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2화

도화와 한야가 강당에 도착하자 자연스레 먼저 도착해있던 멤버들이 두 사람에게로 모여들었다.

“도화 형 못 본 새에 살 빠졌다?”

주상현이 키득거리며 서도화에게 장난을 쳐댔다.

운동을 얼마나 열심히 한 건지 마치 연습이 끝난 케이를 보는 것 같다. 그만큼 그 잘생긴 얼굴이 상당히 핼쑥해졌다는 말이다.

“그럴 만도 해.”

서도화는 말도 말라는 듯 상현의 말을 부정하지 않고 손을 휘저었다.

그냥 놀자고 갔다가 죽을 만큼 본격적으로 운동하고 왔으니.

다행히 서도화가 노래를 부르기 직전 방송이 울린 덕에 그는 살아서 멤버들을 볼 수 있었다.

“멤버들 어딨어? 멤버들 왔으면 얼른 카메라 앞에 서주세요!”

멤버들이 자기들끼리 떠드느라 느릿느릿하자 촬영 준비를 마친 제작진이 눈치를 주었고 그제야 멤버들을 속히 달려 카메라 앞에 섰다.

그리고 곧바로 두번째 게임이 시작되었다.

“여러분 잠깐이었지만 잘 쉬셨나요?”

“네!”

“좋습니다. 어? 도화 씨는 뭔가 굉장히 힘들어 보이는데 괜찮으세요?”

메인 피디는 서도화에게 안부를 물으면서 아까 전 주상현이 웃듯 웃었다.

오기 전 한야에게 호되게 운동당하고 있었던 걸 알면서 묻는 말이었다.

서도화는 기꺼이 기대에 맞는 대답을 꺼내놓았다.

“죽을 것 같아요. 이제부터 한야 형이랑 운동 안 하려고요.”

도화가 그렇게 말하자 한야는 진심으로 아쉽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메인 피디는 서도화의 말에 하하 웃으면서도 스몰토크는 끝났다는 듯 바로 게임 진행을 이어나갔다.

“자, 두 번째 게임은 바로 풍선 뻇기 게임입니다.”

“오, 풍선 뺏기.”

“설명이 끝나고 나면 저희가 여러분 각자에게 하나씩 풍선을 나누어드릴 건데요. 끝까지 풍선이 터지지 않고 살아남은 멤버가 이기는 게임입니다.”

“술래잡기 같은 느낌인가요? 아니면 강당에서 하는 미니게임?”

피디의 설명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는지 한야가 보충하여 물었다.

피디는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술래잡기 같은 느낌입니다. 여러분들은 제작진이 준 풍선을 허리춤에 묶고 건물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도망치고 피하고, 결국 다른 멤버들의 풍선을 터트리면 이기는 거죠.”

몸은 많이 쓰겠지만 그냥 보이는 풍선은 내것 빼고 다 터트리면 되는 간단한 게임이었다.

‘단순함에 비해 재미는 확실하고.’

피디의 머릿속엔 이미 그림이 다 그려져 있다.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며 탈락할지, 누가 하드캐리 할지 얼마나 재밌을지 말이다.

원래는 이번 게임 또한 어메스 VS 제작진 구도로 가려 했었지만 생각보다 어메스가 너무 게임에 강한 멤버들인 바람에 어메스끼리의 개인전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잘한 선택이었다. 누가 봐도 얼굴도 모르는 제작진과 어메스가 겨루는 것보단 멤버들끼리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게 훨씬 보기 좋았다.

다만 사이가 좋은 멤버들인 만큼 이들끼리 싸워야만 하는 명분은 확실히 만들어주었다.

“이번 게임엔 우승 포인트 외에도 또 다른 상품 하나가 걸려있는데요. 들어와 주세요.”

피디의 말에 제작진이 상품이 올려진 붉은 보 테이블을 끌어다 멤버들 앞에 가져다 놓았다.

상품을 본 서도화와 한야, 주상현의 눈빛이 바뀌었다.

아주 적절한 반응에 피디가 씨익 웃으며 상품의 정체에 대해 말했다.

“이번 라운드의 상품은 30만 원 상당의 블루투스 이어폰입니다.”

“이거 엄청 가지고 싶었는데.”

주상현의 중얼거림대로 이 이어폰은 굉장히 탐나는 상품이다.

사양은 미치도록 좋지만 사양을 감안하고서라도 가격이 비싸 이제 막 데뷔한 신인 아이돌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이어폰.

서도화는 블루투스 이어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가지고 싶다.’

상품이 멤버들의 승부욕 하나는 제대로 돋궜다.

피디는 멤버들의 반응을 만족스럽게 지켜보다 문득 세 사람과는 달리 별 반응이 없는 아덴과 케이를 쳐다보았다.

‘쟤네는 별로 탐 안 나나?’

이미 있는 물건이라거나.

뭐, 그래도 상관없긴 했다. 덴과 케이는 상품이 없어도 서로를 이기기 위해 미친 듯이 열심히 할 놈들이니까.

피디가 외쳤다.

“풍선 뺏기를 진행할 장소는 이 숙소 건물 전체입니다. 자유롭게 움직이되 산책로를 포함해 건물 담장 밖으로는 절대 나가지 마세요.”

“네!”

피디가 호루라기를 들었다.

