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4화
아덴과 케이가 동시에 문을 쳐다보았다. 그들의 눈빛엔 살기와 경계가 가득했다.
단순히 집에 찾아온 방문자라기엔 말투에 비아냥이 가득했다.
오랫동안 전투와 경계에 익숙해진 두 사람은 곧장 알 수 있었다.
저들은 누가봐도 나쁜 짓을 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일단 들어오게 한다. 그리고 저들이 적이면 단숨에 죽인다.”
케이가 툭 말하며 제 손바닥에 마나를 피워보다 인상을 찌푸리며 부엌에서 식칼을 가져왔고 아덴은 말없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케이를 흘겨봤다.
“사람 죽이면 안 된다는 말 못 들었냐? 식칼 도로 가져다 놔라. 무기로 못 쓸 거면 적한테도 보이지 않는 편이 좋아.”
“……저것들이 무기를 가지고 있다면?”
“너 어메스에서 쫓겨나려고? 정착할 생각도 있다며.”
“쳇.”
용사의 말을 들어야 한다니 미치도록 분하다. 맞는 말이라 더 그렇다. 케이가 투덜거리며 식칼을 도로 가져다 놨다.
“그럼 어떻게 할 건데? 저들을 공격하지 못한다면 도망이라도 칠 건가? 어디로?”
이 집의 창문은 현관문과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 창문을 통해 빠져나가지도 못할 것이고, 만약 저들이 적이고 공격 의사를 비친다면 무력을 쓰지 않고선 빠져나갈 구석이 없었다.
케이의 물음에 아덴이 픽 웃으며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야, 넌 나보다 머리 좋으면서 전투 머리는 참 나빠. 그러니까 맨날 나한테 당하는 거야.”
“뭐라고? 이런 미개한-”
“미개하긴 뭐가 미개해? 맞는 말 한 거지.”
“아주 이! 이! 자신만만하게 말하는구나 용사여. 어쩔 건데 네가! 어디 한번 말해보아라! 얼마나 그럴듯한 작전을 생각해냈는지 내 한번 판단해줄 터이니!”
그러자 아덴이 무척 얄미운 표정으로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안 알려주지.”
“유치하다! 유치하기 그지없다 인간아!”
두 사람이 여느 때와 다름없이 투닥거리고 있을 때 끼익- 쇠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문과 창문이 동시에 열렸다.
그리고 남자 여럿의 얼굴이 창문의 쇠창살 너머로 우르르 나타났다.
많이쳐도 이십대 중반, 대략 아덴과 케이의 또래로 보이는 놈들이 바깥에서 두 사람을 보며 씨익 웃었다.
“뭐야? 대스타님들이 여기 있네? 역시 여기 아직 너희 집 맞구나?”
그들은 아덴을 보며 낄낄 거리더니 허락도 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이야, 집안 꼴이 이게 뭐냐? 청소 좀 해!”
“근데 여긴 왜 왔냐? 너 되게 좋은 집에서 산다고 아주 방송에 떠벌떠벌 난리던데.”
“어어, 케이 아닌가? 우리 로건이랑 같은 멤버 맞죠? 안녕하세요~ 저흰 로건 학교 친구예요. 동갑인데 말 놔도 되지?”
“…….”
“야, 오랜만이다? 아이 시발놈아, 형님들 봤으면 인사를 해야지 왜 멍때리고 있어?”
“왜 겁을 먹고 그래. 우리 친구잖아?”
겁을 먹어서 입 다물고 있는 게 아니었다.
하도 하찮아서 그런다.
“하아…….”
뭐야 이 허접한 것들은.
케이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이곳 세계의 건달들은 원래 세상의 그들보다 허접한 모양이다.
상당히 자신만만하게 적임을 자처하고 들어오길래 무기라도 들고 들어오나 했더니 무기는 무슨, 그냥 운동 좀 했을 것 같은 일반인들이었다. 강자의 아우라가 전혀 없었다.
“뭐야. 방금 한숨 쉬셨어? 와 왕자님, 우리가 웃겨? 시발새끼네.”
“너흰 뭐지?”
“우리 로건 친구라니까? 그렇지?”
그렇냐고 물으면 당연히 그렇다고 하겠지. 그들은 낄낄 거리며 아덴에게 얼른 대답하라 눈썹을 까딱였다.
“아니면 뭐, 좀 떴다고 이젠 모르는 척 하는 거야? 어? 야, 대답을 하라고.”
낄낄거리던 얼굴이 한순간에 정색했다. 이름 모를 그들은 나름 위협적으로 아덴에게 다가섰다.
“어우, 이 새끼 못 본 새에 키 좀 컸네. 어? 내려다보고. …안 꿇어? 꿇어라 얼른.”
한편 아덴은 가까이 다가와 눈싸움을 하는 그들을 빤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봤는데 분명.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건지 스쳐 지나가듯 봐서 그런 건지, 그럴 리는 없겠지만 로건 리의 기억이 아덴에게 흘러들어오기라도 한 건지.
이들 모두를 어디선가 본 듯했다.
“꿇으라고 인마!”
그때 남자 중 누군가가 아덴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으, 으아악!!!!”
그러곤 제 다리를 붙잡고 동동 뛰었다. 그제야 아덴의 시선이 이동해 제 뒤의 건달에게로 향했다.
아무래도 무릎을 꿇리려는 생각이었던 모양인데, 저들이 무력으로 아덴을 무릎 꿇게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덴은 피식 웃으며 그제야 입을 열었다.
