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9화
서도화가 제자리에서 폴짝 뛰었다.
“달리기!”
“그거 뭐야, 마라톤?”
딩동댕!
“저, 정답!”
아덴이 입술을 쭉 내밀었다.
“코끼리!”
“도화 씨 정답…….”
“아니 이걸 어떻게 맞춰?”
다음 차례는 케이. 그가 제시어를 보더니 난감한 듯 인상을 구겼다.
서도화가 소리쳤다.
“헬스으!!!”
딩동댕!
“잠깐만! 너네 다 보이는 거 아니야?”
“뒤통수에 눈 달렸어 쟤네!”
“방금 그건 진짜 수상하지! 어떻게 눈 살짝 찡그렸다고 아냐고!”
어떤 제시어가 나오든 꼼지락거리는 족족 때려 맞추는 기행이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진행자와 한야, 주상현은 물론이고 이를 지켜보고 있는 제작진들과 어메스 팀 스태프들 또한 재밌다는 듯 폭소하면서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에이씨!”
결국 보다 못한 진행자 소정현이 거친 걸음으로 답을 맞추는 쪽의 멤버들에게로 다가가 시선을 같이했다.
“아닌데에? 여기서는 진짜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너네 짜고 치는 거 아니냐?”
“아니에요!”
“저희는 정정당당하게!”
“그런 비겁한 짓은 케이나 하는 거죠.”
그 와중에 아덴이 케이를 틈새 디스했다. 그러나 진행자는 이를 듣지 못한 듯 기가 찬 듯한 웃음을 냈다.
“허 참! 너네 마법사냐?”
“……여기도 마법사가 있어요?”
“있겠냐! 이건 말도 안 돼!”
소정현은 이 게임이 이렇게 쉽게 풀리는 꼴을 어지간히 못 보겠는지 이번에는 터벅터벅 제시어가 적힌 스케치북 쪽으로 다가갔다.
“누가! 누가 나한테 펜 좀 줘요! 아냐 너희 케이파이브 팀은 저리 가 있어. 내가 직접 제시어를 정해야겠어.”
당황해서 소정현에게 다가가던 서도화와 아덴이 도로 원위치로 향했다.
아덴이 제시어를 보고 서도화와 케이가 답을 맞추는 대형이었다.
“어우, 뭔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오래 적으시는데요.”
또 다른 진행자 유토피가 재밌다는 듯 소정현의 상태를 중계했다.
제작진들과 스태프, 이를 지켜보는 멤버들의 웃음소리로 대기실이 더욱 떠들썩해졌다.
“자! 어디 한번 맞춰보시지!”
한참이나 제시어를 적던 소정현이 드디어 스케치북을 들어 올렸다.
이를 본 아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이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뭔 말이야?”
아덴이 모르겠다는 듯 툭 말했고 제시어를 본 제작진들과 유토피가 깔깔거리며 뒤집어져 웃어댔다.
이를 보다 못한 주상현이 꿈틀거리며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간신히 내리누르며 아덴 대신 따졌다.
“이건 너무 치사하다! 오아(오늘의 아이돌)팀 너무 치사해요!”
유토피가 불에 기름을 붓듯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아아~ 소정현 씨, 이 팀에 외국인 두 분 계시는 거 알고 계시거든요~ 그걸 알고 이런 문제를 내다니~”
“에에에~ 안 들려~ 시끄러! 원래 승부는 이렇게 치사한 거야!”
아니 제시어가 뭐길래 저래?
상황을 알 리 없는 서도화와 케이가 불안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상당히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인가 본데.
‘외국인이 난감해할 질문이면 한국과 관련된 문제인가?’
서도화가 대충 감으로라도 유추해보고자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아덴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덴은 우선 손으로 어느 한쪽을 가리켰다.
그러곤 팔을 쭉 뻗어 웨이브를 타더니 갑자기 먹는 시늉을 했다.
“……저게 뭐야.”
“난 알고 봐도 모르겠어.”
세 사람을 제외한 출연진들이 아덴의 모습을 보며 한 마디씩 얹었다.
이를 지켜보던 서도화가 조심스레 말했다.
“동쪽… 바다?”
케이도 한마디 얹었다.
“바다의 먹거리.”
“아니 이걸 어떻게 맞춰…….”
서도화가 주상현을 힐끔거렸다. 그의 중얼거림을 들어보니 그럭저럭 정답에 가까운 단어를 꺼내놓은 모양이다.
바다의 먹거리.
“해산물?”
오오~
제작진들과 진행자들이 힌트라도 주듯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덴은 서도화의 대답이 부족하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손으로 브이를 그렸다.
“두 글자로 줄이라고? 해물?”
그러자 아덴이 그거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와, 아니 진짜 웃기는 애들이네.”
“너네 정말 텔레파시 통하고 그런 거 아니지?”
동쪽 바다, 해물.
“동해물?”
서도화의 물음에 아덴이 다시 한번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다시 난감한 듯 제시어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때.
“흠흠, 이건 도화만 맞출 수 있는 문제네.”
즐겁게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한야가 조용히 서도화에게 힌트를 주었다.
‘나만 맞출 수 있는 문제.’
‘외국인한텐 어려운 문제.’
한국인만 맞출 수 있는 문제와 동해물.
