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220화 (220/270)

제220화

정말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 생존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실제로 서도화는 그곳에서 퀘스트를 깨지 않고 악기를 다루며 노래하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하다못해 주변 술집이나 여관만, 혹은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광장만 가도 노래 한 곡에 떨어지는 돈이 먹고살기에 문제없을 정도는 되었다.

퀘스트는 알아서 서도화에게 기연을 가져다주었고 직업에 맞는 기술을, 명예를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치유 계통의 기술만 쌓이는 게 의미심장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다치지 않는 선에서 천천히 퀘스트를 깨다 보면 언젠가는 돌려보내 주겠지.

그러나 서도화는 아덴 일행에 합류한 이후 자진해서 전투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왜냐고?

‘안 배웠으면 진즉에 죽었다.’

정말 노래만 부르고 연주만 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본격적인 모험이 시작되고 맞닥뜨린 이세계는 서도화의 생각보다 훨씬 위험하고 아슬아슬하며 자비없는 세계였다.

그저 조그마한 도시에 머물며 적응을 끝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안전한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음을 알아차리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아덴이 드문드문 시켜주는 훈련은 무척 고되었지만 어쩌겠는가.

게임이든 현실이든 약한데 아군을 바퀴벌레마냥 살려대는 힐러는 최우선적으로 처치당하더라.

달려드는 마족에게서, 아덴에게 시비 걸려 두들겨 맞아놓고 제일 약한 일행인 서도화에게 화풀이하는 건달패들에게서 살아남기 위해선 어느 정도 몸으로 싸우는 법을 필수적으로 익혀야만 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서도화다. 함께 다니던 그 무시무시한 괴물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또 아예 몸을 못 쓰는 건 아니다.

‘그래, 분량 정도는 뽑을 수 있어.’

서도화가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방송에서 보이는 액션은 전투와는 완전히 다르지만 함께 하는 아덴과는 몇 번이고 합을 맞춰보았다.

어차피 액션으로는 다른 출연진만큼 활약 못 할 것같으니 대신 아덴과의 끝내주는 합을 내세워서 분량을 뽑아보자.

“자, 이제 선생님을 모셨으니 슬슬 보여주시죠. 저희는 오늘 무슨 액션을 하면 되죠?”

이순협의 물음에 송학 pd가 말했다.

“그럼 오늘 여러분들이 재연해내야 하는 영화 속 장면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다들 오른쪽의 모니터를 주목해주세요.”

출연진 모두의 시선이 윤학 선생이 있는 모니터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모니터 속에서 아주 유명한 영화의 장면이 재생되었다.

‘어, 저건…….’

채앵! 챙!

화려한 동작과 함께 검이 휘갈겨진다.

사극의 한 장면 속 배우들은 멋스럽게 검을 나눴고 그 몸짓 하나하나가 멋스럽게 느껴졌다.

서도화도 익히 알고 있는 영화 ‘괴인’.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괴인에게 자리를 뺏긴 왕이 제 자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로 특히 주인공과 최종 악역이 길게 합을 나누는 장면이 큰 화제가 되었다.

모니터에 재생되는 장면은 당연히 화제가 되었던 두 사람의 결투.

선생님으로 출연한 윤학의 액션스쿨이 만들어낸 희대의 역작으로 불리는 장면이었다.

“와 우리가 저걸 한다고?”

“진짜?”

“이게 예능에서 가능해? 한 한 달은 죽어라 연습해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출연자들의 말에 윤학의 입가가 찔끔찔끔 올라갔다.

“에이, 이건 안 돼 안 돼.”

장면 속 검을 나누는 시간이 길어지고 동작이 더 화려해질수록 당연히 출연진들의 불평불만도 커져 갔다.

“송학아, 니 갈수록 어려운 것만 들고오는 거 아니가!”

이순협의 말에 송학pd가 낄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웬만해서는 너무 잘하시니까 갈수록 어려운 걸 가져올 수밖에요. 거기다 이 장면이 윤학 선생님 희대의 명액션이라고 불리는 장면인데 안 할 수가 없죠.”

“……맞는 말이긴 하네.”

이순협이 순순히 인정하며 다시 장면에 집중했다.

확실히 이 방송을 한 지도 오래된 터라 어지간한 액션은 과장 좀 보태면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래도 난이도가 너무 확 높아지는데.’

사실 고정출연진들이야 괜찮다. 실패할 놈은 실패하고 성공할 놈은 성공하겠지.

하지만 게스트들은?

가뜩이나 신인에 딱히 예능감도 없어보여 출연료가 아까울 지경인데 갑자기 이런 난이도의 액션을 보이라고 하면?

‘걍 그대로 통편집이지.’

아덴은 운동을 꽤 열심히 한 것으로 보이지만 어디 운동과 액션이 같은가?

액션은 실전에서 오는 것인데.

‘진짜 노래 코너에만 써먹으려고 데려온 놈들이구만.’

