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194화 (194/270)

제194화

케이는 끌려가는 주상현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주상현 탈락, 주상현 탈락]

그리고 중앙방송이 흘러나와 주상현이 정말로 탈락했음을 확실시해주었다.

케이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꽃이 지듯 저리 허무하게 가는구나.”

“……푸학!”

케이를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던 VJ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매번 케이를 촬영할 때마다 생각하는 거지만 어떻게 저런 말을 어색함도 부끄럼도 없이 할 수 있는지 참 대단했다.

‘저런 애들이 캐릭터 뜨는 거구나.’

간혹 방송을 하다 보면 현실에선 찾아보기 힘들 법한 독특한 캐릭터로 대세가 되는 연예인들이 있다.

‘얘 평소에도 이래요. TV에 보여지는 거랑 차이가 없어요.’

절대 현실에 있을 법하지 않은 캐릭터인데 카메라 뒤에서도 이렇다는 지인들의 증언들.

전부 다 대본이고 거짓이라고 생각했는데 케이를 보면 모두가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걸 실감한다.

비주얼만으로도 이미 큰 화제와 인기를 모았고 현 아이돌업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얼굴로 알려진 케이가 입만 열면 한 마디, 한 마디가 주옥같다.

무척 매력 있는 캐릭터였다.

‘이런 캐릭터를 잘 살려야하는데.’

유제이가 생각이 있다면 케이는 앞으로 예능에서 자주 볼 것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한 마디 내뱉곤 다시 의욕없이 걷기만 하는 케이를 찍고 있을 때.

“케이?”

지나가다 케이를 발견한 서도화가 걸음을 멈추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서도화. 여긴 어쩐 일이지?”

“그냥 지나가던 길이었는데? 네가 보이길래 말 걸었지. 반갑다.”

케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도화가 당연스럽게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서도화는 할 말이 있거나 협박할 때는 제외하면 케이에게 다가오는 경우가 없었다.

“왜 오지?”

“왜 오기는. 내가 내 멤버 보러 오는 것도 안 돼?”

서도화는 케이를 보며 웃었다. 저거 왜 저러지. 케이는 서도화의 웃음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며 목적이 뭐냐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아무리 카메라 앞이라고 해도 불필요하게 호의적인 건 분명 용건이 있기 때문이었다.

주상현은 몰라도 서도화는 무조건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서도화는 용건이 있는 게 맞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곤 케이에게 더 가까이 붙었다.

“야 잠깐 가까이 와봐. 우리 작전을 짜자.”

“무슨 짓이냐! 무, 무슨 작전!”

케이가 제 어깨를 감싸는 서도화의 팔을 쳐냈지만 그의 손은 아무렇지 않게 다시 케이의 어깨로 안착해 조금 더 가까이 당겼다.

“아, 좀 조용히 하고. 일단 들어봐.”

“도화. 너 또 무슨 잔꾀를 부리려고.”

“쉿.”

서도화는 조용히 하라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며 몸을 낮추었고 케이는 싫어 죽겠다는 표정을 하면서도 서도화가 시키는 대로 입을 다물고 몸을 낮췄다.

서도화는 아덴 버금가게 짜증 나는 놈이지만 일단 무슨 말을 하려고 아덴이나 다른 멤버들이 아닌 자신에게 이러는지는 들어봐야겠다.

서도화가 수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야, 우리 잠깐 동안 같이 다닐래?”

“……뭐?”

“같이 다니자고. 둘이서 다른 멤버들 싹 다 탈락시켜버리자.”

이게 갑자기 왜 이러나?

케이가 정색하며 몸을 뒤로 뺐다.

“내가 너랑 왜 같이 다녀야 하지? 이유를 대라. 몹시 의심스럽다.”

케이에게 굉장히 적대적인 아덴. 그보다 못 믿을 놈이 서도화다.

아덴은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기라도 하지 서도화는 늘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흘리며 뒤통수를 때리지 않던가.

케이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를 쳐다보자 서도화는 이번엔 진짜라는 듯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유? 그걸 몰라서 묻는 거야? 당연히 이기기 위해서지.”

“……이기기 위해서?”

“잘 생각해봐. 케이. 아덴이나 한야 형도 있는데 내가 왜 굳이 너한테 제안하겠어.”

“왜지?”

서도화는 안 믿는다면서 어느새 제 이야기를 경청하는 케이를 보며 코웃음 쳤다.

정말로 핵과 함께 어딘가 나사도 빠져버린 건지. 아니면 이런 게임 가지고는 그다지 경계할 필요를 못 느끼는 건지 참 빨리도 속아 넘어온다.

서도화는 웃음을 참고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

“나 혼자선 아덴과 한야 형을 절대 못 이길 것 같기 때문이야. 그건 너도 그렇겠지?”

케이는 그제야 서도화가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깨달았다.

세계 최강의 소드마스터 아덴. 괴물 같은 힘을 자랑하는 놈이다.

그리고 한야. 아마 저 세계의 사람이었다면 분명 아덴의 동료가 되어 최후까지 남아 자신을 죽이려 들었을 사람이다. 그 정도로 힘도 체력도 강하다.

그에 비해 서도화는 힘도 체력도 없다.

