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7화
“여러분 잘 지내셨어요?”
한야의 물음에 고요들은 되려 멤버들의 안부를 물어왔다.
오랫동안 소통이 단절되었던 터라 더더욱 어메스의 상황이 궁금했을 터.
다른 휴대폰으로 채팅을 확인한 서도화가 안심하라는 듯 멀쩡한 아덴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저희도 잘 지냈어요.”
아덴은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잘 지냈어요. 걱정끼쳐서 죄송합니다.”
“참……. 그간 많은 일이 있었죠? 그런데 저희 정말 괜찮아요. 여러분. 걱정해주셔서, 또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그럼 저희가 너무 오래 대화를 못나눴으니까 그동안의 근황들을 이야기해 볼까요?”
한야는 시작하자마자 어두워지려는 분위기에 따르게 화제를 바꾸었다.
“멤버들 활동 끝나고 주어진 자유시간이 길었어요. 다들 어떻게 지냈어요?”
물론 휴식기에 들어가자마자 사건이 터진 터라 제대로 휴식을 취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고요들에게 이야기할 건 있었다.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주상현이 아덴과 케이를 가리켰다.
“두 사람은 얼마 전에 아덴 형 집에 다녀오지 않았어요?”
“아, 어.”
아덴이 대답하곤 픽 웃으며 케이를 가리켰다.
“그때 좀 어이없었어. 나는 매니저 형 차 타고 다녀왔었거든? 근데 얘가 골목 끝에 숨어 있는 거야.”
“헐 뭐야. 케이 형은 개인적으로 간 거였어요?”
주상현의 물음에 케이가 말없이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그러자 한야가 흐뭇하게 웃으며 케이를 토닥였다.
“케이가 아덴이 많이 걱정했었구나?”
“그런 건…….”
난감해하는 케이의 모습에 서도화가 씨익 웃으며 놀리듯 말했다.
“얘 은근 그렇다니까? 세상에 자기밖에 없는 것처럼 굴어도 되게 멤버들에 대한 걱정이 많아.”
서도화의 말에 케이가 멈칫하더니 곧 얼굴이 터질 것같이 더욱 붉어져선 서도화를 노려보곤 말했다.
“너는 조용히 해라.”
“어. 아무튼, 아덴은 어땠어? 오랜만에 집에 가니까 기분 이상하지?”
아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좀 놀랐어.”
처음엔 아덴이 살던 진짜 집과 매우 닮아서 놀랐고 그 다음엔 제 집보다 훨씬 볼품없고 온기 하나 없는 집안의 모습에 놀랐다.
아덴도 좋다곤 할 수 없는 집에서 살았지만 아마 로건 리의 집에서 계속 산다면 참 마음이 우울해질 것같았다.
“뭐가? 나도 형 집 궁금하다.”
“형도 궁금하네, 아덴 집 어때?”
한야의 물음에 아덴이 표정없이 말했다.
“뭔가, 정리 안 하고 나왔나 봐. 먹고 안 치운 컵라면이 있었어.”
“으악 그게 뭐야.”
“아덴은 숙소 들어오기 전에도 자취하고 있었어?”
“응.”
아마도. 로건 리가 사라졌는데 찾는 가족도 없고 로건 리가 사라진 흔적이 그대로 있는 것보면 아마 그럴 것이다.
서도화가 손을 들었다.
“나도 자취했었어. 고시원에서.”
“엥 진짜? 아니 다들 왜 이렇게 빨리 자취를 해?”
“사정이 좀 있어서. 연습생 중에는 자취하거나 하는 사람 은근 많더라.”
“맞아. 회사에서 숙소 마련해주는 경우도 꽤 있긴 하지만.”
물론 한야는 숙소 생활을 하지 않았고 서도화 같은 경우 숙소 생활을 하다 괴롭힘에 환멸이 나서 따로 나오긴 했다.
“자취 어때? 난 혼자 살면 어떤 기분인지 되게 궁금하더라고.”
멤버들은 언제 긴장했냐는 듯 대화를 이끌었고 팬들과 소통했다.
근황 보고와 거기서 파생된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대화를 이어나가던 한야는 슬쩍 시간을 확인하더니 말했다.
“자 그럼 근황 보고는 여기까지 하고, 저희 아직 어메스로 놀아보자 마지막 화 방영 안 됐죠?”
한야가 이병수를 쳐다보고 말하자 이병수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방영되기 전에 먼저 말해볼까요? 좀 늦기는 했지만 여러분 저희의 첫 활동, 데뷔 앨범 활동이 끝난 소감이 어때요?”
한야의 물음에 멤버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 늦은 질문 아니에요?”
아덴이 말했다. 그의 말처럼 활동 끝난지 거의 한 달이 다 되어서 묻는 건 좀 웃기긴 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이들은 원래 활동이 끝나고 어메스로 놀아보자 촬영 후 곧장 온앱으로 활동이 끝난 기념 라이브를 할 예정이었지만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하지 못했었다.
한야가 주상현을 가리켰다.
“막내 상현이부터.”
“엑 나부터? 음…….”
주상현은 첫 타자인게 부담스러운지 한참 고민하다 머쓱하게 말을 꺼냈다.
