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4화
사람의 감정을 읽어내는 것에 몹시 서툴고 그 감정에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원래 용사라는 게 남을 신경 쓰며 자꾸 뒤돌아봐서는 할 수 없는 직업이다.
물론 마왕을 향한 여정에선 수많은 희생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함께했던 동료들이 목숨을 잃기도 한다.
먼저 떠나간 이들을 위해 울고, 애도하고, 기억하면서도 또 앞으로 나아간다. 분한 만큼 달려 나간다.
그런 아덴이기에 남의 감정을 잘 알아차리지 못하여, 남에게 무관심하여 이런 감정적인 부분은 하이넬이나 도화 같은 동료들에게 맡기곤 했다.
그러나 많은 희생을 짊어져 결코 질 수 없는 아덴이라서 그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리는 타인의 감정이 있었다.
바로 적의였다.
그리고 저기 멀리 팬들의 뒤에 모여있는 한 무리. 고등학생 다수와 외국인 한 명은 아덴을 향해 적의를 보이고 있었다.
원래의 세계에서 느낄 법한 살기는 아니지만 주로 험한 술집 등에서 자주 느끼는 수준의 적의.
“…….”
아덴은 그들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자 아덴에게 집중하던 몇몇 팬들도 그의 시선을 따라 힐끔힐끔 뒤돌아보기 시작했다.
‘저걸 어째야 하나.’
가만히 둬야 하나? 아니면 쫓아가서 왜 쳐다보고 지랄이냐고 후두려패야 하나?
사실 팬들과 기자들 그리고 멤버들과 스태프까지 많은 눈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어 할 수 있는 행동은 하나뿐이었다.
얼른 저들에게서 시선을 떼고 멤버들을 쫓아가야만 했다.
하지만 차마 눈이 떨어지지 않는 거다.
저들이 적의를 보내고 있지 않은가.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놈들이다.
“뭐해? 아덴.”
가만히 서서 어딘가를 빤히 보고 있는 아덴. 결국 기다리다 못한 도화가 다가와 아덴을 잡아끌었다.
아덴은 도화에게 끌려가면서도 한참이나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들은 아덴이 방송국 건물에 들어갈 때쯤 되어서야 걸음을 돌려 어딘가로 사라졌다.
“아, 큰일이네.”
누가 봐도 적이었는데. 어떤 식으로든 공격해올 것인데.
놓쳤다. 아니 지금 상황으로는 잡으러 갈 수가 없다.
멤버에게 위협적일 수도 있는 놈들을 눈 하나 뽑지 않고 보내버리다니. 괜찮은 걸까?
달달달달.
아덴의 발이 불안으로 떨려왔다.
동료의 죽음에 큰 트라우마가 있는 아덴. 어딘가 위협적인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 그게 해결될 때까지 제대로 잠도 못 자게 될 것이다.
다리까지 떠니 모두가 피하는 불량학생과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쟤 왜 저러나 모두가 각자의 할 일을 하며 안절부절못하는 아덴을 힐끔거리고 있을 때.
“내가 알려줄까?”
용사에게 마왕이 접근했다.
아까부터 아덴을 주시하던 도화가 이젠 대놓고 두 사람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덴이 어이없어 헛웃음 쳤다.
“네가 뭘 알려줘? 아는 건 있냐? 닥치고 자리로 돌아가-”
“아까 그놈들이 뭐라고 지껄였는지 안 궁금한가?”
“뭐?”
케이가 자신만만하게 제 귀를 가리켰다.
“난 귀가 매우 좋아서 아까 그놈들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다 들었지.”
케이의 눈빛이 드물게 반짝였다. 역시 마왕은 용사를 비꼴 때나 눈을 빛내는 모양이다.
케이의 제안에 아덴은 망설이듯 잠시 고민하다 이내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지나가던 개미한테 도움을 받지. 네 말을 내가 어떻게 믿어?”
“…….”
케이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지다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다.
“뭐, 듣든 말든 마음대로 해라. 나에겐 전혀 피해가 없으니까.”
“꺼져.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케이는 아덴의 말대로 그에게서 떨어졌다. 그러곤 도화의 옆 의자에 앉았다.
“멍청한 놈. 자존심만 강해서는.”
알려준다는데도 굳이 듣지 않겠다니 저런 멍청한 놈이 어디 있는가.
용사가 함정에 빠지는 건 기뻐해야 할 일이거늘 오히려 기분 상하고 말았다.
“야.”
그때 방금 헤어 세팅을 마친 도화가 손을 뻗어 케이의 의자를 툭 쳤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뾰로통해진 케이가 말없이 도화를 바라보았다.
도화는 삐진 케이에게 더없이 자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난 알고 싶어. 아까 무슨 일 있었어?”
마왕과 같은 멤버가 된 지도 어언 1년.
쟤는 도대체 왜 저러나 싶던 케이도 같이 살다 보니 어느 정도 지금 어떤 기분인지,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게 된 서도화였다.
확실히 아까 전 아덴의 모습은 이상했다.
어딘가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모습. 걷는 것도 잊고 뭔가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자신에게 끌려서야 겨우 움직였다.
