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197화 (197/270)

제197화

“노래 불러달라고?”

“그래.”

“갑자기?”

말 그대로 케이의 부탁은 너무 갑작스러웠다.

카메라도 없는 곳에서 마이크도 꺼놓은 채 뜬금없이 노래라니?

서도화는 인상을 찌푸린 채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내성 작업?”

“뭐, 그런 걸로 치지.”

“촬영 도중에?”

“자유시간 아닌가? 난 지금 내 생각에 바로 확신을 얻고 싶다. 노래만 부르면 되는 간단한 일이지 않은가. 너에게는.”

“무슨 생각?”

케이가 대답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고는 서도화를 노려보았다.

노래 하나 불러주는데 참 이것저것 많이도 캐묻는다는 눈치다. 서도화가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았어. 알았어. 갑자기 불러달라니까 의심스러워서.”

“멤버한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은가.”

멤버라는 말에 서도화가 움찔하자 케이는 획 그의 눈을 피하고 얼른 부르라는 듯 턱짓했다.

‘스탯창.’

서도화는 스탯 창을 켜놓고 케이에게 물었다.

“내성 기를 거면 스탯 좀 올리고 할까? 아니면 지금 이대로 불러?”

“……조금만 올려라.”

“오케이.”

그래 멤버 사이에 노래 정도는 불러줄 수 있지. 별것도 아닌 걸로 캐묻는 건 좀 그랬다.

서도화는 괜한 머쓱함에 더 친절히 대답하며 가창력 스탯을 올렸다.

“부른다.”

“그래.”

서도화가 집중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패시브 [정화] 발동!

그러자 당연스레 정화 스킬이 발동되었고, 곧 케이가 짧게 신음을 내뱉었다.

“윽!”

그간 함께 있으며 아무리 정화가 되었다고 해도 마왕은 마왕.

곧바로 케이의 몸에 무리가 가기 시작했다.

온몸의 기운이 싹 다 빠져나가는 느낌, 뇌가 한 바퀴 돌아버리고 정신이 몽롱해지고 피가 굳어버리며 금방이라도 기절해버릴 것 같았다.

서도화의 노랫소리가 귓가에 웅웅 울려댔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장이 있는 자리, 케이에게는 없어야 할 심장께가 저릿하게 아팠다.

“으윽!”

케이가 심장께를 부여잡았다.

쿵, 쿵, 쿵-

가슴을 부여잡은 손에 느껴지는 고동.

케이는 괴로워하면서도 역시나 제 예상이 맞았다는 걸 깨달았다.

심장.

심장이 생겼다.

심장이 요동치자 순식간에 몸이 뜨거워지고 또 무거워짐을 느꼈다.

“……야 괜찮냐?”

케이의 상태가 평소 내성 작업을 할 때보다 안 좋자 서도화가 노래를 멈추고 그에게 다가갔다.

“오늘따라 좀 고통이 심해 보인다? 그 정도로 가창력 포인트가 높진 않은데.”

“서도화.”

“어?”

케이의 심각한 목소리에 서도화가 움찔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케이는 계속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왜?’

그곳엔 핵도 심장도 없는 텅 빈 부분일 텐데.

왜 괴로워하며 가슴께를 잡고 있을까.

케이는 영문을 몰라 하는 서도화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이자에게 말하는 게 맞을까?

마왕의 심장이 재생되었다는 걸 말해도 될까?

심장이 생겼다는 말은 마왕은 이제 진짜로 인간이 되어버렸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뭐. 왜 불렀는데. 심하냐?”

말을 할까 말까. 말했다가 살해당하면 어쩌지?

고민하던 케이는 이내 결심하고 서도화를 바라보았다.

“왜…….”

왜 그렇게 비장하게 쳐다보는데. 케이의 결의 가득한 모습에 서도화가 저도 모르게 물러설 때, 케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심장이 생겼다.”

“……뭐?”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서도화가 굳은 얼굴로 케이를 바라보았다.

그가 시답지 않은 농담을 던지는 것 같진 않았다. 아니, 농담을 던질 놈도 아닐뿐더러 심장이 생겼다는 엄청난 말을 가볍게 할 녀석도 아니다.

“진짜?”

“그래.”

케이가 표정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도화의 머릿속이 빠르게 복잡해졌다. 이걸, 이걸 나 혼자 들어도 되는 거 맞나?

마왕이 인간이 되었다.

단순히 인간이 된 게 문제가 아니었다. 심장이 재생되었으면 마나를 그곳에 응축시켜 다시 핵을 만드는 것도 가능할 터.

마왕이 부활할 수도 있는, 반드시 아덴과 하이넬을 비롯한 동료들과 논의해야 할 큰 문제였다.

서도화가 당혹스러운 표정 그대로 케이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말을, 발설하면 가장 불리해질 마왕이 스스로 말하는 이유는 뭐지?

“너 그걸 왜 나한테 말하는 거냐? 난 이 방에서 나가면 아덴이랑 이 상황을 공유할 텐데.”

서도화의 질문에 케이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머뭇거렸다.

머뭇거림보다는 할 말을 찾고 있는 듯 보였다.

눈꺼풀을 내리깔고 아무것도 없는 바닥만 쳐다본 채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케이는 겨우 서도화에게 건넬 대답을 찾아냈다.

“나도 모르겠다.”

