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3화
서도화는 솔로곡 촬영을 마친 후에야 겨우 휴식을 즐길 수 있었다.
밤낮이 바뀌어 멤버들과 다르던 생활 리듬은 그제야 정상적으로 맞춰져 깨어있는 멤버들을 볼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한 컨디션도 돌아왔다.
서도화가 해뜰 때에 일어나 있기 시작한 시점부터 케이는 기회만 되면 서도화에게로 향했다.
“다시 그자와 통신을 연결해라.”
“하아.”
“난 지금 진지하다. 너도 그럴 것 아닌가. 이 세계에 부하가 넘어왔다면 큰일이 아닌가. 너도 알 텐데.”
“지금은 안돼. 그쪽도 우리 연락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아니거든.”
서도화의 거절에 케이가 뾰로통해졌다.
별로 속는 기색이 아니었다.
서도화는 고개를 내저으며 방에서 나가라 손을 휘저었다.
“아무튼 당장은 안 돼.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
“그대는 뭐가 그리 여유로운가?”
“여유로운 게 아니라 안될 상황이니까 안된다고 말하는 거야. 일단 가 있어. 때 되면 부를게.”
사실 서도화가 한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동료들이 바쁘다고, 연락할 상황이 안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현재로선 동료들은 서도화의 연락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마족이 이곳으로 넘어왔다는 건 아덴과 서도화를 포함한 동료들이 싸워야 할 범위가 넓어졌다는 것.
한시라도 빨리 서도화, 아덴과 연락을 취해 상황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케이와 함께 있을 때는 아니다.
‘케이의 앞에서 말할 일은 아니지.’
우선 동료들이 심적으로 불편해한다는 걸 뒤로 하고서라도 마왕과 함께 이 일을 상의한다는 게 위험이 따르는 일이니.
만약 케이가 나쁜 마음을 먹고 있다면? 하이넬과 동료들에게서 나온 정보를 가지고 이곳으로 넘어온 부하들과 접촉을 시도해 또다시 나쁜 일을 도모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만약 케이가 다시 하이넬 일행과 대화를 하게 된다면 그건 모든 일이 결정된 이후가 될 것이다.
물론 지금 무척 급한 상황이긴 하지만 케이에게 하이넬 일행이 내어준 정보는 알려줄 수 있는 수준이 되기 전까진 철저히 몰래 연락을 이어나갈 거고.
‘지금은 아덴도 없고.’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서도화는 답답해하는 케이에게 고개를 내젓곤 일어났다.
“공유할 정보가 있으면 알아서 말해줄 테니 기다려.”
“어디 가는 거지?”
“아덴 보러.”
너한테 해줄 말이 없어서.
서도화는 뒷말을 삼키곤 방을 나섰다.
오늘은 다행히 케이에게서 도망칠 구석이 있었다.
“너도 같이 갈래?”
오늘은 아덴이 솔로곡 스페셜 클립을 촬영하는 날.
케이에게서 도망도 칠 겸, 아덴의 촬영장에 들려볼 생각이다.
서도화의 물음에 케이는 당연스레 고개를 내저었다.
“됐다. 내가 거길 뭐 하러 가는가.”
“그래 그럼. 난 간다.”
“지, 진짜 그들을 이렇게 둘 것이냐?”
케이가 당황하며 서도화를 붙잡았다.
“너는 이 세계를 소중히 여기는 게 아니었나…….”
이 세계를 소중히 여긴다면서 어떻게 넘어왔을지도 모르는 마족들을 가만히 둘 수가 있지?
서도화는 그의 눈빛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젓곤 말했다.
“나라고 안 급한 게 아니야. 이 세계에선 그때와 같은 일이 안 생기도록 할 거고.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쪽도 우리도 서로 공유할 이야기가 없어.”
하이넬 쪽이 조금 더 알아낼 정보가 많아질 때까진 통신을 연결해봐야 방해가 될 뿐이니까.
서도화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케이를 내버려 두고 방 밖으로 나왔다.
“형 준비됐어? 가자.”
거실엔 한야와 주상현이 외출할 준비를 마치고 서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도화는 그들과 함께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고 로드 매니저의 도움을 받아 아덴의 촬영 장소로 향했다.
* * *
아덴이 솔로곡 촬영을 잘 하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기대되기도 했기 때문에 주상현이 아덴의 촬영장에 놀러 가자고 했을 때 곧바로 오케이 했었다.
도착한 촬영 현장. 멤버들이 도착하자 자연스레 비하인드 카메라가 따라붙었다.
“아덴 형이 솔로 촬영이라니!”
“이야 아덴이 솔로라니.”
“아덴이 촬영 잘하고 있어요?”
멤버들은 아덴을 만나기 전부터 떠들썩하게 소란을 떨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덴 형의 프로 모먼트 볼 수 있는 거야?”
“오.”
서도화는 감탄사를 날리며 생각했다.
프로 모먼트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아덴은 멤버들이 보이기 전까지 멍하니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따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세트장의 더 깊은 곳으로 향하자 역시나 아덴이 의자에 앉아 무표정으로 메이크업을 수정하고 있었다.
그러다 떠들썩한 소리에 서도화와 멤버들을 발견하고 순식간에 화색이 되었다.
“여기 웬일이야? 다들?”
애써 입꼬리를 억누르고 있지만 기쁜 티가 표정에서부터 크게 드러났다.
서도화는 씨익 웃으며 아덴에게로 향했다.
“잘하고 있었어?”
