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9화
네가 이미 나에게
마음이 떠났어도 맴돌아
“와아…….”
서도화가 노래를 부르는 순간 힘차던 환호성이 한풀 꺾인 채 들려왔다. 아무것도 거치지 않고 마음에서 우러나온 탄성이었다.
“그새 노래 실력이 더 늘었어.”
어메스가 데뷔를 준비하고 있는 동안 그들의 팬들은 어메스의 경연 무대를 수십, 수백 번은 돌려보았다. 그래서 서도화의 노래도 이젠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목소리에 적응된 탓에 이젠 노랫소리에 생각이 멈출 정도로 소름이 돋는다거나 감명 깊은 경험을 다시 할 수 없다는 것에 아쉬움을 표하던 팬들도 꽤 많았다.
감탄하듯 뚫어지라 서도화를 보고 있는 어느 한 팬이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서도화는 이제 막 데뷔를 하는 신인이라는 걸 팬들은 잊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라는 것, 그건 아직 성장 중이라는 말과도 같았다.
경연이 끝나고 데뷔를 준비하는 이 짧은 기간에 벌써 이렇게나 실력이 향상되었는데 이런 성장세라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무대에서 팬들에게 감명깊은 경험을 선사해줄지 너무 기대되지 않는가!
서도화가 무사히 자신의 성장을 팬들에게 고했을 무렵 그와 주상현이 조금 더 옆으로 빠지고 중앙에 멈춰 서 있던 그룹 중 일부가 또 떨어져나왔다.
이번엔 아덴과 케이가 노래에 맞춰 서도화, 주상현과의 대칭점으로 향했고 케이가 아덴과 페어 댄스를 춘 후 제 파트를 불렀다.
선선한 바람에
차갑게 식어가
부유하는 lost moon
서도화의 파트 뒤 간신히 정신을 차렸던 팬들이 다시 한번 감탄사를 쏟아냈다. 이번엔 기특함에서 나오는 감탄사였다.
케이가 제대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니, 원래도 그럭저럭 노래 같이는 부르던 케이였지만 워낙 실력 좋은 멤버들이 많다 보니 거슬릴 정도로 부족함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는데 이제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졌다.
물론 서도화나 다른 멤버들처럼 실력이 좋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이젠 진짜 아이돌이 노래 부르듯 자신 있고 힘찬 목소리로 정확하게 노래를 불렀다.
다른 이는 몰라도 케이만은 확실한 비주얼‘만’으로 뽑힌 멤버였는데.
팬들마저 이것만은 인정할 정도로 분명히 부족한 실력이었는데.
그랬던 그가 이 정도로 노래다운 노래를 부를 수 있게될 때까지, 댄스와 노래 둘 다 평균 이상으로 끌어올릴 때까지 얼마나 고생했을지, 눈에 선했다.
그 노력이, 이 성장이 얼마나 가상하고 기특한가!
꼭 좋은 무대를 보여주리라 칼을 갈고 왔을 것이다.
케이의 파트가 끝나고 스포트라이트는 다시 중앙의 그룹으로 향했다.
중앙 그룹엔 이제 한야만 남아 있었다.
한야는 검은 의상을 댄서들 가운데서 무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한 채 그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You said, you'll be unhappy
I said, but it doesn't matter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은 서도화, 케이와는 다른 어른스러운 포스가 느껴졌다. 매번 어떤 무대이든 느끼지만 늘 싱글벙글 웃는 한야는 기본적으로 냉한 인상인지라 무표정일 때 아덴 못지않게 서늘한 분위기를 풍겼다.
댄서들을 거느리듯 그들과 함께 앞으로 향하는 모습이 매우 잘 어울리면서도 환호성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한야가 마침내 무대 앞까지 나오자 그의 뒤로 멤버들이 대형을 맞추어 섰다.
떠나려고 하면 너도 아쉬워하며
돌아보잖아
한야는 자신의 파트를 모두 부르고 마지막 어미에 옆으로 비켜섰다. 그의 자리는 주상현이 차지했고 동시에 곧바로 후렴구로 진입했다.
“와아…….”
와아, 이야, 우와.
팬들은 그저 탄성을 내며 멍하니 이들의 공연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메스 멤버들은 몸이 부서져라 춤을 췄다. 댄스와 아크로바틱을 시그니처로 내건 그룹답게 후렴구에 이르자 말도 안 되는 속도와 난이도의 안무가 연신 이어졌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신곡을 낸 아티스트가 홍보용으로 자주 하는 챌린지 등등이 과연 될까? 싶을 정도로 격한 난이도고 이걸 매번 무대에서 선보일 멤버들이 걱정되기까지 했지만, 지금은 마냥 좋았다.
야광봉을 든 손들이 감탄사를 연발하며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무대에 호응해주고 있었다.
마음만큼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환호해주고 싶지만 데뷔 쇼라 자제해야 하는 것도 있고 무엇보다 어메스의 무대에 집중하고 싶었다. 환호성조차도 방해가 된다.
그래! 이게 어메스지!
날아다닌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능숙하게 안무를 구사하는 주상현, 그에 지지 않고 정석 안무를 선보이는 서도화와 힘있게 안무를 선보이는 것만으로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덴.
세 명의 합이 무척 좋았다.
이들의 실제 무대를 보면 환호도 잘 나오지 않을 만큼 잘한다고 하더니 진짜였다.
