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8화
서도화는 손을 휘저어 시스템을 치워버리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불안함에 스케줄 중임에도 시스템과 대화를 나눈 그였다. 하지만 지금은 걱정을 잠시 접어두고 촬영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야, 너 어디 있었냐? 같이 산책 가고 싶었는데 너 없어서-”
“음유시인, 어디 있었지? 네가 없어서 나는 한야 형에게 붙잡혀 스쿼트를 했어야만-”
“에이, 도화 형 오랜만에 왔는데 첫 번째 게임 끝나고 저랑 연습해요.”
“어, 좋지.”
서도화가 방에서 나오자 마침 그를 데리러 왔던 멤버들이 아쉬운 티를 내며 달라붙어 왔다.
도화는 자연스럽게 멤버들 사이에 섞여들어 운동장으로 향했다.
운동장엔 멤버들이 잠깐 휴식을 취하는 동안 카메라와 게임 소품 등이 세팅되어 있었다.
“우와. 저희 뭐예요? 운동회 해요?”
주상현이 신나서 달려가 소품을 만지작거리며 물었고 제작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테이블 위 체육복을 가리켰다.
“일단 여러분, 안전한 촬영을 위해 준비된 옷으로 갈아입어 주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게임부터 상당히 체력이 소모될 법한 종목이 나왔다. 멤버들이 준비된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카메라 앞에 서자 테이블은 사라지고 대신 가면을 쓴 제작진들이 우르르 카메라 바깥에 대기하고 있었다.
“이야.”
서도화가 꾹 웃음을 참았다. 검은 고양이 가면을 쓴 제작진들. 비주얼부터가 가히 압도적이었다.
느끼는 바는 다른 멤버들도 비슷한지 다들 카메라 앞으로 들어오며 그들에게 한마디씩 건넸다.
“그냥 가면 벗으시면 안 돼요?”
아덴이 뚱하게 말했고.
“불편하실 것 같아요!”
주상현이 수습했다.
“저렇게 있으니 마치 케이클랍스의 내 부하 같-”
“가면 조금 있다 저도 하나 주세요!”
그리운 그 날을 떠올리며 말하는 케이의 말을 서도화가 서둘러 가로채야 했다. 멤버들의 말에 한야는 그저 재밌다는 듯 하하 웃었다.
제작진 또한 가면을 쓴 스스로가 무척 민망한지 멤버들의 말에 얼굴을 푹 숙이곤 머쓱하게 웃어댔다.
그런데 저 제작진들은 왜 가면을 쓴 채 대기하고 있는 걸까?
서도화가 의문을 가질 때쯤, 피디가 말했다.
“첫 번째 게임은요. 지금까지 오랫동안 함께했던 제작진들과 회포를 푸는 시간! 5대5 피구 게임입니다.”
“피구요?”
“제작진 분들이랑요?”
“네, 맞습니다.”
피디는 적은 숫자에 맞도록 바뀐 피구 규칙을 설명해주었다.
상대 팀을 맞추면 되는 간단한 룰은 똑같지만 인원수가 적기도 하고 어메스 멤버들 중엔 운동 실력이 탈인간… 아니, 수준급인 멤버들이 많으므로 탈락이 아닌 득점제로 진행된다.
상대 팀 인원을 맞추면 1점 득점. 대신 맞은 사람은 탈락하지 않고 계속 게임을 이어나간다.
한 명이 계속해서 표적이 될 수도 있고 인원이 줄지 않음을 이용해 일대다의 득점을 노릴 수도 있는 피구였다.
“자, 이런 게임이구요. 이번 게임에서 이긴 팀에게는 오늘 저녁 식사를 위해 국내 최초 럭셔리 하우스 럭키친에서 준비한 뷔페가 제공됩니다.”
“오! 뷔페!”
“참고로 어메스 팀엔 게임에는 참가하지 않지만 지금까지 어메스를 위해 열심히 노력해준 어메스 팀! 유제이 직원분들도 포함됩니다.”
