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202화 (202/270)

제202화

여러모로 타이밍도 안 좋고 일도 못 하는 시스템이지만 아예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다.

특히 지금처럼 발품을 팔거나 애써 기억을 끄집어내야만 할 수 있는 일들을 말이나 버튼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좋았다.

‘폭로자들의 신상 정보라든지 녹음한 적도 없는 전화 녹취록이라던가.’

시스템만 믿고 있었는데, 시스템이 알려준 폭로가 일어나기까지 남은 시간만 믿고 이제 슬슬 대처를 준비해볼까? 하는 차에 사건이 터졌다.

덕분에 상당히 난감해진 상황.

물론 이건 시스템이 아닌 어메스 멤버들의 문제였지만 시스템 또한 꽤 곤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로건 리의 폭로 사건을 스포일러한 스포일러 스킬 또한 시스템의 일부분.

서도화가 이제야 간신히 제시한 보상안을 받아들이고 그 지급이 완료되어가고 있는 찰나에 스포일러 스킬이 헛발동되며 또 문제가 생겨버린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제대로 해결하거나 또 보상안을 마련하는 수밖에 없다.

서도화 성격에 준비하고 있던 계획이 시스템에 의해 어그러지고 그로인해 큰 사건이 터졌다면 어지간히 화를 내며 집요하게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아내려 할 것이다.

그렇기에 시스템은 밤이고 낮이고 새벽이고 할 것 없이 가동되었다.

이를 악물고 스포일러 스킬의 실수를 무마해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저 진짜 너무 힘들었어요ㅠㅠ]

[그러니까 고객 불편 접수는 하지 맙시다 인간적으로ㅜㅜ]

시스템의 징징거림에 서도화는 시스템이 띄워준 자료들을 살펴보며 별 감정 없이 대답했다.

“생각해보고.”

[?]

[아 제발요 열심히 했잖아요]

사실 서도화는 고객 불편 접수 그런 거 할 생각도 없었고 해본 적도 없다.

사실 시스템창을 다루는 데 고객 불편 접수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다.

‘종종 이용해야지.’

그런 생각은 들었지만 이번만큼은 시스템을 다그치기보다 일을 해결하는 걸 우선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도 그럴 게 생각보다 시스템이 가지고 온 자료들의 수준이 꽤 좋았다. 서도화가 화를 내기 전에 사태를 반드시 수습하겠다는 각오가 보이는 자료들이다.

폭로자들의 신상, 그리고 폭로 글과는 달리 이들이 로건 리를 괴롭혔다는 증거들.

물론 실물은 서도화에게 없고 전부 발품을 팔아 수집해야 하는 것들이었지만 많은 녹취본과 문자 내역들이 남아있었다.

거기다 로건 리의 상담 내역, 해외 학교에서의 생활 평가 기록 등등.

논란은 논란으로.

학교 폭력의 피해자라며 가짜 폭로를 했던 이들이 실은 가해자였다고 한다면, 증거까지 확실히 있다면 여론은 어떻게 바뀔까?

사람들은 학폭 가해자로 낙인찍힌 연예인이 어떻게 누명을 벗는가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보단 그들이 관심을 두고 마음껏 뜯을 수 있는 소재를 다시 던져준 뒤 이에 대한 부수적인 효과로 아덴의 누명을 벗기는 편이 좋을 터.

“야, 다 봤냐?”

한참 생각에 잠겨있던 서도화는 아덴의 물음에 그를 바라보았다.

서도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역시 로건 리는 아무런 잘못이 없어. 어딜 봐도 전혀.”

“그럼 나는 뭐 해?”

“흐음… 잠시만 생각 좀 해보자.”

서도화는 아덴을 보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서도화가 아덴의 보호자 노릇을 자처하고 있다곤 해도 우선 이 사건은 아덴의 일이다.

‘그럼 발품은 아덴이 팔아야 하는 거 아닌가?’

마침 활동 끝나고 휴일이기도 하고.

서도화가 말했다.

“그럼 넌 내일 로건 리의 집에 찾아가 봐. 주소 알려줄게. 로건 리도 휴대폰이나 뭐든 사용했을 테니까 한번 뒤져보고 나한테 전화해.”

“그거야 뭐. 쉽네.”

그 정도쯤은 쉽다고 호언장담하는 아덴과는 달리 서도화는 그를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처럼 쳐다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아덴 혼자 보내기 불안하긴 했지만 이제 슬슬 이 세계에 적응한 것 같기도 하고. 또 조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는 편이니 일단 믿고 보내보기로 했다.

언제나 뒷바라지 할 것도 아니면 믿을 때는 또 믿어줘야지 않겠는가.

“근데 도화 너는 같이 안 가냐?”

아덴의 물음에 서도화가 고개를 저었다.

“난 여기서 대표님이랑 얘기를 해봐야지. 내가 알고 있는 걸 말해드릴거야.”

그래야 김유진이 그에 맞게 보도하고 사건을 갈무리 지을 준비를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 그럼.”

아덴은 흔쾌히 말하곤 일어났다.

“주소는 문자로 보내놔. 택시타고 가면 되나?”

