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8화
“어어엉?”
“이, 이게 무슨 일이야?”
“와.정.말.깜.짝.놀.래.라.”
멤버들은 정말 몰랐다는 듯 능청스럽게 연기를 펼쳤다.
누가 봐도 인위적인 것이 티 나는 케이 외에는 다들 갓 데뷔한 이들답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잘해주었다.
“이야~ 안녕하세요!”
“자자, 이리 와요. 아이~ 다들 알고 있었으면서 모르는 척 연기하기는~”
진행자 중 한 사람인 개그맨 소정현은 어색한 케이의 연기 톤을 보고는 급습 컨셉이 실패했음을 빠르게 캐치하고 슬쩍 멘트를 바꿨다.
그에 어메스 멤버들이 민망하게 웃으며 두 진행자 사이 나란히 섰다.
“자! 여러분들, 갓 데뷔한! 언제 데뷔했죠?”
소정현의 물음에 한야가 대답했다.
“하루 됐습니다.”
“네, 이제 데뷔한 지 하루! 하지만 전에 없는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루키! 어메스입니다!”
“둘셋!”
“난장판으로 놀아보세! 안녕하세요. 어메스입니다!”
진행자의 진행에 맞춰 어메스가 인사했다.
“네에~ 환영합니다.”
소정현과 또 다른 진행자 유토피는 손뼉을 치며 어메스를 환영하더니 갑자기 뒤로 물러나 그들의 얼굴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크으.”
소정현이 감탄하듯 고개를 내저으며 짝짝 다시 손뼉을 쳤다.
“진짜 겁나 잘생겼다. 진짜로.”
“멤버 전체가 다 잘생긴 건 정말 흔치 않은 일이거든요.”
해체한 아이돌 출신 진행자 유토피가 엄지를 척 들어올리며 말했다.
“아무튼, 모실 수 있어 영광입니다.”
“아유, 저희야말로 첫 예능을 오늘의 아이돌로 시작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고 영광입니다.”
한야의 정중한 인사에 진행자들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어어? 저희가 첫 예능이에요?”
“네, 맞아요. 저희가 데뷔하고 처음으로 출연하는.”
“진짜? 아직 자컨(*그룹 자체 제작 콘텐츠) 그런 거도 안하고?”
“에이 아니잖아요. 밀리언 아이돌 우승했잖아요. 팝넷이 개인 예능 그런 거 줬을 텐데?”
역시 아이돌 출신. 유토피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추궁하듯 말하자 한야가 머쓱하게 웃으며 뻔뻔하게 대답했다.
“하하, 개인 예능은 빼는 거 아닌가요? 하하하…….”
“에이 아니지! 개인 예능 포함해서 첫 예능 아니면 우린 인정 안 해요. 그러고 보니 우리 유토피 씨는 아이돌 시절에 개인 예능 같은 거 있었어요?”
“있었겠습니까?”
진행자들은 어메스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가벼운 토크를 이어가며 멤버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곧 고정 코너가 진행되었다.
“자, 첫 번째 게임! …을 시작하기 전에!”
“여러분들 녹화 끝났죠? 음악프로 일정, 그 오늘은 끝난 거죠? 이후에 스케줄 있어요? 매니저님!”
진행자들의 물음에 카메라 뒤에 서 있던 매니저 이병수가 다 끝났다는 사인을 보내주었다.
“어이고 그럼 됐다!”
“좋아좋아.”
그제야 진행자들이 안심한 듯 말을 이었다.
“첫 번째 게임! 착하면 척! 입니다!”
“예이!”
착하면 척! 노래가 나오는 이어폰을 낀 채 팀원에게 단어를 전달해 가장 마지막 팀원이 맞추거나 몸동작을 맞추면 이기는 게임이다.
이 게임의 특징이라면 입 모양 게임일 경우 목청과는 상관없이 입 모양만 정확하면 게임 진행에 무리가 없지만, 게임이 진행될수록 답답함에 자연스레 목청이 올라가며 고래고래 단어를 소리치게 되는 모습이, 몸동작 게임일 경우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 몸개그까지도 불사하는 모습이 웃음을 준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자연스레 목을 많이 쓰게 되다 보니 라이브 전, 공연 전에 이 코너를 진행하다가 종종 비난을 받기도 해 사전에 일정이 없음을 카메라 앞에서 확인받는 게 이 방송만의 감초 같은 장면이다.
