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5화
“이것 봐요. 내가 립싱크 의심받는 것보단 생으로 나가는 게 훨씬 좋다고 했잖아요.”
김유진이 모처럼 호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건 그렇죠……. 그래도 좀 보정하긴 했어요. 너무 흔들리는 건.”
좌불안석의 표정으로 김유진의 곁에 서 있던 이병수가 겨우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김유진이 말했던 대로 서도화의 솔로 영상은 라이브임이 확실히 티가 나도록 제작되었다.
영상이 공개되며 김유진 또한 이 라이브를 감상하기 전 이병수는 직원들과 함께 이 영상을 몇 번이나 봤는지 셀 수도 없다.
서도화의 라이브 실력이야 말할 것도 없이 좋은 거 누가 모르나.
아마 이 영상을 볼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그의 실력을 알고 있을 거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라이브로 들리는 서도화의 목소리가 너무 적나라하다고 생각했다.
음향이야 더없이 좋지만 생라이브의 적나라함만 보면 마치 10년 전 음악 방송에서나 볼 법한 그것이었다.
‘너무 과하지 않은가?’
춤을 출 때 흔들리는 목소리, 가끔 힘이 들어가거나 거칠어지는 호흡 소리가 전부 들어갔다.
김유진은 서도화의 라이브 영상만은 많이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물론 기본 보정은 들어갔다만, 마이크로 직접 들어간 목소리이다 보니 그래도 적나라한 건 적나라한 거다.
‘도화가 잘해줘서 다행이지.’
이병수도, 이 영상의 제작을 담당한 업체나 직원들도 이게 정말 김유진이 원하는 방향으로 제작된 게 맞을까? 의문을 가졌었다.
그래서 김유진에게 몇 번 컴펌 보내긴 했는데 가타부타 피드백도 없이 오케이만 때리길래 진짜 보긴 보고 오케이인 건지 의구심이 들 지경이었다.
그런데 김유진의 오케이는 정말 마음에 들어서 한 오케이였나 보다.
“자체 제작 클립은 죄다 립싱크 돌리는 요즘 세상에 기왕 라이브로 올라가는데 이 정도 리얼함은 있어야죠.”
김유진은 정말 만족스러웠다. 유제이와 어메스가 자랑하는 서도화의 음색과 탄탄한 라이브 실력, 거기다 춤 실력까지 제에발 봐달라고 호소하는 듯한 영상.
이 클립에선 소속사와 서도화의 패기와 열정마저 보이는 것 같았다.
“깨끗한 음질의 곡은 곧 풀릴 텐데요. 뭐. 고요들은 라이브 버전을 더 좋아할걸요?”
크으, 어떻게 이런 인재가 유제이로 들어왔을까?
만약 데스티니가 이 영상을 본다면 왜 서도화를 내쳤을까 땅을 치고 후회할 것이다.
라이브는 말할 것도 없고 아련함을 그대로 가진 영상미까지!
이제 막 업로드된 영상이지만 김유진은 감히 예상할 수 있었다.
‘이건 된다!’
물론 어메스는 이미 된 아이돌이었지만, 확고한 팬덤과 화제성으로는 주상현과 투톱을 달리는 서도화이니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할 거야 예상 가능한 척도지만!
이 영상은 왜인지 예상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게 뭣 하나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영상이 아닌가!
“어때요? 벌써 반응 좋죠?”
김유진의 물음에 이병수의 얼굴에도 미소가 퍼졌다.
공개되기 직전까지도 불안을 떨칠 수 없었던 이병수지만 결과는 김유진의 선택이 확실히 옳았음을 보여주었다.
“반응 미쳤, 아니, 무척 좋습니다. 이미 실시간 트렌드에도 올랐고요.”
“도화가 스타트를 잘 끊었네. 이 흐름 안 끊기도록 다른 애들 영상 제작에도 제대로 공들여달라고 하세요.”
“물론입니다.”
