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1화

데뷔 쇼에서 선보이는 두 번째 곡 악동 어메스는 김유진이 생각한 어메스의 이미지를 그대로 노래로 승화한 곡으로, 무척 신나게 멤버들을 소개하는 곡이었다.

한야부터 막내 주상현까지, 외적으로 알려진 이미지만 사용한 것이 아니고 연습생 생활을 하는 동안 유제이 직원들이나 멤버들이 느꼈던 멤버들의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가사로 적어냈다.

주상현은 소심하면서도 장난에 가장 빨리 동참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케이는 진지하게 내뱉는 말들이 죄다 개그라는 것을.

아덴은 말투와 표정은 거세도 알고 보면 제일 정의로우며, 동료를 가장 많이 따른다는 것.

서도화는 순수한 외모, 노력파 천재 이미지에 속지 말라. 멤버 중 가장 게으르고 현실적인 성격이라며 대차게 까는 가사였고, 마지막으로 한야는 ‘최종 보스’라는 단어가 들어간 가사가 이어졌다.

아이돌 그룹의 자기소개 곡은 언제나 유쾌한 법이다.

멤버들이 곡을 부르는 동안 자연스럽게 관객석의 분위기가 띄워졌고, 떠들썩하게 공연이 마무리되었을 때 두 번째 VCR이 재생되었다.

“아아…….”

유쾌했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탄식으로 바뀌었다.

VCR에서 흘러나오는 BGM이 굉장히 아련하고 슬픈 느낌의 곡이었기 때문이다. 틀림없이 팬들의 눈물을 자아내기 위한 VCR이 틀림없었다.

이번 영상은 상황극이 아닌 진짜 멤버들의 인터뷰가 실린 영상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검은 화면에 글씨가 나타났다.

[나의 연습생 생활은 어땠나요?]

그리고 곧 검은 화면이 서서히 사라지고 한야의 모습이 나타났다.

한야는 방금 질문에 대답을 고민하듯 잠시 말이 없다가 언제나와 같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대답했다.

-사실 저는 연습생 생활이 굉장히 즐거웠습니다. 딱히 힘들다는 생각은 안 했던 날들이었던 것 같아요.

한야는 말을 멈추고 다시 한번 짧게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부드럽게 웃었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저보다 잘하고 재능있는 친구들이 많이 들어와서, 월말평가 순위가 뒤로 밀릴 때마다 나 데뷔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은 있었지만.

한야는 무척 편안한 얼굴로 당시의 불안에 대해 말했다. 그가 이렇게 가볍게 이를 말할 수 있는 건 이유가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인정하게 되더라고요. 아, 나는 도화나 상현이처럼 뛰어난 실력을 가진 사람은 아니구나. 그런데도 계속 연습생 생활을 할 수 있는 건 제가 어딘가엔 필요한 존재라는 거니까. 잘하던 걸 하면서 기다려보자. 그렇게 생각하며 보냈던 나날이었던 것 같아요.

화면은 전환되어 주상현을 비췄다.

주상현은 아직 질문에 대답하기도 전에 울먹이고 있었다.

-경쟁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요. 어메스로 데뷔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꽤 힘들었거든요. 기대만큼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고, 제가 유일하게 잘한다고 자신하는 게 춤인데 혹시 나보다 춤 잘 추고 잘생기고 노래까지 잘 부르는 연습생이 들어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불안하고 걱정이 많아서 갈수록 소심해졌던 것 같아요.

주상현의 말에 한야 때와는 달리 제작진이 말을 건넸다.

[지금은 소심하지 않고 늘 즐겁게 보이는걸요?]

제작진의 말에 주상현이 씨익 웃었다.

-지금은 그냥 다 즐거워요. 멤버 형들이 너무 좋은 사람들이고 이젠 경쟁보단 함께 걸어갈 사람들이니까 부담이나 걱정도 나눠서 질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에요.

또 화면이 전환되었다. 이번엔 아덴이었다.

-연습생 생활요?

아덴이 웃으며 다 알면서 뭘 묻자는 듯 제작진을 바라보았다.

-저는 연습생 생활이 되게 짧아서 팬분들이 보는 그게 다일 건데.

[그래도 한번 대답해본다면?]

아덴이 눈을 내리깔고 고민에 빠졌다. 그러곤 말했다.

-재밌어요. 친구랑 같이 하고 있기도 하고, 멤버들도 너무 좋은 사람들이고. 힘들고 어려운 게 없는 건 아닌데 뭐, 원래 사람은 시련과 고난으로 사는 거 아니겠습니까.

[시련과 고난으로 산다니힉! 그런 말 누가 알려준 거예요?]

외국에서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다고 들었는데. 제작진이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아덴도 씨익 웃으며 말했다.

-서도화요.

