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0화
“자, 다들 준비되셨습니까?”
“네엡!”
진행자들의 물음에 멤버들이 힘차게 대답하며 몸을 풀었다.
케이는 아마 조금만 빨라져도 당황하며 금방 틀릴 것이고 한야도 성격상 무리해서 끝까지 승부를 보려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2배속 플레이의 평균 속도가 1.5배속인 걸 감안하면 2배까지는 견딜 수 있으려나.
“자, 그럼 어메스는 얼마나 버틸지! 곡 주세요!”
잠시 후 곡이 재생되었고 멤버들은 기계처럼 안무를 추기 시작했다.
“오오! 역시 어메스죠!”
“와, 정확하게 들어갔어.”
“표정이 싹 바뀌었어요!”
춤추는 어메스가 민망할 정도로 진행자들이 주접을 떨어댔다.
멤버들이 이를 못 들은 척 평온히 춤을 출고 있을 때 묘하게 노래의 속도가 올라감이 느껴졌다.
처음부터 이렇게 틀었으면 뭐가 달라졌는지도 모르고 그냥 췄을 법한 미묘한 속도 차이였다.
속도 올린 건가? 착각인가?
긴가민가하고 있을 때, 마침 진행자들이 상황을 중계해주었다.
“자자~ 이제 슬슬 올라갑니다!”
“한 단계 올라갔죠!”
시작하자마자 거의 바로 속도를 올린 걸 봐선 재미없는 구간을 빠르게 넘기고 얼른 존잼 구간으로 들어가려는 모양이다.
그때 또 한 번 곡의 속도가 빨라졌다.
“어우.”
서도화가 작게 신음했고 이를 들은 건지 아니면 그냥 신난 건지 진행자들이 떠들어댔다.
“슬슬 벅차하는 멤버가 나오기 시작할 때인데요~”
진행자들의 말대로 이제 슬슬 속도가 빨라졌음이 체감되기 시작했다.
“……어?”
예상대로 케이가 당황하며 멈칫멈칫 멤버들의 눈치를 보며 겨우겨우 안무를 따라오고 있었고 아덴과 주상현은 왜인지 모르게 무척 즐거운 듯 한가득 미소 짓고 있었다.
‘용사들의 도전 심리가 자극된 건가.’
아덴이야 사이코에 살짝 고통을 즐기는 경향도 있어서 좋아할 줄 알았고.
‘상현이도 은근히 아덴과 닮은 구석이 있지.’
약간 열혈 타입인 것이 아덴이 먼치킨류 소설의 주인공이라면 주상현은 성장물 소설의 주인공 같은 느낌이다.
서도화가 멤버들을 둘러보며 생각하는 사이 또다시 곡의 속도가 올라갔다.
“오와! 벌써 좀 힘들어.”
“이, 이게 이렇게까지 빨라지는 것인가!”
“하하, 와.”
열혈과는 거리가 먼 멤버들이 슬슬 벅찬 듯 한마디씩 내뱉기 시작했다.
“여러분! 벌써부터 힘들어하시면 안 되죠! 아직 1.3배밖에 안 올렸어요. 갈 길이 멉니다!”
1.4배, 1.5배……. 곡은 멤버들이 적응할 새도 없이 부스터를 단 것처럼 빨라졌다.
결국 곡이 평균값을 돌파한 1.6배, 그리고 1.7배에 다다랐을 때 결국 서도화가 이를 악물었다.
“아아! 이건!”
생각보다 더 빠르네……?
아직 할만하긴 했지만 슬슬 노래 가사조차 피치가 너무 높아져 귀로는 잘 구분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진행자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서도화가 이를 악물고 힘들다는 티를 내고 있음에도 진행자들의 시선은 서도화가 아니라 다른 멤버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고 케이 씨 괜찮으세요?”
“뭔가 굉장히 버거워 보이시거든요!”
“야악간~ 멤버들과 비교해서 한 박자씩 느린 거 같은데?”
“아이고 이걸 탈락 처리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서도화가 안무를 하며 슥 고개를 돌려 뒤에 선 케이를 쳐다보았다.
케이는 정면이 아닌 센터에 선 주상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귀가 좋지만 핵이 없다……!’
케이는 무척 당황하며 주상현의 동작을 따라 했다.
이미 곡에 안무를 맞춘다는 개념은 한참 전부터 따르지 못하고 있었다.
곡은 갈수록 빨라졌고 들리는 노랫소리의 높낮이가 확연히 달라졌을 때부터 이건 케이가 아는 ‘크레센도’가 아니었다.
아는 곡이 아닌데 어떻게 춤을 출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케이는 멈출 수 없었다.
용사가. 아덴이 여전히 춤을 추며 자신을 가소롭다는 듯 비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핵 없는 새끼. 핵 없는 새끼. 낄낄 핵 없는 새끼.
아덴의 비아냥이 환청처럼 귓속을 맴돌았다.
그런데 어떻게 멈추겠는가.
“나는… 탈락하지 않아!”
“오오~ 자기 자신에 대한 다짐인가요?”
“그럼요 그럼요. 여기서 탈락하면 자존심 되게 상하죠.”
“여기서 1.7배속에서 탈락한 분은 지금까지 몇 분 없었거든요~”
역대 탈락자가 몇 없다는 1.7배속. 탈락자는 의외의 곳에서 나왔다.
“어.”
어디선가 태평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진행자와 멤버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린 방향을 보았다.
“한야 씨이!!!!”
“한야 씨! 이럴 수가. 신발이 벗겨졌네요!”
