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4화
오후 2시,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서도화의 솔로곡의 스페셜 클립 영상이 업로드되었다는 알림이었다.
서도화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노트북 앞으로 향했다.
“형 봤어? 영상 올라왔다던데.”
“도화. 네꺼 올라갔다는데.”
두근대는 마음으로 너튜브를 켜고 있자 방에 있던 주상현과 아덴이 동시에 나오며 말했다.
서도화는 고개를 끄덕이곤 손을 까딱였다.
“봤어. 같이 볼래?”
“아 그럼! 같이 보려고 나온 건데.”
“한야 형 없는 게 아쉽다. 기대했었는데.”
“케이 형도. ……음, 아닌가?”
주상현은 말을 덧붙였다가 긴가민가한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키득거렸다.
스스로 생각해도 케이가 서도화의 솔로 영상을 기대했을 것 같진 않은 모양이다.
지금은 솔로곡 연습을 하느라 이 자리에 없지만 설령 이곳에 있었다고 해도 케이는 딱히 서도화의 라이브 영상을 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자칫 사이가 안 좋아 보일 수 있음에도 주상현이 근심 없이 웃어버린 건 평소 서도화와 케이가 아닌 듯 서로를 잘 챙기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서도화도 주상현의 말에 덩달아 미소 짓곤 말했다.
“케이는 잘 모르겠고, 한야 형은 따로 챙겨보겠지.”
순서대로 나오는 멤버들의 솔로곡.
서도화, 아덴, 주상현은 이미 촬영을 마쳤고 한야는 촬영 중이다.
“아아! 한야 형 촬영하는 거 보고 싶었는데.”
“나도.”
주상현의 말에 아덴이 공감했고 서도화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멤버들의 촬영 때 그러했듯 한야의 촬영도 응원차 방문하고 싶었으나, 한야의 촬영지는 무척 멀다 보니 갈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잘하고 오라고 각자 문자라도 보내둬. 한야 형 그런 거 좋아해.”
서도화가 말하며 너튜브의 어메스 채널을 클릭했다.
[서도화(Doha)-Doha|special Clip|Live performance|4k]
“오오!!!”
채널의 가장 앞에 뜨는 영상. 주상현의 감탄사와 함께 서도화는 제 라이브 영상의 썸네일과 제목을 한참 쳐다보며 미소 지었다.
상상 이상으로 뿌듯해서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올 줄을 몰랐다.
“형 곡 이름이 도하였어?”
“몰랐어 나도. 원래는 이 이름 아니었어.”
놀랍게도 업로드된 영상을 직접 확인한 지금에서야 곡의 제목이 바뀌었다는 걸 알았다.
서도화뿐만 아니라 멤버 모두 솔로곡의 이름이 수시로 바뀌곤 했는데 그가 확인했던 마지막 이름은 ‘역전’이었다.
사사오입 부장이 어디서 스포츠 영화를 보고 와서 제안한 이름으로, 그 이후 몇 번 더 바뀌었다고 한다. 나중에는 계속되는 수정에 질려 최종 이름만 알려달라고 말했었다.
그 이후 몇 가지 후보를 놓고 업로드 직전 날까지 이름을 바꾸더니 결국 결정된 이름이 서도화의 영어 예명인 Doha다.
제 이름이 첫 솔로곡의 이름이 된다는 것. 몰랐기에 더더욱 선물처럼 기뻤다.
“오오, 진짜 잘 어울려.”
주상현은 감탄했다.
이 곡은 청량하면서 부드럽고 어딘지 모르게 그리운 추억. 그야말로 서도화의 외적 이미지를 빼다 박은 곡이니 그 어느 이름보다 걸맞은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썸네일.
주상현과 서도화가 제목에 꽂혀 있었다면 아덴은 썸네일을 뚫어지게 봤다.
‘서도화다.’
단순명료한 감상평이었지만 아덴은 썸네일을 보며 그리운 과거의 추억을 회상했다.
아련하면서도 신비한 얼굴, 흐린 색감의 바다에서 느껴지는 씁쓸함.
어쩐지 현실의 서도화 같지 않은 모습이 소싯적 가식 좀 떨던 음유시인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아덴은 순간 마음이 동해 픽 미소 지었다.
‘아~ 저럴 때가 있었지.’
서도화.
연습이나 무대에 설 때 빼곤 시종일관 흐리멍덩한 눈으로 보내는 지금과는 달리 예전엔 늘 얼굴에 독기가 가득해선 어떻게든 민간인들에게 신비롭게 보이고자 아득바득했었다.
그러다가도 이따금 보이는 씁쓸한 모습에 걱정하기도 했었는데.
그때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썸네일에 보였다. 아마 촬영 내내 아련하고 신비해 보이고자 애썼던 모양이다.
서도화는 옆에서 자꾸 피식거리는 아덴을 불쾌하게 쳐다보다 딸깍- 영상을 재생했다.
“일단 본다.”
“어.”
생사고락을 함께하다 보면 표정만 봐도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아덴이 뭔 생각을 하며 히죽이는지 너무 잘 알 것 같았으니.
그는 모르겠지.
서도화가 늘상 독기 그득했던 건 마족들 때문이 아니고 또라이 같은 동료들 사이에 기를 펴지 못했기 때문인 것을. 그리고 또 신비롭고 온화한 이미지로 가식을 떨었던 건 동네 건달마냥 시비를 걸며 개차반 같이 굴던 아덴 때문에 추락한 용사 일행에 대한 민심을 신비로움과 온화한 이미지로 덮기 위해서였음을.