“두 팀으로 나뉘어서 진행할 건데요. 이긴 팀에겐 소정의 상품. 무려 요깃거리 세트를 선물로 드립니다!”
“와아!!”
그때 대기실 문이 열리며 커다란 과자 선물 세트가 들어왔다.
“와! 초콜릿 든 과자도 있어!”
“저 이 과자 진짜 좋아하는데!”
“진짜 탐난다.”
멤버들이 흥분하며 과자 주위로 모여들자 진행자들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또 제가 아이돌 생활해봐서 아는데 데뷔 전후에 당분에 굶주려 있을 수밖에 없거든요? 멤버 전체가.”
“아무래도 다이어트를 빡세게 하니까요~”
진행자들은 뿌듯하게 웃으며 과자에게서 멤버들을 떨어트려 놓았고 그 직후 대결을 할 팀이 나누어졌다.
간단하게 손바닥과 손등 중 같은 것을 낸 사람들끼리 팀이 나뉘었는데 우연인지 운명인지 서도화, 아덴, 케이가 한 팀, 한야와 주상현이 한팀이 되었다.
팀이 정해진 직후 게임 진행을 위한 세팅이 이루어지는 동안 멤버들은 각 팀의 팀명을 정했다.
한야와 주상현은 맏이막내팀을 줄여서 발음도 어려운 맏막팀.
한야가 진행자들이 발음 씹는 걸 보고 싶다는 이유로 일부러 발음하기 어렵게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서도화, 아덴, 케이는 케이파이브.
진행자들에게는 그룹명의 후보라고 소개했지만 그냥 케이의 의욕을 조금이라도 불태우기 위해 대충 지은 이름이다.
그리고 게임이 시작되었다.
“자! 그럼 어느 팀부터 할까요? 맏막팀? 아니면 케파팀?”
“저희부터 하겠습니다!”
한야와 주상현이 손을 들었다.
“오오! 좋아요! 자신 있나 봐요?”
진행자의 말에 한야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재밌는 팀이 마지막에 해야 할 것같아서요! 저 팀 되게 웃긴 팀이거든요!”
“어유, 성실하게 상대 팀 디스하듯 칭찬하는 한야 씨도 되게 웃긴 멤버인데요?”
“하하, 그런가요? 그래도 저 팀이 더 재밌을 테니까 저희부터 하겠습니다.”
“네에! 첫 번째 팀 맏, 막팀은 이어폰을 껴주세요.”
아무래도 한야에게 세 사람은 이미 개그 트리오 정도로 생각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한야과 주상현이 게임을 시작했다. 시간 흘러가는 소리와 함께 제시된 단어를 본 주상현이 대기실이 떠나가라 소리치기 시작했다.
“치퀸!!!!!! 치!!! 킨!!!!”
“……하하, 응?”
“치!!!! 킨!!!! 두 글자!!! 치킨!!!”
“어?”
“저것 봐. 소리 지르게 된다니까.”
서도화가 작게 중얼거리며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주상현은 이미 유니드 활동 때 이 게임을 해본 적 있는 경력자이니만큼 무척 또박또박 열심히 입 모양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린? 이린? 기린?”
그런데 문제는 한야였다. 한야가 의외로 게임을 못 했다.
대체로 뭐든지 잘하는 그였기에 무척 의외였지만 아주 간단한 ‘치킨’ 하나 못 맞춰서 그 착한 주상현이 답답함에 얼굴이 터져 나가려 하고 있었다.
“아니 치!!! 킨!!! 아아악!!! 이걸 왜 못 맞춰억!!!!”
“아아어? 처? 춰? 이처?”
환장하는 주상현을 보며 케이파이브 팀은 여유롭게 시시덕거렸다.
“상현이 얼굴 토마토 같다.”
“한야 형 진짜 못하긴 한다.”
“치킨 맛있겠다.”
결국 주상현은 한참이나 걸려서 패스를 외쳤다.
그리고 다음 제시어가 나오자 주상현이 곤혹스러운 얼굴을 했다.
“글자 수가 너무 많은데…….”
난감해하던 주상현은 이내 자포자기한 채 작게 말했다.