한야는 멈춰 선 채 자신의 벗겨진 신발을 빤히 바라보더니 즉시 안무를 중단하고 일단 허리를 숙여 여유롭게 신발을 신기 시작했다.
‘저 형…….’
상당히 여유롭네.
우리 아직 플레이댄스 추는 중인데.
한야는 결코 신발을 한쪽만 벗은 채 춤을 추는 흉한 꼴을 보여줄 수 없다는 듯 착실히 신발 끈까지 다시 매고 상체를 들었다.
모두가 정신없고 벅차고 빡센 와중 한야 혼자만 교양 음악 속에서 요가를 하는 듯한 유유자적한 모습이었다.
너무나 태평한 모습에 진행자 또한 할 말을 잃었는지 말을 멈추고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한야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심기일전한 표정으로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곤 다시 안무를 추려고 하는 순간.
때앵!!!
칼 같은 실로폰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진행자들도 정신을 차리곤 외쳤다.
“한야 씨 탈락!”
“……하하, 예?”
한야가 멈칫 다시 차렷 자세를 하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진행자를 바라보았다.
“아이, 한야 씨! 게임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르네!”
“누가 게임 하는 와중에 멈춰요! 한야 씨 탈락!”
서도화와 주상현이 한야를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게임을 하는 도중 멈추면 안 된다는 건 이세계에서 온 아덴과 케이도 잘 숙지하고 있는 부분인데 한야는 은근 이상한 곳에서 맹한 구석이 있다.
“와, 형 진짜 게임 못 하기는 못 하는구나?”
주상현의 말에 한야는 머쓱하게 웃으며 탈락자의 자리, 진행자들의 가운데로 향했다.
“여러분들도 조심해요. 신발이 벗겨져도 우린 절대 안 봐줍니다!”
“벗겨지면 벗겨지는 대로 계속하는 거예요!”
게임은 진행자들이 재차 규칙을 설명해주며 재개되었다.
그리고.
“케이 씨! 하핫! 탈락!”
케이가 시작하자마자 탈락했다.
갑자기 곡이 흘러나온 탓에 반응하지 못한 탓이다.
“이럴 수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어요. 케이 씨 얼른 여기로. 탈락자의 전당으로 와주시죠.”
케이는 자신의 착각이 아닌 진짜로 아덴에게서 가소롭다는 표정을 받으며 터덜터덜 한야의 곁으로 향했다.
“하하, 괜찮아. 꼴찌는 형이야.”
한야가 케이를 토닥였다.
그러는 사이 곧장 게임이 재개되었다.
1.8배, 1.9배……….
이쯤에서 서도화는 살짝 마음을 내려놓은 후였다.
여기까지면 많이 했다.
서도화는 자신의 실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마 2배로 넘어가는 순간 자신은 아마 탈락할 것이다. 그 이후론 저기서 여전히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신나게 춤추고 있는 둘, 열혈 콤비의 대결 구도가 될 것이다.
“아아~ 우리 도화 씨!”
“도화 씨 슬슬 한계인가요!”
“이 꽉 깨물고 추고 계신대요!”
진행자들은 힘들어 보이는 서도화에게 다가와 놀리듯 물었다.
“어떤 마음으로 지금까지 버티고 계신거죠?”
“후우…….”
서도화는 힘든 숨을 참고 말했다.
“여기서 탈락하면, 헉, 통편집될, 거란 생각,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허억.”
지극히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대답에 진행자들이 꺄르륵 웃어댔다.
“어우 도화 씨 이제 보니까! 생긴 건 되게 곱게 생기셔선 상당히 현실을 잘 아시는 분이시네요!”
“그렇지. 맞긴 맞죠! 차라리 한야 씨처럼 꼴찌라도 하던가!”
여기서 끝내면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분량도 없다.
그 순간 속도가 또 한번 올라갔다.
2.1배속.
“……으허!”
단전에서부터 앓는 소리가 올라왔다. 결국 서도화가 다가온 진행자들에게 말했다.
“근데 분량, 저, 이미 한계…….”
그리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여기서 포기하면 분량이 사라진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더 해봐야 저기 저 열혈 콤비에게는 죽어도 못 이긴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도화 씨 탈락!”
그래, 메인보컬이 이 정도면 잘 버텼지 뭐.
서도화는 소식적 음유시인 때에 했던 자기합리화를 마치곤 씁쓸하게 일어나 한야에게 다가갔다.
“고생했어. 도화.”
한야가 서도화를 다독여주었다. 서도화는 하소연하듯 한야에게 딱 달라붙어있다 몸을 돌려 열혈 콤비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헛웃음쳤다.
곡은 이미 2.6배.
예전 크로노스의 이진성이 해냈다는 2.7배까지 한 단계 남은 시점.
저 괴물 같은 놈들이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듯 쳐다보며 안무를 추고 있었다. 이쯤 되면 안무는 슬그머니 얼버무려지고 손이 어찌 빨라지는지 잔상처럼 보일 정도다.
아덴은 그렇다 치고 비인간적인 놈들이랑 같이 살아서 그런가 주상현의 체력도 보통이 아니다.
물론 진짜 괴물 같은 용사 놈과 달리 인간인 주상현은 무척 힘겨워 보였으므로 곧 탈락할 것 같지만.
“와.”
“와아……이게 가능해?”
“역대 아이돌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살아남은 그룹입니다! 무려 둘이나 살았어!”
어찌되었든 어메스의 누군가가 신기록을 세울 건 분명한 듯 보였다.
‘이, 이건 쇼츠감이여……!’
그런 둘을 보며 매니저 이병수가 방긋방긋 웃으며 휴대폰으로 그들을 촬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