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4화
“푸하핫!”
광고가 끝날 때쯤 다시 부스 안으로 들어온 오슬리는 빠르게 올라오는 실시간 문자들을 보며 크게 웃었다.
그에 오슬리가 들어왔다고 대화를 멈춘 어메스도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지만 오슬리가 웃음을 터트린 문자는 이미 다른 문자에 밀려 사라진 후였다.
“진짜 빠르다.”
아까 큰소리로 대화에 동참하던 주상현은 오슬리를 의식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오슬리가 호쾌하게 말했다.
“이렇게까지 빠른 경우가 잘 없는데. 어메스 인기가 어마무시하구나?”
아마 어느 정도 인지도 있는 아이돌 그룹 등이 올 때 의례상 기분 좋으라고 해주는 말일 테다.
오슬리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방송이 시작되었다. 그는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메모해두었던 문자들을 읽어주었다.
“아까 광고 도중에 보이는 라디오로 보이는 어메스 여러분들의 모습을 보고 2020 님이 또 싸우는 거냐고 그러셨는데, 아닙니다. 여러분, 어메스 분들은 싸우지 않았어요.”
서도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2020의 문자 외에도 또 시작이라는 둥, 어메스가 또 다툰다는 둥의 문자가 엄청나게 올라왔었다.
오슬리는 신나게 같은 내용의 문자들을 읽어주다 말했다.
“그런데 팬 분들이 ‘또’라고 말씀하시는데 평소 자주 싸우시는 편인가요? 보니까 문자 보내주시는 팬 분들이 여러분들의 다툼에 굉장히 익숙한 양상을 보이고 계세요.”
“네, 아무래도.”
한야가 순순히 인정했다. 뭐 이제 어메스의 특정 트리오가 자주 싸운다는 건 팬들 사이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라 굳이 부정할 필요도 없었다.
한야가 제 옆에 케이를 가리켰다.
“이분들, 저희는 저희끼리 소꿉친구 트리오라고 부르는데 이 친구들이 굉장히 자주 싸워요. 아까 아마 다들 보셨을 거 같은데.”
“예. 아까 보니까 귀엽게 투닥투닥하시더라고요.”
“카메라 앞에서도 이 정도입니다.”
“어허허허! 카메라 밖에서는 더 싸우시나요?”
주상현이 학을 뗐다는 듯이 말했다.
“지인짜 별거 아닌 걸로도 싸워요.”
“예를 들어 어떤 걸로요?”
“그냥 주제가 없어요.”
“주제가 없다?”
오슬리가 무슨 말이냐는 듯 서도화를 쳐다보았다.
서도화가 아덴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냥 가다가 보이면 시비 걸어요.”
“이건 진짜예요.”
주상현이 극히 공감하며 말했다.
“그냥 거실 돌아다니다 눈에 보이면 한 마디씩 툭 던지고 지나간다니까요?”
멤버들의 말을 듣던 오슬리가 모니터를 힐끔 보며 말했다.
“3879 님께서 그럼 이 세 멤버들이 싸울 때 한야 씨와 상현 씨는 뭘 하고 있나요? 물으셨어요. 도화 씨, 아덴 씨, 케이 씨는 싸우고-”
“저는 안 싸우고 말리는 쪽-”
“아니, 도화 형도 동참해서 싸우잖아. 쉿쉿.”
주상현이 서도화의 입을 막아버렸다. 생각해보니 주상현의 말대로 자신 또한 케이 놀릴 땐 즐겁게 놀렸던 것 같아서 서도화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다물었다.
오슬리가 계속 말했다.
“한야 씨랑 상현 씨는 뭐하고 계세요. 그럴 때?”
“저는 보통…….”
보통 일상 속 자신의 행동을 기억하고 있을 리 만무했다. 한야가 대답을 머뭇거리는 사이 아덴이 툭 말했다.
“옆에서 즐겁게 구경하고 있어요.”