“예에?”
멤버들이 깜짝 놀라며 카메라 너머 유제이 식구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어메스가 이기면 유제이 직원들과 함께 뷔페를 누릴 수 있고 제작진이 이기면 뷔페는 제작진 차지.
어메스 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뷔페가 아닌 마련된 도시락을 먹어야 한단 말이었다.
아마 어메스 인원이 적어 마련된 뷔페의 양을 생각해 내린 결정인 듯한데, 그 덕분에 어메스의 표정이 완전히 바뀌었다.
“와 이건…….”
어메스 멤버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굶는 건 상관없어도 직원들이 굶는 건 절대 안 될 일이지.
저들이 어메스를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너무 잘 안다.
직원들을 위해서라도 이 게임 절대로 이길 생각이었다.
서도화가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 게임, 어메스가 상당히 유리하다.
“자! 그럼 게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멤버들과 게임에 참여하는 제작진 분들은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 주세요.”
멤버들과 제작진이 경기장 안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게임이 시작되기 전, 경기장 안의 제작진 다섯 명은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더니 이내 결심한 듯 주섬주섬 가면을 벗기 시작했다.
“오오~”
“작정했는데~”
이에 감탄한 제작진들이 재밌다고 웃어댔고 어메스 또한 기선제압을 당한 것처럼 당황하면서도 그들의 비장함에 호응해주었다.
“우, 우리도 뭔가 하자!”
“그럼 신발 끈이라도 고쳐맬까?”
한야의 해맑은 제안에 어메스 멤버들이 단체로 자세를 팍 낮추고 신발 끈을 풀어 다시 고쳐매기 시작했다.
이에 제작진들은 하찮다는 듯 깔깔거렸지만 뷔페가 몹시 먹고 싶었던 유제이 직원들이 큰 목소리로 대신 호응해주었다.
그리고 게임이 시작되었다.
* * *
“허억… 허억……아니, 쟤네 왜 저렇게 잘해?”
“진짜 젊은 게 무섭다.”
“아냐, 나이를 떠나서… 그냥, 헉, 콜록, 쟤네가 잘하는 거야.”
피구가 시작된 지 20분. 경기에 참여한 제작진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점수판을 힐끔거렸다.
어메스 24 : 1 제작진
그나마 1점도 주상현이 공을 잡으려 일부러 손을 뻗다 거리 조절을 잘못해 득점한 것이었다.
“하아……. 우리 뷔페 물 건너갔는데?”
이건 절대 제작진이 어메스 멤버들 뷔페 먹이겠다고 봐주면서 한 게 아니다.
잘한다. 잘해도 너무 잘한다.
아덴, 서도화, 주상현은 물론이고 몸 쓰는 게임에는 젬병일 줄 알았던 한야나 케이도 만만치 않게 잘했다.
아니 오히려 보너스 득점 수준이 아닐까 했던 케이가 미친 듯이 날아다녔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부터 에이스일 거로 생각했던 아덴은 무슨 남들과는 다른 동체시력이라도 가지고 있는지 공을 무서워하는 기색도 없이 정확하게 피하거나 잡아챘고 또 정확하게 상대를 맞춰 무려 100%의 득점력을 보여주었다.
‘백 퍼센트로 득점이라니, 저 정도면 아이돌이 아니고 스포츠 국가대표를 해야 하는 게 아니냐?’
그리고 서도화.
알고는 있었지만 몸을 굉장히 잘 쓴다.
득점률은 0%. 상당히 떨어지지만, 아니 스스로 누군가를 맞출 생각조차 안 하니 지금까지 공을 던진 적도 없지만 대신 피하기는 미친 듯이 잘 피한다.
당연했다. 제작진은 모르지만 서도화는 하루에도 두세 번씩 폭발이 일어나거나, 독이 퍼지거나, 암석이 떨어지고 적이 기습하는 상황에 뭣도 없는 몸으로 살아남은 인간.