그리고 지금도 마음이 어디론가 붕 떠 있다.
도화는 저런 아덴의 모습을 종종 보곤 했다. 폭풍전야일 때, 혼자만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을 때, 동료를 사지에 두고 도망쳐 나왔을 때. 그럴 때 저런 모습을 보였다.
이곳에선 볼 리 없는 모습이라 순간 그 세계의 일이 이곳에서도 터져 나오나 함께 걱정하다 생각을 접었다.
그 세계의 모든 위협은 지금 제 눈앞에 있는 마왕에게서 나온 것.
핵 없는 마왕을 자신과 아덴이 감시하고 있는 한 그 세계에서와 같은 위협은 없다.
그럼 저 녀석은 왜 저러고 있는 걸까?
덩달아 고민하던 차에 케이는 모든 걸 알고 있는 것 같아 친한 척을 좀 해봤다.
도화의 물음에 케이가 큭! 이상한 중2병 같은 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했다.
“크큭! 궁금한가?”
“어, 궁금해. 뭐라고 했는데?”
“음유시인이여. 드디어 너도 나의 이 능력이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구나.”
“능력? 무슨 능력. 네 귀가 지나가던 멍멍이만큼 좋다는 능력?”
아쉽게도 시도 때도 없이 디스당하던 케이는 이제 이 정도의 도발로는 꿈쩍도 하지 않고 크큭거렸다.
‘미친놈인가. 아 미친놈 맞지 참.’
도화는 메마른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필요해.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더 짜증 내기도 귀찮으니 그냥 포기하고 맞춰주자.
도화가 맞장구를 치자 케이는 더욱 기세등등해져선 말했다.
“그래, 너는 얼마 전 나의 케이클랍스를 ‘매우 좋다’고 칭했지.”
“매우 좋다고 한 적 없었는데.”
“그에 대한 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특별히 너에게만 말해주지.”
“그렇게까지 생색을 낸다고? ……아, 뭐 그래라.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냥.”
상대 말은 듣지도 않고 지 말만 하겠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자존감 높고 좋지 뭐.’
하루에도 수십, 수백, 수천의 비난이 쏟아지며 우울증이 만연하는 연예계에서 저 정도로 자존감이 높으면 좋지.
케이는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악플에도 ‘난 이미 죽다 살아난 기적의 몸이다!’라고 맞받아칠 놈이다.
도화는 케이가 스스로 자기 자랑을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
아직 녹화까지는 시간이 있으니까 들어주지 뭐.
괜히 말 끊었다가 삐져서 말 안 하겠다고 버티는 것보단 낫다. 그냥 듣기만 하고 대답 안 하고 있으면 어련히 대화 분위기가 지루해짐을 눈치채고 끊겠지.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자, 이제 그대에게 내가 들은 것을 말해주지!”
“그래, 무슨 일인데. 아덴 왜 저래?”
한참이나 말없이 듣고만 있던 도화가 대답하자 케이의 표정이 더욱 밝아졌다.
“아까 어떤 놈들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떤 놈?”
“그들은 나의 케이클랍스들도 아니오, 기자들도 아니었으며, 유제이의 직원들은 더더욱 아니었지. 그들이 용사를 쳐다보며 무언가를 속닥이고 있었다.”
도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왜? 그냥 아이돌 지나가니까 연예인인가보다 하고 속닥거린 거 아닌가?
설령 그게 아니라고 해도 고작 쳐다본 것으로 아덴이 저렇게 불안해하는 건 아닐 것이다.
케이가 말했다.
“그들은 명백한 적의를 가지고 있었다.”
“……적의?”
“그저 싫어하는 것과는 다른 ‘적의’. 그들은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었다.”
어메스를 두고 무언가 더러운 짓을 꾸미는 목소리를 들었기에 케이는 그들의 대화 소리에 귀 기울였다.
물론 자신보다 귀가 트이지 않은 아덴은 그저 적의만 느꼈겠지만.
도화의 표정이 심각하게 바뀌었다.
“위협적인 거야? 직접 행동할 것 같아?”
“글쎄. 위협적이지 않은 적의가 어디 있겠는가. 다만 그들은 흐음.”
케이는 생각하듯 턱을 만지작거렸다. 도화가 움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가 동료였던 시절 자주 보던 제스처. 현답을 낼 때 주로 보이던 행동이었지만 배신당한 지금에 와서는 하나의 트라우마로 남은 모습이었다.
“육체의 고통을 노리는 대화는 아니었다. 그들은 무기도 없을뿐더러 무기를 휘두를만한 기백도 없었거든.”
“그렇다면…….”
“그들은 용사, 아니 어메스의 명예를 실추시킬 작정이다.”
“명예라고?”
도화의 얼굴이 싹 굳었다. 명예라면…….
“어메스 무대 뒤로 이동하실게요!”
그때 음악방송 제작진이 대기실로 들어와 소리쳤다.
서도화와 케이는 어쩔 수 없이 대화를 마무리하고 스태프들을 따라 무대 뒤로 이동했다.
“가자. 아덴.”
“어어? 어…….”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는 아덴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