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176화 (176/270)

제176화

“그는 상현의 존재를 그리 반가워하진 않았다. 가장 이용해먹기 쉬운 감정을 느끼고 있는 자로군.”

도화는 케이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며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갔다.

그걸 누가 모르겠는가. 케이처럼 굳이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지 않아도 찬민의 기분 정도는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표정에서, 소극적인 행동에서 아마 상현이도 느꼈겠지. 그러나 찬민의 감정은 상현이를 향한 적대감은 아니었다.

자신보다 늦게 데뷔한 동생이 더 빠르게 성공 가도에 올라선 것에 대한 열등감이었지.

아직까진 그리 위험한 감정은 아니다.

저기서 더 심해지면 적대감이 되기도 하지만 적대감을 가져봐야 저쪽도 남들에게 잘 보여야 하는 아이돌인데 뭔 짓이야 하겠는가?

아덴도 그러니 적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저리 마음 편하게 주상현과 장난을 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어메스 멤버들이 다시 대기실로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음악방송의 마지막 순서인 순위 발표 시간이 되었다.

전 출연진이 무대 위로 올라오고 어메스 또한 출연진들의 뒤에 서서 몰래몰래 팬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대기했다.

“생방송 뮤직트래블 10초 후에 문자 투표 마감합니다!”

활기찬 MC의 외침과 함께 문자 투표 마감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이번 주의 1위 후보는 유스키스, 그리고 유스키스와 하루 차를 두고 컴백한 인기 아이돌 빌즈.

1위 후보 가수의 팬들이 신나게 카운트다운을 시작했고 마침내 투표가 마감되었다.

“시청자 선호도 점수는요. 방송 점수 공개합니다.”

MC의 진행에 따라 점수가 차례대로 공개되고 마침내 공개된 1위. 빌즈였다.

파앙!

폭죽이 터져 나왔고 유스키스는 빌즈에게 축하를 건넸다.

“와,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 컴백 사실 저희에겐 엄청난 도전이었고 많은 불안을 안고 임했는데요. 변함없이 저희를 응원해주시고-”

빌즈가 1위 소감 발표를 시작했고 그들과 진행자를 제외한 출연진들이 조용히 무대에서 빠져준다.

어메스도, 그들과 같은 1위 후보였던 유스키스도 마찬가지였다.

무대 밑으로 내려온 주상현과 유스키스의 찬민이 시선을 마주했다.

“…….”

주상현은 오늘 처음으로 어색한 웃음조차 없이 자신의 시선을 서늘하게 피하는 찬민을 보았다.

* * *

“상현이 왜 그래?”

숙소로 향하는 차 안. 주상현이 평소와 달리 조용하자 한야가 걱정스레 물었다.

평소 같았으면 다음 주는 우리가 무조건 1위라느니 어메스 팬들 엄청 많다느니 떠들어댈 녀석이 오늘따라 축 쳐져선 기운이 없었다.

“컨디션 안 좋아?”

“아뇨. 그건 아니고 그냥요. 살짝 지쳐서 그런가?”

“뭐? 약한 놈. 이 정도 스케줄로 지쳤어?”

도화가 아덴을 툭 쳤다.

“괜히 상현이한테 시비 걸지 마라? 이 정도 스케줄이면 지칠 만하거든?”

어메스가 오늘 하루 음악방송만 했는가? 눈코 뜰 새 없이 스케줄을 소화하고 밥도 도시락으로 대충 때웠다.

아덴 정도의 체력이 아니면 지칠 만한 일정이었다.

주상현은 두 사람의 대화에 대충 고개만 끄덕이곤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까 전 찬민의 행동에 화가 난 건 전혀 아니다. 그저, 꽤 깊게 마음에 남았을 뿐이다.

1년 간 함께한 동료가, 한때 함께 많은 것을 이룩했던 유니드의 멤버가 싸늘하게 자신을 외면하는 모습을 본 게 내심 꽤나 충격적이었다.

“내버려 둬. 애한테 아무 말 하지 말고. 너도 좀 쉬어라.”

“쉬긴 뭘 쉬어. 난 괜찮은데. 하나도 안 힘든데?”

도화는 눈치도 없이 힘차게 말하는 아덴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으면 좀 있다 방으로 와. 대화 좀 하자.”

“어.”

상현이가 뭐 때문에 저렇게 기운이 없는지도 궁금하긴 하지만 그보다 지금은 아덴의 일이 우선이다.

방송국으로 들어가기 전 아덴과 케이가 분명하게 느꼈다는 적의.

그들이 어떻게 아덴의 명예를 훼손하겠다는 건지 그것부터 일단을 알아볼 생각이다.

숙소로 돌아온 멤버들은 별다른 대화 없이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

스케줄을 마치고 돌아온 숙소가 이렇게 조용한 적 있었을까?

데뷔한 지 겨우 일주일 된 그룹답게 스케줄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오늘은 이랬다느니 어떤 연예인을 만났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었는데.

도화는 숙소가 시끄러웠던 이유가 막내 주상현 덕분이었음을 새삼 느끼며 아덴을 데리고 방으로 향했다.

서도화의 손에 이끌려 방으로 들어오기까지 무표정하게 아무 말 하지 않던 아덴이 침대에 털썩 앉으며 무심하게 내뱉었다.

