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9화
삐익!
휘슬소리와 함께 피구 경기가 끝이 났다.
결과는 27 : 2. 어메스팀이 이기다못해 얄미울 정도로 점수를 잘 냈다.
“어우 젊은 애들은 못 이겨.”
“이건 애들이 젊어서가 아니고 실력이 장난 아니더라. 앞에서 보면 무슨 기행 보는 기분이더라니까.”
작가가 들어오는 제작진들을 보며 우린 어떻게 했어도 졌을 거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실제로 경기를 치른 이들은 단지 기가 막히게 잘 피하고 위협적으로 공은 던진다는 느낌만 있었을지 모르지만, 제3자가 봤을 때 어메스는 거의 날아다녔다.
마치 무대 위에서 아크로바틱을 하는 것처럼, 여기서 텀블링을 뛰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로 유연하고 빠릿하게 잘 피했다.
특히 아덴과 케이의 경우 공을 보고 피하는 거 맞나? 싶을 정도로 제작진의 손에서 공이 떨어지자마자 날아오는 각도와 방향을 계산해 피하는 듯 보였다.
하여튼 여러모로 신기한 그룹이다.
“자, 그럼 이번 게임의 승자는 어메스 팀입니다.”
“와아아아아!!!!”
피디의 말에 어메스뿐만 아니라 카메라 뒤에서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고 있던 어메스 팀 스태프들이 함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잘했죠! 잘했죠? 우리 잘했죠?”
주상현은 신나서 스태프들에게 연신 물어댔고 스태프들은 멤버들에게 엄지를 추켜올리며 또 그걸 받아주었다.
그런 스태프들의 모습을 카메라가 휙 촬영하곤 다시 정면으로 돌렸다.
“어메스와 어메스 팀 스태프 분들은 지금 바로 급식실로 이동해 뷔페를 만끽해주시고요. 게임에서 진 우리 제작진들은 사전에 준비한 그냥 도시락 먹도록 하겠습니다.”
“에이.”
제작진들의 실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게임에서 지는 건 어쩔 수 없었던 일이니 다들 납득하며 운동장을 나섰다.
* * *
급식실로 들어오자마자 풍기는 맛있는 냄새와 휘황찬란하게 펼쳐진 각종 음식들.
“와아…….”
꼭 ppl이 아니라도 럭키친이란 뷔페는 고급 요리가 많이 나오는 것으로 유명한 터라, 최근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많은 멤버들의 눈이 돌아가기엔 딱 좋은 상황이었다.
멤버들은 홀린 듯이 뷔페가 된 급식실을 돌며 음식을 담았고 카메라가 세워진 테이블에 자리잡았다.
“미쳤다. 형 우리 여기 본점에도 한번 가보자. 실제로 이런 거 팔겠지?”
“판데. 거긴 거의 음식 가지고 예술을 한다더라.”
“한야 형은 가봤어?”
“하하, 안 가봤어. 다음에 같이 한번 가보자.”
최고급 뷔페에서나 볼 법한 고급 요리들의 향연, 심지어 데코레이션도 잘 되어 있어 한층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나 킹크랩 실제로 처음 먹어봐.”
“뷔페에서 스테이크가 이렇게 본격적인 거 처음 봐.”
멤버들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식사를 시작했다. 입에서 튀어나오는 호들갑들은 결코 ppl이라서 과장해서 하는 칭찬들이 아니었다.
마침 배가 고프기도 했고 맛있기도 했고, 거기다 먹는 데에 진심인 멤버들이다 보니 카메라고 뭐고 평소 하던 대로 대화까지 멈추고 그냥 먹었다.
서도화는 스테이크 하나 먹고 배가 찼던 터라 그냥 앉아 말 그대로 걸신들린 것처럼 고기만 공략하는 아덴과 주상현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잠시 멈췄던 대화는 멤버들이 어느 정도 배가 차고서야 다시 이어졌다.
“근데 요즘 도화 형이랑 케이 형 무슨 일 있어?”
주상현의 물음에 멤버들이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어? 왜?”
갑작스레 모여드는 시선에 서도화가 당황하며 눈을 키웠다. 갑자기 뷔페 이야기에서 화제가 왜 자신에게 튀는 걸까.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멤버들을 둘러보자 한야도 느낀 게 있는지 늘 얼굴에 만연한 미소를 멈추고 도화의 대답을 기다렸다.
“요즘 두 사람이 말이 없어서. 멤버들이 걱정하고 있어.”
서도화가 저도 모르게 케이를 쳐다보았다.
말이 없었던가?
‘아, 그 일 때문인가.’
최근 로건 리 사건 때문에 생각이 복잡했던 터라 혼자 고민하는 일이 잦았다.
멤버들이 알게 모르게 그걸 걱정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숙소에선 들어가자마자 자기 바쁘니 이렇게 촬영 중에서나마 진지한 대화는 하지 못해도 멤버들이 걱정하고 있음을 알려주려는 건가 보다.
서도화는 괜찮다는 듯 미소 지었다.
“아니야. 그냥 생각할 게 좀 있어서.”
“어떤?”
“음…….”
서도화는 난감하다는 듯 카메라를 힐끔 보았다. 카메라 앞에서 할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로건 리 폭로 때 그나마 타격이 덜할 수 있는 방법, 혹은 아예 사건 자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며 매일을 보냈다.