그의 말에 VCR을 보고 있던 팬들이 크게 웃었다. 저런 시련에 체념한 듯한 말을 할 사람은 서도화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화면은 다시 한번 전환되어 서도화를 보여주었다.

무척 편안하고 가벼워 보였던 아덴과는 달리 서도화는 씁쓸하면서도 진중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멤버 중 주상현과 함께 가장 쉽지 않은 연습생 생활을 보냈을 그였다.

-경쟁과 견제의 연속이었어요. 월말 평가뿐만 아니라 하루하루가 평가였고, 연습생이 굉장히 많았기 때문에 데뷔하려면 이 중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불안을 늘 안고 있었던 것 같아요.

수시로 연습생들이 바뀌었고 주기적으로 그룹이 만들어졌다가 공중분해되곤 한다.

소속사 또한 연습생들끼리의 경쟁을 부추기는 편이어서 결코 좋은 분위기가 나올 수가 없었다.

누가 더 연습을 오래 하나 경쟁하는 것처럼 레슨이 끝난 이후에도 연습실에 몰래 남아 밤새도록 연습을 이어갔고 잠을 자지 않은 채 등교한다거나, 연습생들끼리 월말평가 상위권 연습생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일이 잦았다.

서도화도 무한 경쟁체제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그 말도 안 되는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한발 물러선 지금 생각하면 몸도 마음도 망치는 행동이었지만 아마 지금 다시 데스티니에 들어가도 똑같이 행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뭐 그랬던 덕분에 어메스가 될 수 있었던 거지만.

서도화가 시원스레 미소 지었다.

-그래도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던 시간들이었어요.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그만큼 열심히는 못 할 거다 싶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던 나날이었으니까. 그 덕에 좋은 멤버들과 데뷔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다음으로 케이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흠.

케이는 한참이나 고민하다 겨우 입을 뗐다.

-처음으로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무던히 잠을 줄여가며 연습해야만 했죠.

차마 제 입으로 말하진 않을 테지만 자신과 함께 밤을 새워가며 연습을 도와준 이들이 없었더라면 매일같이 실수하고 지적받는 나날들이 이어졌을 것이다.

케이는 말을 마치고 또 한참 고민하다 말했다.

“사람 간의 관계는 이렇게 형성되는구나. 어메스를 보며 생각합니다.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에요.”

케이는 제작진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곤 대답을 마쳤다.

제작진은 이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고 검은 화면을 띄웠다. 검은 배경에 또 다른 흰 글씨가 나타났다.

[데뷔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나요?]

이에 멤버들이 차례대로 화면에 나오며 짧게짧게 대답을 이어나갔다.

한야가 말했다.

“그냥 너무 좋을 것 같아요. 노력한 만큼 기뻐하겠습니다.”

케이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나에게 잠깐의 여흥과 같은 새로운 목표가 생기겠지요.”

아덴이 씨익 웃으며 가볍게 말했다.

“서도화가 좋아하겠죠. 저도 좋을 거예요. 엄청 신기하지 않을까요?”

서도화가 말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감격해서 울지도 모르는데 멤버들한테 안들키게 조심해서 울어볼 예정입니다. 파이팅.”

그리고 주상현이 지극히 아이돌스럽게 말했다.

“가장 먼저 기다려주신 저희 팬분들에게 제일 감사드리고 싶어요. 안 울겠다고 다짐은 했는데, 장담은 못 하겠어요! ……으어헝! 벌써 울 것 같아요!”

주상현의 붉어진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흐르는 것을 마지막으로 VCR이 끝이 났다.

그리고 무대에 조명이 들어왔다. VCR에 집중하던 팬들은 무대에 조명이 들어오고서야 참았던 환호성을 터트렸다.

어느새 멤버들이 의자에 앉아 VCR을 보는 팬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곧장 다음 곡이 시작되었다.

이번 곡은 팬들과 데뷔하는 자신들에게 보내는 노래 ‘Always Love’다.

의례 팬 송과 같은 밝고 신나는 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단 한 발짝 남았어

들뜸을 받아들여

Follow me 분명 후회 안 할걸

주상현이 활짝 웃으며 노래를 불렀다. 그 사이 멤버들은 관객석으로 내려가 팬들에게 손을 흔들거나 눈을 마주치고 소통하고 있었다.

마지막 곡에 다다라서야 겨우 긴장이 풀린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시원한 기분이야

긴장은 구름 위로

이 기분을 너도 느꼈으면 좋겠어

얼마나 즐거운지

“도화야!!!”

서도화는 노래를 부르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수많은 팬들이 그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서도화는 그들의 손에 하이파이브를 하다 팬 중 누군가가 건네는 슬로건과 인형을 받아들고 다시 팬들 사이를 걷기 시작했다.

그때 어디선가 찰칵 소리가 들려와 걸음을 멈췄다.

“응?”

촬영 금지되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나 카메라를 든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고 서도화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곧 자리를 벗어나 관객석을 돌고 무대 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