내가 이걸 적한테, 음유시인한테 왜 말했을까?

내일 당장 죽을 수도 있을 텐데.

스스로도 그 이유를 몰라 한참을 생각해보다 낸 결론은 자신도 모른다는 거였다.

“내가 이걸 너한테 왜 말하는지 모르겠다만.”

“…….”

“그냥 한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용사의 말처럼 나도 어느샌가 이곳에서 인간들 틈에 섞여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고.”

인간이 좋은 건 아니었다.

인간은 여전히 복수와 증오의 대상이며 케이를 인간이 아닌 자로 만든 원흉, 그에게 무수한 상처를 준 자들이다.

하지만 왜인지 이제 어메스는 싫지 않았다.

어메스와 팬들, 그리고 유제이의 직원들.

자신에게 향하는 그 마음들이 진심인 걸 깨달은 이후로 그들은 싫지 않았다.

이들 틈에 섞여 여생을 보낸다면 그것도 괜찮지 않겠냐고 무심결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음유시인 너와 용사는 여전히 싫다. 우린 목숨을 걸고 싸운 적이니까.”

그러나 같은 멤버로서는 이들도 괜찮았다.

참 이상한 이중적인 마음이다.

물론 서도화나 아덴은 제 변한 마음과는 상관없이 자신을 싫어하겠지만.

케이는 그들의 수많은 동료들의 목숨을 앗아간 자니까.

“어쩔 거냐. 음유시인.”

“뭘.”

“이제… 날 죽일 건가?”

시발.

서도화는 속으로 욕을 하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마왕에게 심장이 생긴 일은 정말 큰 일이긴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심장이 생겼다고 해서 케이가 무슨 짓을 꾸밀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물론 의심하고 경계해야겠지만, 굳이 심장이 생겼음을 적인 자신에게 말하는 걸 보면 확실히 마음의 변화가 생기긴 생겼다는 말일 테지.

“대답해다오. 어쩔 거냐. 음유시인.”

그러게요. 어찌해야 할까요.

서도화는 잠시 망설이다 모르겠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뭘 어떡해. 같이 어메스 활동 해야 하니까 당분간은 이대로 있어야지. 허튼짓은 하지 말고. 아덴에게도 말해둘 거니까.”

“…….”

그의 말을 들은 케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입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서도화는 한 번 더 한숨을 쉬며 걸음을 옮겼다.

“그럼 이제 볼일 끝난 거지? 왜 갑자기 노래를 불러달라 하나 했더니.”

자신에게 심장이 생겼음을 분명히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케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도화에게로 다가갔다.

서도화가 마이크를 다시 켜며 방문을 열었다.

“그럼 쉬다가 밥 먹을 때 보자.”

“……그래.”

두 사람은 방에서 나온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해 걸었다.

‘아덴, 아덴에게 말해야 해.’

여유로운 케이와는 달리 아덴에게로 향하는 서도화의 걸음은 무척 빨랐다.

*     *      *

잠깐의 휴식이 끝난 뒤 찾아온 저녁 식사 시간.

오늘 저녁은 급식실이 아닌 기숙사의 운동장에 차려졌다.

“고기? 우리 바베큐 해요?”

운동장 사이드에 차려진 불판과 각종 고기, 채소들을 보곤 주상현과 아덴이 잽싸게 달려가 자리 잡았고 한야가 케이를 끌고 가 자연스럽게 토치를 쥐었다.

“바로 먹으면 될까요. 피디님?”

한야의 말에 피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늘의 마지막 일정, 멤버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저녁 식사입니다. 맛있게 드셔주세요.”

“와아!!!”

이미 불판 앞에 모인 멤버들의 사이로 서도화가 뒤늦게 들어와 자리 잡았다.

아까 케이와 헤어진 뒤 서도화는 바로 아덴에게 찾아가 케이에게 심장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아덴이라면 당연히 곧장 죽여버리자 난리 칠 줄 알고 어떻게 말려야 할까 고민했었는데 의외로 아덴은 ‘일단 지켜보자’라고 말했다.

아덴도 케이와 마찬가지로 그간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건지 그답지 않은 말이었다.

아무튼 그런고로 어메스는 앞으로도 위태롭게나마 평화로움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한야가 토치로 숯에 불을 붙이고 서도화가 집게를 잡았다.

“상현이랑 아덴, 오늘 실컷 먹겠네.”

“웬일이야. 형 이거 봐. 마블링 봐.”

“채소랑 무조건 같이 먹어.”

아까까지만 해도 배신자라느니 혼자 잘 먹고 잘살라느니 게임에서 제일 먼저 탈락했다고 툴툴거리던 주상현은 고기 앞에서 금방 미소를 되찾았다.

“형, 마늘 먹을 줄 알아? 고추 생으로 먹을 줄 알아?”

나름 해외파 설정인 아덴과 케이에게 고기 한 점에 마늘을 왕창 넣은 쌈을 싸주기도 하며 언제 화냈냐는 듯 장난을 쳐댔다.

서도화는 주상현과 아덴, 케이의 그릇에 고기를 한가득 쌓아주었고 한야는 서도화에게서 집게를 뺏어 들곤 그의 접시에도 고기를 쌓아주었다.

그렇게 먹고 떠들기를 한참,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슬슬 배가 불러오자 멤버들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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