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5화
유제이 엔터테인먼트의 회의실.
오늘은 직원 없이 서도화와 아덴, 케이만 모여 진지한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로건 리에 대한 폭로가 터지기 무섭게 웃음을 잃어버린 서도화는 아덴이 로건 리의 집에 다녀온 이후 꽤 안도한 듯 보였다.
평소 만난 적도 없을 아덴에게 억하심정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았는지 폭로가 터지고 이슈가 되기 무섭게 부풀려지는 폭로 내용들.
짜집기된 영상과 렉카 너튜버들의 물타기 영상.
사회에서 아덴, 로건 리는 이미 가해자, 범죄자였고 급기야 마약을 했다는데 경찰 수사가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이 사건의 진위 여부는 어메스의 팬인 고요밖에 궁금해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유제이의 대처가 너무 늦어지고 있었다.
아니, 사실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신고를 한 사람들이 많았다며 경찰이 연락 오기도 했고, 피해자라던 폭로자들은 연락을 받지 않았다.
거기다 정작 당사자인 아덴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니-사실이 아닌 일을 폭로 당했으니 모르는 건 당연하다- 아덴의 생기부 등을 토대로 변호사를 만나고 기자들을 만나며 어떻게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까 전전긍긍하는 상황이었다.
유제이가 아무리 어메스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데이터가 있는 기존의 회사보다 논란에 유연히 대처할 수는 없었다.
아덴은 무고하다. 법적 조치를 하겠다 등의 기사를 낸 이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 정도면 인정한 거 아님?
-유제이 뭐해…? 사실무근인지 뭔지 그런 거 말고 제대로 된 입장문이라도 빨리 내주던가… 아무 말도 없으니까 이제 슬슬 나 불안해지려고 해…
-폭로 사실인가 보네 이 정도로 말 없는 거 보면 빼박이지…
논란의 상황이 너무 길어지자 중립, 혹은 어메스를 믿고 있던 고요들마저 조금씩 믿음이 떨어지고 있었다.
대처를 위한 준비 과정이 워낙 길다 보니 그간 유제이가 할 수 있는 건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실무근이다 하는 입장을 반복해서 말하는 것뿐이었다.
‘사실 고소 결과가 나오면 전부 끝날 문제이긴 하지만.’
그걸 기다리기엔 아직 한참이나 남았고 논란에 대한 불이 꺼지고 나서 사실이 아니라고 해봐야 어메스의 이미지는 이미 나락으로 떨어진 후가 될 터.
그러던 와중 아덴에게 증거가 생겼다.
“걔네들 진짜 너무 멍청한 거 아니야?”
서도화가 로건 리의 휴대폰을 만지며 픽 웃었다.
사태를 이렇게 크게 부풀린 것 치곤 너무 뒷생각 안 하고 아덴의 유명세에만 의존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도 그럴게.
“휴대폰 안에 증거가 이렇게 많은데.”
로건 리의 휴대폰은 이 회생 불가능할 것 같은 사태를 뒤집어엎기에 충분했다.
로건 리 또한 복수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그들과 나눴던 메신저 대화, 녹취록, 더 나아가서 그들에게 맞아 생긴 상처들까지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시스템이 자료라며 서도화에게 넘겨주었던 대화문과 음성은 전부 로건 리가 자신의 휴대폰에 간직하고 있던 것들이었다.
‘진료 기록 같은 것도 찾아보면 있을 것같은데?’
아무래도 아덴을 한번 더 보내 병원과 공공기관 등을 돌며 자료를 가져오라 해야 할 듯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거.
서도화는 로건 리의 휴대폰을 내려놓고 이번엔 제 휴대폰을 켰다.
그 바보들이 이유는 모르겠지만 타이밍 안 좋게 로건 리의 집에 찾아왔었다.
때마침 그땐 아덴과… 왜 따라갔는지 모를 케이가 집 안에 있을 때였고 아덴이 서도화에게 영상통화를 거는 타이밍에 그들이 집으로 들어왔다.
원래 로건 리의 집을 살펴보고 찾아볼 곳을 직접 지시하기 위해 건 통화였지만, 그들이 집안으로 침입하려는 낌새를 보이는 순간 서도화는 빠르게 영상통화를 음성 통화로 돌려 녹음했다.
‘말 한번 더럽게 거칠었지.’
과거 로건 리를 어떤 식으로 업신여기며 괴롭혔는지 아덴이 그들을 상대하는 그 잠깐 사이 바로 알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마 아덴이 이곳에서 참는 방식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도적 떼 말살하듯 두들겨 맞아 반송장이 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영상통화를 통해 그들 중 일부가 폭로자임을 확인했고 이젠 보복할 일만 남았다.
“고생했어. 아덴은 나중에 직원들이 부탁하는 서류 있으면 잘 가져다드리고-”
서도화가 고개를 돌려 케이를 쳐다보았다.
“너도 뭐, 고생했다. 앞으로도 협조 잘해주고.”
“그러지.”
서도화는 로건 리의 휴대폰을 챙겨들고 회의실을 나섰다.
마땅한 증거가 없어서 고전하고 있던 유제이 엔터는 이 휴대폰 하나로 단번에 상황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 * *
그 시각.
“뭐야, 너 저거 안 봄?”
“어, 나중에…….”
