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6화
“여러분, 저희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대충 감이 잡히시나요?”
주상현이 장난스럽게 물으며 채팅창을 살폈다.
데뷔는 최근에 했지만 밀리언 아이돌에 출연하며 팬과 교류가 있었던지는 한참 되었다. 그러니 팬들은 당연하게 곧 팬명이 지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어메스에 대한 컨텐츠가 활발히 이어지며 인지도는 점점 올라가는 와중 아직까지도 팬명이 지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팬들의 불만 또한 점차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 상황에 갑작스레 발표를 한다며 온앱 라이브를 켠 상황.
팬들도 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 라이브를 켰는지 대충 예상은 하고 있을 것이다.
-설마??
-헐
-ㅁㅊ 팬명 공개하나?
-제발… ㅠㅠ
-ㅋㅋㅋㅋ드디어
멤버들이 씨익 웃었다. 딱 엎드려 절받기가 되기 전, 적당한 타이밍에 팬명을 발표할 수 있게 되어 정말 다행이었다.
“역시 우리 팬분들은 눈치가 아주.”
주상현이 화면에 대고 쌍엄지를 들어 보였고 한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여러분, 저희 드디어…… 여러분들의 이름을 정했어요!”
“와아아아!!!”
멤버들은 크게 환호하며 마치 오늘이 팬들의 생일인 것처럼 기쁘게 방방 뛰었다.
특히 주상현과 아덴이 무척 신나 했는데 주상현은 정말로 기뻐서 방방, 아덴은 뒤늦게 팬명 확정이 이 정도로 신나는 일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주상현의 신남에 맞춰주느라 덩달아 뛰어댔다.
“자, 다들 진정하고.”
이들을 한야가 진정시켜 도로 앉히고 서도화를 쳐다보았다.
“자, 그럼 이제 팬명을 발표해야겠죠? 우리 도화 씨가 발표해주시죠.”
“네! 저희 팬명은요. 바로바로-”
“케이클랍스!!!”
오늘도 역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케이가 버럭 외쳤다.
깜짝 놀라 케이를 바라보는 멤버들 사이 서도화만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저희 팬명은 케이클랍스입니다! 의견이 분분했지만 팬분들께서 케이클랍스라는 애칭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진짜 이름으로 하면 더 좋아하시지 않을까 하고 결정을.”
-?
-진짜…로요?
-엥? 그냥 애칭 아니고?
-ㅠㅠ난 케이클랍스 좋아ㅠㅠ
팬들의 반응이 떨떠름했다.
케이클랍스는 애칭이기에 좋아한 거지 이게 진짜로 팬명이 되길 원하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게 팬들이야 그 의미를 잘 알고 있지만 발음 상 그리 예쁘지도 않을뿐더러 대외적으로는 아무도 모르는 단어라 자칫하다간 비웃음당할 수도 있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누가 팬명을 그룹 특정 멤버의 소유라는 의미로 짓겠는가.
팬들이 케이클랍스를 좋아했던 건 케이가 불러주는 개인적인 애칭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ㅠㅠㅠ팬명 투표로 해주시면 안 돼요?
서도화가 조용히 미소 지었다. 팬들 모두 멤버들 앞임에도 불구하고 차마 좋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 듯 울고 있다.
아마 지금쯤 유제이를 엄청나게 원망하고 있겠지.
그냥 케이가 불쑥 끼어들어 말한 김에 장난 좀 쳐봤다.
더 했다간 정말 분위기가 이상해질 것 같아 서도화는 서둘러 말했다.
“여러분! 농담이에요. 하하! 케이클랍스는 우리들만의 애칭이고 여러분들의 진짜 이름은 바로.”
“두구두구두구-”
멤버들이 서도화의 말에 맞춰 북소리를 내주었다.
서도화가 활기차게 말했다.
“‘고요’! 여러분들의 이름은 ‘고요’입니다!”
“와아아아!!!!”
이번에는 진짜라서 혹시나 나쁜 반응이라도 나올까봐 어메스는 필사적으로 좋아하는 티를 내며 다같이 방방 뛰었다.
서도화는 방방 뛰면서도 채팅창 반응을 살폈다.
다행히 케이클랍스보단 훨씬 반응이 좋은 듯했다.
아이디어를 낸 당사자라 혹시 안좋아하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앞에 케이클랍스를 먼저 말해 기대감을 떨어트린 작전이 먹혀든 모양이다.
팬들은 케이클랍스가 진짜 팬명이 아닌 것에 대해 무척 안도하며 서도화가 생각해낸 팬명을 무사히 받아들여주었다.
“여러분들이 좋아해주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사실 이 팬명은 도화 형이 아이디어를 낸 거예요.”
“고요의 의미가 무엇인지, 도화야, 우리 고요분들한테 설명해줘.”
한야가 서도화를 보며 손바닥을 펼쳐 촬영 중인 휴대폰을 가리켰고 서도화는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네! 고요라는 건 폭풍의 눈에서 착안한 단어인데요-”
도화가 고요의 뜻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난장판인 멤버들의 중심을 잡아주는 유일한 고요함.
물론 현실은 멤버들과 함께 팬들도 신나서 함께 난장판인 경우가 많지만 어쨌든 팬들이 멤버들의 중심을 똑바로 잡아준다는 아주 좋은 의미로 만들어진 단어였다.
