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171화 (171/270)

제171화

“수고하셨습니다!”

오늘의 아이돌 촬영이 끝나고 멤버들은 곧장 숙소로 향했다.

오랜 촬영으로 지칠 만도 하건만 이제 와선 워낙 피로에 익숙해진 멤버들이라 숙소에 도착하고도 꽤 활달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러나 오늘도 서도화와 케이는 식사를 끝마치자마자 방에 틀어박혔다.

“오늘이야말로 끝장을 보자꾸나. 음유시인이여!”

“아 뭐, 그래.”

케이의 말에 서도화가 대충 대답하자 지나가는 길에 들린 아덴이 슬쩍 한 마디 내뱉곤 사라졌다.

“오늘도 기절 잼.”

서도화는 아덴이 닫고 나간 문을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저런 말은 어디서 배워온 건지 갈수록 시비가 유치해지고 있었다.

“저, 저, 저놈이!”

케이는 분한 듯 씩씩거리며 당장이라도 아덴에게 달려갈 듯 문을 노려보았다.

그냥 반응을 안 하면 될 텐데 꼭 아덴이 재밌어할 반응을 보이곤 했다.

물론 서도화는 케이에게 반응에 대해 조언할 생각도, 아덴에게 더이상 장난치지 말라 충고할 생각도 없었다.

뭐, 두 사람의 다툼에 관해선 어느 정도 그냥 체념했다.

벌써 두 사람이 이 세계로 넘어온 지도 1년이 다 되었다.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 싸움을 포기하지 못한다면 이미 글렀다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튼 오늘 밤에도 케이는 정화 내성 작업을 하자며 서도화를 끌어들였다.

시도할 때마다 여지없이 기절하는 데도 불구하고 이 작업만큼은 무척 열정적인 케이였다.

“으음.”

“뭘 하는가? 빨리 노래 불러라. 음유시인.”

케이의 독촉에 서도화는 애매모호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 열정적인 마음으로 내성을 기르고 무대에 서려는 건 무척 좋은 일이지만 사실 오늘은 정화 내성 작업보다 다른 걸 할 생각이었다.

서도화는 오늘만은 기절하지 않을 거라며 열정을 불태우는 케이를 보며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안 해.”

“…뭐? 어째서냐!”

케이는 당황한 듯 눈을 키우다 이내 세모눈이 되어 서도화를 째려보았다.

“네놈 설마……. 내성을 길러 다음 전투에 대비하려는 나의 작전을 간파-”

“뭘 야려.”

“…….”

서도화의 무심한 말에 케이가 저도 모르게 시선을 내렸다가 움찔 다시 치켜들었다.

“내, 내가 그럼 네놈을 볼 때…!”

“네놈?”

“…너를. 음유시인 너 오늘 왜 자꾸 용사 흉내를 내지?”

그냥 해봤다.

서도화는 할 말이 없어져 입을 다물었다 다시 말했다.

“아무튼 오늘은 내성 작업 안 해.”

“왜! 피, 피곤해서 그러는가!”

“아니 그게 아니고. 오늘은 할 일이 따로 있어. 너랑 나랑 둘이.”

서도화의 말에 케이는 잠시 말이 없었다. 움직임도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그에게서 나올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케이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눈을 크게 키우며 동공을 흔들어댔다.

“방금 뭐라고…? 너랑… 나?”

아, 반응이 좀 느리네.

서도화는 차분히 생각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케이가 놀라고 기겁할 거라곤 생각했다.

케이는 서도화에게서 한걸음 떨어지며 인상을 찌푸렸다.

“너랑 내가 둘이서 할 일이 뭐가 있지? 여기선 연습도 할 수 없고. 내성 작업이 아니라면 난 너에게 볼일도 없다.”

“일할거야.”

서도화가 케이에게 제 휴대폰을 흔들어보였다.

“오늘 너랑 나랑 둘이서 온앱 라이브 할거야.”

연예인 전용 인터넷 방송 플랫폼 온앱. 어메스의 채널이 만들어진 이후 아직 단체 라이브로밖에 방송해본 적이 없었다.

서도화는 어메스의 두 번째 방송을 케이와 함께 할 생각이었다. 이미 매니저인 이병수에게 허락을 받은 터라 이병수와 유제이 직원들이 아직 회사로 돌아가지 않고 숙소에 남아있었다.

“온앱?”

그게 뭐더라?

잠시 기억을 거슬러보던 케이는 이내 얼마 전 아주 잠깐 휴대폰으로 팬들과 소통했던 걸 온앱이라 칭했음을 떠올렸다.

케이의 인상이 반사적으로 찌푸려졌다.

“그걸, 너랑 내가? 둘이서? 왜? 이유가 뭐지?”

“멤버끼리 방송하는데 이유가 있어? 그냥 팬들이랑 대화하려고 하는 거지.”

“그러니까 그걸 나랑 왜 하냐고.”

“한야 형이 너랑 하라고 했으니까.”

서도화가 뻔뻔스럽게 거짓말했다. 사실 서도화가 굳이 이 타이밍에 케이와 온앱을 하겠다고 집요하게 구는 건 이유가 있었다.

밀리언 아이돌이 끝나고 이제 협조할 만큼 했다는 듯 점점 나태해지던 케이.

연습하라면 하고 방송 일정도 잘 따라오고는 있지만 점점 연습하기 싫어하고 자기 관리에 소홀해지기도 했다.

