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9화
서도화의 표정이 드물게 흔들렸다. 아덴이 이 생활을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하다니.
물론 그 또한 아이돌로서 역경을 이겨내고, 지금까지의 일들을 해낼 때 그 나름의 보람을 느꼈을 것이다. 무엇보다 모두가 기뻐할 때 함께 기뻐했음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다.
하지만 그건 이 일에 성취감을 느낀다기보단 함께하는 동료들이 좋아하니까, 거기에 동조하여 기쁨을 느낀 거라고 생각했다.
아덴은 노래와 춤엔 전혀 관심이 없으며 전투와 전투에서 얻을 수 있는 성취를 좋아하는 주인공이었으니까.
그러니 서도화는 아덴이 동료들이 기뻐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정말 이 일을 즐거워하고 있었다는 것에 꽤나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와 동시에 마음속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비장함을 느꼈다.
‘이 일이 즐겁다는데.’
겨우 이곳에서 마음을 다잡고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는데, 로건 리 사건 따위로 인해 저 마음을 무너지게 할 수는 없다.
‘해결하자.’
되도록 일이 일어나기 전에.
‘스포일러.’
서도화가 속으로 말하자 띠링! 경쾌한 소리와 함께 시스템창이 띄어졌다.
[로건 리에 대한 가짜 폭로가 사이트에 게시되기까지 D-20!]
앞으로 20일.
“이 멤버들이라면 아무리 힘든 일이 있더라도 똘똘 뭉쳐서 잘 해결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형은 그런 생각을 해.”
이어지는 한야의 말과 함께 어메스 멤버들의 별구경은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 * *
다음 날 아침, 멤버들은 오전 10시를 훌쩍 넘겨 제작진과 스태프들의 모닝콜을 받고서야 잠에서 깰 수 있었다.
어젯밤 하늘의 별은 예쁘고 상당히 감성적인 분위기가 된 탓에 대화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었다.
고기는 더 굽지 않았고 배부름도 싹 가셨지만 기어코 과자까지 가져와 무리하게 대화를 이어가던 멤버들은 불판 아래 숯이 동나고 제작진이 이제 슬슬 마무리하자는 신호를 보내고서야 자리를 정리했다.
그 시간이 무려 새벽 3시였다.
평소 스케줄 때문에 3시를 넘겨 자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새벽 쪽잠이 익숙해진다고 한들 알람 없이 일어나는 건 어려웠다.
“아…… 좀만 더…….”
“안 됩니다. 다들 일어나세요.”
“지금 몇 시인데요……?”
평소 부지런한 한야 또한 긴 앨범 활동이 끝났다는 생각 때문인지 피곤한 얼굴로 인상을 찌푸리며 휴대폰 시간을 확인했다.
그러곤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깊게 한숨을 폭 쉬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스태프들과 함께 멤버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얘들아! 일어나. 촬영해야 해.”
“아아…….”
아덴이 짜증스레 몸을 굴렸다. 서도화 또한 멍하니 일어나 한야가 그랬듯 휴대폰 시간을 확인하더니 힘없이 일어나 제 옆의 케이를 툭툭 쳤다.
“야… 일어나래.”
“…….”
“한야 형이 안 일어나면 죽여버리겠대.”
“……한야 형은 그런 소리 안 했다. 음유시인, 입만 열면 거짓말이군.”
“그래도 일어났잖아. 그럼 됐어.”
어제 온종일 소리지르고 신나게 뛰어다니던 주상현은 끝까지 일어나지 못하다가 결국 아덴에게 들쳐메진 채 화장실에 넣어졌다.
서도화는 멤버들을 따라오는 카메라에 대고 비몽사몽 퉁퉁 부은 얼굴 그대로 말했다.
“숙소에서 보던 그대로예요…….”
“맞아요. 여러분 저희는 매일 아침 이런 광경을 본답니다. 하하하.”
한야가 그의 말에 맞장구쳐주었다. 주상현과 케이는 아덴과 한야가 깨우다 못해 들쳐메고 화장실에 구겨 넣어주고 그 모습을 본 서도화가 자신만큼은 저런 꼴이 되진 않으려고 간신히 스스로 일어나 화장실로 직행.
숙소에서 보이는 모습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모습, 어메스의 민낯이 카메라에 꾸밈없이 찍히고 있었다.
서도화는 좁은 화장실에 옹기종기 들어가 씻는 멤버들을 지켜보다 말했다.
“근데 왜 다들 여기서만 씻고 그래?”
“어엉?”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멤버들이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서도화를 쳐다보았다.
서도화가 제 아래를 가리켰다.
“난 아랫층 화장실 갈 건데. 같이 갈 사람?”
“아.”
멤버들이 바보 같은 소리를 내며 하나둘 서도화를 따랐다.
이 커다란 합숙소. 다인원을 수용해야하는 곳이니 샤워실이고 화장실이고 구석구석 널려있다.
굳이 한곳에서 제 차례를 기다릴 필요 없는데 숙소에서 화장실 하나를 돌려 쓰는게 익숙해진 터라 습관적으로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서도화의 말에 멤버들은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씻었고 빠르게 촬영 장소에 집합할 수 있었다.
1박 2일의 여행이라는 게 의례 그렇듯 두 번째 날엔 몸으로 뛰는 등 체력을 요구하는 게임은 하지 않았다.
어메스로 놀아보세 마지막 게임은 아침 식사 재료 준비를 위한 제작진과의 넌센스 퀴즈였고 한야가 의외의 활약을 펼치며 무난하게 어메스가 이겼다.
그렇게 해서 얻은 요리 재료는 아덴이 음식 솜씨를 발휘해 든든한 아침 식사로 재탄생했다.