서도화의 라이브 영상이 끝났다. 김유진은 만족스레 숨을 내뱉곤 너튜브를 껐다. 너튜브 창이 사라진 화면엔 재생되다 만 곡이 표시되어 있었다.
“제 목표는 다섯 명 모두 싹 다 트렌드 올려놓고 다음 컴백 하는 거예요.”
어메스는 이미 성공적으로 데뷔한 그룹으로 그 기세야 유지되고 있었지만, 김유진의 열정은 유지되는 것을 넘어서 활활 불타고 있엇다.
1집에서 보여준 저력과 어메스의 화제성이라면 이건 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 * *
“와.”
어메스가 다 함께 한 공연은 몰라도, 혼자서 출연한 영상물의 반응을 보는 건 꽤 부담스럽고 두려운 일이다.
물론 이번 솔로 라이브는 서도화가 보기에도 나쁘지 않았다.
잘못 올라갔나 싶을 정도로 제 목소리가 적나라하긴 했지만 이병수에게 듣기론 의도한 편집이라 했고, 다행히 적나라하긴 해도 안정적인 라이브였다.
그래서 적어도 나쁜 소리는 안 듣겠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돌아온 반응은 그 이상이었다.
일단 영상이 업로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장 실시간 트렌드에 서도화의 이름이 올라왔다.
본명인 서도화에 노래 제목까지 ‘도하’다 보니 이를 응용한 온갖 문장과 단어들이 트렌드를 점령하다시피 올라왔다.
나 하나의 이름이 온 sns를 장악한 기분? 기분이 좋은 건 둘째치고 믿기가 힘들었다.
그 이후 당연한 수순을 밟듯 서도화의 라이브 영상이 알고리즘을 순항했다.
인기 동영상 1위.
완전체 어메스로만 가능할 줄 알았던 그 순위를 혼자서 떡하니 차지하곤 한참 동안 내려오질 않았다.
심지어 아직도 7위에 머무르고 있으니 그 화제성이 상당했음이라.
그리고 서도화의 영상이 팬덤 사이의 인기에 국한되지 않고 이토록 많은 관심을 받게 된 데에는, 어메스 공식 채널에 올라온 이병수의 1열 직캠 쇼츠 영상도 한몫했다.
영상엔 서도화가 라이브AR을 사용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듯 에코 없이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라이브하는 현장의 모습이 들어가 있었다.
서도화는 그 영상을 보곤 진짜 미친 듯이 부는 바람에 이겨 먹을 기세로 노래 불러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덕분에 그의 영상엔 칭찬이 자자했고-오토튠 소리 들린다는 소리가 없지는 않았다- 어렵지 않게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한데다 팬 유입까지 크게 늘었다.
당연히 안정적인 노래 실력, 좋은 비주얼과 이미지, 거기에 더해 서도화 하면 빠질 수 없는 ‘정화’ 스킬 덕분이었다.
-와… 살다 살다… 노래 잘 부르는 아이돌은 많이 봤지만 보다 아득해질 정도로 잘 부르는 애는 첨 봤음
-이분 누구? 아이돌이에요? 노래 미쳤네; 거짓말이 아니고 숨 쉬는 거 잊었어요(팬 아님 주접 아님;;)
-이 사람 잘 부른다는 소리만 듣고 라이브는 처음 봤는데 입 떼는 순간 심장 내려앉았는데요 이거 치인 거임?
└ㅔ
└노래 공격에 당하셨네요. 당황하지 마세요. 다 한 번씩 겪는 일입니다^^ 환영합니다^^
댓글을 보면 딱 봐도 ‘정화’에 후드려맞은 사람들이 보인다.
이 사람들은 그저 서도화의 노래 실력이 너무나 좋아서 입덕할 정도로 감명받았다 생각하겠지만 ‘정화’에 당한 것이다.
어째 사기를 치는 것 같아 좀 미안하긴 했지만 솔직히 아이돌 하겠다고 5년간 고생해서 얻은 스킬이니 쓸 수 있으면 쓰는 게 좋지 않겠는가.