“애국가?”
서도화의 말에 진행자들이 움찔했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땡!’ 틀렸다는 뜻의 실로폰 소리였다.
하지만 움찔한 걸 보아 상당히 답에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때 멍하니 제시어를 보며 생각에 잠겼던 아덴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하얀 진행자의 옷과 제 머리를 가리키곤 머리 위로 세모 표시를 그린다.
‘누가봐도 백두산이네.’
그래 너무 돌려 생각했구나 내가.
서도화가 뒤늦게 의미를 깨닫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애국가의 가사도 모르는 아덴이 동해물과 백두산을 몸으로 표현할 리 없고, 그럼 가사가 제시어일 게 뻔하지.
딩동댕!
“너무 잘 맞춰서 어이가 없을 정도네.”
결국 아덴과 케이가 외국인인 점을 노려 긴 애국가 가사를 적은 문제마저도 환상적인 호흡과 적 팀 한야의 힌트를 통해 맞추며 과자 세트는 케이파이브 팀의 차지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 게임 진행을 위한 잠깐 휴식 시간.
오독- 오도독-
멍하니 과자를 씹어먹는 서도화에게 케이가 다가와 헛기침을 했다.
서도화가 뭐냐는 듯 그를 쳐다보자 케이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난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뭘.”
“동해물과 어쩌고 하는 것 말이다.”
서도화는 별 감흥 없이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마왕은 흔히 텔레파시라고 하는, 사람의 생각을 읽거나 자신의 말을 머리로 전하는 등의 성가신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래서 알았는데 어쩌라고.
“알면 네가 정답 말하지 그랬어.”
“말할 수 있었지만 특별히 네가 정답을 맞힐 기회를 주었지. 무엇보다 사람들이 네가 맞추는 게 자연스러울 문제라는 듯 말했으니까.”
케이가 자신의 귀를 가리켰다.
“난 귀가 좋아서 다 들리거든.”
오독- 오도독-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 건데?”
하고 싶은 말이 뭐지? 갑자기 다가와 새삼 말을 거는 것도 생소한 일인데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만큼 자신이 서도화를 배려했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아니면 협조했다고 보고하는 건가?
서도화가 태평하면서도 무심하게 묻자 케이는 자신이 원하던 대화가 아니었는지 당황하다 말없이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서도화가 멀거니 케이의 뒤통수를 쳐다보았다.
정말 뭘 말하고 싶었던 걸까.
같은 그룹 멤버로서 할 말이 있었다면 대체로 받아줄 용의가 있었는데.
잠시 후 제작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비로 이동하겠습니다!”
1라운드의 촬영이 대기실에서 이루어졌다면 다음 라운드는 조금 더 넓은 곳, 방송국 1층 로비에서 이루어졌다.
보통 일정상 진행자들이 게스트를 찾아 방송국으로 찾아오는 날인 경우 빌려 쓰는 장소였다.
2라운드. 아이돌 게스트를 주로 섭외하는 프로그램에선 자주 한다는 ‘2배속 플레이 댄스’ 코너였다.
원래는 1.5배속으로 안무를 선보이는 게 보편적이지만 이 방송은 원본에서 서서히 빨라져 3배속까지 올라가는 게 특징이다.
보통 2배속까지 올라가면 노래를 알아듣지 못하게 되고 3배속은 뼈와 근육이 분리될 정도로 빨리 움직여야 하는 수준이라 굉장히 오래된 코너임에도 지금까지 성공한 게스트가 없다.
“2.5배속만 되어도 발이 꼬이고 숨도 못 쉴 정도로 빠르거든요.”
“이 코너를 제일 처음으로 한 분들이 저기 크로노스라는 친구들인데 그 친구들 한번 해보고 나서 제가 공약 걸었잖습니까?”
“헉 크로노스 선배님…….”
“당연히 아시겠지만 크로노스가 굉장히 춤을 잘 추는 그룹이거든요. 근데 그 친구들이 실패하고 그 이후로 성공한 그룹이 없어요.”
“크로노스 메인 댄서 진성 씨도 2.7배에서 넘어지면서 아깝게 실패했던가? 그랬을 거예요.”
평범한 인간이 2.7배까지 하다가 그것도 넘어지는 바람에 실패했다니.
거기도 보통 범주에서 벗어난 분이 계시네.
크로노스라면 매번 극한의 난이도 안무로 컴백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메인 댄서는 물론이고 메인 보컬까지 상당한 춤 실력을 가진 그룹이다.
그런 그룹이 실패할 정도라면 뼈와 살을 분리할 기세로 움직이지 않고선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봐야-
서도화의 고개가 획 돌아가 주상현과 아덴을 쳐다보았다.
‘아닌…… 가?’
있기는 있다. 춤 실력이나 안무 정확도는 부족해도 마음만 먹으면 뼈와 살이 분리될 정도로 춤출 수 있는 멤버가.
‘아덴 정도면 끝은 볼 수 있을지도?’
최초로 3배 플레이 댄스 성공한 아이돌로 화제가 될지도?
잘하면 주상현도 2.6 정도까진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고.
‘나도…….’
서도화가 이번 코너에서 그려질 그림을 예상해보고 있을 때 촬영을 시작한다는 제작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