다른 출연진들은 몰라도 메인 진행자인 이순협만큼은 게스트 분량에 조금이라도 신경을 써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1라운드는 쟤네 분량 뽑기 글렀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한편 아덴과 서도화는 생각했다.

‘꽤 그럴 듯한 검술이긴 하네.’

물론 실전에선 절대 써먹지 못할 검술이지만.

그저 화려하기만 한 보여주기식 검술.

실전에서 저렇게 휘갈겨댔다간 진즉에 손목이 잘리고 배가 뚫려 죽었을 테지.

아덴의 눈이 빠르게 영상 속 검술을 눈에 담았다.

‘무술보단 춤에 가까운 검이지만 뭐, 못할 건 아니지.’

아덴의 동료 중 검귀로 불리던 자가 있었다.

그는 아덴과 대련을 하다 빡쳐서 제 소중한 검을 던져버렸다.

왜냐하면 아덴이 검귀의 검술을 한 번 보는 것만으로 고스란히 따라했기 때문이다.

“와 x바 내가 무식하게 주먹만 휘둘러대는 깡패 새끼한테 검술로 지네. 나 검사 안 해. 못해! 때려치워!”

검귀는 아덴을 깡패 새끼로 부르며 씩씩댔지만 아덴은 그를 보며 웃었다.

검술도 창술도. 마법만 아니면 무엇이든 따라할 자신이 있었다.

비록 이 세계에 와선 남의 육체에 들어와 그것마저 여의치 않게 되었지만 뭐, 저 정도로 간단하고 눈에 보이는 검술 정도야 춤춘다고 생각하고 할 수 있다.

아덴이 서도화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러곤 피식 웃었다.

그 세계에선 최약체였던 서도화도 아덴과의 훈련이 성과가 있었는지 저 장면 속 검술이 딱히 어렵게 느껴지진 않는 모양이다.

서도화는 생각했다.

‘검 휘갈기는 게 눈에 보여.’

쾌속의 검귀의 검에 익숙해진 덕분인가?

예상으론 몇 번 보는 것으로 그냥 안무 외듯 외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 *  *

명장면 감상 타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윤학에게 단체 교육을 받는 촬영이 이어졌다.

이 촬영에선 이순협이 염려하던 대로 아덴과 서도화는 분량을 가져갈 수 없었다.

단체 교육 시간은 출연진들이 대놓고 제 예능감을 표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윤학 선생은 좀 힘들었을지언정 고정 출연진들의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웃겼으니.

두 사람의 활약은 개인 연습때부터였다.

출연진 모두가 각자 흩어져 팀별로 연습하는 시간. 보통 단체에서 분량이 잘 나올 경우 팀별 연습 촬영은 방송에서도 짧게 보여주고 마는 경우가 다반사고 고정출연진들은 이를 알고 있다.

그렇기에 고정출연진들은 팀별 연습엔 웃음기 빼고 이기기 위해 진지하게 임했고 이때가 서도화와 아덴이 주목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작은 테블릿으로 영상을 다시 한번 확인한 서도화가 아덴에게 말했다.

“할 수 있겠어?”

“나름? 근데 내가 하면 멋은 없어. 넌?”

서도화가 씨익 웃었다.

“나는 충분히 할 수 있겠어.”

서로 논의하지 않아도 배역은 처음 영상을 봤을 때부터 정해져있었다.

아덴은 옆으로 치는 검을 덤블링으로 피해 상대의 뒤로 자리 잡는 주인공.

서도화는 영화 속 가장 매력적인 빌런으로 검을 사용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멋이 듬뿍 담겨있는 상대역.

“그럼 한번 맞춰보자.”

“어어. ……야 근데 살살해라. 나 무섭다.”

서도화가 불안스레 아덴을 툭 치며 말했다. 어째 진짜 악당한테 무기 쥐어주는 기분이었다.

“어, 살살한다.”

아덴은 대충 말하곤 서도화에게 달려들었다.

타앙!

한구석에서 크게 들려오는 소리에 연습 중이던 출연진과 제작진들이 화들짝 놀라며 소리가 난 방향을 쳐다보았다.

“……방금 뭐야?”

단오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곳을 바라보다 저도 모르게 탄성을 냈다.

타앙! 탕!

이제 막 연습을 시작했을 뿐인데 완벽하게 익힌 합. 거기다 진짜 대련을 방불케하는 호쾌한 목검소리.

“뭐야. 쟤네 왜 저렇게 잘해?”

단오의 팀인 김적장이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아직 저들에겐 윤학 선생님이 가지도 않았다. 그렇다는 말은 제공된 영상과 아까 전 단체 연습으로 저만큼의 완성도를 해냈다는 것인데.

저게 가능한가?

그때 검 휘두르는 소리보다 작게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한번 턴. 원, 투, 쓰리, 포, 턴, 타악!”

타앙!

화려한 검술이 오가는 도중 어디 댄스 교실에나 들릴 법한 박자 타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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