리모콘 버튼을 누르는 정현의 표정은 무기력하다 못해 애잔해 보이기까지 했다.
밀리언 아이돌에서 어메스의 무대를 보았던 그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단 한 순간도 그들의 팬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고요로서 너튜브, sns 할 것없 이 왕성한 활동을 보이며 수많은 고요들을 유입시킨 일명 영업왕, 고요 속 네임드로 자리 잡은 그녀는 사건이 터지고 일주일 뒤 결국 자신의 sns에 slow를 걸었다.
애정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사건이 터지고 보이는 유제이의 애매한 대처, 물론 소속사에서 막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덴이 지금까지 그 어떤 입장도 표명하지 않는 것에 대한 실망감.
그래도 그녀는 아덴을 믿고 있었다.
장난이 심하고 언사가 저돌적인 터라 팬들끼리 장난으로 어메스 내의 대장이라 놀리곤 했지만 절대 누군가를 괴롭힐 멤버는 아니었다.
가장 불량해 보이지만 어메스 내에서 제일 정의로운, 가장 정이 많고 멤버들을 잘 챙기는 멤버.
비록 불량한 이미지 때문에 대중들에게 더욱 욕먹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팬들은 아직 중립을 유지하며 사태를 지켜보는 중이다.
다만 이 사건이 무척 길어지고 유제이가 대처를 애매하게 하는 터라 심적으로도 많이 지친 상태고, 무엇보다 어메스 팬덤에서 가장 유명한 팬으로 아직도 논란인 아이돌을 파냐며 대놓고 비난도 많이 받는 터라, 잠시나마 제 sns를 동결시켜두었다.
계정을 닫는다는 뜻의 클로즈가 아닌 지쳐서 그렇지 슬로우를 건 건 아직 어메스를 지지한다는 의미였는데, 안타깝게도 slow를 걸기 무섭게 렉카들이 이를 조명하였다.
[네임드 팬마저 등 돌린 아덴 어디까지 추락하나]
라는 영상이 너튜브에 업로드되었을 때 정말 눈이 뒤집히는 줄 알았다.
영상 내려달라 말해도 렉카너튜버는 들은 척도 안하더라.
그렇게 파란만장한 2주를 보내고나니 참 이상하게도 어메스를 보기가 힘들어졌다.
예전엔 찾아서 보고 더 볼게 없다 서치해서 보고, 보고 또 봐도 보고 싶은 어메스였는데 뭐든 사건의 진위가 확실해질 때까진 어메스 속 아덴을 보는 게 뭐라고 해야할까? 심적으로 힘들었다.
아덴을 믿지 않는 건 아닌데 확신할 수 없으니 그를 보고 좋아하는 것 자체가 양심에 찔리는 것 같달까.
그냥 심적으로 지쳐서 보기 힘든 것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정현은 방금 어메스가 나온 예능의 재방송을 제 손으로 돌려버렸다. 그저 조금이라도 빨리 이 사태가 해결되길 바랄 뿐이었다.
‘그래야 계속 좋아하든 마음을 접든 할 거 아니야. 이 유제이 개 같은 놈들.’
어메스 예뻐해 준다고 오냐오냐해줬더니 논란 하나 터졌다고 바로 버벅이는 것 봐라.
이래서 작은 기획사는 안 되는 거라니까?
정현은 툴툴거리며 보기 싫은 tv를 노려보곤 제 휴대폰을 켰다.
그리고 무심결에 메신저를 확인하는 순간.
“……뭐야? 여기 왜 터졌어? 또 뭔데 또.”
고요들끼리 운영하는 단체 메신저가 아주 난리가 나 있었다.
사건이 터진 지 2주.
이젠 이 메신저방이 시끄러우면 불안하기만 했다. 대체로 또 폭로 터졌대 하는 소식만 나오다보니.
추가 폭로 아니면 아덴의 인정과 탈퇴 이중 하나가 나오면 어쩌지? 매번 심장에 크게 무리가 오곤 했다.
‘제발 폭로, 탈퇴 아니고 반박 입장문이여라…….’
정현이 무겁게 숨을 내쉬고 떨리는 손으로 메신저방에 들어가자, 메신저방의 분위기는 의외로 무척 활기를 띠고 있었다.
무려 2주만에 보는 긍정적인 활기.
정현이 빠르게 스크롤을 내리며 고요들의 화젯거리를 확인했다.
-니들 봤음? 유제이 입장문 뜸
-ㅅㅂ 뭐라고 하는데? 인정인지 반박인지 그것만 말해봐 인정이면 준비하고 봐야 함
-개불안하네 무소식이다가 갑자기 입장문 내는 경우 좋은 케이스를 본적이 없어…
-아 일단 보라고~ㅋㅋㅋㅋㅋㅋ아니래
-덴이 아니래 증거도 ㅈㄴ많던데
-ㅋㅋㅋㅋ나도 봤음 ㅇㅈㅇ 뭐하나 했는데 원기옥 모았나 봐
내용인즉슨, 유제이가 이를 갈고 모든 반박 자료들을 들고 와 아덴에 대한 폭로를 전면 부인했다는 말이었다.
그것도 아주 확실한 증거들만 가지고서.
정현의 얼굴에 미소가 맴돌았다. 그녀를 서둘러 메신저를 닫고 어메스 공식 어플을 켜 유제이의 입장문 전문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