이젠 스킬창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으니 빼고자 하면 뺄 수 있겠지만 이제와서 빼기엔 솔직히 좀 늦었다는 걸 서도화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여하튼 성공적으로 솔로곡 공개가 되었다는 말이다.
화제성이 워낙 좋은 덕분에 이미 너튜브에서 가장 유명한 K-POP채널에서도 솔로곡 라이브 제안이 들어왔다고 한다.
조만간 촬영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렇게 화제가 되었으니 다음타자는 상당히 부담이 될 터인데.
그나마 다행인 건 다음으로 솔로곡을 공개하는 멤버가 주상현이 아닌 아덴이라는 것이다.
“야, 좋으면 좋다고 그냥 웃어라. 뭘 숨기고 그러냐?”
아덴이 마음에 안 든다는 투로 말하며 발로 툭 서도화의 꼰 다리를 쳤다.
서도화가 새초롬하게 그를 흘겼다.
“내가 뭘?”
“광대가 스멀스멀 올라가는 걸 내리누르고 있잖아. 아, 웃겨서 한참이나 쳐다봤네.”
이것 보라. 다음 차례가 자신이라고 부담스러워하긴커녕 서도화의 씰룩대는 광대나 구경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내가 언제 기분 좋다고 티내고 좋아한 적 있어? 다리 치워라. 흙 묻잖아.”
서도화가 아덴의 발을 손으로 밀어내고 제 바지를 툭툭 털었다.
라이브 영상이 화제가 되며 또 한 가지 희소식이 있다면 휴식기임에도 불구하고 스케줄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MCS 방송의 간판 예능 강호혈전.
이름은 살벌하지만 온갖 것으로 대결하는 액션 버라이어티 예능이다.
마침 촬영이 예정된 회차의 코너 중 노래로 대결하는 코너가 준비외어 있었고 각종 코너에 맞는 출연진을 섭외하는 도중 서도화의 솔로 라이브 영상이 화제가 되며 섭외가 들어왔다.
아직 다음 컴백 준비도 제대로 시작되지 않아 연습과 휴식을 반복하는 시기.
지상파 방송국의 간판 예능의 섭외를 고사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고로 지금 서도화, 그리고 ‘강호혈전’의 정체성인 ‘액션’과 잘 어울린다는 이유로 덩달아 함께 섭외된 아덴이 촬영을 위해 현장으로 향하는 중이다.
“아, 바지에 흙 얼룩졌잖아. 어쩔거야. 아덴.”
“티 안 나. 하나도 안 나. 정 거슬리면 내가 빨래해주리?”
“빨래는 됐고 사과를 하라고. 내 바지라 다행이지 협찬이었으면 너 스타일리스트 누나한테 죽었어.”
쉼없이 투닥거리는 두 사람을 보며 운전 중인 이병수가 말했다.
“그만 싸우고! 긴장하고 있어 너희. 이번 촬영이 너, 특히 아덴이한테는 진짜 좋은 기회거든? 네가 제일 활약할 수 있는 방송이라.”
“네.”
“근데 내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조심해라.”
이병수는 오늘도 기대와 근심이 가득하다.
액션, 몸을 쓰는 게임이 주로 있는 강호혈전 특성상 아덴이 크게 활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는 확실하다.
그러나 문제는 촬영장 분위기가 어메스가 평소 보던 분위기랑은 제법 다르다는 것에 있다.
워낙 대선배 격인 연예인들만 모인데다 몸 좀 쓰는, 연예계 짬도 차서 기가 센 연예인들이 고정으로 있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신인들이 기를 못 펴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오죽하면 예능감 좋다고 소문난 아이돌들도 기가 죽어 분량을 못 뽑고 오는 경우가 대다수일 정도니…….
과연 두 사람이 기죽지 않고 잘 활약할 수 있을까?
이병수는 정말 걱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