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191화 (191/270)

제191화

“쥐새끼같은 놈.”

아덴이 툭 말을 내뱉곤 인상을 팍 찌푸렸다.

카메라도 마이크도 꺼진 마당에 굳이 친한 척할 필요는 없다.

“어쩐지 조용하다 했다. 어?”

아덴은 마치 제 손에 검이 쥐어져 있는 듯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함께 살며 함께 움직이고 있으니 마왕이 자신과 서도화의 대화를 못 들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말이 없길래 이곳에 정이라도 들은가 했었다. 아니면 다른 꼼수를 계획하고 있나 했더니 사람 하나 기절시키고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 줄이야.

케이는 같잖다는 듯 픽 웃곤 말했다.

“숨기려거든 더 잘 숨겨 보지 그랬더냐. 내 귀가 좋은 건 너나 서도화도 알고 있었을 텐데? 그래서, 어디까지 진행됐지?”

“뭐가.”

“그곳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 말이다. 어디까지-”

“안 알려줘 새끼야.”

“…….”

뭐 이딴 게 다있지?

케이는 짜증스러움에 팍 눈쌀을 찌푸리며 아덴을 노려보았다.

“까불지 마라. 용사여.”

“닥쳐. 내가 미쳤냐? 너한테 우리 계획을 나불거리게.”

하아. 케이는 속으로 화를 삭혔다. 그래, 케이는 마왕이던 시절에도 용사와 대화할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와 동료인 척하며 함께하던 시절 도무지 왜 용사 노릇을 하고 있는지 모를 그의 성질머리에 학을 떼지 않았던가.

게다가 왜 신에게 선택받았는지 모를 돌대가리, 대화보단 일단 두들겨 패고 보는 깡패 같은 모습을 보며 대화가 통할 놈이 아니라고 판단 내렸기 때문이다.

용사와 대화가 통하는 건 그와 협력관계를 맺은 동료와 조력자들 뿐이다.

그렇기에 아덴에겐 적과 대신 대화를 나누고 그걸 또 아덴도 알아들을 방식으로 이해시켜줄 서도화, 아니 동료들이 필요했다.

즉, 아덴은 동료가 있기에 용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네놈과 이야기할 바엔 서도화를 데리고 오는 것이었는데.”

“도화면 뭐 다른 대답이 나올 것 같냐? 그래, 말 나온 김에 까고 물어보자.”

“……용사여. 말을 저렴하게 하지 말라. 너는 이제 어엿한 아이돌이 아니냐.”

“도화나 이곳 세계 사람들 앞에서나 아이돌이지 네 앞에선 한 번도 아이돌인 적 없다. 늘 용사의 마음으로 싫어했지. 아무튼 물을 테니까 대답해라.”

“……하아, 들어나 보겠다. 이 어린놈의 인간아.”

‘잘 있어라! 화장실도 열악한 이세계! 중2병 마왕에 사이코 용사! 안녕!’

케이는 이 세계로 넘어오기 전 최후의 순간에 머릿속으로 들리던 음유시인의 독백을 떠올렸다.

왜 저딴 생각을 하며 이 세계로 향하는 텔레포트를 여나 싶었는데. 이젠 사람치곤 정이 없던, 이별을 기뻐하던 음유시인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동료였음에도 어지간히 스트레스를 받았던 거겠지.

아덴이 물었다.

“넌 왜 굳이 그 세계로 돌아가고 싶은 거냐?”

“왜라니. 그곳에 내 모든 것이-”

“아무것도 없잖아.”

“……뭐?”

거침없는 아덴의 말에 케이는 뒤통수라도 두들겨 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것도 없다.

아덴의 말은 칼날처럼 케이를 베고 지나갔지만 그럼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세계로 돌아가봤자 케이가 돌아갈 곳은 없었다.

그의 영지인 케이클랍스는 무너졌고 부하들은 모두 죽었거나 겨우 살아 몸을 숨긴 채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을 터.

심장을 잃은 마왕은 그런 곳에 돌아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케이에겐 뼈에 사무칠 정도로 아픈 말이었지만 이미 마왕에 의해 가족을 잃고 동료를 잃고 세상을 잃은 아덴이 굳이 그 아픔을 헤아려줄 필요는 없었다.

아덴은 그 앙금을 담아 더 했다.

“어? 말을 해봐. 그곳으로 돌아가서 뭐 할 건데? 할 수 있는 게 있긴 해? 그곳에 가 봐야 넌 사람들에게 붙잡혀 죽을 텐데? 아, 네 소원이 그거랬나? 네 영지에서 죽는 거.”

아덴은 말을 마치곤 픽 웃었다.

그 소원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의미였다.

왜냐면 이제 그곳에 케이클랍스란 곳은 없으니까.

지난번 하이넬과 통신석으로 대화했을 때 하이넬이 말했다. 케이클랍스는 완전히 무너져 무(無)의 공간이 되었다고.

케이가 주먹을 꽉 쥐었다.

화가 나지만 모두 사실이었다. 지금으로선 돌아가 봐야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럼에도 케이는 돌아가고 싶었다.

심장의 역할을 했던 핵이 사라졌어도 모든 게 무너졌어도 그곳에 돌아가면 어쩐지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나 따위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이곳과는 달리 사방에 풍부하게 널려 있는 마나.