“……예에?”
오슬리가 진짜냐는 듯 한야를 쳐다보았다. 한야가 머쓱하게 말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재밌더라고요. 물론 진짜로 싸우면 말리겠지만 보통 한 30초 싸우다 금방 끝나기 때문에.”
“아하~ 싸우는 텀이 매우 잦은데 대신 빨리 화해하시는군요?”
“네, 이래서 친하구나 싶어요.”
“하긴, 아까 전에 보니까 확실히 보기에 재밌긴 하더라고요. 투닥거리는 게 옛날에 친구들과 놀던 생각도 나고. 그럼 상현 씨는 뭐하고 계세요?”
오슬리의 질문에 주상현 또한 내가 뭘 했더라? 눈동자를 굴리며 대답을 머뭇거렸다.
그러자 서도화와 아덴이 동시에 말했다.
“너도 같이 싸우잖아.”
“너 요즘 참전하잖아.”
오슬리가 팟 웃었다.
“오! 도화 씨와 아덴 씨가 거의 동시에 말을 하셨거든요? 상현 씨도 같이 싸우시나요?”
“아, 아니 저는, 아니 제가요?”
주상현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서도화와 아덴을 쳐다보았다.
아덴이 말했다.
“상현이는 후발대 같은 느낌이에요.”
“후발대? 으음, 그게 무슨 느낌이죠?”
후발대. 딱 적당한 표현이다. 서도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덴이랑 케이가 좀 오래 싸운다 싶으면 슬쩍 와서 말리는 척 같이 장난치고 놀아요.”
“그건… 인정합니다.”
“하하, 인정을 하셨어요.”
“요즘엔 싸울 때 대체로 상현이가 있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아까 전에도 상현 씨가 같이 투닥거리고 계셨죠?”
주상현은 민망해하면서도 수줍게 말했다.
“형들이랑 노는 거 되게 재밌어요. 예전에는 막 다툴 때마다 눈치만 보고 있었거든요.”
서도화가 서둘러 말했다.
“진짜로 다툰 거 아니고! 그, 장난치고 노는 걸 예전에 상현이는 진짜로 싸우는 줄 알고 걱정했대요.”
“맞아요. 형들이 보면 되게 뭔가 무서웠다고 해야 하나? 다들 잘 싸울 것 같은 인상이잖아요.”
아덴이 슬쩍 주상현을 쳐다보았다. 잘 싸울 것 같은 인상이라니, 역시 은근히 필터 없이 할 말 다 하는 주상현이다.
“근데 과장 안보태고 30초에 한 번씩은 싸우시더라고요. 이 형들이. 그래서 보다보면 막 재밌고, 끼어서 같이 싸우고 싶고.”
오슬리는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보니 어메스는 파이터 그룹이었군요. 아주 재밌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럼 이제 슬슬 다음 코너를 진행해보려 하는데요.”
오슬리는 빠르게 준비한 코너로 넘어갔다.
다음은 게스트의 목소리로 사연을 읽어주는 코너로 멤버 중 노래를 부르지 않았던 세 사람 아덴, 케이, 주상현이 차례대로 사연을 읽어주었다.
주상현과 아덴은 능숙하게 사연을 읽었고 케이는 어메스의 개그담당 답게 잘 읽다 마지막에 발음을 씹고 크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 웃음을 자아냈다.
처음이니만큼 중간중간 실수도 하는 등 해프닝은 있었지만 다행히 첫 라디오 스케줄은 무사히 마무리 되었다.
* * *
라디오가 끝나고 숙소로 들어온 늦은 밤.
[어메스 데뷔 축하해!!!!]
숙소의 거실에 붙어있는 커다란 플래카드에 멤버들이 걸음을 멈추었다.
아 그랬지, 우리 오늘 데뷔했었지.
유제이 직원들이 붙여놓았을 플랜카드와 수많은 풍선장식들, 그리고 케이크 하나.
