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211화 (211/270)

제211화

서도화가 도착한 곳은 바다가 잘 보이는 건물의 옥상이었다.

과한 꾸밈없이 수수하게. 장신구도 목 위론 거의 들어가지 않고 대신 팔찌와 반지만.

서도화가 입은 옷은 일상에서도 많이 입을 것 같은 데일리룩이었다.

“도화야 다른 건 괜찮은데 반지만 옷에 안 걸리게 조심해줄래? 부탁할게.”

“바닥 구르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찢어지면 안돼. 알지?”

머리를 수정해주는 스타일리스트들의 말에 서도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조심할게요.”

그러곤 제 옆에 있는 비하인드캠을 보며 말했다.

“제가 옷을 찢을까 봐 불안하신가 봐요.”

겉보기엔 평소보다 화려함이 덜했지만 듣기론 지금 입은 옷 전부가 협찬으로 고가의 의상이라는 듯하다.

컨셉에 의상이 찰떡이긴 한데 컨셉에 비해 안무가 격한지라 스타일리스트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서도화는 제 의상을 만지작거리다 비하인드 카메라를 보았다.

“혼자 있으니까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좀 어색하네요.”

멤버들 없이 혼자서 하는 촬영.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카메라 앞에서 혼자 말하며 오디오를 채우는 건 어렵다.

비하인드 카메라이니 편하게 있으려고 해도 막상 편하게 있었던 비하인드 영상을 보면 편한 부분 다 잘리고 카메라와 소통이 있었던 부분만 편집되어 나가더라.

카메라와 소통이 있었던 부분이 훨씬 볼거리가 풍성해 보일 것이다.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던 서도화는 가장 안정적인 말을 꺼내보았다.

“멤버들은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요?”

역시 할 말 없을 땐 멤버들 이야기부터 꺼내는 게 좋지.

그러자 비하인드 카메라를 든 스태프도 서도화를 도울 작정인지 이것저것 질문을 꺼내놓았다.

-예상해보자면? 멤버들이 뭘 하고 있을까요?

“어…… 케이는 이제야 밥 먹고 있을 것 같고요. 한야 형은 케이 밥 먹이고 있을 것 같아요.”

서도화는 픽 웃었다. 늘상 보는 풍경이다. 케이는 마왕 시절 밥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었기에 그런가? 밥 먹는 걸 자주 잊어버리곤 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초반에 밥을 안 먹겠다고 버티던 것도 밥을 먹는다는 행위 자체가 마왕이 아닌 인간으로 돌아가는 듯해서 거부감을 느꼈던 것일 수도 있겠다.

-한야 씨가 케이 씨 밥 챙겨주는 거예요?

“네, 한야 형이 전반적으로 멤버들을 많이 챙겨요. 밥 먹는 시간 자는 시간, 운동하는 시간 안 지키면 좀 무서워져요. 상현이나 아덴은 회사에 있을 테고…….”

서도화가 말을 마치고 가까이 보이는 바다에 시선을 뒀다.

“멤버들 보고 싶네요.”

아덴이 바다를 본 적 있던가? 본 적은 있었는데 그땐 바다를 즐기기보단 바닷속에 사는 종족을 만나기 위해 휩쓸려 잠겼을 뿐이었다.

애초에 그 세계는 멸망 직전이라 바다가 바다가 아니고 거의 폐수였어서 이세계의 아름다움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덴이 바다를 제대로 본 적이 없거든요. 한번 데리고 오고 싶어요. 케이도 없던가? 케이는 잘 모르겠는데 그 친구도 데리고.”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서도화가 이제야 말문이 트여 이것저것 이야기하고 있을 때 촬영 준비가 끝났다는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서도화는 카메라를 향해 양해를 구하며 일어섰다.

“잘 하고 오겠습니다.”

두 주먹 불끈 쥐어 보이며 촬영 장소로 향했다.

* *  *

카메라 앞에 선 서도화는 다시 가볍게 목을 풀어보았다.

바람이 부는 야외에서 라이브. 이건 또 색다른 경험이었다.

물론 야외에서 불렀던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부를 때마다 저도 모르게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가 만족할만한 라이브는 안 되었던 것 같다.

‘잘하자.’

서도화가 댄서들과 함께 자세를 잡고 있을 때 어디선가 띠링! 소리가 들려왔다.

이병수가 서도화의 모습을 따로 촬영하고 있었다.

너튜브 쇼츠 업로드용인가 보다.

“자, 시작할게요. 음악주세요.”

서도화와 댄서들이 완전히 자리를 잡자 감독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곧 곡이 재생되며 촬영이 시작되었다.

* *  *

“컷! 도화 씨 역시 라이브 잘하네!”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는 젊은 감독이 서도화에게 양 엄지를 번쩍 추켜들었다.

아직 감독 경험이 그리 많지 않아 많은 아티스트들을 만난 적은 없지만 지금까지 만났던 아티스트 중에 단연 독보적인 실력을 가진 사람을 만났다.

‘이래서 인기가 많구나.’

격렬한 안무에도 전혀 흔들림 없는 라이브. 그러나 립싱크라고 착각할 수는 없다.

mr을 뚫고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발성하며 간간히 들리는 숨소리까지.

아이돌 팬들이 말하는 라이브이기에 더욱 좋았던 공연이 이런 걸까?

오히려 현장감이 한껏 느껴져서 좋았다.

“이래서 매니저분이 이걸 촬영했구나.”

사실 이제 사람들이 제 작품을 알아봐주는 신인 감독답게 제가 연출한 상황을 누군가 의도하지 않은 다른 카메라로 찍는 게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었는데.

