있게 나올 줄은 몰랐다.
어느 한 파트 버릴 곳 없이 멋지게 연출된 뮤직비디오도 어느덧 끝에 다다랐다.
후반부에 갈수록 휘몰아치던 노래가 마침내 끝나고 화면은 검게 암전했다.
“끝났나?”
아덴이 작게 중얼거리는 순간 쎄한 BGM(수록곡의 일부)과 함께 케이의 얼굴이 화면에 꽉 들어찼다.
“오오오!”
“워어어! 케이 형!”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는 임팩트 있는 등장이었다. 케이는 기고만장하게 활짝 웃었고 반응은 됐으니 빨리 영상 속 자신에게 집중하라며 고갯짓했다.
폭발하는 건물, 퀴퀴한 먼지더미 속 폐차 위를 걷던 케이가 ‘하아’ 옅은 숨을 내쉬곤 털썩 앉았다.
그러곤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특유의 예민하고 건방지며 쎄한, 마왕의 표정으로 씨익 사악하게 웃었다.
누가 봐도 범인 혹은 악역의 얼굴이었다.
“이야!”
주상현이 감탄사를 내뱉으며 손뼉을 쳤다.
“역시 케이 형 연기 잘한다니까.”
“사악한 연기만 잘해. 사악한 연기만.”
서도화도 투덜거리듯 말하며 손뼉을 쳤고 한야도 그게 박수 쳐주었다. 아덴은 잘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지만 케이는 콧대가 하늘 높이 솟구쳐선 더 칭찬하라, 더 박수치라 신호를 보냈다.
케이 띄워주기엔 늘 한발 빼던 서도화가 이렇게까지 케이를 칭찬해주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그가 생각보다 훨씬 적은 자신의 분량에 삐질까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뮤직비디오는 케이의 정체를 떡밥으로 남긴 채 끝이 났다.
한야가 멤버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뮤직비디오를 끝까지 감상해보았는데 어때요. 한 마디씩 감상 한번 말해보죠.”
“……나부터?”
한야는 아덴을 가리켰고 아덴은 당황하며 서도화를 쳐다보았다.
보통 이 세계에서는 발언할 일이 있으면 서도화가 먼저 시험을 보이고 그 다음 자신의 차례가 돌아왔었다.
그런데 이번엔 서도화보다 먼저 하라니.
물론 한야는 나이, 동갑내기들 중엔 생일이 빠른 순으로 소감발표를 돌린 것뿐이지만 아덴은 이에 막중한 책임을 느꼈다.
서도화가 말하던 ‘정상적인 범주’내에서 잘 대답해야만 한다.
“굉장히 좋았어요. 안무도 멋있게 잘 나온 거 같고. 무엇보다 선한 사람들의 분량이 많아서 좋네요.”
“……오 악역 견제 들어갔는데.”
“케이 견제야?”
“날 견제하는 것이니? 중요한 역할이라 질투가 나면 난다고 솔직히 말하려무나.”
케이의 말에 아덴은 심드렁하게 피식 웃었다.
“뒷이야기가 궁금해지기도 하고.”
질투는 무슨. 아무리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고 한들 분량이 이토록 없고 나설 수도 없는 자리에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다음은 케이.”
“나, 나 말입니까?”
케이 또한 서도화를 힐끔 쳐다보곤 눈동자를 팽팽 굴려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역시 마지막이 제일 기억에 남는군요. 노래도 좋고, 스토리도 기대가 됩니다. 무엇보다 영상 속 케이는 어떤 역할일지 무척 궁금해지지 않습니까?”
“네, 궁금해지네요.”
“근데 진짜 궁금하다. 케이 형 무슨 역할인지. 되게 신비롭게 나왔어. 비밀 엄청 많을 것처럼.”
주상현의 말에 한야는 고개를 끄덕이곤 서도화를 가리켰다.
“신비로운 역 하면 케이만큼이나 도화도 그렇지?”