“도화, 근데 내가 네 방에 와봐야 뭐 할 수 있는 게 있나?”

별일도 없는데 서도화가 굳이 자신을 방으로 부르는 이유는 방송국 앞에서 있었던 일 때문일 것이다.

방송국 앞에서 느꼈던 적의. 서도화는 그들의 적대감이 아덴의 도플갱어, 즉 현재 아덴의 과거에서 비롯된 거라고 생각하는 듯한데.

아덴은 자신의 도플갱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거기다 시스템도 숨어버렸으니 지금 당장 모여봐야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러자 서도화가 새침하게 그를 노려보았다.

“야 태평한 소리 하지 마.”

이 세계가 소문 한 번 퍼지는데 한세월 걸리던 그 세계와 같은 줄 아나.

아덴이 살던 제 2세계는 그럴듯한 연락 수단은 있었지만 그마저 마왕의 영향으로 고위 귀족 정보만 사용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런 세계에서 살아오던 아덴이야 적이 나타나고부터 명예가 실추될 때까지 아직 시간 여유가 있다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정말 큰일 날 생각.

이곳은 손가락 하나로도 사람을 바닥 끝까지 떨어트릴 수 있는 곳이다.

한시라도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하며 일 분 일 초라도 빨리 시스템을 불러야만 했다.

어떻게 해야 도망간 시스템을 불러낼 수 있을까?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고민하던 도화는 이내 아주 좋은 방법 하나를 생각해낼 수 있었다.

달칵.

부드럽게 문이 잠기는 소리에 아덴이 시선을 내려 서도화의 뒤를 보았다.

“뭐하냐?”

“아 혹시나 시스템이랑 대화하는데 누가 들어오면 부끄럽잖아.”

“……아아.”

아덴은 함께 모험을 하던 시절 허공을 보며 투닥거리던 서도화를 떠올리곤 피식 웃었다.

‘아 그거 존나 웃겼는데.’

서도화는 어쩐지 아덴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아 그를 흘겼다.

아덴은 표정을 바로 하고 눈썹을 까딱였다.

“그래서? 나는 왜 들어오라 한 건데.”

“시스템을 불러오면 네 도플갱어 이야기부터 들을 거거든.”

시스템은 자신의 보상안에 응답하는 대신 아덴의 도플갱어가 어떤 일생을 살았는지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었다.

아덴의 도플갱어가 어디서 살았는지조차 모르는 서도화는 그걸 알아보기 힘들겠지만 시스템에겐 그 정도쯤이야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 쯤이면 다 알아봤을테지.’

알아봤을 텐데도 지금까지 안 오는 걸 보면 또 어지간히 자신을 피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지금까지 시스템을 봐 왔던 바, 아마 한 번에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시스템은 별일 없을 때도 늘 한발씩 늦게 응하곤 했으니까.

‘나올 때까지 부른다.’

서도화가 비장하게 마음먹고 시스템을 불렀다.

“시스템.”

띠링!

[네?]

“……으악!”

서도화가 까무러치게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저 그냥 불러도 나오려고 했는데요…….]

[왜 당연히 안 나올 거라고 생각하세요. 플레이어님?]

그야 매번 그랬으니까.

[저 이미 주무시고 계실 때 등장했었단 말이에요…….]

[시스템을 뭘로 보고.]

아덴이 허공을 보며 놀라는 서도화를 보며 말했다.

“그 새끼 나왔냐?”

띠링!

[그…새끼?]

[아덴 님 혹시 또 저를 그 새끼라 부르셨나요?]

“어 그 새끼 나왔어. 오늘은 제 시간에 나왔네.”

“웬일이냐? 오늘은 제때 나오고. 필요할 때만 없어지는 놈이잖아.”

시스템은 텍스트가 없어졌다. 삐진 모양이었다.

도화는 괘념치 않고 말했다.

“원래 잘한 일 있을 땐 좀 빨라. 부탁한 거 제대로 해왔나 보지.”

“웃긴 놈이네 그거.”

“일단 조용해 봐. 말 없어진 거 보면 또 삐졌나 봐.”

띠링!

[플레이어님은 삐진 거랑 화난 것도 구분 못 해요?]

“닥쳐. 빨리 도플갱어 정보나 내놔.”

시스템에 워낙 쌓인게 많은 서도화다.

[-3-]

시스템은 입을 댓발내밀었지만 한편으론 서도화의 이런 홀대가 익숙하기도 해 투덭투덜 넘기곤 용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제발 저 없는데서 제 뒷담화 좀 하지 말라니까요! 아무튼, 알아왔어요. 아덴 님의 도플갱어요.]

[안 건 좀 더 일찍인데 나타나니까 주무시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눈칫껏 다시 불러주실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저 잘했죠?^^]

“눈치라곤 없어. 빨리 좀 나타나지. 정보를 알아냈으면 재깍재깍 등장해서 알려줘야할 거 아니야.”

[…….]

-시스템은 당신의 언변에 어이없어 합니다…….

“네가 그러니까 안되는 거야. 환경조성부 들어가고 싶어? 네가 제때 알려줘야 할 정보를 안 알려줘서 죽을 뻔한 적이 한두 번이야?”

[…….]

-시스템이 분노로 부들부들 떱니다…….

“몇 번이나 겪었으면 배우는 게 있어라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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