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175화 (175/270)

제175화

이른 시간의 녹화. 그리고 오후에서 저녁으로 넘어갈 때쯤 시작된 음악방송.

멤버들은 사전에 녹화한 무대 영상을 모니터로 지켜보았다.

데뷔 첫 주는 전부 사전녹화로 진행된 것이 오늘은 다행이었다.

오늘 무대가 생방송으로 진행되었더라면 틀림없이 어디선가 사고가 났을 것이다.

도화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려 아덴을 쳐다보았다.

“야, 뭐 하는 거야. 정신 똑바로 차려.”

“아.”

아덴은 서도화가 눈치를 주고서야 딴 생각을 멈추고 모니터에 집중했다.

아니, 정확히는 집중하는 척을 했다.

“하아.”

서도화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위협에 예민한 아덴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래서야 생방송 중 유일하게 출연하는 순위 발표 순간에서 멍 때리고만 있을 느낌이다.

‘하긴,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일이긴 해.’

도화가 아덴을 툭 쳤다.

“야, 걱정 마. 내가 어떻게든 시스템 불러와볼게. 걔 어차피 나한테 안 준 게 있어서 오긴 와야 하거든.”

“…나 다른 생각하는 거 그렇게 티 나냐?”

“어. 일단 스케줄에 집중해라.”

케이는 그들이 아덴의 명예를 건들 계략을 하고 있다고 했다.

어차피 이제 아덴의 명예는 어메스의 명예와도 같은 것. 이제 와서 아덴이 무너지면 어메스도 같이 무너지는 거다.

도화의 단호한 말을 듣고서야 아덴은 겨우 송출되는 공연에 집중했다. 역대급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어메스의 첫 주 마지막 공연이 끝났을 때쯤 이병수가 말했다.

“얘들아, 유스키스 대기실에 도착했다는데 인사하러 가자.”

“네!”

멤버들이 일제히 일어나 이병수를 따라 대기실을 나섰다.

첫째 날, 둘째 날 방송까지는 대체로 선배들과 동시간대에 대기하는 경우가 없었지만 오늘은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만큼 선배들과 함께 대기하는 시간이 늘었다.

당연하게도 신인 아이돌 어메스는 선배들의 대기 시간에 맞춰 불티나게 돌아다니며 인사하는 중이었는데 이번에는 유스키스라는 그룹이 도착하여 인사하러 가야 한다고 한다.

참고로 유스키스라는 건 세계 최고 명품 브랜드 이름이다.

중소기획사 소속 그룹인 그들은 세계 최고의 명품 그룹이 되겠다는 포부를 검열 하나 없이 그룹에 담았다.

참 슬픈 사연이 아닐 수 없다.

“유스키스 선배님, 상현이랑 인연 깊은 분들 아니야?”

도화가 기억을 되짚어보며 물었다. 도화 시점으론 몇 년 전의 기억이고 사실 지난 서바이벌을 제대로 본 적도 없던 터라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유스키스의 멤버 중엔 주상현과 같은 유니드의 멤버가 있었던 것 같다.

주상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같은 유니드 멤버 있어요. 찬민 형.”

무덤덤하게 말하는 상현이를 보며 아덴이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같은 그룹 동료였다며. 그다지 친하지는 않았나봐?”

“쉿. 아덴. 조용.”

이곳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대기실 복도. 뭔가 남이 듣기에 위험한 대화가 오갈 듯하자 한야가 서둘러 두 사람을 조용히 시켰다.

“하하…….”

주상현은 대답 없이 어깨만 으쓱였다. 그러나 그 행동만으로도 딱히 친하진 않았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주상현이 아덴의 시선을 피하자 아덴이 그를 빤히 바라보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주상현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주상현과 찬민의 관계는 친하지도, 사이가 나쁘지도 않은 관계였다.

다섯 명의 고정 멤버와 함께 타 그룹의 연습생과 경쟁하여 우승을 쟁취한 밀리언 아이돌과는 달리 주상현이 참가했던 지난 서바이벌 프로는 좀 더 잔인하고 좀 더 경쟁적이었다.

모두가 나의 경쟁자였으며 심사평도 가차 없었고 차별도 대놓고 이루어졌었다.

카메라가 있는 곳에서도 경쟁이 심했지만 없는 곳에선 거의 밑바닥까지 보여주며 서로 순위권에 올라가겠다고 아등바등 싸워대던 연습생들.

물론 그중 친해진 사람도 의지할 사람도 생기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쨌든 대부분 어제의 경쟁자가 오늘의 동료가 된 상황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쌓였던 앙금도 풀리고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 다 함께 많은 일들을 경험하며 결국 유니드는 더없이 소중하고 조화로운 그룹이 되었지만…….

어쨌든 다인원, 다국적, 다연령 그룹. 모두가 친해진 채 끝이 날 수는 없었다.

최연장자, 그룹이 망하고 재차 데뷔를 노리는 연습생으로 출연해 유니드의 멤버가 되었던 유스키스의 찬민은 그 중에서도 상현이와는 그다지 접점이 없었던 멤버로 늘 애매한 거리를 유지하던 이였다.

“약간, 이미 한번 데뷔를 하셨던 분이라 나는 살짝 어려웠어.”

주상현이 작게 말했다.

아무래도 동료라기보단 선배님이라는 인식이 더 강했다.

찬민 또한 유니드 멤버들을 동료보단 일시적으로 함께하는 후배들 정도로 여기며 챙겨주었다. 그러다 보니 주상현 외에도 그를 어려워하는 멤버들이 꽤 많았다.