“그러고 보니 도화 형도 비밀스러운 역할이었어.”
“약간 케이랑 대척점에 있는 역할.”
서도화가 흡족하게 말했다.
“촬영 내내 옥상에서 노래 부르고 애절한 표정만 짓고 있었어.”
“도화 형 위에서 나 달리는 모습 봤대.”
“제일 빨리 끝나서 다른 멤버들 촬영하는 거 구경하러 돌아다니더라.”
케이와 같이 무척 중요한 역할임에도 가장 쉽고 빠른 촬영을 한 서도화였다. 뮤직비디오 속 분량도 멤버 중 가장 많았고.
노력대비 가장 만족도 높았던 멤버라 할 수 있겠다.
서도화가 말했다.
“저도 되게 재밌게 봤어요. 뮤직비디오 속 멤버들은 뭔가 정말 영화라도 보는 것처럼 다른 사람으로 보일 정도로 멋있었고.”
“형도 멋있어.”
“무엇보다 스토리도 스토리인데 영상미라고 하나? CG가 장난 아니지 않아?”
멤버들이 일제히 맞다며 고개를 끄덕여댔다. 건물이 무너져 내리고 하늘이 먹먹히 뒤덮이고 수시로 폭발이 일어났다.
그저 평범했던 풍경이 그렇게까지 바뀔 줄이야.
댄스브레이크 장면 또한 붉은 배경에 검은 실루엣과 신비롭고도 위협적인 분위기가 압도적으로 시선을 끌어당겼다.
분명 촬영을 한 당사자인데 이게 정말 우리가 맞나? 몇 번이나 감탄하고 또 들뜨게 했던 뮤직비디오였다.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고… 뭔가 되게 좋네요. 원래도 저희 곡 되게 좋았지만 뮤직비디오로 보니까 더 새롭고 좋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러게. 감정이 고조되더라고.”
한야가 서도화의 말에 맞장구치며 다음으로 주상현을 가리켰다.
“상현이는 어땠어?”
“저는, 이걸 아무도 말 안 하네. 저는 솔직히 좀 무서웠어요. 너무 리얼해가지고.”
“무서웠다고?”
“진짜 재밌었거든요. 뭔가 여기에 우리가 나온다는 것도 신기하고 영화 같고. 근데 약간 재난 영화 보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아.
서도화가 탄식했다.
부서진 건물, 먹먹한 하늘, 평범한 일상의 풍경이 재난의 모습이 된 장면. 사람에 따라선 재난 영화 보듯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2세계를 거쳐 온 서도화나 아덴, 케이에겐 오히려 재난 속의 환경이 무척 익숙한 터라 그저 재밌다 하며 봤었다.
“우리가 자주 다니던 곳이 무너져내려 있으니까 진짜 같고 그렇더라고.”
그러고 보니 영상 속엔 어메스의 연습실과 유제이 사옥도 무너져있었다. 확실히 재난에 익숙지 않은 이가 본다면 소름 돋을 만한 장면이었을 것이다.
한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자주 다니던 곳이 전부 날아가 있으니까 기분이 이상하긴 하더라고요. 그래도 이렇게까지 스토리나 영상에 공을 들였을 줄은 몰라서 보는 내내 너무 즐거웠어요.”
한야가 촬영 중인 카메라를 쳐다보았다.
“부디 팬 여러분들도 크레센도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좋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최고로 멋있게 돌아오고 싶었는데 그 마음가짐이 곡에서 꼭 느껴졌으면 해요. 그럼 저희는 여기까지 인사드리도록 할까요! 하나 둘 셋!”
“감사합니다. 어메스였습니다.”
멤버들의 인사와 함께 뮤직비디오 리액션 촬영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직후 어메스와 타이틀곡 크레센도는 당연하게 인기 동영상. 실시간 트렌드에 올라섰다.
밀리언 아이돌 우승 그룹의 데뷔곡은 크나큰 관심을 받으며 벌써부터 거대한 기록을 해치워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