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0화
컴백 전 모든 멤버들이 순서대로 하나씩 촬영해 올리기로 계획했던 솔로 스페셜 클립.
그 첫 타자는 멤버들 중 가장 아이돌로서 인지도가 높은 서도화였다.
유제이의 회의실에선 서도화의 컨셉을 무엇으로 할지에 대해 열띤 논의가 펼쳐졌다.
“일단 들어온 곡 중에 도화 이미지에 맞는 곡들로 몇 곡 골라봤거든요? 한번 들어봐 주세요.”
A&R팀 직원이 서도화의 솔로곡 후보들을 순서대로 틀어주었다.
이들은 사건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작업을 이어나갔는지 완성에 가까운 곡들뿐이었다.
“지난번 회의에서 말했던 대로 도화의 컨셉은 깨끗함과 청량함으로 잡고 부합하는 노래들 중에서도 고르고 골랐어요.”
서도화는 꽤나 만족스럽게 곡을 들었다.
팬들과 회사 사람들이 생각하는 서도화의 이미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깨끗하고 맑고 부드러운 이미지와 화려함이 어울리는 이미지.
그러나 화려한 컨셉이라면 케이가 더 강하기에 서도화는 깨끗하되, 청량하면서도 비주얼적으로 뛰어난 컨셉을 잡았다.
“일단 저희가 생각하기에는 도화가 노래로 대중적 인지도나 이미지가 상당히 좋으니까 이 부분을 이용해서 가장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좋은 곡을 쓰면 어떨까 싶어요.”
일명 대중 픽. 서도화는 멤버들 중에서도 가장 대중 픽을 노려봄직한 멤버다.
첫 타자이기도 하고 기대하는 바도 무척 크므로 서도화의 컨셉엔 긴 시간 공을 들였다.
“으음, 고민되네.”
순서대로 재생되는 곡을 듣는 김유진도 흐뭇하게 입꼬리를 올린 채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A&R팀이 가져온 곡은 모든 곡을 앨범에 담고 싶을 만큼 좋은 퀄리티의 곡이 대부분이었다.
김유진은 한참이나 고민하다 서도화를 쳐다보았다.
“도화는 어떤 곡이 제일 마음에 드니?”
“저요? 저는 두 번째 곡이요.”
서도화도 다른 직원들만큼이나 고민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는 즉답을 꺼내놓았다.
“오오, 왜?”
“두 번째 곡이 춤추기 가장 좋을 것 같지 않아요?”
서도화가 고른 곡은 재생된 곡들 중 가장 활달하고 안무가 잘 나올 것 같은 곡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도화도 춤으로 캐스팅된 애지.
김유진이 잊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컬로 유명해진 멤버지만 데스티니에 캐스팅될 당시엔 아이돌 커버 댄스가 너튜브에 올라와 화제가 되었었다.
물론 김유진도 그 영상을 보았었는데 조만간 TV에서 볼 것 같다는 댓글이 줄을 이었었다.
그리고 현재는 성지순례 영상으로 다시 한번 소소한 이슈가 되는 중이기도 했다.
그런고로 댄스에도 상당히 일가견 있는 멤버이긴 한데, 팬인 고요들이야 서도화의 춤 실력을 몹시 잘 알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대중들은 서도화의 댄스 실력을 잘 알지 못한다.
어메스엔 댄스나 아크로바틱을 잘하는 멤버가 많기도 하고 보컬 실력이 너무 뛰어나 댄스 실력이 묻히는 특이 케이스였다.
물론, 이런 사실은 서도화도 무척 잘 알고 있었다.
“저는 꼭 두 번째 곡으로 하고 싶어요. 다른 분들의 의견이 다르다면 어쩔 수 없긴 해도요.”
서도화는 스스로 욕심도 열망도 강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노래로 인정받는 것도 좋지만 춤으로도 인정받고 싶다.
춤과 노래가 좋아 가수가 되었으니 당연한 생각 아니던가?
기왕 솔로곡을 받는데 보여줄 수 있는 건 다 보여주는 곡을 받고 싶었다. 회사에서 들려준 곡들은 전부 어느 정도 안무가 가미될 법한 곡들뿐이었지만 그래서 그중에서도 댄스 브레이크가 들어갈 구간도 있고 제대로 안무를 뽑을 수 있는 곡을 골랐다.
사실 노래는 어떤 곡을 받아도 좋을 것이고 잘 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김유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직원들에게 말했다.
“그럼 두 번째 곡으로 일단 추진해 봐요. 안무도 빡세게 받아오고.”
“네.”
“그럼 다음은 이 클립 영상을 어떤 식으로 만들 건가에 대해 의견을 나눠볼 건데 일단 제가 한 마디 하자면.”
김유진이 말했다.
“도화는 라이브로 갈 겁니다. 이건 확정이에요.”
“오우…….”
“미리 녹음한 거 말고 생라이브로. 영상 보정할 때도 라이브인거 잘 티 나게 부탁해요.”
서도화 얼마나 춤을 잘 추든 어메스의 메인보컬이고 보컬로 가장 유명한 멤버.
가뜩이나 최근 아이돌 그룹들의 립싱크, 혹은 립싱크에 가까운 무대가 논란이 되는 때에 라이브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수단이 될 터.
