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1화
“데뷔를 준비하면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참 여러 가지 일이 많았을 텐데, 그런 와중 어메스 여러분들은 내 마음, 나 자신은 잘 돌볼 수 있었나요?”
김혜원 교수는 한층 차분해지고 더욱 나긋해진 말투로 두 사람에게 물었다.
서도화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스스로를 돌볼 여유는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리 멘탈이 약한 편도 아닌데 밀리언 아이돌을 촬영하는 내내 멘탈이 터져나갔던 것 같다.
서도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그를 시종일관 태연하고 무덤덤한 성격이라 평했지만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그는 한 번도 편안한 적이 없었다.
눈앞에 마왕과 용사가 두 눈을 부라리고 있는데, 아직 눈앞엔 시스템이 있고 문제는 산더미처럼 많았었지. 시스템이 복구되며 하이넬과 연락이 닿은 이후로도, 이제야 겨우 데뷔한 아덴과 케이가 언제 저쪽 세계로 돌아갈지 마음 졸여야 했다.
‘생각해보니 처참하긴 하네.’
언제까지 지금처럼 항상 신경이 곤두선 채 긴장하며 살아야 할지 생각하면 까마득했다.
김혜원 교수는 서도화의 대답을 듣고 아덴에게도 눈빛으로 대답을 청했다.
아덴은 도화를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저는 괜찮았어요. 아직 이 세계에 완전히 적응하진 못했지만 도화랑 한야 형, 상현이가 많이 도와줘서 지금은 편안해요.”
“아직 연예계엔 적응 못 했지만 멤버들 덕분에 마음을 잘 돌보고 있다. 그런 뜻이죠?”
“네.”
김혜원 교수는 너어무 잘됐다며 만족스럽게 박수를 치는 한편 도화에게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우리 도화 씨는 왜 마음을 못 돌봤을까?”
“아 저는……. 데뷔 과정도 사실 매끄럽지 않았고,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요. 주변을 더 돌봤던 것 같아요. 저보다는.”
도화가 말하자 아덴이 고개를 끄덕이곤 엄지로 도화를 가리켰다.
“굉장히 세심하고 배려 많이 하는 성격이에요.”
“아, 도화 씨가 세심하고 배려심이 많으시구나.”
“그래서 밀리언 아이돌 촬영할 때도 저랑 케이가 적응을 못 하니까 본인보단 우리 챙기느라 바빴을 거예요.”
“아유 그래서 다른 멤버들 챙기느라 정작 우리 도화 씨 마음은 못 챙겼구나.”
도화는 그들의 말에 부정하지 않고 고개 끄덕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맞는 말이다.
자기들 때문에 서도화가 고생했다는 걸 아덴이 알아 정말 다행이다.
도화가 말했다.
“저는 되게 무덤덤하게 뭐든지 잘 넘긴다는 이미지가 팬분들 사이에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근데 사실 그것보다는 속으로 삭이는 경우가 많아요.”
아덴이 또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여 말했다.
“되게 걱정이 많아요.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까지 생각해서 걱정하고.”
“음, 아덴 씨가 느끼는 도화 씨는 어떤가요? 친구니까 가까이서 봤으니 잘 알겠네.”
아덴은 서도화를 빤히 쳐다보다 또 눈동자를 굴리다 조심스레 말했다.
“살짝 강박적일 정도로 계산을 많이 해요.”
“계산을 많이 한다?”
“아, 이게 그렇게 계산적이다 이런 나쁜 의미가 아니고.”
서도화는 아덴이 알아서 김혜원 교수에게 설명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아덴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 줄 그는 안다.
지나치게 미래 일을 계산하고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자신의 성격을 말하고 있는 것이리라.
걱정할 일 따위 만들지 않고 바로 행동으로 해결해버리는 아덴은 도화의 성격을 이해하기 어려울 거다.
하지만 도화의 그런 강박적인 성격은 그곳에서 형성된 성격이었다.
마치 그때 이후로 어두운 곳에서 혼자 자기 힘들어하는 트라우마가 생긴 것처럼, 언제나 죽을 수 있다, 언제든 동료를 잃을 수 있다, 돌아가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뭐든 신중하게 행동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불과 몇 년 전, 이곳에서는 몇 달 전이지만 원래 서도화의 성격은 이 정도로 걱정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언제나 칭찬만 들으며 승승장구하던 연습생 서도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던 때는 연습생들의 괴롭힘도 넘기며 연습에 임했고 도화도 아덴처럼 오로지 행동으로 보여주던 때가 있었다.
“왜 도화 씨는 그렇게 걱정이 많아지게 된 걸까?”
“음.”
도화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인 것 같아요. 사실 제가 데뷔 과정이 그렇게 부드럽지는 않았어서-”
서도화는 데뷔 전 있었던 일들에 대해 최대한 쿠션을 넣어서 가볍게 말했다.
갑작스레 사고를 당한 일, 그래서 회사에서 잘리고 갑자기 몇 달간 아무것도 없이 쉬게 된 일, 새로운 회사에 들어가 밀리언 아이돌에 도전한 일.