이제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매니저는 이 현장감을 남기고 싶은 것이다.

후보정이 들어가지 않아도 완벽한 라이브, 라이브임이 확실한 발성.

감독이 소속사 직원이라도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잠깐 휴식하고 다시 촬영 들어갈게요. 도화 씨 의상 갈아입어 주세요.”

“네!”

감독의 말에 서도화는 ‘감사합니다’ 크게 인사하곤 어메스팀 스태프들과 옥상을 내려갔다.

“도화 수고했어.”

건물에 마련된 대기실에서 의상을 갈아입고 메이크업을 수정하고 있으니 이병수가 다가와 자신이 촬영한 동영상을 서도화에게 보여주었다.

서도화는 영상 속 곡이 시작되고 제 노랫소리가 들리자마자 움찔했다.

“이렇게 크게 불렀어요?”

바람이나 이어마이크 특성상 잘 안들릴 것으로 생각해 평소보다 우렁차게 부르긴 했지만 옥상에 아주 쩌렁쩌렁 울린다.

마이크 소리가 아니고 그냥 서도화의 생 목소리가 mr을 뚫고 들려왔다.

크게 부르려고 안간힘을 쓴 게 느껴져서 살짝 민망한 기분이 드는데 오히려 이병수는 무척 만족스럽다는 듯 싱글벙글이었다.

“도화만 알고 있어. 이거 따로 너튜브에 올릴 거야. 너 라이브 잘하는 거 사람들이 많이 알면 좋잖아.”

“감독님이 엄청 놀라시더라. 노래 잘 부르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잘 부르는 줄은 몰랐대.”

“맞아. 오디오팀도 한순간 머리 하얘졌다고 아주 칭찬을 얼마나 하시던지.”

그들의 말에 서도화가 작게 웃었다.

다행히 동영상으로 보이는 자신은 춤도 노래도 안정적으로 잘 하는 듯 보여서, 아니 오히려 후보정이 들어간 것보다 이 흔들리는 영상이 쇼츠 등으로 더욱 많이 편집되어 돌아다닐지도 모르겠다.

서도화가 동영상을 끝까지 확인하고 이병수에게 넘겨주자 이병수는 휴대폰 속 시간을 확인하더니 스타일리스트들을 재촉했다.

“좀만 더 빨리 준비합시다! 건물 위에서 찍는 거라 얼른 끝내고 가야한대요.”

“아아, 다 했어요. 다 했어요.”

다음으로 입은 의상은 너른 하얀 셔츠와 검은 바지.

이번에도 데일리 룩인데 이번엔 라이브를 하기 위해서가 아닌 영상 인트로와 공연 중간 중간에 실릴 영상 촬영이다.

준비를 마친 서도화와 스태프들이 다시 옥상으로 올라가자 촬영 장비들을 방향을 바꾸어 바다가 잘 보이는 난간을 향해 세팅되어 있었다.

“도화 씨 왔어요? 이번 촬영은 저쪽 끝에서부터 난간을 따라 쭉 와서 바다를 보며 대화를 나누는 씬 하나, 의자에 앉아서 편하게 쉬고 대화 나누고 커피 마시는 씬 하나 촬영할 거예요.”

“대화는 그냥 아무 말이나 하면 될까요?”

“네, 카메라 너머에 사랑하는 연인 또는 친구가 있다고 생각하고 아무 말이나 해주세요.”

“넵.”

“두 씬만 촬영하고 바로 바다로 갈게요.”

두 번째 촬영이 시작되었다.

서도화는 난간 끝에서 끝까지 천천히 걷다 표시된 곳에서 몸을 돌려 바다를 바라보았다.

“하아.”

탁 트인 바다를 보니 허심탄회한 한숨이 절로 튀어나왔다.

촬영 중임에도 불구하고 참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광경이었다.

그렇게 멍하니 바다를 보고 있다 문득 옥상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 구도 어디서 많이 봤다고 생각했더니.’

크레센도 뮤직비디오에서 촬영했던 거랑 같은 구도 아닌가?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보이는 게 드높은 서울의 건물이 아닌 탁 트인 바다인 것과 종말이 아닌 청량함을 연기한다는 게 무척 다르긴 해도 구도 자체는.

서도화는 굳이 호기심을 참지 않고 바다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이거 크레센도 세계관이랑 연결되는 거예요? 혹시?”

어차피 대화를 나누는 씬. 아무 말이나 하라고 했으니 상관없을 것이다.

그러자 이병수가 대답했다.

“어떻게 알았어? 근데 그거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

어차피 크레센도의 여운을 끌어가며 세계관이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정도, 거기다 떡밥 하나 넣는 수준으로만 할 예정이었고 멤버들이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다.

잠시 후 옥상 촬영이 끝났고 바다에서도 비슷한 종류의 촬영이 이어졌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할게요.”

서도화는 감독의 말에 숨을 내쉬었다.

바닷바람과 매섭게 치는 파도를 피하며 꽤 오래 걷기를 반복했다.

그냥 라이브 하고 간단히 영상 촬영하면 끝날 줄 알았던 이번 일정.

‘그냥 뮤직비디오 촬영인데?’

정말로 상당히 공을 들이려는 모양인지, 아니 얼마나 퀄리티 좋게 제작하려는지 모르겠지만 세미 뮤직비디오라 봐도 좋을 만큼 촬영시간이 길었다.

다음 촬영은 또 라이브라고 했던가?

서도화는 제 손에 들린 커피를 쪽 빨아 마시며 휴대폰을 들어 바다 사진을 찍은 후 이병수와 함께 다음 장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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