김유진은 안정적으로 생라이브가 가능한 멤버는 라이브를 시키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물론 케이나 아덴, 보컬보단 댄스에 훨씬 더 치중할 주상현 등은 후보정이 빡세게 들어갈 테지만.
“……살짝 아련한 색감이었으면 좋겠어요. 과거의 즐거웠던 추억을 회상하는 것처럼 청량한 그런 느낌.”
“그럼 아예 바다가 보이는 야외를 섭외해도 괜찮겠네요? 스튜디오 잡으려고 했는데.”
“크으, 좋지. 바람 부는 날 의상도 너무 꾸미지 않고.”
“그런데 라이브라고 하지 않았어요? 바람 불면 바람 소리 엄청 들어갈 걸요?”
“바람소리는 없앨 수 있어. 그거 잘하는 친구 있어.”
“생방 라이브도 아니니 괜찮아요. 그건.”
많은 의견들이 오갔다. 원래라면 진즉에 진행되었어야 할 서도화의 솔로 클립.
일정을 원래대로 되돌리려면 서둘러 움직여야만 했다.
그렇기에 한 번의 회의로 많은 부분이 결정되었고 곧 진행되었다.
* * *
“도화 밥은 먹고 다니냐?”
지나가다가 만난 아덴이 걱정스레 서도화에게 말을 걸어왔다.
서도화는 그럭저럭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솔로곡 녹음과 라이브 연습, 회의 등으로 무척 바빴지만 그래도 활동이 없어서 그런지 그럭저럭 잠은 잘 자고 있었다.
‘생활리듬이 바뀌어서 그렇지…….’
쉬는 동안 망가졌던 생활 리듬을 원래대로 되돌린 멤버들, 그에 반해 서도화는 변함없이 새벽까지 연습하다 해 뜰 때 되어서 집에 와 저녁까지 자고, 또 안무가가 올 시간에 맞춰 일어나 라이브 연습하길 반복하는 일상을 지내고 있다.
그 덕분에 요즘 서도화는 멤버들의 자는 모습밖에 보지 못했다.
멤버들도 마찬가지로 서도화가 자는 모습밖에 보지 못하다 보니 멤버들은 서도화를 꽤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겨우 아덴과 우연히 마주치게 된 것이다.
아마 아덴도 솔로 클립 영상 건으로 불려온 듯했다.
“그럭저럭? 힘내라.”
모처럼 만나니 반갑기도 반가워 긴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서도화는 앞서간 이병수를 따라 다시 발길을 돌리며 이제부터 고생할 아덴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빠르게 다가온 촬영일. 멀리 바다까지 가야 하므로 얼른 이동해야 했다.
서도화가 차에 타자 이병수가 퀭한 얼굴로 시동을 걸었다.
“도화 고생했다. 오늘 하루만 더 고생해.”
“전 잘 자서 괜찮아요. 형이 더 큰일인데요.”
그래도 컨디션 챙겨가며 일한 서도화와는 달리 이병수는 아침엔 멤버들을, 밤엔 서도화를 챙기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나마 오늘은 운전하는 날이라 좀 잤다고 하던데, 그럼에도 깊게 파인 다크서클은 영 사라지질 않았다.
“좀 자서 괜찮아. 출발한다. 안전띠 매.”
“맸어요.”
차는 주차장을 떠나 촬영 장소로 향했고 서도화는 휴대폰을 켰다.
아덴의 이슈는 가해자 측에서 사과문을 올려 아덴에 대한 모든 오해가 풀리며 잠잠해졌다.
아직 가해자에 대한 고소가 진행 중이지만 그렇게 뜨겁게 불타올랐던 게 허상이었던 것처럼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서도화는 평온함을 되찾은 SNS를 둘러보다 이병수에게 물었다.
“오늘 아덴 회사 왔던데.”
“덴이 뿐만 아니고 다른 멤버들도 오긴 왔어. 쉴 만큼 쉬었으면 연습해야지.”
“다음 클립 아덴 차례 아니에요? 컨셉 정해졌어요?”
“어, 멤버 전원 정해졌어. 애들 개성이 강하니까 컨셉 하나는 확실하게 잡히더라.”
서도화는 이병수가 말해주는 멤버들의 컨셉을 듣고 감탄했다.
하나같이 찰떡이면서도 도전적인 컨셉들이었다.
서도화가 안정의 대중성을 노리며 밝고 아련하고 청량한 추억 컨셉을 잡았다면 아덴은 붉은 컬러를 이용한 딥다크, 주상현은 무려 슬럼가와 사이버펑크가 합쳐진 컨셉-주상현의 의견이 강하게 들어갔다고 한다-, 케이는 노래와 춤보단 비주얼과 분위기를 최대로 살린 퇴폐, 한야는 동양풍 컨셉이라고 했다.
“어유 너무 강한데. 저 묻히는 거 아니에요?”
진짜로 그럴까 봐 걱정이었다. 컨셉이 너무 약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다른 멤버들의 컨셉이 강하니까.
서도화의 말에 이병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픽 웃으며 말했다.
“네 컨셉이 약한지는 영상이 공개되면 알겠지. 난 절대 네 컨셉 약하다고 생각 안하는데?”
아련함과 추억은 사람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또 머물고 싶게 만든다.
그런 감성을 건드려 또 보고 계속 보고 싶게 하는 게 서도화의 컨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