어느새 멤버들은 유스키스의 대기실 앞에 도착했다.

똑똑.

이병수가 문을 두드렸고 대기실 안에서 동시에 ‘네!’ 하는 우렁찬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메스 멤버들은 이병수가  문을 열어주자마자 입장하며 배운대로 넙죽 고개부터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오오!”

“워어! 어메스!”

유스키스 멤버들은 당황한 듯하면서도 유쾌하게 멤버들을 맞이해주었다.

밀리언 아이돌이 시작할 때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반년 전에 데뷔한 그들이기에 아마 인사하러 오는 후배가 그리 많지는 않을 거다.

깍듯한 후배를 반갑게 맞이해주는 유스키스, 그중 찬민의 시선은 제일 먼저 주상현에게로 향했다가 다음은 도화, 케이, 한야 순으로 스쳐지나갔다.

한야가 예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힘차게 말했다.

“선배님들께 인사드리겠습니다. 둘, 셋!”

“난장판으로 놀아보세! 안녕하세요. 어메스입니다!”

“와!”

유스키스 멤버들은 후배가 인사를 하러 왔다는 것만으로 즐거운지 박수까지 치며 좋아해주었다.

“인사 구호 되게 재밌다. 우리도 저런 거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 구호는 너무 재미가 없어. 재미가.”

“와 진짜 잘생겼다. 저희랑 사진 찍을래요?”

떠들썩하게 말을 걸어오는 사이 그들의 리더인 찬민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밀리언 아이돌 잘 봤어요. 상현아 너 너무 잘하더라.”

“히히, 형 저 공연하는 거 보셨어요?”

“당연하지. 네가 제일, 어메스가 제일 잘하더라.”

“찬민 형 진짜 열심히 봤어요. 유니드를 우리보다 더 좋아하는 거 맞다니까.”

유스키스의 말을 듣는 순간 아덴이 싹 경계를 풀었다.

살갑다 못해 앵겨붙지 못해 안달인 주상현이 그다지 친하지 않다고 말하길래 또 경쟁자의 등장인가 했더니 그건 아닌 듯 했다.

그리고 분위기가 이렇게 좋은 그룹의 리더가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닐 터.

“선배님, 이거 저희 데뷔 앨범인데 받아주세요.”

“와, 감사합니다! 잘 들을게요. 하하, 이미 듣고 있지만!”

“크레센도 대박! 안무도 너무 좋고요.”

“하하, 정말 감사합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선배님들 저희와 챌린지 한번 찍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한야가 물 흐르듯 유스키스에게 챌린지 영상을 함께 찍자 요청했고 유스키스는 흔쾌히 오케이 해주었다.

“일단 찬민이 형은 무조건 해야 하고, 우리 메인댄서 어디 갔어! 메인댄서랑 해서 하면 되겠네!”

“유스키스 둘, 어메스 둘씩 짝지어서 찍어요.”

유스키스는 익숙하게 챌린지 대형을 지시하며 대기실의 문 앞에 섰다. 유스키스는 유니드 멤버였던 찬민과 메인댄서인 은후가, 어메스는 도화와 상현이 챌린지를 찍게 되었다.

“영광이다! 어메스의 첫 챌린지를 우리가 맡게 되다니.”

이들은 빠르게 챌린지 안무를 배워 촬영을 했고 한 번에 촬영을 마무리했다.

무척 좋은 분위기 속에서 끝난 첫인사.

“감사합니다!”

“파이팅!”

“열심히 하겠습니다!”

어메스가 다시 대기실로 발길을 돌렸다.

“형, 연락할게요.”

“어어, 그래. 힘내고.”

달칵. 유스키스 대기실의 문이 닫혔다.

“이야, 진짜 개잘생겼다 쟤네.”

“나 좀 확 긴장되잖아. 쟤네 담주 분명히 1위 후보 들겠지?”

“그럴 걸? x바 나란히 서면 존나 비교되겠다!”

“응~ 네가 제일 비교 돼~ 아까 챌린지 찍은 애 노래 존잘. 맨날 듣잖아.”

“이것들아! 후배들 잘한다 잘한다 그만하고 너네도 연습 좀 해라 인마! 쟤네 후배라고 귀여워 보이지? 반년밖에 차이 안 나는데 인기는 저쪽이 더 많아! 열심히 안하면 눈 깜빡할 사이에 역전된다?”

한심하다는 듯 잔소리하는 매니저의 말에 유스키스 멤버들은 위기감도 없이 해맑게 웃었다.

“에이 형님, 서바이벌 우승자 애들을 어떻게 이겨요? 이미 역전됐구만~”

“저희가 열정이 없는 게 아니라요. 우린 우리대로 열심히 하면 되죠!”

그런 유스키스 멤버들의 뒤에서 찬민은 말없이 휴대폰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보고 있는 건 sns의 실시간 트렌드.

솔직한 마음으로는 현실을 맞닥뜨리니 꽤나 괴로웠다.

우연히도 어메스의 데뷔일과 유스키스의 컴백일이 겹쳤다. 유스키스의 컴백 일정이 일주일 뒤로 미뤄진 탓이므로 그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건…….’

찬민이 반복해서 실시간 트렌드를 새로고침 했다.

1위 어메스_데뷔_축하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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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 유스키스_첫컴백_환영해

단 한 번도 어메스를 이긴 적이 없었다.

같은 유니드에서 함께했던 동생, 이것저것 조언도 많이 해주고 위로도 많이 해주었던 후배.

그의 그룹에게 자신의 그룹이 완전히 뒤쳐지고 있는 것이다.

찬민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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