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195화 (195/270)

제195화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서도화가 고개를 내저으며 생각을 갈무리했다.

왜 성의껏 케이가 이곳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나열하고 있었는지 원.

케이 저 마왕 녀석의 표정을 보라.

서도화가 마치 숨겨두었던 속내라도 내비친 것처럼 반응하고 있다.

‘왜 숨겨둔 속내라도 있으면 진짜로 여기서 살게?’

아니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괜찮다. 그냥 계약기간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그룹이 온전할 수 있도록 사고 치지 않고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그 이후엔 깔끔히 돌아가 줘도 뭐.

‘……아닌가? 차라리 그 세계보단 이곳에 있는 게 나을까?’

그렇게 날뛰던 마왕이 이 세계에선 얌전한 이유가 있었다.

이 세계엔 재기를 노릴 법한 자그마한 마나를 모으기도 힘들 정도로 마나량이 부족한 것이다.

애초에 이 세계는 마나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니까.

다른 세계에서 흘러들어온 나노 단위의 마나를 모아가지곤 지금처럼 제 특기 마법인 세뇌 정도가 고작일 터. 물론 그것만으로도 현대에선 상당히 위협적이지만 말이다.

‘저쪽 세계로 넘어가면 금방 마나를 모아서 재기를 도모하게 될 텐데.’

그래, 여기서 방송활동 하며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저 비주얼로 허당 짓 하는 건 솔직히 서도화가 봐도 웃기니까. 예능에서 잘 먹힐 캐릭터였다.

‘어디로 가든 계약기간만 채워줘라. 제발.’

한편 서도화의 생각을 모르는 케이는 이상하게 찌푸린 표정으로 그의 뒤통수를 쳐다보았다.

저 뒤통수의 주인ㅇ느 기웃거리며 한야를 찾고 있었다.

‘도통 생각을 알 수 없는 자이니라.’

그렇게 자신을 싫어하다가도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어김없이 애매한 반응을 보이곤 했다.

되레 가기 싫어하는 눈치를 보이는 날도 있었다.

참 알 수 없는 사내이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서도화는 지금 당장은 케이가 돌아가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

기회만 있으면 바로 치워 버리고 싶어 하는 게 아니고 지금은 이곳에 머무르며 활동을 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는 것.

‘……돌아가지 않는다면, 계속 이런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지금처럼 평온하고, 따스하고 아름다운 나날을 계속 보낼 수 있는 걸까?

평생을 고독과 싸우며 살아왔다.

뼈에 사무칠 정도의 차가움을 딛고 늘 꼿꼿이 서서 강인해야만 살아남는 마계의 정점에 섰다.

그렇게 마왕이 되어 인간들에게 복수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아왔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 세계로 온 뒤 그토록 갈망하던 목표가 조금씩 옅어지고 흐려졌다.

보이지 않는 힘에 당한 게 아니다. 그 스스로가 해야 할 일들을 자꾸만 잊고 되레 지금의 생활에 생각이 한정되어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고 있다.

“…….”

어쩌면 평안을 얻고 싶었던 걸까. 이제 그만 고독하고 치열하게 싸워온 나날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냥 여기서 계속 살까.’

용사의 말처럼.

서도화의 말처럼.

그냥 다 집어치우고 인간으로서의 삶을.

어린 날 인간에게 겪었던 상처와 시림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이곳에서.

‘이곳에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이곳에서 살고 싶다.

처음으로 케이가 제 망설임에 확신을 내릴 때, 서도화가 툭툭 그의 어깨를 치며 속삭였다.

“형이다.”

“뭐?”

“그새 딴생각했지? 한야 형. 저기.”

케이가 도화의 시선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한야가 언제나와 같은 웃음을 지으며 카메라에 대고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딱히 누군가 풍선을 가로챌까 걱정하는 기색도 없었다.

‘절대 질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

실제로 맞는 말이고. 평범히 생각했을 때 힘으로도 머리로도 한야를 이기기는 꽤 어렵다.

‘한야 형을 제외한 남은 멤버 전부가 덤비지 않는 이상은.’

서도화가 씨익 웃었다.

그러곤 별생각 없이 뾰로통한 얼굴로 한야를 지켜보는 케이에게 말했다.

“여기는 우리 둘이서 힘을 합쳐야 해.”

“…우리?”

“그래, 네가 협조를 잘 해줘야 한야 형을 탈락시킬 수 있어. 안 그럼 우리 둘 다 한야 형한테 탈락당할걸?”

“뭘 하면 되지?”

서도화가 한야를 찾는 내내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던 케이지만 이기고는 싶었는지 금방 눈빛이 돌아왔다.

서도화는 케이에게는 잘 보여주지 않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역할이 정말 중요해.”

케이의 눈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서도화가 한야를 가리켰다.

“네가 한야 형한테 뛰어드는 거야.”

“……뭐?”

“네가 일단 한야 형한테 달려들어서 시선을 끌어. 넌 잘생겼으니까 나보다 네가 가는 게 훨씬 시선 몰이가 되지 않겠어?”

그리고 케이가 자존심 상해할까 봐 말은 안 했지만 종이 인형처럼 팔랑거리는 케이가 달려든다면 한야는 제압하면서도 그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느라 주변에 신경을 쓰지 못할 것이다.

“그렇군. 아름다움으로 시선을 뺏어야 한다면 적격자는 나밖에 없겠어.”