아덴의 요리 솜씨가 생각보다 훨씬 대단했는지 칼질 한번 뒤집기 한번할 때마다 제작진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오곤 했다.
그리고 오후 네 시.
“수고하셨습니다!”
“어메스, 정말 고생했어요.”
“감사합니다!”
어메스 멤버들이 아침 식사를 하며 소소한 담소와 앞으로 열심히 하자는 각오를 다지는 것으로 어메스로 놀아보세 마지막 촬영이 마무리되었다.
그 사무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제작진들도 밀리언 아이돌에 이어 어메스로 놀아보세까지 매주 보던 아이들이니 꽤나 정이 든 모양이다.
후련한 표정이었지만 한편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를 보는 얼굴로 어메스에게 덕담을 이어나갔다.
“도화야, 원래 이 업계는 시기질투가 만연한 곳이야. 소문에 너무 휩쓸리지 말고. 어? 알지?”
“알죠. 피디님.”
“우리는 너희가 얼마나 착하고 좋은 애들인지 아니까. 잘 될 거야. 너희는. 지금보다 더 잘 될 거야.”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피디의 토닥이는 손이 꽤 오랫동안 서도화의 어깨에 머물렀다.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노래를 잘 부르니까 재능 썩히지 말고 김 대표한테 떼 좀 써서 뭐라도 받아내. 솔로곡이나 예능이나.”
“그렇게 할게요. 피디님. 사실 저도 그럴 생각이었어요.”
“그래, 힘내라.”
피디의 손이 서도화에게서 떨어져 이번엔 서도화보다 더 많이 봤을 멤버 주상현에게로 향했다.
아 마 주상현은 데뷔했으니 더 열심히하라는 등의 덕담을 들을 것이다.
‘끝났네.’
서도화는 차로 향하다 말고 뒤돌아 합숙소 전체의 풍경을 보았다.
그렇게 한참 겨울에 잡아먹힌 광경을 보고있으니 자연스레 치열했던 그날의 일들이 떠올랐다.
생각지도 못한 개개인 경쟁을 붙이는 바람에 다른 그룹과 기싸움도 하고 케이와 아덴을 위해 밤새도록 연습을 하기도 했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렇게 했으니 우승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아덴, 케이가 그룹에 더 정을 붙일 수 있던 게 아닐까.
아무튼, 작년 이곳에서 서도화와 어메스 멤버들은 몸이 부서져라 연습했고 경쟁했다.
그리고 그 노력을 성공적인 데뷔로 보상받았다.
참 고마운 일이었다.
어메스로 놀아보세 마지막 촬영이 끝나고서야 일련의 데뷔과정을 모두 끝마친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가 기대되기도 걱정되기도 했다.
“도화 먼저 가버리는 게 어딨냐. 같이 가야지.”
“혀엉! 미아 된 줄 알고 합숙소 한 바퀴 돌고 왔잖아요!”
“사라질 거면 말을 하고 사라져라. 서도화.”
“하하, 도화야 제작진 분들께 인사는 다 하고 온 거겠지?”
서도화는 웃으며 눈치를 주는 한야에게 고개를 끄덕이곤 달려오는 멤버들을 맞아들였다.
“병수 형은?”
“몰라? 여기 있는 거 아냐?”
“난 도화 얘랑 같이 있는 줄 알았는데.”
“몰라. 난 여기 혼자 왔는데?”
멤버들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촬영이 정리되고 제작진들도 슬슬 철수하는 분위기에 어메스 팀 스태프들도 짐을 잔뜩 든 채 각자의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어메스를 인솔해 차에 태워야할 매니저 이병수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엥?”
멤버 모두가 당황하며 서로 시선을 교환하던 찰나.
서도화의 시선이 멈추었다.
“형 차 안에 있는데?”
서도화가 인상을 찌푸리며 차 안을 쳐다보았다. 선팅이 되어 내부가 잘 보이진 않지만 운전석에서 누군가 움직이는 실루엣이 보였다.
덩치를 보아 틀림없이 이병수였다.
다른 멤버들도 차 안의 인영을 확인했는지 모두 툴툴거리며 차로 향했다.
“저 형은 차에 타고 있었으면서 왜 타라고 말을 안 했대?”
“우리가 찾고 있는 거 뻔히 보이면 안에 있다고 말이라도 해주지.”
“통화 중이거나 그런 거겠지. 얼른 차에 타자.”
획 차 문을 여는 멤버들. 그들 뒤를 따르는 서도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왜 그랬대? 하고 말수도 있는 일이지만 좀 이상하긴 했다.
이병수는 통화 중이라도 멤버들을 발견하면 창문을 열고 들어오라 손짓할 사람인데 눈앞에 있는 멤버들을 그냥 두고 있었다고?
‘온 걸 모를 리는 없고.’
멤버들이 듣지 않길 바라는 통화 내용인 걸까?
서도화의 의문은 차의 입구에 고개를 들이미는 순간 곧장 해소될 수 있었다.
“하아, 아니! 그게 왜 우리 애 탓-, 아 됐고. 일단 우리 지금 들어가니까요. 일단 막아봐요. 일단.”
멤버들이 굳어 눈도 깜빡이지 못하고 이병수를 쳐다보았다.
이병수는 여전히 멤버들을 보지 못한 듯하다 뒤늦게 인기척을 느끼곤 백미러를 통해 멤버들을 발견했다.
“……일단 타. 애들 왔으니까 들어가서 말해요.”
황급히 전화를 끊는 그의 행동으로 멤버들은 알 수 있었다.
어메스에게 뭔가 안 좋은 쪽으로 큰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