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1화
“쟤네는 무슨 이걸 춤 추듯이 하냐.”
“저것도 대단하긴 대단하다.”
출연진들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면서도 서도화와 아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안무 맞추듯 이어가는 액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법 그럴듯한 모양새가 나왔다.
“아니, 그냥 잘하는데?”
“엄청 잘하는데?”
솔직히 그럴듯한 모양새가 아니고 대놓고 잘한다.
설렁설렁 노트북을 보며 대충 합을 맞추는 것 같음에도 벌써 영화 속 장면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이야, 역시 매일 춤추고 하니까…….”
“춤춘다고 저게 돼?”
“크으…….”
이순협은 걸쭉한 소리를 내며 아예 연습을 멈추고 두 사람의 연습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래 마, 확실히 춤추고 노래하는 애들이라 배우는게 빠르네. 근데 쟤네들이 이런 쪽으로 센스도 있어.”
저게 춤 좀 출 줄 안다고 저런 폼이 나오겠는가?
그럴 것 같으면 지금까지 나와서 이 코너를 경험했던 수많은 아이돌들이 체면도 못 세우고 편집되지는 않았겠지.
물론 지난 출연진들 중 액션 재연을 완벽히 해낸 이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화려하고 공격적인 느낌을 잘 살려낸 출연진은 없었다.
더구나 이번 재연 장면은 고정출연진들조차 자신 없을 정도로 길고 살리기 어려운 동작들의 연속이 아니던가.
타악!
서도화는 아덴의 목검을 제 검으로 받아내며 대놓고 구경 중인 출연진들을 힐끔거렸다.
그래, 확실히 춤추고 노래하는 건 동작을 외우는 데에 도움이 될 거다. 하지만 솔직히 서도화나 아덴이 아니었으면 아무리 춤을 잘 춰도 이 장면을 이렇게 빨리 익힐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무지막지하게 빠르게 돌아가는 전투 경험, 따라하는 데에 천재적인 눈을 가진 아덴, 실제로 검을 다뤄본 자세, 그리고 스파르타 안무 연습이 합해져야 이 정도 난이도의 검술, 아니, 아덴의 말마따나 검무를 쉽게 해낼 수 있는 것이다.
거기다 서도화는 아이돌로서 쇼맨십까지 발휘할 수 있으니.
“이야~ 크윽! 잘하시네! 진짜 데려가고 싶을 정도로 두 사람 다.”
액션스쿨 원장 윤학이 순서가 아님에도 서도화와 아덴에게로 향했다.
시종일관 아덴에게만 향했던 윤학의 관심이 드디어 서도화에게도 향했다.
“아이고. 도화 씨, 잘하시네!”
윤학이 화색이 되어선 소탈하게 웃었다.
처음 아덴의 텀블링을 본 이후 모처럼 액션스쿨에서도 탐낼 만한 인재가 아이돌을 하고 있어 무척 흥미로웠다만 그에 비해 함께 온 멤버인 서도화는 딱히 몸을 잘 쓰는 멤버는 아닌 듯하며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 걸?
“도화 씨 어디서 무술 배운 적 있나?”
아덴은 권투, 레슬링 등 몸을 쓰는 기술을 배운 진짜배기 무술인의 모습이라면 서도화는 뭐랄까 동작을 무척 화려하고 아름답게 소화해낸다. 그야말로 폼생폼사. 스턴트 액션에 딱 맞는 인재다.
진짜 싸우는 거면 몰라도 액션 영화 오디션에선 아덴보다 서도화가 합격률이 높을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두 사람 다 잘하시네! 조금 있다 시범으로 보여도 되겠어!”
서도화는 씨익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떻게든 만족할 만한 모양새가 나온 모양이다.
윤학은 아직 가르쳐야 할 고정출연진들이 남아 있음에도 서도화와 아덴의 곁에 남아 개인 연습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와~ 우리 선생님 뺏겼다.”
“선생님! 선생님! 저희도 가르쳐주세요!”
김적장과 조철성이 허접한 목소리를 내며 윤학을 불렀지만 이미 윤학의 최애 제자는 두 사람이 된 듯하다.
이순협은 이를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이번 애들은 분량 좀 뽑겠네.’
이제 막 데뷔해 카메라 앞에서 입을 열어보는 녀석들이니 멘트 하나하나에 예능감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사실 이순협이 싫어하는 게스트는 예능감 없는 게스트가 아니다.
돈을 받고 출연하면서 분량 못 뽑는 게스트지.
예능감이 없으면 게임이라도 잘해서 분량을 가져가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은 꽤 괜찮은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스승 앞에서 온갖 알랑방귀를 뀌어대는 고정출연진들 사이에서 게스트가 메인 카메라의 관심과 스승의 애정을 받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니까.
윤학은 그 후로도 한참이나 서도화와 아덴의 연습을 도와주다 다른 출연진들이 애걸복걸하고서야 겨우 그들에게도 도움을 주었다.