“형, 이야 의상 뭐야?”
주상현은 아덴을 보자마자 의상을 보며 제 입을 막으며 오버를 떨었고 한야는 말없이 아덴의 사진을 찍었다.
사실 서도화도 내심 아덴의 의상을 보며 놀라긴 했다.
딥다크 섹시가 컨셉이라고 했던가?
그 때문인지 의상부터 꽤 파격적으로 가는 모양이다.
평범한 정장인 줄 알았더니 등짝이 다 파여있을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메이크업 또한 어메스로 있었을 때 했던 어떤 화장보다 화려했다.
“진짜 도화랑 컨셉이 정반대네.”
“그러게. 얘 등짝 안 보고 정면만 보면 그냥 무슨 어디 조직원 같아.”
“그게 무슨 말이냐? 조직원?”
“하하. 촬영은 잘 되어가?”
“흐음…….”
멤버들이 왔다고 밝아졌던 아덴의 표정이 한순간에 푹 찡그려졌다.
아덴은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몰라 잘. 그냥 도화가 알려준 대로만 하고 있었어.”
“도화 형?”
주상현이 서도화를 힐끔거리곤 물었다.
“도화 형이 뭘 알려줬는데?”
서도화가 머쓱하게 대답했다.
“그냥 뭐. 표정 연기하는 거나 표현하는 거나.”
아덴은 이번 컨셉이 요구하는 표정과 그냥 노려보는 것을 구별하여 표현할 줄을 몰라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가 연습할 때 잠시 찾아가 관련된 조언을 해주었다.
카메라를 노려보지 말고 눈에 힘을 빼고 악도 빼고 그냥 쳐다보기만 하라고.
그렇게 말하며 몇 가지 참고할만한 공연을 보여주었더니 놀라우리만치 잘 익혀서 컨셉과 딱 맞는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뒤에서 아덴의 영상감독을 맡은 감독이 툭 말했다.
“잘해. 아덴이.”
“감사합니다.”
서도화가 저도 모르게 흐뭇하게 웃었다.
태어나 이렇게까지 많은 지적을 받은 적 없다며 전전긍긍하더니 결국 감독이 만족할 정도로 잘 해내게 된 모양이다.
“잘한다니 내가 다 기분이 좋다.”
“네 덕분이라니까. 나야 배우고 따라하는 건 잘해.”
아덴이 낄낄거리는 사이 다음 촬영 준비가 완료되었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네!”
아덴이 세트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일어났고 이전 서도화에게 그랬듯 아덴의 등에도 다닥다닥 멤버들의 손이 달라붙었다.
“잘하고 와.”
“여기서 보고 있을게.”
“어어. 다녀올게.”
아덴의 뒷모습을 보는 서도화의 눈빛이 흥미롭게 변했다.
지금까지도 늘 함께 춤추고 노래하긴 했지만 오롯이 아덴 혼자서 채우는 공연은 매우 흥미로웠다.
그도 그럴 게 아직 아덴은 자신의 정체성을 용사라고 생각한다는 걸 안다.
그런 그가 어떻게 공연을 채우고 표현할지, 주상현의 말대로 그의 아이돌적 모먼트가 무척 궁금했다.
곧 아덴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붉게 내려오는 조명, 검은 정장의 아덴과 댄서들.
시작부터 상당히 무거운 분위기였다.
서도화는 내심 감탄했다.
‘꽤 하는데?’
표정 연기로 고민 많이 하더니 시작부터도 전혀 위화감이나 이질감 없이 곡의 컨셉과 분위기에 맞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서도화는 진심으로 의외였는지 동그랗게 뜬 눈을 한참이나 깜빡이지 못하고 아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덴의 표정, 안무, 노래를 표현하는 모습. 서도화가 챙기지 못하는 사이 정말 연습 많이 했겠구나 싶었다.
‘생각보다…….’
서도화의 시선은 계속해서 아덴을 따라갔다.
아덴은 서도화가 생각하는 것보다 진지하게 아이돌 활동에 노력하는 걸지도.
꼭 서도화가 아니라도 말이다.
전 동료로서 챙겨줘야만 할 것 같던 멤버가 아이돌로서의 존재감도 확실히 나타내는 걸 보자 서도화는 어쩐지 안도감을 느꼈다.
멤버들 외에는 딱히 이 세계에 정을 못 붙이는 것처럼 보였는데 저 정도로 열심히 연습해 준비한 걸 보니 지난번 말했던 활동이 나름 재밌다는 말이 분위기상 했던 말은 아니었나 보다.
“멋있네. 멋있지 않아요?”
카메라가 위아래로 고개를 끄덕였다.
“되게 열심히 했나 보다.”
서도화는 무척 상기된 표정이었다. 이제 케이든 아덴이든 아이돌로서의 걱정은 안 해도 될 듯했다.
서도화와 멤버들은 그 뒤로도 오랜 시간 촬영장에 머물며 아덴의 촬영을 지켜보았다.
아덴은 틈만 나면 그들에게 다가왔고 멤버들은 틈틈이 그에게 조언하며 촬영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왔다.
숙소로 돌아가는 멤버들의 표정은 밝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는 지금까지 어메스의 텀블링 뛰는 사람이라는 비꼼을 듣기도 했었다.
아직 촬영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아마 어메스를 좋아하는 팬들과 대중들에게 지금까지 보지 못한 아덴의 스타성을 보여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몇 주 후, 서도화의 솔로 스페셜 클립이 공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