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7화
멤버들은 제일 먼저 붙잡힌 한야부터 차례대로 가면 쓴 남자들에게 양팔을 붙잡혀 대기실 밖으로 끌려 나갔다.
수많은 카메라, 가면 쓴 남자들, 거기에 붙잡힌 어메스.
아무래도 눈에 띄는 모습인 만큼 수많은 이목이 집중되어 민망했지만 그렇다고 빠져나갈 수는 없어 서도화는 그저 고개를 팍 숙인 채 질질 끌려갔다.
“얼른 타!”
“으악!”
가면 쓴 남자들은 멤버 모두가 상황 파악을 끝낸 지금도 컨셉을 유지하겠다는 듯 거칠게 말을 내뱉으며 멤버들을 차에 실었다.
행동이 거친 것에 비해 멤버들을 차에 집어넣는 손만은 상당히 상냥했다.
한야부터 주상현까지 멤버 모두가 차에 타자 운전석에서 ‘안전띠 매! 얼른!’ 하는 위협적인 목소리가 들려왔고, 멤버들이 키득거리며 안전띠를 매자 빠르게 출발했다.
“저희 어디 가요?”
“형님들 저희 납치당한 건가요?”
멤버들은 어느새 긴장을 풀고 제 옆에 있는 가면 쓴 남자들에게 툭툭 장난을 치며 말을 걸어댔다.
“피디님 왜 가면을 쓰고 계세요?”
처음에는 몰랐는데 가면 쓴 남자들, 따로 연기자를 쓴 게 아니고 제작진들이었다.
제작진들은 처음엔 모르는 척 멤버들의 장난을 받아주지 않더니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본인도 스스로의 꼴이 우스워 함께 피식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산속의 어느 커다란 건물.
“헐 저기! 그거잖아!”
주상현이 빠르게 촬영 장소를 알아채고 아는 척을 해댔다. 다른 멤버들 또한 건물을 보며 반가운 기색을 내비쳤다.
어메스를 위해 준비된 커다랗고 넓은 건물은 ‘밀리언 아이돌’의 합숙 장소. 팝넷의 서바이벌 합숙용 건물이었다.
“와 여기 진짜 오랜만이다.”
“어떻게 하나도 안 변했냐.”
서도화 또한 오랜만에 봄에도 달라진 게 없는 숙소의 모습에 감탄했다.
그날의 눈물과 기쁨, 추억을 가득 품고 있는 숙소.
마치 졸업한 학교를 오랜만에 방문하는 듯한 반갑고도 그리운 기분이다.
“여길 데뷔하고 다시 오게 될 줄이야.”
멤버들이 차에서 내리고부터는 가면 쓴 제작진들이 그들을 통솔하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차에서 내리며 감수성에 젖도록 내버려 두었다.
제작진의 의도대로 멤버들은 처음 이곳에 왔던 그 날처럼 운동장 앞에 나란히 선 채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멍하니 그리움에 취해 있다가 문득 한야가 물었다.
“저희 오늘 여기서 머무는 건가요?”
그의 말에 제작진 또한 감회가 남다른 듯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맞습니다. 여러분들의 어메스로 놀아보자 마지막 촬영은 바로 이곳. 많은 추억과 눈물, 그리고 행복이 깃든 밀리언 아이돌 숙소에서 진행됩니다.”
서도화는 다시 숙소를 바라보았다.
그렇다. 오늘은 어메스로 놀아보자의 마지막 촬영 날.
우리는 어메스가 시작된 곳에서 뜻깊게 촬영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일단 숙소에 들어가 보실까요?”
제작진은 아쉬움에 붙잡힌 듯 움직이지 않는 멤버들은 숙소 안으로 인도했고 그제야 그들은 씁쓸함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럼 오늘 저희가 이 숙소 전세 낸 거예요?”
“네, 맞아요.”
“그럼 산책로도 써도 돼요?”
“아덴 씨 여전히 산책 좋아하시네요. 됩니다. 마음껏 쓰세요.”
숙소 전체가 오늘은 어메스의 차지.
그 수많은 방들도, 빈 곳 한번 구해보겠다고 발에 불나도록 돌아다니던 연습실도, 당시에는 연습만 죽어라 하느라 발 한번 들여보지 못한 오락실도 전부 어메스의 것이다.
멤버들은 빈 학교에 찾아온 동창생들처럼 빈 숙소를 돌아다녔다.
제일 활달한 주상현과 아덴은 신나서 뛰어다녔고 케이는 조용히 오락실 기기를 만지작거렸다.
“형, 이것 봐. 우리 이름표 여기 그대로 있어.”
“그렇네? 이거 우리 덴이랑 케이가 엄청 불편해했었지.”
그리고 한야와 서도화는 가까운 곳에 남아있는 소품들을 보며 그때 재밌었는데 등등 대화를 나누었다.
같은 공간에서도 이렇게나 하는 행동들이 다른 어메스 멤버들이었다.
제작진들은 이들을 내버려 둔 채 흐뭇하게 촬영을 이어갔다.
이곳에 있는 제작진들 또한 밀리언 아이돌 제작에 참여한 이들.
밀리언 아이돌 합숙 당시 함께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땐 이렇게 활달한 애들인 줄 몰랐는데.”
“그러게. 이렇게 놀 수 있는 애들이 그땐 그냥 연습만 하는 애들인 줄 알았어.”
물론 자기들끼리 있을 때 누구보다 배려도 잘하고 친밀해 보였지만 방송 분량을 생각하면 심각하다 싶을 정도로 재미없이 연습만 하던 놈들이었다.
순위가 높으니 분량은 만들어줘야겠는데 오락이나 다른 그룹과의 친목은 전혀 쌓지도 않고 오로지 연습.