“저는 그냥 너무 좋았어요. 너무 데뷔가 하고 싶었거든요. 약간 그, 데뷔 하면 딱 상상되는 희망적인 그림이 있잖아요.”
주상현이 양손을 제 머리 근처에서 휘저으며 말했다.
데뷔하면 팬들의 사랑 속에서 무대에 서고 멤버들과 즐겁게 우애를 나누고 예능 출연을 하는 등 생각했던 로망들이 있었다.
물론 프로젝트 그룹으로 이미 한 번 경험해 보았지만 어메스 멤버들과 겪은 건 또 느낌이 다르리라.
“그런 아, 이랬으면 좋겠다 하는 상상들이 진짜 현실처럼 이루어졌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었어요.”
“오오, 그럼 상현이는 상상했던 걸 다 이룬 거야?”
“거의 다 이뤘어. 그래서 약간 나는 활동 하는 내내 꿈같았어. 나 진짜 데뷔한 거 맞나? 진짜? 막 이런.”
물론 이 기분이 활동이 끝나고도 계속되었으면 좋았겠지만.
주상현은 흥분해서 말하다 씁쓸히 올라오는 기억에 진정하고 말을 마쳤다. 그러곤 제 다음 순서인 서도화를 가리켰다.
“형은 어땠어?”
“나는……. 나는 몇 번 말했던 것 같은데 데뷔가 너무 하고 싶었거든. 엄청 노력했는데 자꾸 미끄러지곤 해서, 그래서 그냥 좋았어.”
“맞아. 형 매번 그렇게 말했잖아. 그냥 좋았다고.”
서도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상현처럼 매번 다르게 감상을 말할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서도화는 진짜로 그냥 좋았었다.
데뷔해서 겪는 시련도 행복도 모든게 행복하고 좋았다.
물론 마음 한구석에 매번 불안을 안고 가야하긴 했지만 그 불안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있는 지금 다음 앨범은 더 재밌게 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되었다.
“무대에 서거나 예능 방송에 출연하거나 우리 고요 분들과 만날 때나 한 순간 한 순간, 아 내가 데뷔 전에 고생하고 노력했던 게 헛된 게 아니구나 생각해.”
“그렇지. 그 순간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는 거지.”
한야가 아덴을 가리켰다. 아덴이 얼른 입을 열었다.
“나는 이번 데뷔 활동을 배운다는 생각으로 했어서, 솔직히 즐겁기도 하고 좋기도 했는데 계속 긴장하고 있었어.”
연예계는 이 세계 내에서도 꽤 특수하게 굴러가는 사회인 모양으로 그 규칙을 파악하기가 몹시 어려웠다.
그러나 이제는 꽤 적응했다고 생각했다. 그저 이런 사건이 터져서 멤버들에게 미안하기만 할 뿐.
“아덴은 사실 밀리언 아이돌 참가 전엔 연예계에 관심이 없던 친구였어요. 여러분.”
한야가 아덴을 가리키며 말했다.
“케이도 그렇고 잘 모르던 연예계인데 캐스팅되서 연습생 되고 데뷔한 친구들이라 적응하느라 꽤 진뺐던 것 같아요. 두 사람도 그렇고 멤버들도 그렇고.”
“맞아. 꽤 어려웠어.”
주상현과 서도화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서도화가 말했다.
“거의 백지상태였어요. 저희 셋은 또 연습생 생활을 꽤 했던 사람들이니까 서로 적응하기 힘들어했었지.”
“물론 지금은 잘 적응하고, 아니 너무 잘 적응했지.”
“하하하, 다음은 케이. 어땠어 이번 활동?”
“나는…….”
한야의 질문이 자신에게로 향하는 순간 케이는 갈등했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지금까지의 분위기를 보면 좋은 말을 해야 하는 게 맞았다.
심지어 용사까지 좋게 말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사실 실제로도 꽤 즐겁게 활동했던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멤버들 앞에서 즐겁다는 말을 직접 꺼내며 창피를 당해야한다는 것이었다.
말하면 용사와 음유시인이 또 얼마나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놀릴까 생각하면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래서 다른 감상을 착기 위해 지난 활동을 되돌아보면…….
케이는 눈꺼풀을 내리깔았다. 서도화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카메라엔 케이의 표정이 어떤 식으로 비칠까?
케이는 무언가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괜히 제 바지를 손으로 구겼다 펴며 고민하던 케이는 조용히 한마디를 꺼내놓았다.
“무척, 재밌었습니다.”
케이는 제 입에서 말이 튀어나가는 순간 모든 막힘이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며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다른 말을 찾아보려 멤버들과 함께 웃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행복했던 지난 날들을 떠올려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한 가지 감상만이 떠올라 어쩔 수가 없었다.
재밌었다. 마왕으로서, 감정 따위 없는 마족들과 함께하면서는 결코 느껴본 적 없는 감정.
인간으로서, 무시당하고 멸시당하고 또 배신당하고 버림당하던 원래 세계에서는 한번도 받아본 적 없는 따스한 온기와 신뢰, 그리고 마음 속에서부터 우러러나오는 멤버들의 웃음소리에 안정을 느꼈다.
정말로 꽤나 즐거웠다.
케이의 솔직한 감상을 들은 멤버들은 살풋 놀란 듯 동그란 눈으로 그를 보다 케이와 마찬가지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