물론 보통의 일반인들과 비교하면 서도화 그도 뛰어난 편이었지만 아덴, 한야와 비교하면 매우 허접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케이는 그런 서도화보다 훨씬 더 약하다.

케이가 비열한 표정으로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힘을 합쳐 일단 괴물 같은 멤버들부터 처단하자는 말이군. 아주 비열해. 맘에 든다, 음유시인.”

“……어어 맞아. 바로 그거지.”

서도화는 정말로 그들을 이기고 싶은 것이다.

아덴과 한야는 혼자선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

그러니 일단 혼자서도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케이를 제 편으로 끌어들여서 두 사람을 처리한 뒤 케이를 처리할 작정일 테지.

서도화는 언젠가 배신한다. 그러나 케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제안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서도화가 그렇듯 케이도 지금으로선 아덴과 한야를 이길 방법이 없으니까.

딱히 승부욕에 불타오르지 않았던 이유도 어차피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없다는 걸 이론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케이는 이 세계로 넘어온지 1년이 다 되어서야 인정했다.

자신의 힘이 약해졌다는 것을.

케이는 서도화와 같은 편이 되었을 때 자신에게 돌아올 이점들을 생각해보았다.

서도화는 무척 뒤통수를 잘 치는 성격이라 조심해야겠지만 솔직히 같은 편이라면 꽤 든든한 멤버였다.

거기다 꽤 승률도 좋았고.

일단 서도화를 이용해 다른 멤버들을 처단한 다음 그가 방심한 찰나 바로 없애버리면 되겠지.

케이가 비죽 웃었다.

“좋다. 도화. 네 뜻에 따르지. 오랜만의 합동 작전이 되겠군.”

“오랜만이라고 하지 마. 그때의 생각은 하기도 싫으니까.”

서도화는 예전 케이가 동료들을 속이고 동료인 척하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만 해도 아덴 버금가는 건장한 모험가였기에 힘이 약한 서도화와 페어를 이루어 함께 작전을 수행하기도 했었다.

지금으로선 그 모든 게 기만이었음을 알곤 언급하기도 싫은 기억이 되었지만.

아무튼 어쨌든 케이는 서도화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제부터 이들은 한편이 되어 함께 움직이게 될 것이다.

서도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그럼, 우선 첫 번째 목표부터 정해야지. 누가 좋겠어?”

서도화의 물음에 케이가 즉답했다.

“한야 형부터 탈락시키도록 하지.”

서도화가 씨익 웃었다.

“너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케이라면 한야부터 없앨 것이다. 왜? 가장 증오스러운 복수의 대상인 용사는 반드시 마지막 차례로 두고 제대로 희열을 느껴야 하니까.

“그럼 가자.”

“좋다.”

서도화와 케이는 숙소 안을 샅샅이 뒤졌다. 한야는 어디로 가서 숨은 건지 꽤 찾기가 힘들어 시간이 걸렸다.

“아니, 이 형은 어디 간 거야. 알고 보니까 어디 볕 좋은 곳에서 놀고 있는 거 아니야? 이렇게 안 보일 수가 없는데.”

서도화가 중얼거렸다. 일단 기숙사 내에는 없는 듯한 한야. 찾는 데에 이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줄은 생각 못 했는데.

정신없이 멤버를 찾는 서도화의 뒤를 쫄쫄 쫓아다니며 케이는 어느 새부터 다시 생각에 잠겼다. 아까 탈락한 주상현을 만나기 직전까지 했던 생각들의 연장선이다.

인간에게 사랑받으며 죄책감 속에 살 건지. 그곳으로 넘어가 죽을 건지.

그렇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결국 툭 서도화에게 물었다.

-너는 내가 남길 바라나? 이 세계에.

“뭐?”

서도화가 힐끔 카메라를 보곤 다시 케이를 쳐다보았다.

아 이 자식 거. 카메라 앞에서 그런 말 하지 말랬지.

눈빛으로 눈치를 주다 문득 케이가 말이 아닌 머릿속으로 질문했음을 깨달았다.

그걸 왜 지금 묻지? 하필 이럴 때.

서도화는 계속 움직이며 눈으로는 한야를 찾았고 머릿속으로는 케이의 뜬금없는 말에 대답해주었다.

‘헛소리 말고 한야 형이나 찾아. 머릿속으로 말 걸지 마. 기분 안 좋아.’

-내가 이 세계에 남아도 된다고 생각하나?

케이의 질문에 서도화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는지 걸음을 계속하며 한야를 찾는 것에 집중하는 듯 보였다.

‘하긴 지금은 너무 성급했다.’

케이는 짧게 생각하곤 게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게임을 진행하는 상황에 머릿속으로 말을 걸면서까지 물어볼 만한 화제는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서도화와 함께 한야 찾기에 열중하려는 찰나.

“네가 필요하긴 하지. 지금으로선.”

서도화가 짜증도 귀찮음도 없이 중얼거렸다. 마왕을 대하는 게 아닌 같은 멤버에게 말하는 평범한 어조였다.

“게임 해야 하잖아.”

‘앨범도 계속 내야 하고, 활동에 문제 생기면 안 되고.’

중얼중얼 서도화는 말로서 생각으로서 케이가 그 세계로 넘어가서는 안 될 이유들을 나열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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