은둔하며 조금씩 마나를 쌓고 숨은 부하들을 찾아 다시 한번….

비록 꿈같은 이야기일지 몰라도.

그렇게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세상을 지배하지 않으면 자신은 뭘 위해 지금까지 열심히 한 것인가.

아덴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선 곧 울 것 같은 케이를 보며 넌지시 말했다.

“그냥 여기서 사는 게 어떠냐?”

“……용사, 또 그딴 헛소리를-”

“헛소리 아닌데.”

카메라도 없겠다, 마이크도 없겠다, 마왕이 먼저 말을 꺼냈겠다, 이를 말릴 서도화도 없겠다.

기다렸다는 듯이 쏘아붙이던 아덴은 이번만큼은 차분히 말했다. 이번엔 비꼬는 게 아니고 진짜로 제안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케이가 입을 꾹 다물고 그를 노려보자 아덴은 심드렁하게 그 눈빛을 무시하곤 말했다.

“그냥 여기 살아. 그럼 안 죽이고 너그럽게 봐줄게.”

마왕은 인간의 몸으로 마족을 뛰어넘는 힘을 키워 마족의 정점에 선 자.

비록 이 세계에선 힘없이 아이돌을 하고 있으며 조금만 연습해도 체력이 떨어져 후들거리는 팔자지만 결국 언젠가는 이전과 같이 힘을 키워 이 세계에 막대한 피해를 줄 테지.

그렇기에 아덴은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전 그를 죽여 모든 싹을 없애버리고 돌아가려 했다.

그게 자신의 둘도 없는 친우, 이제 곧 이곳에 혼자 남게 될 도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기에.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마왕. 그를 살려둘 생각이다.

“도화가 네가 필요하대.”

마왕이 재기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니 재기하기 전에 인간처럼 늙어 뒈져버리면 좋고, 그게 아니라도 마왕이 있는 곳엔 새로운 용사가 태어나기 마련이니.

“그러니까 살고 싶으면 여기서 살아. 원래 세계로 돌아올 생각하지 말고.”

아덴은 잠시 생각하다 다시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급하게 대화 자리 만들 만큼 시간이 촉박한 것도 아니거든. 돌아가기까진 적어도 몇 년은 기다려야 한다니까.”

아덴은 하이넬이 좌표 값은 받았어도 시간은 좀 걸린다고 하길래 그냥 천천히 하라고 했었다.

바로 가족들의 무덤을 찾아가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그 세계엔 이미 평화가 찾아왔고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서도화와 영원한 이별을 하기 전 최대한 길게 함께 시간을 보내며 작별을 준비하고 싶었으니까.

그렇다면, 케이에게도 고민할 시간은 충분할 터.

“한번 잘 생각해봐. 그곳에 가서 모든 비난을 받아들이고 죽든가 이곳에서 사랑받는 만큼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남든가.”

어느 쪽이든 케이의 마음이 편안해지는 선택지는 없겠지만.

“그리고 다음엔 나 말고 서도화 불러서 대화해라. 난 너랑 대화하기 싫어.”

아덴은 기절한 카메라맨과 카메라를 챙겨 산을 내려갔다.

케이는 멀뚱히 그 자리에 선 채 한참이나 움직이지 못했다.

그곳에서 죽을지 이곳에 살아남아 그토록 싫어하던 인간들에게 사랑받으며 죄책감 속에서 살든지.

‘내가 왜, 내가 왜 죄책감을 느껴.’

날 버리고 짓밟았던 인간들에게 왜 죄책감을 느껴. 그럴 리 없다.

그 순간.

케이는 제 몸이 무거워짐을 느꼈다. 케이의 눈이 커졌다.

가슴께, 복부, 이내 몸 전체로 퍼지는 따스한 기운.

무겁게 그러나 힘차게 울리는 고동.

심장이었다.

*     *      *

“자아! 마지막으로 한번 더!”

“허억, 허억, 마, 마지막이 몇번째야…….”

“도화야! 자세 점점 망가지지! 복부에 힘 제대로 안 주면 허리 부러진다!”

“으윽!”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상담 더 오래할 걸.

서도화는 뒤늦게 왜 말을 얼버무리며 상담을 일찍 끝냈을까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한야는 상담이 끝나자마자 눈을 빛내며 본격적으로 서도화를 운동시켰다.

그동안 체력이 좀 떨어졌다고는 생각했지만 한야의 pt는 멀쩡할 때 해도 힘들 것이다.

차라리 등산을 같이 가면 좋았을텐데!

“형, 진짜로 다리 한 번만 내리게 해줘. 한 번만.”

“어허, 안돼. 지금 멈추면 다시.”

“으헉, 케이도 이런 식으로 한 거야? 어쩐지 애가 요즘 쉽게 안 지치더라.”

“도화가 멀쩡히 입 여는 거 보니까 아직 할 만한가 보네.”

제길. 노래 한번 부를까?

한 번만 부르면 어느 정도 체력도 회복되지 않을까?

pt 하다 노래 부르는 거 이상하게 보일까?

‘이상하게 보이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우리 팀은 원래부터 이상했어.’

“도, 동해물과-”

서도화가 조용히 노래를 부르려던 순간.

[두 번째 게임 시작합니다. 모두 강당으로 모여주세요.]

중앙방송이 울렸고 도화는 울기 직전 겨우 한야의 pt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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