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0화
“후우…….”
이병수는 멤버들을 차에 싣고 이동하는 동안에도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엔간한 일이 아니고서야 회사의 일로 멤버들 앞에서 티를 내는 타입이 아닌데, 그의 반응을 보아 확실히 어지간한 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아.”
이병수는 뒤늦게 멤버들의 시선을 알아차리고 말했다.
“오늘 바로 숙소 안 들어가고 잠깐 회사 들렸다 간다.”
“어……. 네.”
이제 막 첫 앨범 활동의 종지부라고 할 수 있는 어메스로 놀아보자 마지막 촬영을 마지고 돌아가는 길이다.
무려 1박 2일의 촬영이니 모두 바로 집으로 돌아가 푹 쉴 생각이었는데.
그러나 휴식 계획이 어긋났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왜 회사로 가냐고 따지는 이가 없었다.
‘누가 따질 수 있겠어.’
이병수의 표정을 보라. 저렇게 심각한 얼굴인데 여기서 한마디라도 꺼내면 눈치 없는 놈 취급을 받을 게 뻔했다.
‘뭔 일이래? 불안하게.’
로건 리 사건이 터지기도 전에 또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원.
그때 눈치껏 입을 다물고 휴대폰을 켠 주상현이 갑자기 입을 떡 벌리더니 말없이 서도화를 흔들어댔다.
‘왜.’
서도화 또한 소리를 죽인 채 입을 벙긋거려 대답했다. 그러자 주상현이 서둘러 제 휴대폰을 넘겨주었다.
이병수는 이 모습을 백미러로 보곤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후우…….”
주상현이 가장 먼저 일을 알아버린 듯하니 곧 멤버들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게 될 것이다.
서도화는 몸짓과 표정으로 필사적으로 큰 사건이 벌어졌음을 알려주는 주상현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며 제 무릎에 떨어진 그의 휴대폰을 주워들었다.
‘뭔 일이길래…….’
그러곤 휴대폰 화면에 떡하니 떠 있는 게시글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어버렸다.
[단독] 어메스 아덴 ‘학폭 가해자였다’ 폭로 소속사는 ‘사실무근’……
‘학폭이라고?’
서도화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이게 왜 벌써 터지지?
* * *
학폭 폭로가 된 직후부터 어메스 멤버들이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 그야말로 유제이는 초토화가 되었다.
“사실무근이라니까요! 몇 번을 말해야……! 아니, 화를 낸 게 아니고요. 일방적으로 학폭이 맞는 것처럼 말씀하셨잖아요. 기자님께서!”
움찔. 사무실에서 들려오는 언성에 주상현이 깜짝 놀라며 움츠러들었고 케이는 눈살을 구기며 제 귀를 막았다.
유제이는 아티스트의 공간에 모든 투자를 쏟아부은 터라 유독 사무실의 소리들이 크게 들렸다.
비단 전화로 골머리를 앓는 사람은 사무실의 직원들 뿐만이 아니었다.
“하아…….”
회의실로 이동하는 도중 이병수의 휴대폰이 진동했고 이병수는 깊은 한숨을 쉰 뒤 전화를 받았다.
“네, 기자님. 어, 거기에 대해서는 저희도 당사자와 긴밀히 대화를 나누는 중이고요. 기사에 나왔다시피 사실이 아닙니다. 그것 외에는 할 말이 없어요. 저희가 추려서, 정리해서 공식 입장 추가로 낼게요. 네네, 좀 기다려주시죠.”
아까부터 이병수의 휴대폰도 아주 난리였다.
이병수는 미간에 주름을 잔뜩 그린 채 회의실 문을 열었고 멤버들을 들여보냈다.
회의실엔 이병수만큼이나 심각한 표정을 한 김유진과 직원들이 침묵을 지키며 앉아 있었다.
“……왔어?”
김유진은 멤버들을 보며 애써 입꼬리를 올렸지만 딱히 미소로 보이진 않았다.
멤버들은 김유진과 직원들에게 까딱 목례하며 자신들을 위해 비어진 의자에 앉았다.
“대충, 오면서 상황은 파악했니?”
“네…….”
멤버들을 차를 타고 회사로 오는 동안 대략적인 상황은 파악했다.
오늘 오전, 어메스가 마지막 게임이랍시고 제작진들과 한참 대결을 하고 있을 때 유명한 포털사이트에 아덴의 동창이라는 사람의 게시글 하나가 올라왔다.
구구절절 내용이 무척 길었지만 결론 아덴, 본명 로건 리가 중학교를 다닐 당시 자신을 괴롭히고 폭행했다는 내용이었다.
같은 중학교를 다녔던 졸업앨범 인증과 함께 찍었던 과거 사진등이 올라오며 이 글이 단순한 장난 글이 아니라는 걸 입증하고 있었기에 게시글을 빠르게 퍼져나가 지금은 막는 게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각종 sns는 물론이고 너튜브, 기사까지 총 동원되어 이 사건을 다루고 있는 바람에 유제이는 이 사건을 무시하고 싶어도 무시할 수 없고 어쨌든 결론을 내 대답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
“…….”