이제 갓 데뷔한 신인 주제에 벌써 이렇다면 곧 동태눈깔 아이돌의 대명사가 될지도 모르는 일.

그 전에 조금이라도 케이가 이일에 열정을 가질 수 있을 만한, 애정을 가질 수 있을 만한 계기가 생겨야만 했다.

참고로 음유시인 서도화, 어떻게든 마왕을 해치우고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아덴을 일깨워 진정한 용사로 각성시키기도 한 인물이다.

아마 어메스의 금쪽이 마왕도 각성까지는 좀 그렇고 어느정도 다시 열정을 가지는 수준까지는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서도화는 이미 오늘의 아이돌 촬영 때 성공적으로 시험을 끝내기도 했다.

“한야 형이? 너랑 나랑 하랬다고?”

“어. 너랑 내가 소꿉친구잖아.”

“……네놈 어디서 언어유희를 떠는가! 내가 언제 그대와 소꿉친-”

“아덴이랑 하고 싶으면 계속 그렇게 지껄이든가.”

케이의 입이 콱 다물렸다. 몹시 불만이지만 그렇다고 아덴과 하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나라고 하고 싶어서 너랑 하냐? 네가 협조만 좀 잘해줬어도.”

“나는 이미 충분히 협조하고 있다.”

“아무튼 할 건 내가 다 준비했어. 내가 라이브 켤 테니까 너는 병수 형한테 우리 시작한다고 말하고 와.”

* * *

온앱이 시작되었다.

“…시작된 건가?”

“어음, 아마도.”

서도화와 케이가 자신들의 얼굴이 꽉꽉 담긴 화면을 보며 휴대폰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

이병수에게 온앱 시작한다 말하고 들어온 케이는 간 김에 멤버들에게 한 마디씩 애정 어린 조언을 듣고 왔는지 아까보단 협조적이고 순해져서 돌아왔다.

그렇게 셀카인지 라이브가 시작된 건지 헷갈리는 상황에 이것저것 눌러보기를 잠시.

- 헐

- 뭐예요?

- ?

- 놀래서 들어옴

알림을 받은 팬들이 들어와 채팅을 올리기 시작했다.

서도화는 조금씩 올라가는 시청자수를 확인하고 활짝 웃으며 화면에 손흔들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케이도 인사해.”

“안녕하십니까.”

케이는 배운대로 고개 숙여 인사하려다 멈칫 서도화를 따라 손을 흔들었다.

서도화가 팬들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다들 식사는 하셨나요. 지금 몇 시지? 허, 식사하기엔 좀 늦은 시간이네.”

케이는 무척 긴장한 건지 아니면 여전히 삐져있는 건지 조용히 채팅만 지켜보고 있었다.

- 오늘은 둘이서 하는 거예요???

- 허류ㅠㅠㅠㅠ언제 시작한 거예요? 저 방금 들어왔는데

- 이게 무슨 일이야ㅠㅠㅠㅠ

“네 오늘은 저랑 케이랑 둘이서. 저희 이제 스케줄 끝나고 숙소 돌아와서 자기 전에 잠깐 여러분들 보러 왔어요.”

서도화는 최선을 다해 케이와의 라이브 스트리밍을 이끌어나갔다.

정말 피곤해지는 조합이었지만 사실 때마침 잘되었다 싶기도 했다.

목적도 이룰 수 있거니와 늘 서도화와 함께인 아덴에 비해 케이는 혼자 있으려는 경우가 많아 최근 아덴과 서도화, 케이가 정말 친한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꽤 있었으니.

팬들의 은은한 불안을 타파해줄 기회이기도 했다.

진행 아닌 진행을 하며 채팅을 살피던 서도화가 질문 하나를 집어내 말했다.

“저희 첫 만남 어땠냐고요?”

서도화와 케이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난 첫 만남 좋았어. 전에도 어디서 한번 말한 거 같은데.”

서도화가 서슴없이 케이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처음엔 떨어져라 인간이라며 요란법석을 떨더니 멤버들에게 엉겨붙기 좋아하는 주상현에 적응한 덕분인지 이제 이 정도 스킨십으론 신경도 안 쓴다.

서도화가 조금의 미화와 가식을 섞어 말했다.

“케이 이 친구가 말수가 적고 숫기가 너무 없고 부끄럼이 많아서 그렇지 굉장히 자상한 친구예요.”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지?’

케이가 서도화의 머릿속으로 말을 걸며 그를 말없이 빤히 쳐다보았다.

“아덴은 오히려 되게 불편한 사이였다가 친구가 됐다면 케이는 처음부터 스스럼없이 친해졌었어요. 엄청 배려심 많은 친구라.”

사실 정말로 처음엔 그랬다. 서도화는 케이를 동료로서 처음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그가 더없이 좋은 친구가 될 줄 알았다.

케이가 사실 동료 행세를 하며 숨어든 마왕이었다는 걸 알기 전까진.

그때만 생각하면 여전히 짜증이 치솟지만.

서도화는 자상한 눈으로 케이를 보며 영혼없이 물었다.

“근데 나도 되게 궁금했는데 너는 나랑 처음 만났을 때 어땠어?"

물론 자신에게 속는 용사파티의 모습이 무척 우습게 보였겠지만.

지금까지 멤버들, 유제이 직원들에게 교육받은 게 있으니 곧이곧대로 말하진 않을 것이다.

“처음에…….”

서도화의 물음에 케이가 잠시 입을 다물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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