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216화 (216/270)

제216화

처음 보는 대선배 연예인들, 처음오는 세트장.

강호혈전 촬영장의 첫인상은 뭐라고 해야할까.

“무섭다.”

서도화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곤 움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들은 사람 없겠지?

그러자 곁에 있던 아덴이 작게 말했다.

“야, 뭘 그렇게 두리번거려? 나만 들었어.”

“아, 다행이다. 알려줘서 고맙다. 인마.”

아덴이 심드렁하게 코웃음쳤다. 아마 방금 서도화의 말은 그가 큰소리로 당당히 말해도 묻혔을 거다.

왜냐고?

“아! 행님!”

누군가의 큰 목소리가 쩌렁하게 세트장을 울렸다.

“그거 혼자 먹었습니까! 먹을 거면 나도 같이 먹자니까!”

“얌마 자식아! 저번에 말했거든? 덴콜산우협 오른다고 오른다고 열댓 번은 말했다. 인마.”

“아, 그랬습니까? 술기운에 못 들었나.”

“못 들은 게 아니고 내 말을 안 믿은 거지.”

“제가요? 그럴 리가요!”

강호혈전의 고정출연진 이순협과 단오의 대화는 마치 서로에게 시비를 거는 듯 거칠고 빠르고 공격적으로 이어졌다.

“시끄럽고 너 인마, 그 뭐냐, 저, 저, 저, 안산에 그거 샀냐?”

“건물이요? 아이, 그거 못 샀습니다. 형님. 스케줄 때문에 경매 못 드갔어요.”

“애새끼 시켜서라도 드가야지! 하이야~ 그걸 놓치네.”

그냥… 대화인가? 싸움? 대화?

얼마나 언성이 올라가는지 서도화는 그들이 한 마디씩 할 때마다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마치 이세계 여관에 딸린 술집의 대화 소리 같다.

무척 껄렁하고 꺼려지는 대화라는 거다.

참고로 저 두 사람은 아까 전 서도화와 아덴이 인사하러 갔을 때도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부동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무슨 대화를 하든 그건 자유고 신경 쓸 바가 아니지만 굳이 대화 소리를 키워 신경 쓰이게 만들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이래서 이병수가 조심하라고 조언했던 것인가?

예능감 좋다고 소문난 아이돌들이 이곳에서 분량의 분 자도 못 건지고 가는 이유가 있다.

이 분위기. 연예계 물은커녕 사회 물도 제대로 마셔보지 못한 사람들에겐 무척 버거운 분위기다.

‘버거운 게 뭐야. 끼지도 못하겠는데.’

사실 끼고 싶지도 않은 분위기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건달들과 한 자리에 있는 느낌이었다.

보통 방송의 고정출연진들은 예의상으로라도 게스트들을 챙기기 마련인데 전혀.

저들에게 어메스의 두 사람은 투명인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 보인다.

물론 똑같이 출연료 받고 출연하는 입장에 굳이 저들이 게스트를 챙겨줘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 쳐도 이렇게까지 게스트에게 무관심한 곳은 처음 와본다.

“아아! 나 이 새끼 때문에 짜증나서 못참겠다. 송학아! 나 이거 좀 태우고 온다잉!”

이 방송의 메인 진행자 이순협이 두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다대며 말했다.

참고로 그가 말한 송학이란 이 방송 메인PD 이름이다.

“예에, 형님 다녀오십쇼. 근데 20분까지는 들어오셔야 합니다. 촬영 들어가야 해요.”

“어어. 햐! 마! 니 나를 모르나? 내가 촬영 시간 하나는 칼같이 지키는 거 몰라?”

“아유, 알죠. 다녀오십쇼.”

메인PD 송학은 이제 출연진 다루기에 도가 텄는지 성실히 촬영 준비를 하면서도 출연진의 비위를 맞춰주며 나름 화목한 분위기를 북돋워주었다.

그러더니 서도화와 아덴을 보며 미안하다는 듯 미소 지었다.

“무섭죠?”

“네? 아, 아니요…….”

아니 거짓말이고 사실 무섭다.

서도화는 속마음을 애써 감추며 고개를 저었다.

그나마 서도화가 기죽지 않고 이곳에 멀뚱히 앉아 있는 건 이곳에 아덴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덴은 저들은 무서워하기는커녕 딱히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당연했다.

온갖 강자들이 모이는 여행자 여관, 술집에서도 행패는 아덴이 다 부리고 다녔다.

말투가 거칠지언정 가만히 앉아서 대화만 나누는 저들 출연자에게 겁을 먹을 리가 없는 것이다.

지금쯤 아덴은 ‘시비 걸면 쳐발라버리면 되지’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을게 뻔했다.

‘나… 분량 뽑을 수 있을까.’

분량은커녕 말 한마디 못하고 노래 한번 부르고 끝나는 게 아닐까?

서도화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한편 아덴은 생각했다.

‘존나 그립다!’

이 껄렁한 분위기. 위험한 분위기. 술만 없을 뿐이지 딱 그곳에서 보던 산적들 같은 험한 사람들.

아덴은 마왕에게 당한 스트레스, 동료들에게 잔소리들은 스트레스를 술집에서 만난 건달들을 두들겨 패며 풀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저들은 툭하면 없는 돈을 뺏으려 시비 걸어대는 시정잡배들이 아니며 자신도 지금은 용사가 아닌 아이돌 아덴이다.