멤버들이 자리에 앉고도 한참이나 이어지던 침묵. 잠시 뒤 김유진이 입을 열었다.
“아덴.”
“네…….”
김유진이 이렇게 냉랭하게 아덴을 쳐다보는 건 처음이었다. 물론 아덴은 로건 리가 아니었고 로건 리 또한 잘못이 없었으니 기죽을 필요 없지만 그는 상황상 본인이 잘못한 것 같은 분위기에 절로 고개를 숙였다.
“아니, 아직 고개 숙이지 말고. 네가 움츠러들면 불안해지니까.”
김유진은 화를 내려는 게 아니라 그냥 묻고 싶은 것이었다. 웃을 상황도 아니고 아덴의 말 한마디에 지금까지 쌓아 올린 모든 게 끝장날 수도 있는 상황. 표정 관리가 안 되어 화가 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김유진이 물었다.
“상황은 안다고 했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한번 묻자.”
“…….”
“폭로글 내용 사실이니?”
서도화는 직원들과 마주해 추궁당하는 장소에 아덴 혼자만이 아닌 멤버 전체가 함께라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덴은 이런 상황에 어떤 대답을 해야할지 해맬 테니까.
예상대로 아덴은 질문을 받자마자 서도화를 힐끔거렸다.
‘뭐라고 대답할까?’
마치 그리 묻는 듯했다. 그러나 서도화는 그에게 아무런 신호도 제스처도 취하지 않고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얼른 대답하라는 듯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여기서 무언가 행동을 했다간 되레 왜 시선을 주고받냐며 직원들에게 의심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아덴은 읽었을 것이다. 서도화가 눈으로 보낸 신호를. 오랜시간 함께 생사를 넘나들며 눈빛만 봐도 서로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수 있는 관계가 두 사람의 관계 아니던가.
아덴은 덤덤하게 말했다.
“아니요.”
“사실이 아니라고?”
“네.”
김유진은 아덴에게 대답을 듣고도 여전히 의심을 지우지 않고 이번엔 게시글에 적힌 내용을 하나하나 뜯어내 물어보았다.
“너 장난으로라도 친구 때린 적 있어 없어?”
“그런 미친 짓 안해요.”
“괴롭히거나 농담조로 놀린 적은? 휴대폰 메신저로 이런 문자 보낸 적 있어?”
김유진의 말에 맞춰 곁에 있던 직원이 노트북 화면을 보여주었다. 게시글에 증거랍시고 올라왔던 아덴과 주고받은 메신저톡 기록이었다.
가해자인 아덴이 피해자인 학생을 협박하는 듯한 내용이다.
아덴은 메신저 내용을 끝까지 읽곤 일관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요. 전 사람 안 괴롭혀요. 때리지도 않고 이렇게 비열하게 괴롭히지도 않아요.”
대답하는 아덴의 표정도 갈수록 안좋아졌다. 자존심 상할 것이다.
이세계에선 용사이고 비록 서도화에겐 사이코패스 그 자체의 성격에 가는 곳마다 시비를 털고 다니긴 했지만 그렇다고 애꿎은 사람을 괴롭힐 작자는 아니었다.
용사로서 용납 못 할 일이다.
“……그래. 일단 넌 괴롭힌 적 없단 말이지? 알았다.”
김유진은 폭력에 대한 건은 이거면 됐다는 듯 넘겼다. 어차피 아덴의 무고함을 증명할 여러 증거들을 모으다 보면 아덴의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구별할 수 있겠지.
일단 지금은 아덴이 아니라고 부정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였다.
“그럼 다음으로…….”
김유진이 흐려지는 두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녀를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게 입을 뗐다 다시 다물기를 반복했다.
‘뭔데, 왜 그러는데.’
그녀의 행동에 서도화가 인상을 찌푸렸다.
불안하게 왜 그러는 걸까? 폭로글엔 괴롭혔다는 내용 외에는 없던데. 또 그 사이 뭐가 터졌나?
한참을 망설이던 김유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 혹시 외국에서 살 때 마약한 적 있니?”
“……네?”
김유진이 주먹을 꽉 쥐었다.
첫 게시글이 공공연히 퍼지고 난 뒤 추가적으로 폭로된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아덴이 평소 동급생 아이들에게 자신이 외국에서 사는 동안 수시로 마약을 했다는 둥, 금단현상이 심각하다는 둥, 지금도 루트가 있다는 둥 자랑스럽게 말했던 메신저가 올라온 것이다.
김유진은 처음엔 미성년자가 이럴 수 있나 했다.
그러나 이후 못할 것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며 좌절했다.
왜 외국에선 미성년부터 마약에 중독되어 고생하는 경우도 많다지 않은가.
솔직히 지금이야 서도화가 잘 중재하며 상당히 얌전해졌지만 상당히 날이 섰던 예전의 아덴이라면 절대 우리 아덴이 그럴 리 없다고 확신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제발… 제발 아니라고 해…….’
김유진은 속으로 별별 신에게 다 빌며 간절한 마음으로 아덴을 쳐다보았다.
아덴은 황당한 듯 그녀를 쳐다보다 솔직한 말을 내뱉었다.
“마약이 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