“그래, 그리고 어…거기가 도어락으로 되어있긴 하거든? 번호도 같이 보내둘게.”

“그래, 그럼 난 간다.”

본인이 해야 할 일을 알게 된 아덴이 벌떡 일어나 방을 나서려 걸음을 뗐다.

그런 그를 서도화가 다시 붙잡았다.

“아덴.”

“어?”

“어때?”

아덴은 서도화를 빤히 쳐다보다 픽 웃었다. 지금 기분이 어떻냐고 묻는 것이다.

두 사람 다 걱정은 낯간지러운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냥 이렇게 툭 짧게 물어보곤 했다.

“좀 속상해. 근데 괜찮아.”

용사인 아덴이 제 잘못도 아닌 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저로 인해 김유진을 포함한 소속사 직원들과 멤버들이 힘들어하며 팬들도 실망했다며 떠나가는 이들이 있었다.

사람이니 당연히 속상하긴 했지만 정신적인 타격이 크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제 눈앞에 있는 서도화와 멤버들이, 동료들이 자신을 믿어주고 있으니까.

저쪽 세계에서도 누명을 쓰고 자신과 동료들이 비난받는 일은 꽤 있었다. 하지만 서로 믿는다면 괜찮았다.

아덴이 웃어 보이자 서도화 또한 픽 웃었다.

“조금만 힘내자. 금방 끝나.”

“어.”

아덴이 방을 나서 거실로 나오자 방문 옆에 기대어 서 있던 케이가 몸을 일으켜 그를 쳐다보았다.

“엿들었냐? 그런 짓 하지 말랬지. 뒤질래?”

“안 듣고 싶어도 들린다. 내 귀가 워낙-”

“좋아야지. 어 그래. 그런데 대놓고 여기 기대고 있는 건 그냥 엿들으려고 있었다는 거 아닌가?”

아덴은 제 말만 하곤 케이를 스쳐 지나쳤다.

그때 케이가 말했다.

“나에게 무릎 꿇어라.”

“……뭐?”

아덴이 멈춰 서 케이를 쏘아보았다. 갑자기 무릎 꿇으라니 황당해선 말문이 막혀버렸다.

케이는 제 말에 잘못된 건 없다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

“네가 내 앞에 무릎 꿇고 도와달라하면 내 특별히 도와주겠다.”

“내가 왜. 네가 날 어떻게 돕는데. 웃기는-”

“왜 못하지? 그놈들을 잡아서 머리를 건들면 된다.”

케이가 제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서 그놈들이란 최초 폭로자를 말하는 것이었다.

케이가 아덴을 가리켰다.

“너라면 그들을 찾는 일쯤 쉬울 테지. 찾기만 해. 그리고 나에게 무릎 꿇어라. 내가 이 모든 일을 없던 걸로 만들어줄 테니.”

아덴은 말없이 케이를 관찰했다.

이 새끼가 갑자기 왜 이러나. 갑자기 왜 자신의 일을 해결해주려고 난리인가.

그냥 자신을 죽일 뻔한 용사 무릎 한번 꿇려보려는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보단 꽤…….

아덴을 도와주고 싶어 하는 듯한 기색이었다.

의문이 생겼으면 알아내야지.

아덴은 별 고민없이 케이에게 물었다.

“왜?”

그러자 케이는 당황하며 시선을 획 돌리더니 또 획 아덴을 쳐다보았다.

“협조다!”

그러곤 훽 돌아 가버렸다.

참 웃기는 놈이었다. 아덴은 케이에게서 바로 흥미를 끊곤 다시 제 방으로 향했다.

* *  *

다음 날, 아덴은 로건 리의 집으로 향했다.

원래는 중무장을 한 채 혼자서 택시를 타고 이동하려 했지만 이병수에게 제 오늘 일정을 말하자마자 그가 차로 데려다주었다.

“혹시라도 말하는데 절대로 혼자 택시타고 다닌다던가 그러지마. 특히 요즘같은 때엔 더더욱.”

아무래도 아이돌은 택시도 마음대로 타면 안 되나 보다.

아덴은 가볍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곤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차는 주택가로 들어서서 점점 더 후미진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덴은 그 광경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이런 곳이 있네…….”

서울엔 온통 높다랗게 세워진 드높은 건물들밖에 없는 줄 알았더니.

이곳엔 예전 영웅이 되기 전 아덴이 가족들과 함께 살던 집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곳에 로건 리의 집이 있다.

로건 리는 아무래도 아덴과 비슷한 환경에서 커온 사람인 듯 했다.

“여긴가?”

곧 네비게이션이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렸고 이병수는 고개를 쭉 빼 주변을 둘러보곤 차를 세웠다.

“아덴, 여기 맞아?”

“맞을걸요?”

“맞을걸요는 뭐야. 인마. 맞으면 내려. 형 다시 들어가 봐야 해.”

“형 가게요?”

“가야지 인마. 할 일 다 끝나면 연락해. 데리러 올 테니까.”

“감사합니다.”

아덴이 차에서 내렸고 이병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차를 출발시켰다.

모든 것이 낡은 곳이다.

아덴은 주변을 크게 둘러보다 입을 열었다.

“마왕, 왜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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