“본격적으로 게임이 시작되기까지 5분 정도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원하는 장소로 이동해 게임을 시작하시면 되고요. 본격적인 게임 시간은 5분 후 중앙방송으로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피디가 말을 마치고 호루라기를 불었다.

그리고 멤버들은 강당에서 나와 게임을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서도화가 향한 곳은 보컬 녹음실. 좁은 방안에 각종 기기들이 꽉 채워져 있어 어쨌든 몸을 숨기기 적당한 곳이었다.

거기다 방음이 잘 되다 보니 카메라 의식해서 뭔가 말하다 걸리는 일도 적을 거고.

‘상황 봐서 이동해야 하긴 하겠지만.’

서도화가 난감함에 한숨을 푹 쉬었다.

‘이어폰 가지고 싶은데.’

아마 무리겠지? 무리일 거다.

왜냐하면 이 게임의 최약체는 다름 아닌 서도화니까.

팀전이 아닌 멤버들끼리의 개인전이라면 오히려 케이보다 서도화가 게임에서 불리하다.

일단 다른 멤버들에 비해 운동능력이 뛰어난 체력 좋은 멤버도 아니고, 사실 남들보다 승부욕도 떨어진다.

나는 내 갈 길이나 열심히 간다.

꾸준히 하다 보면 얻는 것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나는 나를 믿는다.

연습생 시절, 그 치열한 경쟁사회 내에서도 누군가를 이긴다기보단 묵묵히 제 실력을 쌓아가며 자리를 보존했다.

그게 서도화의 승부욕이었으며 나날이 성장했던 이유이며 또 저쪽 세계에서 힐러로서 잘 적응해나갔던 이유였다.

…그건 그렇다 치고, 체력도 별로 없는 그에게 이 게임은 너무나 불리했다.

예능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한야와 주상현은 피지컬과 게임의 이해도가 뛰어나고, 아덴과 케이는 서로를 잡겠다고 날뛸 거고.

물론 이어폰도 가지고 싶었지만 지금 게임에서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어디서 분량을 뽑지?’

이게 제일 문제였다. 게임과 승부에 진심인 멤버들 사이 승부욕이 있긴 하지만 열정은 없는 서도화.

과연 그는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분량을 쟁취할 수 있을까.

어설픈 마음가짐으로 행동하다간 빠르게 탈락해 분량이 통째로 날아갈수도 있을 터.

치직-

[어메스 여러분, 주어진 시간인 5분이 지났으므로 바로 게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숨기 위해 문을 잠근다거나 하는 건 금지입니다. 그럼 게임 시작!]

게임이 시작되었다.

서도화는 자신을 따라온 카메라와 아직은 조용한 통유리 바깥의 복도를 보며 생각했다.

물론 체력은 딸리지만 서도화에게도 다른 멤버들과는 다른 그만의 장점 아닌 장점이 있었다.

‘잔머리를 굴리자.’

바로 잔머리였다.

게임 괴물들 사이에서 블루투스 이어폰을 쟁취할 수 있는 잔머리.

그 세계에서도 서도화는 늘 무기력하다고 잔소리를 듣거나 절벽에서 뛰어내릴 능력도 없어 동료들에게 업혀 가거나 했었지만 작전을 짤 때만은 그의 영향력이 막강했다.

용사 일행이 마왕과의 전쟁에서 펼쳤던 뛰어난 전술의 대부분엔 서도화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들어가 있었다.

어떻게 하면 상황을 유리하게, 쉽고 빠르게 유도할 수 있을까.

이런 면에선 서도화가 무척 뛰어났다.

그런 의미로 잠시 고민하던 서도화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제 발로 녹음실을 나섰다.

‘동료가 없어서 승부에 불리해?’

그럼 동료를 만들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가장 좋은 멤버는 당연히 아덴, 그리고 주상현이었다.

*     *      *

한편, 아덴은 이 상황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짜증 나네.’

그가 푹 불만스런 숨을 내쉬다 카메라를 힐끔 보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브이 자를 그려보았다.

“이기겠습니다.”

도화가 말하기를 카메라 앞에서는 절대로 불만을 표출하면 안된다고 했다.

그러나 속은 꽤 쓰라렸다.

동료와의 겨루기. 친선 경기임을 알고는 있지만 아덴은 동료와 떨어져 혼자가 되면 늘 기운이 축 처지곤 했다.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던 그이다 보니 팀원들끼리의 싸움, 모두가 흩어져 홀로 이겨내야 하는 전투는 무척 외롭고 하기가 싫은 거다.

지킬 것이 있기에 용사였다. 소중히 해야 할 것이 있으니 움직이는 자다.

일단 이 기회에 옳다구나 케이와 오랜만의 승부를 보는 건 좋았지만 그 또한 멤버들의, 적어도 같은 동료였고 같은 서사를 공유한 서도화 앞에서 해야만 의미 있는 짓이었다.

‘왜 동료들끼리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그렇게 속으론 불만을 가득 품고 눈으로는 열심히 케이를 찾고 있을 때.

툭툭-.

누군가 뒤에서 어깨를 두드렸다. 아덴의 표정이 활짝 폈다.

이 향기. 서도화의 향이었다.

“도화!”

아덴이 재빨리 뒤를 돌아보자 서도화가 조용히 하라는 듯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곤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