* * *
잠시 후, 출연진들은 명장면을 재연하기에 알맞은 복장을 하곤 세트장으로 모여들었다.
조선 시대 무사들이 입었을 법한 도포. 이런 때가 아니면 입을 일 없을 무척 화려한 복장이었다.
“와, 이런 차림으로 검술을 해? 진검이었으면 너덜너덜해질 텐데.”
“어이, 우리 전통의상에 불만이라도?”
서도화의 눈 흘김에 투덜거리던 아덴이 입을 다물었다.
“아덴 네가 멋을 모르네!”
조철성이 픽 웃으며 아덴에게 말했다.
“한복의 멋이 있어. 조금 있다 검술 재연할 때 봐라. 휘날리는 게 얼마나 멋진데?”
전투는 멋으로 하는 게 아닌데요. 하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이것 역시 서도화가 주는 눈치에 속으로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자, 그럼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송학 pd의 외침과 함께 촬영이 시작되었다.
“여러분! 이 의상 보이십니까?”
이순협이 멘트를 치자마자 출연진들이 빙글빙글 돌거나 자세를 취해 제 의상을 뽐내기 시작했다.
“어유, 어떻게 이렇게 하나도 안 멋있을 수가 있냐?”
이순협은 이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다 조금 더 고개를 쭉 빼 서도화와 아덴을 가리켰다.
“진짜 멋진 건 저 친구들이지.”
“아 맞아. 얘네 진짜. 역시 잘생기니까 태가 다르다.”
“훤칠하니!”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서도화가 고개를 저으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이때다 하고 있는 힘껏 폼을 잡던 아덴도 취했던 자세를 풀고 서도화를 따라 고개 숙여 인사했다.
“고요들 되게 좋아하시겠다.”
막내 지철옹이 대놓고 아부를 떨듯 간드러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요들? 고요드을? 아주 어메스 팬분들이랑 친구인 줄 알겠다?”
“친구 맞지! 나도 고요니까! 사랑해요 어메스!”
“참나.”
“아니 생각을 해보시라고요. 이 옷 입고 검술하고 텀블링한다고 생각해봐. 나 같으면 이미 고백했다.”
“자자, 주접 그만 떨고. 이제 그만 시작해볼까요?”
이순협의 말에 송학pd가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그럼 한 팀씩 나와서 연습한 액션을 선보이도록 할 텐데요. 오늘의 심사위원은 윤학 선생님뿐만 아니라 윤학 선생님의 제자분들도 계셔요. 아주 냉철한 점수를 매겨주실 겁니다.”
송학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작진들 사이에 숨어있던 검은 복장의 사람들이 우후죽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윤학의 제자들이었다.
“어우, 압박감이 확 오네.”
단오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심사위원이라기보단 우락부락한 관객들에 더 가까웠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거리의.
이곳에 출연할 정도면 이미 스턴트일을 능숙하게 해내는 윤학의 애제자들일 텐데, 그들의 앞에서 제 부족한 실력으로 고난이도 동작을 선보이는 건 무척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자, 그럼 첫 번째 팀부터 나와주세요.”
송학의 지시에 따라 단오와 김적장이 앞으로 나섰다.
“아까 저분들 보니까 연습 열심히 하시던데.”
“나 이 방송 봤거든. 엄청 잘하는 팀이야.”
서도화의 말에 아덴이 ‘오’ 작게 감탄하며 관심있게 그들을 지켜보았다.
방송에선 오히려 너무 완벽히 잘해서 분량이 없는 출연진들의 팀이다.
“아아! 우리 에이스팀!”
“파이팅!”
단오와 김적장은 출연진들의 응원 속에서 장면 연기를 시작했다.
“…….”
“…….”
타앙! 탁! 타악!
“합!”
“…….”
이순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송학의 눈치를 보았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진지하게 이어지는 검술.
와 잘한다. 그 이외의 반응할 만한 게 없었다.
윤학 선생은 무척 만족한 듯 했지만 예능적으로 봐선 딱히 건질 게 없는 듯한 분위기였다.
‘하 답답하네.’
이순협이 입술을 축였다. 아까 연습하는 거 봤으면 이러면 안 되지!
이것들은 별로 멋있지도 않은 놈들이 멋있으려 들어서 문제다.
‘개그맨이!’
딱 봐도 오늘 명장면은 어메스가 가져갈 것 같은데 이래서 무슨 분량을 가져가겠는가.
두 사람의 합이 끝나자 영혼 없는 리액션들이 이어졌고 이순협이 서둘러 마무리를 지어버렸다.
그 이후 실력보단 웃음으로 승부하는 막내 라인, 맏형 라인의 재연이 이어졌다.
민망할 정도로 반응이 없던 첫 번째 팀에 비해 두 팀은 서로 네가 못 했네 거기가 더 못 했네 하며 가라앉았던 분위기를 띄워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아덴과 서도화의 차례가 되었다.