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8화
시스템은 서도화가 원하는 정보를 알아내서 돌아오겠다며 사라졌다.
그 이후 이 세계 좌표를 받은 하이넬에게서도 아직까지는 연락이 없었다.
덕분에 서도화와 어메스 멤버들은 별문제 없는 일상을 보냈다.
정신없이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으며 그중엔 앨범 홍보를 위해 멤버 개개인의 예능 스케줄 또한 정해져 있었다.
“피디님이 꼭 너희 둘이 와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대. 절친이니까 보기에 좋지 않겠냐고.”
이병수가 운전하며 말하자 서도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덴을 쳐다보았다.
아덴은 긴장도 안 되는지 입까지 벌리곤 곯아떨어져 창문에 쉼 없이 머리를 박아대고 있었다.
“열심히 할게요.”
“그래, 도화가 로건이 잘 좀 챙겨줘. 애가 워낙 자유분방하니까 형은 좀 걱정이다.”
“의외로 예능감은 아덴이 더 좋아요.”
“음~ 그건 그렇지! 하하하!”
이병수는 호쾌하게 웃으며 긍정했다. 사실 동갑내기 트리오만 아니면 조용하고 차분한 도화보다는 아덴이 예능 쪽으론 훨씬 재밌는 캐릭터였다.
서도화가 다시 아덴을 쳐다보았다.
그날 시스템이 돌아간 이후 눈 깜짝할 사이 아덴은 로건 리가 되어있었다.
대충 케이의 세뇌로 처리되어 있던 아덴의 계약서는 로건 리의 인적 사항으로 계약된 것으로 바뀌었고 도화, 아덴, 케이를 제외한 사람들은 당연스레 아덴의 본명이 로건 리인 줄 알고 있었다.
현실 조작.
오랜만에 느껴보는 떨떠름함과 신기함의 그 사이.
물론 아덴은 싫은 티를 팍팍 내며 아덴으로 불러달라 짜증을 냈었다.
도화는 곤히 자는 아덴을 빤히 바라보다 찰싹 그를 때렸다.
그러자 아덴이 쩍 벌리고 있던 입을 합 다물곤 조용히 눈을 떠 도화를 쳐다보았다.
“왜.”
“일어나 바보야. 촬영이 코앞인데 그렇게까지 딥슬립 하는 연예인이 어딨어?”
아덴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왜 촬영이 코앞인데 자면 안 되는데?”
진짜로 모르겠다는 듯한 아덴의 물음에 도화 대신 이병수가 호통치듯 대답했다.
“인마 얼굴이 붓잖아. 얼굴이!”
“얼굴이요?”
아덴이 앞 좌석으로 얼굴을 쭉 내밀었다.
“형, 제 얼굴 부었어요?”
이병수가 백미러를 통해 아덴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어후 하나도 안 부었네. 잘생긴 놈.”
오늘 서도화와 아덴은 ‘오늘의 커피는’이라는 예능 촬영을 위해 방송국으로 향하는 중이다.
‘오늘의 커피는’은 진행자인 심리상담사 김혜원이 조용한 분위기에서 출연자에게 커피를 대접하며 대화를 나누며 상담을 하고 위로를 나누는 방송이다.
예능적인 재미와 힐링이 섞인 터라 재밌다가도 눈물을 자아내고 감동적이다가도 웃긴, 특이한 분위기의 예능이었다.
오늘 두 사람은 데뷔 전과 데뷔 후, 그리고 서로에 대한 마음과 각자만의 스트레스 등을 주제로 촬영할 예정이다.
곧 두 사람이 탄 차가 방송국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다 왔다. 아덴이 너무 문 세게 열지 말고 천천히 내려.”
“네.”
아덴과 도화가 차에서 내렸고 서둘러 촬영이 진행되는 스튜디오로 향했다.
“어메스 도착했습니다!”
두 사람은 스튜디오로 들어가며 세트장을 크게 둘러보았다.
커다란 스튜디오에 비해 무척 아담한 세트장. 고동색 나무로 지어진 자그마한 한옥 찻집을 연상케하는 세트에 바 형식의 테이블이 세워져 있었다.
“와 한옥이네, 예쁘-”
“와 귀한 나무를 가지고 건물을 세우다니! 방송국은 부자인 거냐?”
흥분한 아덴의 말에 서도화는 그러려니 하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부자지 그야…….”
멸망한 세계에선 금보다도 귀한 게 목재인 터라 나무로 건물을 쌓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아덴은 저도 모르게 세트장으로 향하려다 멀리서 달려오는 작가를 보고 멈춰 섰다.
“어서 와요.”
사전 미팅 때도 만났던 메인작가는 두 사람과 이병수를 반갑게 맞이하곤 말했다.
“사전 미팅 때 나눴던 대화대로 보내드렸던 질문지 확인하셨죠?”
“네!”
“대부분 질문지랑 같게 질문하면서 진행이 될 건데 이따금 교수님께서 다른 질문 하실 때도 있거든요? 너무 긴장하거나 깊게 고민하지 마시고 편하게 대답해주면 돼요.”
“넵! 열심히 하겠습니다!”
“어유 힘차네. 기대하고 있을게요!”
메인작가는 하하 웃으며 잘하라 격려하곤 멀리 사라졌고 두 사람이 작가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휴대폰을 확인하던 이병수가 따라오라는 듯 손짓했다.
“김혜원 교수님 도착하셨다네. 인사하러 가자.”