피하지 못하면 곧 죽음으로 직결되는 곳에서 데뷔 한번 하겠다고 살아남았으므로 이 정도 일반 인간들의 공 정도는 우습게 피하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케이 또한 무척 잘 피했다.
저 득점률 백 퍼센트를 자랑하는 아덴과 맞붙은 데다가 마왕답게 다수의 공격을 홀로 버티는 것에는 도가 터 있으니.
하지만 의외의 복병 케이에게는 큰 문제가 있었다.
“으하하하하하!!!! 또 내 손에 공이 들어왔구나!!! 이번엔 반드시 죽, 맞춰주지!!!”
“…….”
흥분하면 미친 컨셉러가 된다는 문제였다.
보기 힘겨운 컨셉을 떠나서, 마왕은 피하기는 얄밉도록 잘 피했지만 득점률은 의외로 떨어졌다.
일단 공에 대한 집착과 득점에 대한 욕심이 너무 과하고, 의욕에 비해 공을 던지는 힘과 속도가 안 따라줬다.
적중률은 떨어지고 속도는 안 나는 아리랑볼.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상대팀에게 공을 넘겨주는 경우가 많아지는 거다.
파앗!
“좋았어! 공 잡았다.”
이번에도 안정적으로 공을 잡은 제작진은 멤버들을 둘러보다 한야에게 공을 던졌다.
그럼 헬스광이지만 게임은 잼병이며 다른 멤버들에 비해 움직임이 둔한 한야에게 던지면 어떻게 되느냐.
“형!”
“안돼!”
“주상현! 얼른 한야 형 엄호해!”
“어? 어!”
“응? 하하하!”
한야가 어리둥절하면서도 흐뭇하게 웃었다. 한야의 앞을 아덴과 주상현, 서도화가 알아서 막아준 것이다.
리더인 한야에게 공을 던지면 이렇게 된다.
어디에서 던지든 멤버들이 튀어나와 한야를 지켜주는 것이다.
“아니 얘들 어디서 피구 학원이라도 다녔나?”
어떻게 이렇게 지키는 데에 능숙하지?
마치 어디서 필사적으로 누군가를 지키며 살아왔던 것만 같은 반사적인 움직임으로 공을 막아주었다.
이러한 고로 제작진들은 20분 아니 이젠 30분이 다 지나가도록 득점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공은 멤버들에 의해 한야에게로 넘어갔다.
공을 피하거나 막는 실력은 없지만 한야는 힘도 세고 정확성도 뛰어나 꽤 득점 실력도 좋았다.
“아~ 이 정도로 크게 질 줄은 몰랐는데?”
“조금 자존심 상하지? 다음 게임 더 어려운 걸로 바꾸자고 하자. 이건 안돼. 우리가 다 져.”
제작진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뷔페야 뭐 PPL이고 멤버들이 먹어야 광고가 되니 사실 제작진이 다 이길 수 있었어도 적당히 애타게 만들다가 져줄 생각이었지만, 이래서는 이번 촬영에 쓸 게임의 대부분이 지금처럼 허무하게 끝나버릴 듯하다.
이 생각은 카메라 아래서 지켜보고 있는 메인 피디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애들을 과소평가했네.”
그래도 제작진 중 가장 힘 좋고 실력 있는 사람들 붙여놓으면 비등하게는 될 줄 알았더니.
이래서는 오늘 모든 게임을 제작진 VS 어메스 체제로 진행하려던 계획이 무척 재미없게 흘러갈지도 몰랐다.
피디는 곁에서 그와 똑같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던 작가를 툭 쳤다.
“이번 게임 끝나고 짧게 모이자고. 이래선 안 돼. 내용 바꿔야겠어.”
“뭐, 어떤 식으로요? 원하시는 느낌으로 미리 생각 좀 해두게요.”
피디가 신나게 날뛰는 어메스를 보며 말했다.
“제작진으론 안 돼. 멤버들끼리 싸우게 만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