이런 것까지 말해도 되나 싶었지만 사실 이 부분은 사전에 협의된 답변이라 반쯤 대본과 개인 생각을 섞어 술술 답변할 수 있었다.
그러자 김혜원 교수는 무척 안타까운 듯 아이고 탄식하며 물었다.
“아직 어린 친구가 그렇게 많은 일을 견디기엔 너무나 힘들었을 텐데. 그럴 때 어디 마음 툭 터놓고 어디 말할 수 있었던 사람은 없었어요?”
“어음…….”
그런 사람…없었지?
그나마 그를 아껴주었던 데스티니의 김 실장도 거의 연락이 없었던 시기고 연습생이 된 이후 정말 연습만 했던 그에게 친구가 있을 리 만무했다.
서도화가 대답하지 않자 김혜원 교수가 다시 물었다.
“지금이야 어메스 멤버들이 함께하며 위로도 해주고 재밌게 놀기도 하고 하겠지만 그전에는 보호해주고 상담해주고 그런 사람이 없었어요? 주변의 어른이나 아니면 친구인 아덴 씨, 케이 씨나.”
“아, 케이는 그때 해외에 있었고 아덴이는 그…사정이 있어서 연락이 안 될 때였어요. 어른은 없었네요.”
그의 말에 김혜원 교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부모님이라든가, 선생님이라든가.”
사전의 질문지에는 없던 질문이었다.
제발 누구라도 주변에 어른이 있었다고 말해주었으면 하는 교수의 표정에 서도화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학교는 완전히 길을 이쪽으로 선택하고선 자퇴했었고 부모님은…….”
무덤덤하게 대답하던 도화가 처음으로 실소를 터트렸다.
내가 지금 여기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람.
“안 계셔서요.”
“……안 계신다는 건 이혼하신 거예요?”
“네, 그 이후론 할머니 밑에서 컸는데 저랑은 연락이 안 되세요.”
올해 초 할머니마저 돌아가시니 이제는 부모님이 얼굴 좀 비춰주려나 했는데 부모 대신 들어온 건 생활비였다.
각자 재혼을 한 모양으로 보기에도 찝찝한 짐 덩어리는 만나고 싶지 않았는지 매달 돈만 보내며 어린 아들을 보러 오지는 않았었다.
물론 서도화 또한 이게 딱히 슬프지는 않았다.
서도화에겐 부모를 만나지 않는 게 슬프지도 않을 정도로 당연한 것. 그에게 가정사란 그런 것이었다.
서도화의 대답에 김혜원 교수는 잠시 할 말을 잃고 탁, 가지고 있던 상담 카드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말없이 카메라 너머 제작진들을 쳐다보았다.
상담 카드에 적혀있는 질문 중엔 이런 질문도 있다.
‘데뷔했을 때 부모님들이 엄청 좋아하셨겠어요.’
사전 미팅에서 이들의 가정환경에 대해 질문하고 대답을 들었을 것이다.
분명히 가정사가 있는 게스트에겐 이런 질문 넣지 말라고 했었는데.
‘이것들이 또!’
이래서 방송국 놈들은 안된다.
하지 말라고 말해도 화제성만 있다면 게스트가 상처를 받든 안 받든 이런 심장 후벼파는 질문을 서슴없이 넣어둔다.
김혜원은 카드를 탁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때 주변에 누군가가 괜찮아 잘하고 있어 이렇게 말해주며 힘이 되어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렇죠?”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괜찮아요. 멤버들도 있고 직원분들도 저희 되게 예뻐해 주셔서. 잘 이겨내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김혜원 교수는 대충 카드 안의 정보만 파악한 후 자신의 방식대로 대본에 없는 질문들을 이어나갔다.
팬들과의 교류는 어떤지, 최종 목표는 무엇인지.
최대한 긍정적인 그룹의 이미지에 맞는 질문만 해주려고 노력해주었고 덕분에 좋은 분위기 속에서 두 사람은 무사히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촬영이 끝난 후 두 사람은 이병수와 함께 다시 김혜원 교수의 대기실로 향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교수님.”
“수고했어요. 아덴 씨, 도화 씨.”
김혜원 교수는 긴 시간 촬영에도 피곤한 기색 없이 멤버들의 팔을 툭툭 치며 밝게 인사했다.
“오늘 도중에 갑자기 대본대로 안 하고 내 마음대로 했는데, 어우 잘 받아주더라고요? 이제 막 데뷔했는데 얼마나 능숙한지 대단하더라.”
“감사합니다.”
“하하! 아무튼 고생했어요. 다음에 또 만나요.”
“수고하셨습니다!”
서도화와 아덴이 김교수에게서 돌아섰다.
남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도화가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끝?’
이렇게 김혜원 교수와의 만남은 끝나는 건가?
아까 촬영하기 전 분명히 시스템은 김혜원 교수를 멋대로 아군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럼 뭔가 좀 더 연결고리가 형성되어야 하지 않나?
서도화가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는 순간.
“잠깐, 도화 씨.”
김혜원 교수가 그를 멈춰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