“네.”
도화와 아덴은 이병수를 따라 진행자 김혜원 교수의 대기실로 향했다.
똑똑. 이병수가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들어오세요’ 말투에서부터 상식인의 기품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례하겠습니다.”
이병수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자신의 직원들과 대화 중이던 김혜원 교수가 일어나 살가운 얼굴로 맞아주었다.
“이게 누구야. 어메스 분들이잖아~”
김혜원 교수는 한걸음에 다가와 어메스 멤버들을 토닥이며 활짝 웃었다.
“도화 씨, 아덴 씨~ 우리 딸이 엄청 팬이에요~ 물론 저도 노래 잘 듣고 있어요. 크레센도? 운동할 때 자주 들어요.”
“감사합니다.”
“나한테 앨범 줄 거죠?”
김혜원 교수는 도화의 손에 들린 앨범을 보며 말했고 도화가 서둘러 앨범을 건네주자 그녀는 몹시 좋아하며 자신의 직원들에게 자랑해댔다.
“이것 봐. 사인 CD야. 내 딸이 얼마나 좋아하겠어!”
“진짜로요!”
“와 교수님 부럽다!”
직원들이 꺄르르 웃으며 그녀의 말에 맞장구쳐 주었다.
몹시 분위기가 좋은 걸 보아 평소 미담이 많은 사람답게 카메라 뒤에서도 무척 좋은 사람인 모양이었다.
그녀는 앨범 자랑을 끝내고 돌아와 두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늘 잘 부탁해요.”
“네,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 애들이 아직 카메라가 어색해서 좀 버벅일 수 있는데 교수님, 잘 이끌어주십시오.”
이병수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고 서도화가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그 순간.
[인복] 발동!
심리학 교수 김혜원이 당신의 둘도 없는 아군이 됩니다!
‘……뭐?’
아니 뭐? 왜? 엥?
나 발동한 적 없는데?
갑작스러운 알림에 당황하며 서도화가 머뭇거리는 사이 김혜원은 싱긋 웃고는 손을 풀며 아덴에게 다시 손을 내밀었다.
“아덴 씨도 잘 부탁해요.”
“네, 잘 부탁드립니다.”
아덴은 정중하게 김혜원에게 인사했고 김혜원은 호탕하게 아덴을 툭 쳐준 뒤 나가도 된다는 듯 신호를 보냈다.
“그럼 촬영 때 뵙겠습니다!”
세 사람이 김혜원의 대기실을 나왔다.
“도화, 왜 그래?”
아덴은 갑작스럽게 굳은 도화의 표정을 보며 물었지만 그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젓고 이병수를 따라 대기실로 돌아왔다.
갑자기 왜 그게 발동됐지?
원래 계획은 변호사 등 법조계에서 일하는 사람을 아군으로 만들어 로건 리 일을 포함해 연예계 활동 전반적인 법적 자문을 공짜로 받을 생각이었다.
근데 설마 딱히 도움받을 일도 없을 법한 심리상담사라니?
전혀 원하지 않은 일이었다.
‘이, 이 시스템 이 새-’
똑똑.
“어메스. 저희 10분 뒤에 촬영 들어가야 해요. 세트장으로 와주세요.”
황당함에 도통 복잡한 생각이 가라앉지 않는 그였지만 그럼에도 촬영은 진행되어야 했다.
“도화, 표정 굳었어.”
아덴이 도화를 툭 치며 말했고 도화는 애써 표정을 풀고 세트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촬영이 시작되었다.
촬영의 시작은 김혜원 교수가 세트장으로 들어와 오늘의 차를 고르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음~ 오늘은 뭐로 하지?”
프로그램의 이름은 ‘오늘의 커피는’이지만 사실 게스트의 성향이나 겉모습, 출연 이유 등에 따라 차나 음료를 대접하기도 했다.
김혜원 교수는 오늘의 차를 고르며 시청자들에게 게스트에 대한 힌트를 넌지시 주었다.
“오늘도 커피는 패스. 2회 연속으로 커피 패스는 되게 오랜만이죠? 오늘 오는 친구들은 무척 어린 아가들이라 카페인보다는 달달한 그런 걸 주고 싶은데. 아, 이게 좋겠다.”
김혜원 교수가 진열장에서 건조된 꽃잎이 들어가 있는 유리병을 꺼냈다.
“히비스커스차. 달달하고 색도 예쁘고 좋거든요. 꽃같이 고운 분들이 오시니까 꽃차로 준비하는 게 좋겠어요.”
김혜원 교수가 말을 마치고 천천히 차를 우리기 시작했다.
차분하게 음료를 준비하는 것도 이 프로그램의 힐링 포인트 중 하나로 시청자들의 요청에 의해 음료 준비 장면만 따로 편집해 모은 너튜브 영상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장면이라고 한다.
그렇게 어느 정도 차의 색이 우러났을 때쯤.
“지금 문 열고 들어가시면 돼요.”
문 뒤에 대기하고 있던 두 사람에게 제작진이 신호를 보내왔다.
도화는 긴장한 얼굴을 싹 풀며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실례합니다.”
“어우~ 어서 와요! 얼른 들어와요. 밖에 많이 추웠죠!”
“아유 아닙니다.”
“별로 안 추웠어요. 괜찮습니다.”
서도화와 아덴이 연신 인사를 하며 테이블로 향했고 의자에 앉자마자 바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