이곳에 와서 마왕과 같은 배를 탄 데다 제 거친 성격을 서도화에게 강제로 봉인당하는 것도 모자라 억울한 누명을 쓰고 세상 욕이란 욕은 다 들어먹은 것까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말이다.

물론 저들은 죄 없는 사람들이니 건들 생각은 전혀 없지만.

“하하…….”

아덴과 서도화의 표정을 보며 송학이 머쓱하게 웃었다. 안다. 저들의 기분을 너무 잘 안다.

대선배에 말투까지 껄렁한데다 실제로 거친 면도 있어서 어지간히 기가 쎄거나 짬이 찬 게스트가 아니면 기를 못 편다.

심지어 맨 처음 저들의 섭외를 추진한 송학 또한 처음엔 무척 당황했다.

모아놓고 보니 하나같이 너무…너무 무서워보여서.

원래 연예계라는 곳이 상하관계가 뚜렷한 업계지만 이 예능 ‘강호혈전’은 그 정도가 다른 곳보다 더 심하다.

대부분이 가장 군기를 강하게 잡던 시절의 개그맨 출신이기도 하고 저들 자체가 이 방송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서열이 정해져선 형님동생 하던 사이였으니.

쉽지는 않겠지만 만약 출연진들 사이에 기죽지 않고, 출연진들의 신경도 거스르지 않으며 분량을 뽑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다음 개편 때 고정 출연진 후보로 거론될 것이다.

“그래도 열심히 해줘요. 나는 그래도 두 분이 이곳에서 충분히 활약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섭외한 거니까.”

“네!”

“또 여기서 잘하는 게 두 사람한테는 큰 기회가 될 거니까. 열심히 해주세요.”

송학의 말에 서도화가 정신을 바짝 차렸다.

큰 기회.

맞아. 이건 정말 큰 기회다.

기가 쎄고 개성이 강한 출연진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른 방송에선 볼 수 없는 캐릭터로 수많은 명장면들을 만들어내며 대한민국 최고 예능 프로그램이 되었다.

이런 곳에 예능감의 ‘예’ 자도 못하는 자신이 고작 노래를 잘한다는 이유로 출연 기회를 얻게 되었다.

사실 정말로 쉽게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이번 촬영에서 둘 중 그나마 분량을 가져갈 사람이 누군가 하면 단연 아덴이다.

분하지만 체력을 소모하는 게임과 기존쎄 진행 방식을 모두 고려했을 때 아덴이 분량을 많이 가져갈 것이다.

반면 아무리 좋은 기회라고 해도 서도화와는 상극의 방송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되지.’

아유~ 아덴이 분량 뽑으면 그걸로 족하지. 하며 병풍을 자처해 출연료를 루팡할 생각은 절대 없다.

이 방송의 고정 출연진들은 분량에 목마른 자들, 서로 웃겨서 분량 많이 가져가겠다고 대놓고 싸우는 모습을 보여줄 정도라 한 마디 멘트 치는 것조차 힘들지도 모르지만…….

‘나도 그 험악한 이세계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라 이 말이야.’

이곳의 출연진들은 풍채부터 위협적일 뿐 진짜로 때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세계에서는 진짜 때린다. 서도화는 그런 세계에서 살아남았다.

서도화 자체의 기는 무척 약하다 못해 흐리지만 기가 센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거 하나는 무척 잘한다.

아덴 덕분에 학을 똈다.

‘파이팅.’

서도화가 자그맣게 각오를 다졌다.

그때 그의 뒤에서 송학보다 훨씬 둔탁한 손이 어깨를 짓눌렀다.

“아아, 편하게 해. 편하게.”

짙은 담배 냄새가 한가득 풍겨왔다. 화들짝 놀라며 뒤돌아보자 이제 막 촬영장으로 돌아온 이순협이 씨익 웃으며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선배님.”

서도화와 아덴이 서둘러 일어나 그에게 인사했다.

“선배님은 무슨. 나는 가수도 아닌데.”

“하지만 선배님이라고 안하면 죽였을 거잖아요.”

이순협의 곁으로 단오가 쪼르르 뛰어와 딴지를 걸자 이순협이 픽 웃으며 단오의 등을 퍽 쳤다.

“그건 그렇지 이 새끼야.”

“에이 형님. 애들도 보는데 이 새끼가 뭡니까.”

“아무튼, 너는 조용하고.”

‘역시 겁나 무섭다.’

‘역시 존나 그립다.’

서도화와 아덴이 그들을 보며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순협의 시선이 다시 두 사람에게로 돌아왔다.

“편하게 해. 멘트도 많이 치고. 어?”

“네에…….”

“네.”

“나는 누구든 눈치 안보고 웃기는 놈들이 좋아. 예의 차린다고 가만히 있지 말고 많이 까불어. 어?”

“네!”

송학이 그들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이렇게까지 거칠고 마이웨이인 사람들을 데리고 대박 방송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이유.

험악하니 뭐니 해도, 결국 이곳의 고정 출연진들이 방송에 미친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카메라 밖이면 몰라도 카메라 앞에서 까불거리고 분량 뽑아가는 게스트? 저들은 이제 막 데뷔한 신인 아이돌이 뒤통수를 때려도 웃기다면 좋아할 양반들이었다.

그걸 이 신인 아이돌 두 사람이 잘 캐치해야 하는데.

‘뭐, 아이돌한텐 크게 기대 안 하지만.’

송학이 피식 웃으며 외쳤다.

“기대할게요. 자, 이제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출연진들이 세트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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