데뷔 쇼가 끝나자마자 정신없이 이동하며 인터뷰와 라디오 스케줄을 치러야 했던 어메스는 이것을 보고서야 자신들이 데뷔했음을 실감했다.
“와…….”
그 누구도 입을 떼지 못했다.
서도화 또한 플래카드 속 별 거 아닌 축하 문구를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울컥, 간신히 참아냈던 감정이 올라왔다.
우리 오늘 데뷔했구나. 데뷔한 거 맞구나.
주마등이 스쳐나가듯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피곤함에 찌들어 별 기대도 없이 숙소에 들어왔기에, 이렇게 느낄 거라 생각도 못 한 감동은 더욱 진하게 밀려들어왔다.
그간의 고생들이 꿈을 이룬 기쁨을 누리기 위한 것이었다면 꽤 할 만한 고생이었으리라.
그리고 서도화만큼이나 감회가 새로울 멤버들이 있었다.
한야는 수만 가지 감정이 담긴 표정으로 하염없이 플랜카드를 보다 이내 조용히 감정을 갈무리하고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러곤 사진을 찍은 후 멤버들에게 얼른 들어가자 등을 살짝 밀어주었다.
주상현이 가장 먼저 거실로 들어갔다.
“우리… 케이크…….”
그리고 케이크를 들어 품에 안으며 말을 하다 말고 펑펑 울기 시작했다.
“케, 케잌…… 으흡… 케이크……흐윽…… 케, 흐어엉!”
아덴이 그런 주상현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다 일단 케이크를 뺏어들었다. 아까운 음식에 눈물 떨어질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주상현은 본격적으로 울기 시작했다. 아덴이 인상을 구기며 우는 아이에게 물었다.
“케이크 뺏어서 그래?”
“이 미친놈아.”
누가 사이코패스 아니랄까 봐. 주상현의 벅찬 마음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아덴 덕분에 서도화의 감동은 금방 식어버렸다.
케이는 멤버들의 모습을 보다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모두가 데뷔의 기쁨을 누리는 순간. 저들의 기쁨에 굳이 자신까지 동참할 필요가 있을까.
그때 케이의 방으로 서도화가 들어왔다.
“야.”
“뭐냐 음유시인. 왜 더 기쁨을 취하지 않고 들어온 것이냐.”
“신경 쓰지 마. 상현이가 너무 울어서 한야 형이 달래고 있어.”
“관심없다. 너 또한 울지 않았느냐.”
케이의 말에 서도화가 멈칫하다 다시 그에게로 다가왔다.
금방 방으로 들어가 버린 줄 알았더니 운 건 또 어떻게 알았대.
“상관 말고. 그것보다 이제 해야지.”
“뭘 말이냐.”
“데뷔도 했겠다. 이제부턴 숨도 못 쉬게 바빠질 테니까 그냥 오늘 한번 시도해보자.”
서도화는 라디오 진행할 때의 케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커버곡 부를 때 상당히 상태가 안좋아 보였는데, 아마도 아무렇지 않은 척 버티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
케이를 위해 잠깐 보컬 스탯을 낮춰두긴 했는데 얼마나 아까웠는지 모른다.
적어도 오슬리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 싶었는데 말이다.
“내성 한번 키워보자고.”
케이에게 내성이 생기는 대로 스탯을 확 올려버릴 생각이다.
서도화의 말에 케이의 눈빛이 달라졌다. 케이는 깊게 숨을 몰아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해보거라. 기꺼이 참아줄 테니.”
“강도는 어느 정도로 할까.”
“……그걸 조정할 수 있는가?”
케이의 물음에 서도화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나는 무척 강하다. 너의 정화 따위에 굴하지 않아. 최대로. 최대로 하거라.”
“그래.”
서도화는 굳이 지가 하겠다는 거 말리지 않고 말없이 스탯을 쭉쭉 올려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