서도화에게서 팬명의 뜻까지 듣고나자 팬들은 완전히 납득한 듯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멤버들이 팬들을 자신들의 중심으로 생각하며 지어준 이름인데 어떻게 안 좋아할 수가 있겠는가.
“아무튼 오늘은 여러분들의 이름을 알려드리고 싶어서 찾아왔던 거였어요. 곧 공지 올릴 테니까 다들 기다려주시고, 이제부터 여러분들의 이름은 ‘고요’예요. 알게죠. 고요 여러분~”
“네에~”
유치원생을 대하는 듯한 한야의 외침에 멤버들이 고요인 척 대답해주었다.
그 이후 고요들과 어메스는 소소한 일상 대화부터 앞으로의 일정 스포 등등 길게 대화를 나누며 온앱을 이어나갔다.
* * *
어느덧 크레센도로 활동하는 마지막 주.
서도화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린 녀석이 왜 벌써부터 그렇게 한숨을 쉬고 그래?”
피곤해보이는 서도화가 걱정됐는지 드라이를 해주던 스타일리스트가 말을 건네온다.
“무슨 일 있어? 애들이랑 싸웠어?”
“아니요. 안 싸웠어요.”
“아니면 벌써 활동이 끝나는 게 섭섭해?”
서도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활동의 마지막.
활동이 벌써 끝나는 것도 섭섭하고, 곧 있으면 터진다던 로건 리의 사건도 상당히 마음에 걸린다.
‘아직까지 시스템은 소식도 없고…….’
서도화가 아덴을 쳐다보았다.
비단 걱정하는 건 로건 리 사건으로 한동안 시끌벅적해질 어메스뿐만은 아니다.
아덴은 멘탈이 무척 강한 편이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자신의 지지해주는 이들의 사랑을 느끼기에 단단해질 수 있는 것이었다.
사랑받는 데에 익숙한 아덴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되면 과연 괜찮을지.
‘뭐, 밀리언 아이돌 때를 생각하면 무난히 잘 버틸 수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저 정의로운 녀석을 욕과 비난의 한가운데에 올려놓고 상처받는 걸 지켜보게 될 예정이라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방법 없으려나?’
최초 거짓 폭로자를 미리 잡아다가 어디 가둬놓을 수도 없고.
납치와 감금? 예전 저쪽 세계에선 무척 잦게 감행했고 당하기도 많이 당했던 짓이지만 이 세계에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쩌지…….’
서도화가 다시 한숨을 쉬자 스타일리스트는 그를 무척 안쓰럽게 쳐다보며 이병수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자기야! 얘네 고기 좀 멕여! 애가 피곤해 죽으려고 한다!”
“네에? 아, 네에……. 먹이고 있는데…….”
“먹이는데 애가 왜 힘이 없어! 왜 이렇게 말랐어!”
“화, 활동 기간이니까…….”
왜인지 스타일리스트 앞에 작아지는 매니저 이병수를 지켜보고 있을 때 대기실의 문이 열리고 제작진이 안으로 들어왔다.
“어메스, 10분 후에 무대 올라갑니다. 미리 와서 대기해주세요.”
“네에!”
그러자 아슬아슬하게 수정을 끝마친 스타일리스트가 마지막으로 고정 스프레이를 뿌려주곤 다 됐다는 듯 등을 툭툭 쳤다.
오늘은 크레센도의 마지막 음악방송날.
서도화는 제 손바닥에 써놓은 ‘감사’라는 단어를 확인하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 * *
꺄아아아~!
크레센도 마지막 엔딩.
카메라는 멤버들을 정해진 순서대로 찍어주며 마지막을 장식해주었다.
찍는 순서는 한야, 서도화, 아덴, 케이, 주상현.
이들은 각자의 손바닥에 정말, 감사, 합니다, 고요!, 또 봐요.를 적어 엔딩 카메라가 다가올 때 각자의 포즈를 취하며 보여주었다.
그렇게 고요의 환호 속에서 무대를 마치고 2주 연속 1위를 쟁취한 후 대기실에서 짐을 챙기고 있을 때.
덜컥! 쾅!
“어어?”
“어으악!”
“뭐, 뭐야!”
갑자기 대기실 문이 세게 열리곤 가면을 쓴 남자들과 카메라가 들이닥쳤다.
1위의 기쁨을 누리며 마지막 음방이라고 직원들이 준비해준 케이크를 먹으며 어메스 채널의 카메라에 소감을 말하고 있던 멤버들은 기겁하며 일어나 얼음장같이 굳어버렸다.
“위험해!”
아덴이 서둘러 서도화와 주상현을 감싸 지키려는 제스처를 취했고 케이는 스스로를 지켰으며 한야는 하하 태평하게 웃으며 가면 쓴 남자들에게 제일 먼저 잡혀 끌려갔다.
“잔말 말고 따라와!”
“네, 네에? 형! 혀엉!!!”
갑작스러운 위협. 주상현은 아덴에게 감싸진 채 끌려가는 한야를 부르며 절규했고 아덴은 그들을 노려보며 경계했다.
‘깜짝카메라인가 저건? 어느 방송이지?’
서도화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곤 호기심 어린 눈으로 가면 쓴 남자들을 뒤따라 들어온 카메라에 붙은 방송 로고 스티커를 확인하려 얼굴을 이리저리 움직여댔다.
그리고 곧 안심한 듯 숨을 내쉬었다.
방송 ‘어메스로 놀아보자’ 로고가 붙은 카메라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