“엥? 마음의 준비도 안 하고?”
가타부타 말도 없이 제목만 한참 들여다보다가 그냥 영상을 재생시켰다.
영상을 보기 전 좀 더 호들갑을 떨고 싶었던 주상현은 당황하다 이내 고개를 돌려 영상에 집중했다.
방금까지 떠들썩했던 거실이 영상에 집중하며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 * *
철썩이는 파도 소리.
색이 바랜 바다는 공허함을 담고 한참이나 파도쳤다.
아덴은 영상을 보다 문득 인상을 찌푸리며 동영상의 화질을 확인했다.
‘2160p 맞는데?’
카메라 앞에 선 지 어언 일 년 하고도 반.
아무것도 모르던 아덴도 이제 화질의 차이를 안다.
그런데 이건 뭘까? 4k 해상도로 설정되어 있는 게 확실한데 철썩이는 바다의 풍경은 흐릿하다.
흐릿하다 못해 마치……잘 그려낸 그림을 움직이게 하는 것 같달까?
480p 수준의 화질 같았다.
‘다른 녀석들은……. 아무렇지 않게 보네.’
솔로곡 영상의 화질이 나쁘면 제일 불만스러울 사람은 도화일 텐데.
정작 서도화는 화질이 신경 쓰이지 않는 듯 감상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러면 감상에 방해될 텐데? 혼자서 안절부절못하던 아덴이 결국 서도화에게 물었다.
“야 이거 화질 맛 간 거 아니냐?”
“뭐? 화질?”
얘가 뭔 소리를 하나. 서도화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영상을 보다 ‘아’ 작게 탄성을 내뱉곤 말했다.
“이거 일부러 이렇게 만든 거야.”
“일부러 왜.”
“그냥 옛날 감성이지.”
옛날 기종의 캠코더로 촬영한 듯한 화질. 서도화의 컨셉은 추억이기 때문에 중간중간 나오는 서비스컷들은 전부 이런 기법으로 나올 것이다.
은근히 여기저기서 자주 볼 수 있는 기법이라 서도화나 주상현에게는 익숙하지만 아예 다른 세계에서 온 아덴에겐 의문스러운 부분일지도 모른다.
역시나 아덴은 서도화의 말을 듣고도 납득하지 못한 표정이었지만 감상을 방해하기 싫어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바다와 하늘, 파도를 담고 있던 카메라는 딸깍딸깍 소리와 함께 흔들리며 조금씩 줌을 땡기다 이내 돌아가 카메라를 들고 있던 인물을 담았다.
교복 차림의 서도화였다.
-야 이거 갑자기 줌이 당겨졌는데 어떡해?
-뭐? 도화 네가 뭐 건든 거 아냐?
-내가? ……잠만, 잠만 기다려봐.
서도화는 카메라의 설정을 만지작거리며 카메라 바깥 보이지 않는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 앵글을 보며 씨익 웃었다.
“……어우. 오글거려.”
서도화가 제 어색한 연기에 흠칫 몸을 떨며 중얼거리자 주상현이 키득거리며 서도화의 어깨를 흔들어댔다.
“오글거리긴 뭐가 오글거려! 좋기만 하구만! 훈훈~하다!”
“오글거리는 거 맞는데.”
“어이 아덴. 조용조용.”
서도화는 솔직하게 말하는 아덴의 입을 다물게 하고 영상에 집중했다.
화면은 전환되어 이젠 아덴도 만족할 만한 깔끔하고 선명한 4k로 돌아왔다.
보이는 장소는 바다가 훤히 보이는 건물의 옥상.
서도화가 이어마이크를 단 채 댄서들과 대형을 잡고 서서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 청량해. 청량해.”
어메스의 리액션 담당 주상현이 기다렸다는 듯 호들갑을 떨었고 서도화도 겨우 오그라듦에서 벗어나며 기대에 찬 눈을 빛냈다.
곧 곡이 울려 퍼지며 영상 속 서도화가 댄서들과 함께 춤추기 시작했다.
무척 밝은 시작, 메인 보컬 이미지에 국한되지 않은 난이도 높은 안무.
“…….”
이를 지켜보던 멤버 모두가 입을 다물고 영상에 빠져들 무렵 서도화가 노래를 시작했다.
바다는 꿈과 같지
거칠게 휘몰아치는 파도에
소중히 피운 꽃잎을 흩뿌려
“어?”
서도화는 영상 속 라이브에 제 귀를 의심했다.
“엥?”
“형 이거…….”
주상현 또한 서도화와 같은 것을 생각했는지 그의 어깨를 재차 흔들어댔다.
“이거 잘못 올라간 거 아냐? 후보정 된 거 맞아?”
“그러게…….”
내 말이. 서도화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이거 매니저한테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닌가? 후보정이 들어간 건가?’
김유진이고 이병수고 최대한 라이브임이 티 나도록 만들겠다고 했었기에 이게 완성된 건지 잘못 올라온 건지 확신할 수가 없다.
후보정을 했다기엔 너무나 선명하고 생생하게 들리는 생라이브 소리.
이를테면 안무로 인해 음이 흔들린다거나 숨소리가 들어갔다거나 하는.
그러나 후보정을 안 했다기엔 그날 거세게 불었던 바람 소리가 모조리 사라졌고 서도화가 냈던 숨소리도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는 지워진 듯했다.
그러나 확실한 건 한 10년 전 음악방송에서나 볼법한 생라이브임에도 불구하고.
“……잘하는데?”
“그러게. 나 잘하네…….”
상당히 듣기 좋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