“웨이트 트레이닝…….”
“웨이트 트레이닝?”
“……어?”
“이걸 맞춘다고……?”
딩동댕~
실로폰 소리와 함께 제시어가 넘어가자 주상현은 당황한 듯 머뭇거리다 다시 게임에 몰입했다.
“데뷔!!!! 데!!! 뷔!!!! 데뷔이익!!!!”
“……에이? 웨잇? 네? 데? 이?”
누가 헬스광 아니랄까 봐 제일 어려운 웨이트 트레이닝은 맞춰놓고 쉬운 두 글자짜리 문제는 죄다 틀렸다.
결국 두 사람은 딱 하나만 맞춘 채 제한 시간이 끝나버렸다.
그리고 다음은 케이파이브 팀.
이 팀은 한 명이 많은 이유로 입 모양 맞추기 게임이 아닌 몸동작 게임을 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제가 듣기론 세 분이 소꿉친구라고 들었거든요?”
유토피의 말에 서도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팀이 이렇게 나뉘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소꿉친구의 저력을 보여주겠습니다. 파이팅!”
사실 소꿉친구가 아니기에 당연히 저력도 없고 자신감도 없지만 신인다운 패기는 보여줘야 하니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서도화의 모습을 본 아덴이 꿈틀거리며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애써 내리눌렀다.
“그럼 시작해볼게요!”
진행자의 말에 서도화는 제시어가 보이는 방향으로, 케이와 아덴은 서도화의 맞은편에서 제시어를 등지고 섰다.
서도화가 제일 먼저 몸동작을 선보이고 정답을 맞추면 자리를 바꿔 아덴이 몸동작을, 그다음은 케이가 하는 방식이다.
“자, 그럼 시~작!”
시작과 함께 서도화가 제시어로 시선을 옮겼다.
[치킨]
맏막 팀의 첫 제시어와 같은 게 나왔다.
서도화가 멈칫했다.
‘치킨을 몸으로……?’
어떻게? 닭 흉내라도 내야 하나?
참고로 서도화도 게임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가 당황하며 허우적거리다 고기 뜯는 시늉이라도 하겠다고 손을 입에 가져다 댔을 때.
“치킨!”
“치킨이군.”
아덴과 케이 두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
“어? 정답. 이걸 어떻게 맞춰?”
진행자들이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서도화는 그저 허우적거리다 입에 손을 가져다 댔을 뿐이었다.
서도화도 정답이 바로 나온 게 어리둥절한지 멍한 표정으로 케이의 옆으로 향했다.
다음은 아덴의 차례.
[게임]
아덴은 제시어를 빤히 보다 검으로 허공을 베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이번엔 서도화가 큰 소리로 말했다.
“게임!”
“전-”
딩동댕!
“흐흠!”
전투! 라고 말하려던 케이가 급하게 입을 다물었다.
“아니 양손으로 허공에 휘적거리는 게 어떻게 게임이야?”
주상현 또한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중얼거렸다.
서도화와 아덴이 씨익 웃었다.
아, 알겠다.
아덴이 치킨을 어떻게 맞췄나 했더니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허우적거리기만 해도 뭘 말하고 싶은지 바로 알겠다.
아덴이 검으로 베는 시늉을 했고 제시어 중 전투, 싸움, 검술 등의 공격적인 단어가 뜬금없이 나올 리는 없으니 그나마 아덴이 검술과 연관 지을 수 있는 단어 ‘게임’을 생각해냈다.
눈빛만 봐도 대화가 가능한 사이. 그리고 약간의 센스로 이 게임은 적어도 이 두 사람에게는 너무나 쉬웠다.
그리고 아마 케이도.
케이가 제시어를 빤히 보더니 그냥 허공에 손을 허우적댔다.
그러자 아덴과 서도화가 동시에 말했다.
“라면!”
“라면.”
서도화와 아덴이 눈빛만 봐도 하고 싶은 말을 아는 동료 사이라면 두 사람과 케이는 상대의 생각을 간파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사이다.
세 사람에게 이 게임은 너무나도 쉬운 것이었다면 지켜보는 이들에겐 달랐다. 알 수 없는 몸동작으로 짜기라도 한 듯 정답 행진을 이어가는 모습이 매우 어이없고 웃기며 기이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