“……그래.”

진지하게 지랄하네.

서도화가 속으로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는 그 대답이 몹시 만족스러운 듯했지만 만족스러움과 이 일을 수행하는 건 또 다른 문제라는 듯 ‘흐음’ 작게 침음을 흘렸다.

“그러나 도화. 네 의견은 높이 사겠으나 이를 이행하기엔 무리가 있다.”

“왜?”

“나도 분수는 안다.”

푸훕! 아까부터 케이만 보면 웃음이 나는 듯 줄곧 웃음을 참고 있던 카메라맨이 또 웃음을 터트렸다.

케이는 그를 밉지 않게 흘기곤 말을 이었다.

“지금의 나로선 한야 형을 못 이겨. 체급 차이가 너무 나. 그건 너도 알고 있잖나. 너 설마 날 희생시킬 생각은-”

“아니야. 널 왜 희생시켜? 중요한 전력인데.”

“……그럼?”

중요한 전력이라고 했다.

케이는 서도화의 말이 나쁘지 않은지 눈썹을 까딱이며 되물었다.

“네가 달려들어서 시선을 끌었을 때 내가 뒤에서 한야 형을 덮쳐서 풍선을 터트릴 테니까.”

“…….”

말 그대로 협동. 힘을 합쳐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는 행위였다.

케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빤히 바라보자 서도화는 왜 그러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왜, 못하겠어? 그럼 내가 시선 끌어보고. 네가 풍선 터트릴 수 있겠어? 키는 내가 더 커서 내가 하겠다고 한 건데.”

“아니, 할 수 있다.”

케이가 비장하게 말했다. 서도화는 모처럼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케이가 기특하다는 듯 등을 다독였고 두 사람은 다시 한야를 주시했다.

“……지금.”

그리고 케이가 도화의 신호에 맞춰 잽싸게 한야에게로 달려갔다.

“어어? 케이? 거기 있었어?”

갑자기 케이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자 한야는 놀란 듯 한 발짝 물러섰다.

“케이는 여기서 찾, 어?”

대화를 시도해보려는 생각이었나 본데 안타깝게도 케이는 서도화와 계획을 짜며 한야를 탈락시킬 생각만 하게 되었으므로 통하지 않았다.

케이는 계획대로 한야에게 달려들었고 한야는 당황도 잠시 ‘허허’ 웃으며 가볍게 케이를 제압했다.

“오오? 케이야, 너 요즘 헬스 열심히 하더니. 오오……. 근육이.”

“으흑!”

한야는 전력으로 달려든 케이를 가지고 놀았다. 가지고 놀다 못해 케이의 늘어난 근육량에 감탄하며 약을 올리기까지 했다.

서도화는 한야와 케이의 모습을 보고 말문을 잃었다.

저런 꼴을 당하다니.

‘내가 안 하길 잘했다.’

잘못하다간 저 쪽팔린 꼴을 자신이 당할 뻔했다.

한야가 케이를 쳐다보는 표정을 보라.

아주 가소롭다는 듯 웃고 있다. 마치 유치원생 아들을 골려주는 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저런 꼴을 당하고 싶진 않았다.

“이제! 와라! 이제 와! 지금! 아! 빨리!”

결국 참다못한 케이가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소리를 질러댔다.

“누구? 누가 또 와? 어유 우리 케이 잘 버틴다. 이제 슬슬 풍선 터트려도 될까? 하하.”

한야가 필사적으로 버티는 케이의 풍선으로 손을 뻗는 순간, 서도화가 조용히 달려 나와 한야의 뒤를 덮쳤다.

“어어? 누구야. 도화?”

“그래! 음유시인! 얼른 해라! 해치워버려!”

서도화는 한야에게 매달리듯 업힌 상태로 풍선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이렇게 쉽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한야는 껄껄 웃으며 근육질 팔로 서도화의 팔을 꽉 잡은 채 제 풍선을 낚아채 반대쪽으로 옮겼다.

한 팔엔 서도화가 한 다리엔 케이가 잡혀있는 상황.

덮쳐서 이기기는커녕 둘 다 한야에게 탈락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러나 그때.

“아덴!”

서도화가 제 다리로 한야의 허리를 더 꽉 감싸며 소리치자 저 멀리서 다다다다- 엄청난 발소리와 함께 한야와 체급이 비슷한 녀석이 달려왔다.

“와 너희. 이렇게까지 형을 이기고 싶었어?”

아덴이 저돌적인 빠르기로 달려와 한야의 어깨를 집고 점프해 풍선을 잡아챘다.

한야의 손과 다리에 멤버들이 잡혀있기에 할 수 있는 쉽게 낚아챌 수 있었다.

“아, 아덴은 왜?”

얘는 계획에 없지 않았나?

케이가 당황하며 서도화를 쳐다보는 순간, 무심하게 케이를 힐끔 본 아덴이 케이의 풍선마저 가로채곤 꽈악 조이며 눈을 꽉 감았다.

한야에게 매달려 있던 서도화가 손을 뻗어 아덴의 귀를 막아주자 곧, 펑! 퍼엉!

그의 양손에 잡혀있던 풍선 두 개가 큰소리와 함께 터져버리고.

“…….”

“……너희.”

광란의 진흙탕 싸움이 벌어졌던 현장은 잠시 정적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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