집중하느라 응원하는 것조차 잊을 정도이니 말이다. 심지어 앞에서 저들은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기자들 또한 잠시 카메라에서 시선을 떼고 무대 위를 제 눈으로 뜨문뜨문 확인할 정도이니.
강하게 밀려든다 점점 더
난 휩쓸려 너에게로
제발 날 피하지 마
1절이 끝났을 때 이미 이 무대에 대한 몰입도는 최고였다. 멤버들은 관객 모두의 신경이 자신들에게 쏠려있음을 느꼈다.
성공이구나.
무대에 오르기 전 수십 번 되뇌었던 걱정과 불안이 관객들의 모습을 보며 싹 날아갔다.
아마 이 무대는 무사히 끝날 것이다.
멤버들은 각자 안도하며 한층 차분히 다음으로 향했다.
잠시 후 2절의 후렴구까지 마친 멤버들은 휘몰아치듯 멈추지 않고 곧바로 댄스 브레이크 파트로 넘어갔다.
서도화와 주상현, 그리고 한야가 앞으로 나와 댄서들과 안무를 맞추고 양쪽에서 아덴과 케이가 날아오듯 멤버들의 곁으로 텀블링했다.
이젠 시그니처가 된 두 사람의 높은 텀블링에 시종일관 조용하던 기자들 또한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밀리언 아이돌 때도 크게 이슈가 되었고 솔직히 경연 때에 비하면 오히려 아크로바틱을 줄인 편이지만 이것만으로도 강렬한 임팩트를 주기엔 충분했다.
어느덧 곡은 하이라이트에 다다랐다.
서도화는 주상현이 비켜준 자리에 서며 자신의 파트를 불렀다.
뜨겁게 타오르고
그만큼 빠르게 식어
한 떨기 꽃잎처럼
화려하게 추락하는 우리
서도화의 노래에 맞춰 댄스 브레이크가 이어지듯 더욱 활기를 띠며 무대를 채웠다. 언뜻 군무에 맞추지 않고 자유롭게 보이는 댄서들의 안무는 무대를 한층 열정적이고 입체적으로 보이게 만들며 무대가 절정에 달했음을 보여주었다.
클래식 선율의 반주와 함께 활기차게 이어지던 곡은 끝까지 가열찬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되었다.
“허억……허억…….”
서도화가 가쁜 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인이어를 뚫고 팬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그리고 겨우 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끝났구나.
나 데뷔했구나.
어메스의 첫 타이틀곡을 완벽히 마친 서도화는 울컥 차오르는 감정을 애써 내리누르며 팬들에게 인사했다.
크레센도 무대는 끝났지만 아직 데뷔쇼가 끝난 건 아니지 않은가.
수록곡 무대도 남았고, 토크도 해야하고 할 일이 많았다.
아크로바틱을 선보이고도 당연스레 숨 한번 몰아쉬지 않고 주상현을 챙기는 아덴, 토크고 뭐고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일단 무대 뒤에서 잠깐 재정비하고 나와야 할 것 같은 주상현과 케이, 그새 정신 차리고 스태프에게서 마이크를 건네받고 있는 한야.
서도화는 허리를 쭉 펴 가볍게 몸을 풀고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한야가 건네주는 마이크를 받았다.
“네에, 후, 어, 잠시, 상현이랑 케이는 뒤에 가서 잠시 재정비하고 오세요.”
서도화는 힘들어 보이는 주상현과 케이의 등을 밀어 무대 뒤로 내려보내고 멤버들과 나란히 섰다.
그러곤 자신도 잠시 말을 멈춘 채 숨을 몰아쉬었다. 실전이라고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 공연했더니 평소보다 더 숨이 차 말하기 힘들었다.
이를 본 아덴이 슬쩍 한야의 상태까지 확인하더니 마이크를 들었다.
“두 사람도 들어가서 재정비하고 와야 할 것 같은데요.”
아덴은 멀뚱멀뚱한 말에 팬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서도화와 한야는 민망스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아덴에게 진행을 맡기고 무대 뒤로 들어갈 수 있겠는가.
뒤에서 김유진 대표와 이병수가 불안불안하게 쳐다보며 제발 토크 사고만은 치지마라 기도하고 있을 터인데.
어차피 아주 잠깐의 토크 후 바로 VCR로 넘어갈 예정이니 조금만 버티고 서 있으면 된다.
한야가 크게 숨을 내쉬고 말했다.
“저희 어메스의 타이틀곡 ‘크레센도’였습니다. 여러분 어떠셨나요?”
그의 질문에 팬들에게서 ‘좋아요’, ‘멋있어요’ 등등 긍정의 감정이 담뿍 담긴 말들이 들려왔다.
멤버들은 재정비에 들어간 이들이 돌아올 때까지 크레센도에 얽힌 비화와 뮤직비디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비교적 뽀송해진 케이와 주상현이 머쓱해 하며 무대로 돌아왔다.
“죄송해요. 어유 데뷔한다고 너무 오버했나 봐요.”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주상현의 넉살과 케이의 어설픈 사과가 이어졌다. 한야는 두 사람이 제자리에 서는 것을 확인하곤 말했다.
“그럼 다섯 명이 모두 모였으니 오늘 와주신 여러분들께, 그리고 시청자분들께 자기소개부터 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