그게 설마 멤버들을 걱정하게 할 줄은 몰랐는데. 평소와 다른 모습에 내심 속을 태웠던 모양이다.
“난 처음에 형들 싸운 줄 알았다니까?”
“나도 그래. 매일 치던 장난도 요즘엔 안 치고. 조용하니까. 언제 한번 물어보려고 생각했었어.”
평소 눈치를 많이 보는 주상현은 그렇다치고 한야까지 이렇게 말할 정도면 어지간히 생각이 많은 게 티가 났다는 거다.
한야는 걱정스레 서도화를 쳐다보다 이내 카메라를 힐끔거리는 그의 신호를 눈치채고 말을 돌렸다.
“그럼 도화는 조금 있다가 우리랑 한번 대화 나눠보고, 케이는? 무슨 일 있어?”
“…저 말입니까?”
한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케이는 ‘흠’ 고민하는 듯하다 고개를 저었다.
“그냥 나만의 문제입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해답이 나올 문제이지요. 이것으로 걱정을 끼쳤다면 미안합니다. 하지만 별것 아니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결국엔 서도화도 케이도 제 고민이 무엇인지에 대해 털어놓지 않았다.
애초에 카메라 앞에서 고민거리를 털어놓는 건 쉽지 않았다.
이게 방송에 나가버리면 멤버들의 사적인 고민을 이내 팬들과도 공유하게 되는 것이고. 지금까지 멤버에게 털어놓지 않을 정도의 고민거리라면 팬들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물론 서도화와 케이는 인간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한 고민이었으므로 털어놓지 못하는 거였지만.
‘일단 나는 절대 말 못 하고.’
서도화가 케이를 쳐다보았다.
저 녀석은 또 무슨 고민거리가 있다는 걸까?
그러고 보니 최근 로건 리 때문에 신경 쓰지 못했다만 케이도 상당히 조용해지긴 했었다.
그나마 평소처럼 시끄럽게 굴었던 게 아까 전의 피구.
그 외엔 사고도 안 치고 이상한 말도 안 하며 조용했다.
서도화와 케이의 대답을 들은 한야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래도 카메라 뒤에서라도 혼자 끙끙 앓지 말고 멤버들에게 상의해줬으면 좋겠어. 도울 거 있으면 뭐든 말하고.”
“응. 고마워.”
“네, 알겠습니다.”
결국 서도화와 케이의 고민에 대해 멤버들이 알아낸 건 없었다.
그러나 사실 이제 촬영 중임을 감안하면 장면 자체는 적절하게 나왔을 것이다.
뜬금없는 고민 이야기였지만 애초에 이 숙소에서 1박 2일씩이나 머물게 하는 건 여기서 지내면서 게임 외 분량을 멤버들의 관계에서 뽑겠다는 말.
평소 하지 못했던 말, 멤버들이 서로를 걱정하고 위하는 모습이 군데군데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분량상으로는 꽤 좋은 그림이었다.
“와 배불러.”
“잘 먹었다. 맛있네. 여긴.”
드디어 아덴과 주상현이 식사를 끝냈다. 조용하면서도 화기애애하게 흘러가던 대화가 멈추고 한야가 물었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뭐할 거야?”
식사 후 다음 게임까진 자유시간. 평소라면 연습실도 있겠다 연습이나 했겠지만 이들은 또 다른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분량을 채워야 했다.
“나는 산책.”
아덴이 말하자 주상현이 질린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형은 또 산책이야? 이러다 방송에 형 산책하는 모습밖에 안 나오겠어.”
“하하, 피구에서 활약했으니까 괜찮아.”
한야가 아덴을 변호해주곤 주상현에게 물었다.
“상현이는?”
“아, 나는 뭐 그냥. 좀 쉬려고!”
주상현이 스태프들을 힐끔거리며 히죽 웃었다.
케이는 묻기도 전에 말했다.
“나도 이번엔 산책이란 걸 해보죠. 아덴. 특별히 함께 가주마.”
“아 필요없는데.”
“너에겐 마왕이란 위대한 존재를 알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 아닌가. 그런 기회를 주겠다는데 왜 마다-”
“알겠으니까 조용히 따라오든가.”
아덴이 성가시다는 듯 말했고 케이는 ‘후훗’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도화가 말할 차례였다. 한야의 시선이 서도화에게로 향했다.
멤버들을 더 걱정시킬 수는 없으니 이제 활동다운 활동을 해야지.
생각하며 사고가 많이 일어날 것 같은 산책팀에 붙으려던 서도화의 어깨에 턱! 누군가의 손이 아프게 올라왔다.
“도화는 형이랑 운동 좀 할까?”
“……형 아까 케이랑 운동하지 않았어?”
한야였다.
한야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계속 권유하듯 서도화의 어깨를 주물렀다.
“형은 온 김에 여기서 우리 애들 돌아가면서 체력관리 해주려고. 하하하!”
“그래…….”
서도화는 반강제로 한야를 따르게 되었다.
간단히 일정을 공유한 멤버들은 아쉽게 인사를 나누며 각자의 할 일을 하기 위해 헤어졌다.
한야와 도화는 헬스장으로, 주상현은 휴식, 그리고 무려 용사와 마왕이 함께 산책을 하기 위해 급식실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