다만 멤버들끼리 똘똘 뭉쳐 연습하는 그 모습, 이따금 아덴이 산책을 하거나 한야가 연습실을 찾느라 고군분투하는 모습, 서도화가 필사적으로 케이의 실력을 끌어올리고 주상현이 멤버들 사이를 이리저리 오가며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는 그런 모습들이 소소하게 방송 분량이 되어주었다.
그때만 해도 자기들끼리 사이가 너무 좋은, 그러나 예능적인 센스는 없이 올곧게 연습만 하는 노력파 이미지가 강했다.
제작진들은 신나게 돌아다니는 이들을 지켜보다 이만하면 됐다는 듯 그들을 불러 모았다.
“다들 이곳으로 오세요! 촬영해야지!”
“네엡!”
멤버들은 서둘러 카메라 앞으로 모였고 제작진은 오늘의 촬영에 대해 설명했다.
“어메스로 놀아보자 마지막 촬영의 주제는 ‘추억여행’입니다. 여러분들은 이곳에서 1박 2일 동안 우리들의 시작점이었던 그날을 떠올리며 각종 게임을 하게 됩니다.”
“오오!”
“물론 여러분들이 마음껏 추억을 느끼실 수 있도록 게임 외의 시간은 자유입니다. 무엇을 하든 마음대로 하시다가 중앙방송-”
“와 중앙방송 오랜만이다.”
“네, 모이라는 중앙방송이 들리면 다시 모이시면 됩니다.”
중앙방송, 매일 아침, 점심시간, 심사 시간, 자는 시간을 알려주었던 방송이다.
가뜩이나 넓은 숙소 공간에 쩌렁쩌렁 울려서 나올 때마다 놀라는 게 연습생들만의 루틴이었다.
그 이후론 한동안 멤버들의 자유시간이었다.
건물 전체를 어메스로 놀아보자 팀이 빌린 상황이었기에 침대가 든 방도 연습실도 운동장도 모두 어메스의 차지.
멤버들은 우선 잠을 잘 숙소부터 정하기로 하고 다 함께 계단을 올랐다.
“숙소, 추억도 더듬을 겸 우리가 쓰던 그 방 어때?”
서도화의 제안에 곧바로 “좋아~”하는 대답들이 들려왔다.
그 당시 어메스가 쓰던 방은 가장 높은 등급의 방 중 하나여서 불편한 것도 없었고 무엇보다 추억을 쌓는 데엔 같은 방에서 자는 것만 한 게 없었다.
이들이 망설임 없이 머물던 방으로 향하는 걸 보며 제작진들은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쟤네 봐. 굳이 방 하나에 같이 자려고 하네.”
그렇다 멤버들은 이 숙소에 침대가 배치된 모든 방이 전부 자신들의 것이라는 걸 잊어버린 것이다.
당연스럽게 이 좁은 방이 머물 곳의 전부라고 생각한 어메스는 한야부터 케이까지 본의 아니게 멤버들 간의 돈독함을 뽐내며 한 공간에 머물게 되었다.
숙소 안에 대충 가방을 내려놓은 멤버들은 자연스럽게 흩어져 각자의 자유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서도화는 한숨 자고 싶다며 침대에 누웠고 아덴은 산책, 주상현은 연습, 한야는 케이를 끌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서도화는 가만히 침대에 누워 천장을 쳐다보았다.
‘시스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시스템.’
서도화는 한 번 더 시스템을 부르곤 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셋-
띠링!
[네!]
[허억… 허억…….]
[아니 tlqkf!!!! 왜요!!! 뛰어온다고 힘들어 죽겠네!]
‘몸도 없는 게 힘들기는 무슨 웃기고 있네.’
띠링!
[…….]
[오려고 했었거든요?!?!?!?]
[바로 스케줄 들어가길래 끝나면 알려드리려고 했거든요?]
서도화는 말없이 시스템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띄우는 텍스트를 지켜보았다.
이곳엔 카메라가 있었고 직접적인 대화를 나눌 수 없음을 알 테니 시스템은 굳이 서도화가 무언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정보를 띄워줄 것이다.
아무리 눈치도 없고 실력도 없는 시스템이라고 할지라도 오랫동안 함께했던 세월이 있으니 이 정도 호흡 정도는 맞춰주었다.
띠링!
[로건 리의 학교생활을 알아봤어요.]
[혼혈이라고 괴롭힘을 많이 당했다나 봐요.]
시스템은 학교와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전화 상담 일지 스캔본을 보여주었다.
[전화 상담 녹취본은 있긴 한데 울먹임때 문에 잘 안 들려서 그냥 텍스트로 옮겨놨어요.]
‘잘했어.’
어차피 울먹이며 괴롭힘당했던 일을 설명하는 목소리를 듣는 건 좀 껄끄럽긴 하니까.
‘사건이 일어나기까지는 얼마나 남았지?’
[인생 스포에 따르면 23일 남았다고 합니다.]
스케줄을 소화하며 사전 준비하기엔 꽤 빡센 기간이긴 하다.
다행인 건 그날의 자료가 남아있어 문제가 생겨도 반박할 증거는 있다는 것.
물론 증거가 있다는 것과 이걸 실제로 빼내는 게 가능한가?는 다른 문제지만.
“…….”
서도화가 상담기록을 훑었다.
내용이 꽤 길긴 하지만 마침 잘 됐다. 어차피 잔다고 했으니 천천히 읽어보자.
서도화가 여유롭게 생각하며 천천히 첫 문장을 읽어내려는 순간.
삐익! 치직!
-아아, 첫 번째 게임 시작하겠습니다. 어메스 여러분들은 속히 운동장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으앗! 아이 깜짝이야!”
제작진의 중앙방송이 쩌렁쩌렁하게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