“지금 찼냐?”
“허! 우리 아덴이 연예인 됐다고 운동 열심히 했나 봐?”
정확히 아덴의 얼굴로 향하는 주먹. 아덴은 그들의 주먹을 숨쉬듯 가볍게 피해 가며 생각하다 겨우 기억이 떠올랐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너네 방송국 왔었던 애들이네?”
“어유 이제 기억나셨어요? 우리 눈도 마주쳤는데 아는 척도 안하고 들어가더라.”
그들 중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대답하며 제 주먹을 탈탈 털며 풀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오늘 이상하리만치 타율이 안 좋아. 단순히 안 좋은 게 아니고 아예 주먹이 들어가지를 않는다.
로건 리는 덩치가 산만 한 거에 비해 몸도 잘 못 쓰고 싸우는 건 더 못했으며 주먹을 피하는 건 더더욱 못했다.
‘회사에서 복싱이라도 가르치나…….’
눈꼴이 시려 잘 보지는 않았지만 믿을 수 없게도 데뷔한 로건 리는 몸을 잘 쓰는, 아크로바틱 천재쯤으로 일컬어지곤 했었다.
만들어진 천재. 아크로바틱을 연습하며 주먹을 피하는 실력까지 늘게 된 걸까?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그게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날센 주먹을 너무나 잘 피하고 있었다.
빠득, 남자가 이를 갈며 다시 한번 주먹을 날리는 순간.
터억.
남자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계속 피하기만 하던 아덴이 노골적으로 그를 노려보며 주먹을 잡아챈 것이다.
그러곤 말했다.
“아 보자 보자 하니까 이 새-”
-욕은 하지 마!
“어.”
“뭐?”
어디선가 또 다른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남자가 목소리가 들린 곳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아덴이 주먹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줘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아악!”
“아파? 이 정도 힘줬다고 아파? 너 운동 좀 한 거 같은데 이 정도로 아파하면 어떡해.”
“뭐? 이런 개시-”
“욕하지 말라잖아. 다물어.”
“아악! 아파아파! 아프다고 새끼야! 팔 놔!”
그니까 누가 욕 하지 말라 했냐고! 남자는 짜증이 팍 치솟았지만 더 욕할 수는 없었다. 아덴에게 잡힌 주먹이 무척 아픈데다 빠지지도 않아서, 욕하면 그대로 손가락 다섯개가 전부 부러질 것같았다.
“야! 너 뒤지고 싶냐? 애가 아프다잖아! 안 놔?”
그에 남자의 일행이 멀뚱하게 선 채 위협적으로 아덴에게 소리쳤지만 아덴은 꼼짝도 안하고 그에게 물었다.
“혹시 너냐? 인터넷에 글 올린 사람.”
“뭐?”
“너냐고. 말 같지도 않은 폭로글 올린 사람.”
아덴의 물음에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케이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저 물음에 무슨 대답이 나오냐에 따라 오늘 저들의 인생은 무척 달라지게 될 것이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다 픽 웃으며 말했다.
“어때? 재밌지?”
“…….”
“로건아 우리가 너 때문에 TV를 못 봐. 틀기만 하면 네가 나와서.”
“아아, 그래서 너희가 그랬다고?”
“네가 거기 왜 있어. 넌 계속 여기 있어야지. 여기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나 행동하며 살아야지 아이돌을 왜 해.”
“맞아. 인마. 네가 거기 어울린다고 생각하냐? 보니까 거기서 뭐 하는 일도 없드만.”
“우리면 네가 어쩌게? 뭐 방법 있어? 연예인은 이미지로 먹고사는 거야. 네 이미지 이미 시궁창에 있지 않냐?”
“그래서 너희가 한 거 맞다고?”
아덴은 그들의 비아냥과 시비에 대답하지 않고 계속 같은 것만 물어댔다.
그러자 처음엔 주먹을 잡히고서도 좋다고 히죽거리던 남자의 심기가 점점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래, 우리가 했다. 그래서? 놔라. 진짜, 여기서 또 뼈 두세 대 부러져선 골골대기 전에.”
“…….”
“너 정산은 받았냐? 아이돌들은 정산 받기 전엔 돈 없다며? 지금 다치면 활동 못 하고 우리 아덴이 집에서 쉬어야겠네? ……아 이 쌍놈아 물으면 대답을 하라고.”
남자가 답답함을 참다 못해 다리를 들어 아덴을 걷어차려는 순간, 아덴의 손이 그의 다리를 붙잡아 막는 동시에 또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정도면 됐다. 챙길 거 다 챙겨서 나와.
“……뭐?”
남자의 되물음에 대답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덴은 여전히 말없이 남자를 저 멀리 밀어버린 뒤 제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한 마디라도 튀어나오는 말은 전부 욕일 것 같아서 일부러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런 아덴을 뒤따라가며 남자들을 흘겨본 케이는 의문의 목소리에게 물었다.
“저 인간 같지도 않은 것들은 죽이지 않고 그냥 보내도 되나? 내가 깔끔히 처리해줄 수 있다만.”
그러자 의문의 목소리가 말했다.
-그냥 나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억이라도 지워야-”
-그냥 나오라고.
케이는 단호한 답을 듣고서야 뾰로통하게 그들을 두고 방을 나섰다.
“…….”
주인 없는 집에 남은 남자들은 자신들의 미래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멍하니 서로 시선 교환만 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